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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례요한. 그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

맑은샘77 2013. 10. 18. 16:10

세례요한. 그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

 

A. 세례요한의 생애에 관하여

1. 세례요한의 출생 배경

세례요한은 선지자들의 예언에 따라 출생했다. 그의 출생은, 약 700년 전에 이사야 (BC.738-695)가 예언을 했고(사 40: 3),  또한 BC. 450년경 말라기 선지자(말 4:5)와 가브리엘 천사도, 세례요한의 출생을 예언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예언의 성취가 세례 요한에게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다(마 11:14).


2. 세례요한의 가문

그의 아버지는 아비야 반열에 속한 사가랴요, 그의 모친은 엘리사벳으로 대제사장의 아론 가문에 속한 자손이었다. 모두 다 레위족 계열의 사람들로- 그들은 성경에 따라 제사장 가문끼리 결혼했었다(대상 24:6-19). 부친 사가랴는 제사장의 24반열 중 8번째 속한 아비야 반열에 속했고(대상 24:10). 세례요한은 명문가 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3. 세례요한의 출생과정

이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계명과 규례에 있어 흠이 없는 당대의 의인이었으나 아내 엘리사벳은 수태를 못하는 여인이었다( 눅 1:6). 그래서 엘리사벳의 남편 사가랴는, 제사장 직무를 행할 때마다, 아들을 구했으나, 나이 많아 늙도록 아들을 얻지 못했다(눅 1: 13).  또다시 사가랴는 규례에 따라 제사장 직무를  행하게 되어 성소에 들어가 분향단에서 분향하고 있을 때, 천사장 가브리엘을 만났다. 향단 우편에 선 천사장 가브리엘은 세례요한의 출생목적과 이름에 대해서 알려주고 떠났고(눅1:4-11)- 그 예언대로 엘리사벳은 수태를 하여 아들을 낳은 후, 천사의 지시에 따라 이름을 요한이라 했다.

 

4. 이름의 뜻

세례요한 이름의 뜻은 "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 이며, 출생목적은, 예수님보다 앞서 가서 <나사렛 예수가 곧, 그리스도요 메시야 >임을 모든 백성에게 증거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를 지적하여 회개를 촉구하고 심판을 경고하여, 모든 백성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주는 것이었다.


5. 세례요한의 성장과정

세례요한은 공적인 활동을 하기 전, 여러 해를 유대 광야에서 사역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다(눅1:80). 전설에 의하면, 세례요한은, 고향인 유대의 산악지 지대와 가까운 쿰란 공동체나 또는 엣세네파 구룹에서 양육을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세례요한에게 임했다고 한 것을 보면, 쿰란의 교훈과 행습과는 달리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같이 뛰어난 예언자임이 분명하다(눅 3:2)


6. 세례요한의 활동장소

요한의 활동 장소는 유대와 베레아 간의 교차 지점에서 시작하다가, 사역 중 최고 절정이었던 예수님께 세례를 준 후에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며 활동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요3:23). 그후 애논에서 베레아로 돌아왔는데, 분봉왕 헤롯이 체포령을 내림으로, 베레아 지방인 마케루스(마카이루스) 요새에 정배되었다가, 간교한 헤로디아로 인하여 목베임을 받아 순교했다.


7. 세례요한의 활동기간: AD.26-27년

세례요한과 예수님과의 나이차는 6개월 정도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복음을 시작하실 때 나이 30세쯤 되었다는 것을 보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나이 약 29세 중반 정도에 세례를 받으시고- 세례요한이 잡히기 전까지 약 6개월 동안 사역준비를 하신 후 나이 30세즘 되어 사역을 시작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눅3:23- 예수께서 가르침을 시작할때에 30세쯤 되시니라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때 나이는 29세 중반-30세쯤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렇다면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후, 심히 ?은 기간동안 활동하다가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세례요한은 BC. 6년에 가브리엘이 나타난 후, BC. 5년에 태여나 유대광야에서 성장. AD. 25년부터 활동하다가  AD.27년 초 . 예수의 세례식 후 체포되었다가, 사해근방 마케루스에 감금되었다가. 그해 겨울에 순교한 것으로 생각된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사이는 친인척 관계로 예수님보다 약 3년 앞에 죽었고,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활동하고 있는 동안 사역을 위해 준비하신 후, 세례요한이 체포되자 AD. 27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셨다( 눅 1: 36).

