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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준비 이렇게 한다-김선도

맑은샘77 2013. 9. 5. 22:17

설교 준비 이렇게 한다

   

- 김선도 -

   

   

목사님들이 주일 설교를 하시고 쉬시는 날인데도 목사님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서 열심히 연구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오늘 이렇게 와서 여러분을 찾아 뵙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을 합니다.

   

이 목사님들에게 제일 중요한 과제가 특별히 개신교 목사님 설교입니다. 이 설교에 대한 것은 신드롬이라고 할까요? 설교에 대한 관심, 또 설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목회를 40, 50년을 해도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받는 것이 설교학이고, 또 설교입니다. 오늘 저더러 '설교 준비는 이렇게 한다' 하는 제목을 주셨는데 최근에 우리가 이 설교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설교를 할 것인가? 또 개신교는 설교가 사크라멘트, 성례전, 말씀의 성례전이 설교다. 그렇게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이 설교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요즘에는 남의 설교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로널드 레이건이 고르바초프를 처음 만나 가지고 대화하는 가운데에서 레이건이 말을 많이 하니까 고르바초프가 뭐라고 했는고 하니 나에게 설교 그만 하시오.”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현대는 무엇을 보기를 원하고, 흥미위주로 텔레비전을 보고, 야구 구경을 하고, 축구 구경을 할지언정 교회에 와서 조용히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그런 성향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설교에 매우 어려운 그런 여건 속에 우리가 설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현대문화가 그러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말씀을 권위있게 전하느냐? 또 이 개신교는 미국의 교회 성장을 보게 되면 메카 브라운이라든지 또 피터 와그너라든지 이런 분들은 교회 성장에 대해서 통계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또 심리학적으로 이런 여러 가지 사회과학적인 이런 것을 동원해서 교회 성장학, 또 토양이 좋아야 된다, 여러가지 학설이 있습니다마는 설교를 잘해야 교회가 성장한다하는 얘기는 그렇게 강조를 안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여전히 목회자가 설교 잘하는 교회가 여전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권위있는 설교자, 능력있는 설교자가 되어 보자하는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떨 때는 이것을 하나의 트릭을 부릴 때도 있어요. 비정상적인 방법을 가지고 어떻게 교인들을 심리적으로 모니피레일 하려고 하는 조종을 해 보려고 하는 성실성이 없는 그런 설교가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말씀에 권위가 있어야 된다고 하는데 말씀의 권위가 없으면 영적 요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합니다.

   

또 말씀의 권위가 없으면 설교자 자신의 의견이 많이 노출이 됩니다. 또 말씀의 권위가 없으면 질문은 많이 하지만 해결책을 찾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또 말씀에 권위가 없으면 확신이 없는, 자신이 없는 설교를 하고 맙니다. 또 말씀에 권위가 없으면 열정이 부족합니다. 아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설파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여기 써 드린 것은 우리가 조금 살펴보면 이 필립 브룩스라고 하는 분, 지금도 트위티 처칠란드를 가 보게 되면 그 교회 앞에 필립 브룩스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이 분은 짧게 살았지만 혼자 독신으로 살면서 아주 이만한 설교를 아직 찾아 볼 수가 없을 만치 미국의 펄필 자이언트인데 설교는 인격을 통해서 진리가 유도되는 것이다. 설교는 여러분의 목회자의 인격과 결코 분리시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 스포츠맨도 말이지요. 유명한 축구선수라든지 뭐 무슨 야구선수라든지 이런 사람도 그 스포츠가 자기의 인격과 결부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를테면 유명한 축구 왕도 성실해야 된다, 자기 생애에 책임질줄 알아야 