 

B. 요한이 준 세례의 문제점:


1. 성령이 수반되지 않는 세례였다.

세례요한이 많은 사람들에게 주었던 물세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세례와는 차이가 있었다. 세례요한의 물세례는 회개를 시키기 위한 신앙의식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는 회개한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성령세례였다. 마3:11 =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 그(예수)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 그래서 세례요한의 물세례와 지금의 물세례는 구원과 관계가 없는 신앙의식일 뿐이다. 그 증거는 사도행전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행19:1-5 = 바울이 에배소 교회에 와서 묻기를 [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

 


세례요한의 물세례만 받았던 에배소 성도들이 말하기를 [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 하니 바울이 가로되 [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 ][ 요한의 세례로라 ]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말하되 - 내 뒤의 오시는 이를 믿으라 ! --- 곧 예수라 ! > 하고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임했다고 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베푼 세례는 성령와도 구원과도 관계가 없는 세례였다. 만약 세례요한이 준 물세례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2. 삼위일체 이름이 없는 세례였다.

세례요한이 물 세례를 베풀었때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준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의식을 거행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은 율법의 대표자로 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마11:13 -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그 증거가 있다. 사도 바울이 에배소 교회에 와서 세례요한의 물세레만 받았던 성도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매 - 그들이 다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바울을 통해 세례받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행19:5-6). 요한의 세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지지 않았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게 된 시기는 예수의 승천 이후부터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세례에는 삼위일체의 이름이 아닌 성부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베풀어진 불완전한 구약적 세례의식임이 분명하다. 율법이 구원에 있어 불완전하기 때문에 세례 역시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C. 요한이 준 세례의 의미:


1. 죄사함의 길을 안내해 준 세례였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와서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으나, 거기에는 죄사함이 없었다.(마 3:6). 왜냐하면 세례요한의 사명은 죄사함과 구원을 위해 온 그리스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에, 요한의 세례가 죄 문제를 해결해 주는 죄사함이 있었더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아 가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세례요한은 세례을 통하여, 예수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로 - 예수를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로 - 인도해 주는 의식을 행한 것이다.

 

막1: 4 -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 마3:11 -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마9:6 -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2. 성막 물두멍 개념의 세례였다

요한의 세례의 뿌리는, 모세 성막의 물두멍에서 찾을 수가 있다. 성막 물두멍(물탱크)의 물은,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 직분을 행하기 전에 수족(손과 발)을 씻으라고 담아 둔 물이다. 그리고, 번제단에서, 화제를 사를 때에도, 이 물로 수족을 씻고 직분을 행해야 했다(출30: 17-21).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만나러 가기 전(성막에 들어가기 전) 먼저 깨끗이 씻도록 물탱크에 담아 둔 물인 것이다. 왕을 만나 뵈려면 먼저 몸을 깨끗이 하고, 예복으로 갈아입은 뒤, 정중한 예의를 갖추어야  함은 낮은 자의 마땅한 도리이다.  이와 같이 제사장들은 더러운 몸으로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 뵐 수는 없기 때문에 먼저 수족을 깨끗이 씻고 성소에 들어갔다

 

요한이가 준 세례도 마찬가지다. 예수를 만나기 위한 준비로서 몸을 깨끗이 씻게 하는 물두멍 개념의 세례인 것이다(마11:13. 눅 16:16). 이러한 증거는 행19:5-6절에도 기록되어 있다. 사도 바울이 세례를 주고 안수하매, 성령이 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깨끗이 씻은 후, 성령을 받았다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물은 회개를 의미한 것으로 누구든지 깨끗이 씻지 아니하면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이며, 누구든지 깨끗하게 회개하지 아니하면 성령도 받을 수 없음을 말했다. 이는 하나님이 거룩하니 성도들도 거룩해야 하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의 복음의 길을 준비하는 세례였다

마 3:3 = 나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첩경을 평탄케>란, 거친 길(장애물)을 제거하라는 뜻이다. 옛날에, 왕의 민간 행차가 있을 때, 궁중에서는 미리 사신을 보내어, 그 지방 백성들로 하여금 왕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울퉁불퉁한 도로를 평평하게 - 고르고 - 무너진 길을 수축케 하며- 장애물을 치우며, 도로를 평탄하게 하여 깨끗이 청소를 하였다.

 
예수님의 행차(사역)에 있어 장애물은 인간의 더러운 죄의 근성이다. 유대인들에 있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장애물이란, 장로들의 유전과 전통에 매인 형식적인 종교생활과 욕심과 탐심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는 것을 지적했다(눅 3:7-11). 그래서, 세례요한은 그들의 장애물을 지적했는데, [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하나님께서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했고 (눅 3:8-9). 세리들에게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함이 없이 늑징하는 것이 신앙의 장애물로 지적되었으며(눅 3:12-13).


군병들의 장애물은 강포와 무소와, 받고 있는 월급에 족함이 없는 것을 지적했고(눅3:14),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 있어 장애물은  외식과 형식에 치우친 잘못된 신앙과 영혼 관심보다는 돈만 사랑하는 삯군 목자면서도 자칭의인이라고 하는 착각신앙이 구원의 장애물이었다(마 3: 7-12). 이러한 죄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마음을 깨끗이 비워야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들일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준비작업으로서의 세례의식을 행했던 것이다.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 그리스도 복음 사역도 어려움을 격게 되기 때문에 세례요한을 먼저 보내 메시야의 길을 닦게 한 것이다.  마 3:3 = 나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4. 구세주를 갈망케 하는 세례였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베푼 세례가 죄사함을 주거나 근본적인 죄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죄를 자복케 하여 세례를 주었다. 왜 그리 했을까 ! 그것은 완전한 구원과 죄사함이 없는 세례라 할찌라도 세례요한에게는 주어진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해야될 작업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것은 곧, 예수께서 복음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그의 백성들이 <자신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 또한 <비참한 죄의 결과>를 알고 - 자기 영혼 궁극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며 <번민하는 영혼들>을 많이 준비해 놓는 일이었다.

◆ 롬6:23 - 죄의 삯(결과)는 사망(지옥)이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죄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알지 못하고, 과감하게 죄를 짓고 살다가 용감하게 지옥 불로 뛰어드는 사람이다. 죄의 결과를 깨닫는 사람만이, 메시야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것이고, 필요성을 느낀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반갑게 영접할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는 메시야의 필요성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회개할 죄가 없는 의인이라고 자칭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시야를 배척하고 - 필요없는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께 철저하게 버림을 당했다.

 


D. 구약 율법과 세례요한과의 비교

 

 

세례요한이 무엇이었는지 알려면 먼저 구약 모세의 율법과 세례요한의 사명을 비교해보아야 한다. 그리하면 세례요한이 무엇이었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면 구약 율법의 기능은 무엇이었는가 ?


1.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준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는 존재하고 있었으나, 죄를 죄라고 규정지어 줄 율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죄를 깨닫지 못하고 죄와 함께 살다가 죽어 갔다. 그러나, 율법이 존재하게 되면서부터, 잘못된 모든 것들을 죄라고 규정해 줌으로서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이 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롬 5:20. 롬3:20. 롬7:7

 

◐ 세례요한도 죄를 깨닫게 했다- 롬 5:20

눅3:11-  세례받으러 나오는 무리를 향하여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라> - 이웃 사랑없는 눅3:12 -세리들을 향하여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 눅3:14- 군병들에게<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 ※무소: 일을 거짓으로 꾸며 관청에 고소함 - 막6:17-18 - 헤롯이 동생 빌립의 아내를 취했을때, 세례요한은 헤롯에게 가서 <형이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 죄>라고 책망했다.

 

 

2. 율법은 죄의 결과를 깨닫게 해 준다.

롬6:23 - 죄의 삯은 사망이요 -- (16절)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4:15. 6: 20-23 등). 사망이란, 육체적 죽음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영적 사망 곧 지옥에서의 영원한 고통을 말하고 있다.  히9:27 -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 세례요한도 죄의 결과를 깨우쳐 주었다

눅 3:7- 독사의 자식들아 !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3:7). 눅3:17 -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은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3. 율법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갈 3: 11-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자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율법으로 의롭게 못할 것이 분명하니 --- >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다 지키기란 불가능하고 - 설사 다 지킨다해도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구약의 울법으로 구원이 가능했다면, 이방인들의 구원은 있을 수 없다.

 

◐ 세례요한도 자기를 통해서는 구원이 없다고 했다

세례요한은 <그 선지자도- 그리스도>도 아니다. 그러므로 나를 통해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 모든 사람들은 나를 떠나 어린양 예수께로 가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하여 제자들까지도 미련없이 떠나 보냈다. 요1:29 - 보라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3:26-30 - 저희(요한의 제자들)가 요한에게 와서 --- 선생님(세례요한)이 증거하시던 자(예수)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예수)에게로 가더이다.   요3:29-30-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해야 하겠고 - 나는 쇠하여야 하리요. 1:35-40 -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두 제자(요한과 안드레)가 그 말을 듣고 예수를 쫓거늘 --->

 


4. 율법은 예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가르친다

몽학선생이란, 하인이 주인집 아들을 학교까지 데리고 갔다가 다시 데려오는 것을 말한다. 율법은 모든 사람들을 예수께로 인도해 주는 몽학선생 역활을 한다. 갈3:24 -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14: 6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 세례요한도 예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었다

세례요한은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보라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로 가야 산다 했고(요1:29-35) - 제자들을 향해서도 <보라 !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너희들도 저분께로 가야 산다고 하자 이 말을 들은 요한과 안드레는 미련없이 세례요한의 곁을 떠났다(요1:35-40 ). 세례요한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율법의 저주아래 있지말고) 곁을 떠나, 그리스도(복음)께로 돌아가 그의 신부(성도)가 되어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었다(요1:35-37). 그러므로 세례요한도 모든 사람들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었다.

 
5. 율법은 불완전하지만 거룩하다

롬7:12 - 율법도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

불완전한 율법이 왜 거룩한가 ! 율법이 없이는, 죄를 알 수 없고 - 비참한 죄의 결과도 알 수 없으며 - 죄의 결과를 모르면 메시야의 필요성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율법이 죄와 그 결과를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에 죄인들은 구속자인 <메시야 대망사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복음은 율법을 통하여 거룩하게 되고 - 율법은 복음 안에서 존재가치를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이 둘은 뗄래야 땔 수 없는 친구지간이니 - 둘 다 하나님께로 부터 나온 쌍둥이 복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음이 필요하고,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율법이 필요하다.

 

 

◐ 세례요한도 불완전하지만 거룩했다
세례요한을 통해서는 죄사함과 구원을 받을 수 없지만 - 때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 메시야 인지 의심과 갈등도 있어 불완전했지만 - 그는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었다.  세례요한은 자기의 존재목적과 사명을 정확하게 알았고 - 그래서 율법의 형식과 의식에만 치우친 유대인들에게 자기의 생애와 사역을 통하여 율법의 기능과 근본정신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또한 세례요한은 [ 신랑이, 신부를 취함이 마땅하고, 나는 친구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다 ]하여 자기의 위치와 신분을 분명하게 밝힘으로 자신을 따르지 못하게 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 <오직 그리스도만 위하여 !> 이것이 세례요한의 정신과 사상이었으니 거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6. 결론

 


구약의 율법과 세례요한의 사역을 비교해 보았다. 세례요한. 그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 예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복음을 전하심 같이(요1:14), 구약의 <율법도 육신이 되어>그 백성들과 함께 거하면서 복음을 소개했으니, 세례요한은 바로 구약의 율법었던 것이다. 세례요한은 가시적인 율법이 되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죄인>임을 깨닫게해 주었고(눅3:7-14. 마 3:1)비참한 죄의 <결과>를 깨닫게해 주었으며 (눅 3: 7-9)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줄 <그리스도를 증거>했으며( 요 1:29.  36), 모든 사람들(제자들까지도)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주는 <몽학선생> 역활을 했고(요1:36-37.  3:26-30)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율법의 마침>도 생동감있게 보여 줌으로서 율법의 기능과 근본정신을 잘 보여 주었고.. 또한 율법과 복음 사이의 갈등도 잘 해소시켜 주었다. (갈 3: 24). 다시 말하면 세례요한은 자신의 삶을 통해 구약에서 말하는 율법의 기능을 생동감있게 보여 주었던 역사적 산 인물이었다.

 

E. 세례요한과 예수님과의 관계.


요 3: 30 = 그(예수)는 흥하여야하겠고, 나(요한)는 쇠하여야 하리라

주의 종들은 마땅히 자기를 철저하게 낮추고, 오직 그리스도만 높여야 한다는 겸손한 목회 철학을 가르쳐 주고자 한것만은 아니다. 자신은 율법이기 때문에 사라져야함이 마땅하고, 진정한 복음(예수 그리스도)은 영원히 굳게 서야 함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율법 폐지 선언이요, 복음선포였다(히10: 9). 이제 구원에 있어 완전한 복음(예수 그리스도)이 나타났으니, 불완전한 율법의 존재는 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았던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요 율법이었다.

 

요3:29 -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세례요한은 자신의 신분과 위치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선지자도 - 그리스도도 아닌> 복음의 친구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힘으로 자신을 추앙하거나 따르지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록 율법이 구원에 있어 불완전하다 할찌라도> - <사라져 없어져 버릴 존재라 할찌라도> - 세례요한(율법)은 예수(복음)을 위하여 존재해 왔다. 율법의 열망은 속히 복음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 그런데 수천년 동안을 열망하며 기다려왔던 그 복음을 보았고 - 그 복음의 소리를 듣는 친구(율법 세례요한)는 그 복음안에서 자기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는 만족한 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다. 이 웃음은 온 인류의 기쁨과 - 하나님의 기쁨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F. 구약에서의 율법과 복음의 인물들

 

이러한 율법과 복음과의 관계는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 종종나타나고 있다. 율법의 대표적인 인물과 복음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그것이다.

 

1. 이스마엘과 이삭이 율법과 복음의 인물이었다.

이스마엘은 율법의 상징적인 인물이요, 이삭은 복음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을 통하여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스마엘(율법)은 이삭(복음)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사라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사라의 낯을 피하여 도망친 하갈을 되돌려 보내며 <주인의 수하에 복종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삭이 태어나자 이스마엘의 존재는 사라져야 했다(창21:10).  갈4:21-23 =  --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이것이 장차 있게될 율법폐지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2. 모세와 여호수아가 율법과 복음의 인물이었다.

모세는 율법의 모형인물이요, 여호수아는 복음의 모형인물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 40년을 거쳐, 약속의 땅이 보이는 모압평지까지 왔다. 그러나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므리바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했던 이유도 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율법의 기능을 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 땅만 바라보고 모압 땅 비스가 산위에서 죽어갔다. 신 3:25 - 모압의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가나안 땅의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 --(신34:4. 신3:26-27)

 

왜 그리하셨을까 ? 모세는 율법이요, 여호수아는 복음이니, 사명이 끝난 모세(율법)는 여호수아(복음)와 함께 가나안땅에 들어가 같이 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모세가 가나안땅만 바라보고 사라져야 하듯, 세례요한도 예수님만 바라보고 사라져야 했다. 율법(모세)은 자기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가나안땅만 바라보게만 할뿐, 가나안(천국)까지 이끌고 갈 수 없다. 오직 여호수아(예수)만이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천국)땅까지 갈 수 있다.


3. 세례요한의 체포와 예수님의 활동

예수님의 사역을 보라.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체포되기 전까지는 사역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삼으셨고,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신 후 곧바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셨다.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의 체포와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계셨다. 그의 죽음은 곧 성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율법폐지선포>였다. 하나님께서는 율법폐지 선포과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활동 시작을 명하셨고, 예수님은 그때부터 본격적인 사역에 들어가셨다. 마4:12-17 "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 이때부터 - 비로소 -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 막1:14).  눅16:16-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G. 세례요한을 세우신 목적:


1. 율법의 근본정신을 보여주기 위해서

당시 IS 백성들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잃어 버리고 율법의 형식과 의식만 붙들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의 사역(생애)을 통하여, 율법의 기능과 근본 정신 즉, 율법의 핵심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눅 16:16. 요 5:39).


 2. 새 시대가 개막되었음을 알리기 위해서
[요1:29 - 보라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 세례요한은 <율법시대는 가고, 새 시대가 개막되었으니-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율법을 청산하고 복음의 시대로 들어가라 ]고 외쳤다.<마11:13-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세례요한의 때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하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소리를 듣고 - [ 행2:37-형제들아 ! 어찌할꼬 ! ] 가슴 치는 회개를 통하여 새 시대(천국)를 향하여 들어가기 시작했다(마 11:12-13). 이제 율법시대는 가고 복음의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H. 세례요한은 왜 수명장수하지 못했는가 !!


1. 율법과 복음은 같이 존재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요한은 [ 모든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배반하고 예수를 쫓더란 > 말을 듣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큰 기쁨에 사로잡혔다. 이제 그(복음)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율법)는 쇠(사라져야)하여야 한다. 이것이 율법의 핵심이요, 본질이요, 근본사상이요, 하나님 공의의 만족이다. 율법의 목적은 성취되었고 - 자기의 사명은 끝났다. 이제 복음 앞에서 율법은 물러나야 될 때가 온 것을 알았다.

 

하나님께서는 왜 세례요한의 수명장수를 허락하지 않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으로 하여금 수명장수하다 죽게할 충분한 능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요한은 젊은 나이에 일찍 죽도록 계획되어졌다. 왜 그랬을까 !  세례요한은 가시적인 율법으로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요한의 사명이 끝난 것은 곧 율법의 사명이 끝났음을 의미했고, 율법의 목적이 성취된 이상, 더 존재할 가치도 없게 된 것이다. 세례요한의 체포와 죽음은 곧 율법폐지를 의미했다. 마11: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 까지니 ---

 

이스마엘은 이삭이 태어날때까지만 필요했으며 - 모세(율법)는 여호수아(복음)가 등장할 때까지 40년 동안만 필요했고 - 세례요한은 예수께서 복음을 증거하시기 전까지만 필요했다. 이삭(복음)이 이스마엘(율법)과 함께 거할 수 없고 - 모세(율법)와 여호수아(복음)와 함께 거할 수 없듯이 - 세례요한(율법)도 예수님(복음)과 함께 활동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역사의 무대 위에서 사라져야 했고, 그의 죽음은 곧 율법의 폐지를 의미했다(마 14:8. 눅16: 16 . 마 11: 13). 

 

2. 율법과 복음의 갈등때문이다.           


세례요한은 옥에 갇힌 후,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 당신이 그 메시야가 확실한지. 아니면 다른 메시야를 기다려야 한지 ]에 대해 물었다(마11:2-3). 이것은, 마치 이스마엘과 이삭이 같이 존재하게 됨으로서 빚져지는 아브라함의 번민과 갈등 같은 것이었다(창21:11)-믿음이 약화되었던 세례요한의 갈등은, 당시 세례요한(율법)과 예수 그리스도(복음)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고 있었던 유대인들의 신앙상태를 반영했고, 열왕상하에서 왕들이 산당제도를 폐하지 못함으로서 백성들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아 오지 않음과 같았다(대하 20: 33)

 

계속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함께 존재한다면 백성들은 누구를 따라가야할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번민과 갈등에 싸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의 수명장수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의 죽음에까지도 율법의 의미를 부여하셨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죽음은, 하나님의 의도적인 계획 속에 다 포함되어 있었다.

 

3. 세례요한에 대한 추종세력들의 미련때문이다.

세례요한이 빨리 사라져야 할 이유 중 또 하나는, 요한이 옥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가 요한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복음이 들어 온 후에도, 유대인들은 율법의 굴레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계속 붙들고 있음을 의미했다(마 11: 2-3).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벗어버리게 하기 위해서, 요한을 제거하도록 허락하셨다. 그로 인하여 요한의 추종세력들이 요한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벗어 버리고 예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의 죽음을 통해 <율법이 폐지> 되었음를 알려주셨다. - 이제 모든 백성들은 폐지된 율법에 매이지 말고, 온전히 복음으로 돌아서야 했다. 만약 세례요한(율법)을 없애버리지 않는다면, 세례요한의 추종세력(율법주의자들)과 그의 제자들은 결코 복음으로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요한은 사라졌고 - 그의 제자들은 그의 죽음과 함께 요한에 대한 미련을 벗어버리고, 예수님께로 돌아섰다(마14: 12).

 

I. 세례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


1. 여자가 낳은 자 중 세례요한 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 대해 <인류 역사상 세례 요한 만큼 위대한 성인은 없다 >고 그 인간됨을 칭찬하신 말이 아니라, 율법의 위대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인류 역사 상, 상천하지에 하나님의 율법만큼 거룩하고 선하고 위대한 법은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신 것이다. 아담타락 이후,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 모든 지구촌의 각 나라들의 헌법들을 보라. 어느 민족 어느 나라에 율법의 기능 같은 법이 있는가 ! 국토와 자유와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사회의 위계질서를 위한 각 나라의 민주주의 헌법 가운데도 - 인간개조를 위한 교육법 가운데도 - 몇 천년동안 존재해 온 우상종교들 가운데도 - 하나님을 알게 하는 법조항은 단 한개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에 있어 불완전하여 폐지시켜 버린 율법지만 - 사망과 저주아래 놓인 모든인류에 있어서 율법은 얼마나 위대한 공헌을 했는가 생각해 보라 !. 율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 무엇이 죄인가 ]를 가르쳐 주었고, 모든 인간은 죄와 사망아래 매인 죄인임을 인식케 했으며 3). 죄의 결과를 깨닫게 하여 메시야 대망으로 간절하게 하여, 사망과 저주로부터 구원해 주실 메시야께로 인도해 주었으니, 율법만큼 크고 위대한 법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

 

2.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세례요한)보다 크니라
세상에서 율법만큼 거룩하고 위대한 법은 없다할찌라도 -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복음의 지극히 작은 한 계명만도 못한 것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율법)은 고백하기를 [ 나는 허리를 굽혀 그의 신발 끈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고 고백했다(마11:11 .막1:7).  사도바울은 복음에 대해여 고백하기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일 만큼 하찮은 것이나, 구원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으니,

 

어찌 율법전체에 비하겠는가(고전 1: 18). 세례요한은(율법)은, 예수님을 소개하고, 구원받는 길을 가르쳐주는 이정표역할만 했을 뿐, 천국까지 끌고 들어갈 수 있는 계명은 단 한 계명도 없다. 크고 위대한 율법을 잘 지킨 유대인들은, 결코 그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께 철저하게 버림을 받았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고 괴롭혔던 살인 강도는, 예수님를 영접하고 천국에 들어갔으니, 복음의 한 계명은 율법의 전체보다 컸던 것이다(마 23:13-36).


 

J. 그렇다면 세례요한은 어떤 율법이었는가 ?

율법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성막중심으로 행해지는 제사법과 사법부에 해당하는 형법과민법 - 신앙의 행동원칙을 제시해 주는 십계명 즉, 도덕법이 있다. 이 3가지의 율법 중 세례요한은 어느 율법에 속하는가. 차례대로 생각해 보자

 

1.  제사법 (의식법)
제사법은 레위기 1장에서부터 장황하게 소개되고 있다.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 이  5대 제사는 평상시 드리는 개인적인 제사(레1장-4장)와 - 7대 절기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적인 제사(레23장) 가 있다. 구약은 성막을 중심으로 - 제사법 - 제사장 제도 - 절기제도- 할례제도 등이 있다. 이것들은 미래 복음(JX)의 모형으로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대변하고 있다. 그 증거로 예수님의 행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유월절 전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제사용 양과 소들을 다 내어쫓음으로 모형과 실체 사이를 생동감 있게 보여 주셨다.

 

[ 이제 실체가 왔으니, 나의 모형들 - 가짜들은 다 물러가라][ 황소의 피가 너희 죄를 없이한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해 흘리게될 나의 피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킬 것이니라 (히10:4) ] - 이것이 성막 중심으로 행해지는 율법(의식법)의 알맹이었다. 그후,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성막 중심으로 행해졌던 모든 제사법과 의식법을 폐지시켜버렸다. 그 결과 성막중심의 율법(의식법)은 더이상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

 

2. 민사와 형사를 포함한 사법
이 법은 IS의 신정국가에 있어서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국가 헌법에 속한다. 국토를 지키고 - 사회의 기강과 위계질서를 바로 세우고 - 백성들의 안녕과 생명과 재산를 지키기 위해서 - 사회와 신앙이 병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법과 사회질서를 무시하고 - 혼란과 무질서를 야기시킨다면 - 재판장의 판결에 따라, 사형이나 구금. 벌금 등을 물리는 처벌법인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은 IS멸망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고 이 법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 법은 JX께서 재림하신 후 온 지구촌을 통치하게 되면 - 천년왕국 기간 동안 100 % 그 효력을 발생할 것이다.

 
3. 도덕법(십계명)
성경 66권을 10 계명으로 집약시키면, 10계명이요, 10계명을 또다시 두 계명으로 집약시키면 [ 위로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 집약 된다 (마 22: 36-40). 그러나, 도덕법이라 할 때, 반드시 인간끼리만의 계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까지를 포함한다.  도덕법은 두 계명으로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을, <5계명에서-10계명>까지는 인간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두 계명 역시 - <위로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로 나눠진다.

 

이 도덕법은,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친히 써 주신 십계명으로 만고불변의 우주의 법칙이요, 구원받은 성도의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이요, 행동 원칙이요, 삶의 원리요, 신앙과 행위의 기준이요, 잣대이며 척도이며 -신앙방향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도덕법을 통해서 성도들을 거룩하게 만들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며 - 완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십계명을 중심한 도덕법은 한 획도 지울 수도 - 고칠 수도 없는 천국의 헌법이요,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한 왕의 조서인 것이다.


마5:17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도덕법)케 하려 함이라 . 마5:18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도덕법)의 일 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위의 구절들은, 신앙과 행위의 근본이 되는 십계명 중심의 모든 도덕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 서신이나 히브리서에서 폐했다는 율법은 제사법과 의식법을 말할 뿐, 이 도덕법과 사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4. 세례요한은 3개의 율법 중 어느 율법이었는가
그러면, 세례요한은 이 3개의 율법 중 어느 율법으로 등장했는가 ? 그는 성막중심으로 행해지는 제사법으로 등장했다. 세례요한의 활동은, 제사법 속에 감추어진 율법의 본질적 핵심(복음)을 드러냈고, 그의 죽음에서는 성막 중심의 모든 의식법 폐지선포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십계명 폐지론자가 아니다. 성도들을 거룩하게 만드는 도덕법은 신약에 와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으나,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는, 모세 성막과 솔로몬 성전 중심의 5대 제사와 7대 절기와 할례 등은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증거가 있다. 할례문제로 신앙의 갈등에 싸인 안디옥 교회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울을 예루살렘에 보냈고, 예루살렘 교회는 교회 창립이래 최초로 총회를 소집하여 이 문제를 논의했는데 결과 [ 이미 폐지된 할례의 의식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고 결론내려 이 문제를 해결했다(행 15장)

 

 K. 결론

 

만약 중막 중심의 의식법들이 폐해지지 않았더라면 이방인인 우리들에게는 구원이란 없다. 왜냐하면 성막제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다. 그 명령대로 - 그 설계도에 따라 성막(솔로몬 성전도 포함)을 건축해야 하고, 지성소와 성소에 놔둘 기구들을 만들기위해 금과 은과 보석들이 있어야 하며 - 제사장도 레위인이어야 하며 - 5대 제사와 7대 절기와 함께 많은 양과 소와 염소와 비둘기들이 수없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기 원한다면 - 하나님의 설계도에 따라 성막을 건축해야 하고 - 평당 30억이 되는 378평의 성막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금과 은과 보석들과 재료들이 있어야 하며- 레위인 가운데 제사장도 있어야 하며 - 개인이 죄를 지을 때마다 번제. 속건제. 속죄제. 화목제. 거제와 요제 등을 드릴 수 있는 수많은 양과 소와 염소와 비둘기들이 있어야 하며 - 7대 절기도 정해야 하며 - 또 절기때마다 드릴 동물들도 수없이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남자들은 낳은지 8일만에 반드시 할례도 행해야 한다. 그리고 안식일도 반드시 토요일로 지켜야 한다.

 


지금 우리들의 형편을 보라 !  양과 소와 염소는 고사하고 비둘기 한 마리 없는 자 많고- 금과 은과 보석은 고사하고 구리도 없는 사람이 더 많다. 레위인들은 어디가서 찾을 것이며, 대제사장이 될 레위족계 아론족은 어디 가서 구할 것이며 - 성막설계도는 어디가서 구할 것이며 - 죄를 지을 때마다 먹을 고기도 없는데 어떻게 그 많은 짐승들을 준비할 것인가 ! 성도들이여 ! 하나님께서 가난한 이방인들을 위하여 이러한 제사법을 폐지시킨데 대하여 하나님께 무릎굻고 허리굽혀 경배하며 감사하라 !  율법폐지 !!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 이제 제사법(의식법)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도덕법은 영원하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든지 이 십계명 중 한 계명이라도 걸려있다면 철저하게 가슴치는 회개를 하라 !

 

십계명 지켜 구원받을 것 같으면, 복음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호적에 올렸다고 해서 어떤 짓이든 해도 [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괜찮다 ]는 법은 지구촌 그 어디에도 없다. 법을 지키는 것은 국민의 의무이다. 만약에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악한 일을 할 때에는 사법권이 발동하여 사형이든. 벌금형이든. 감옥 행이든. 집행유예 등 반드시 법의 처벌을 받게 된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비록 복음을 통하여 중생한 후, 천국 호적에 올라 천국시민이 되었다 할지라도, 십계명에서 위반되거나 회개치 않는 죄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일 수록 그 심판은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벧전4:17 =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
롬 14: 10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눅12:46 =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눅12:47 =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눅12:48 =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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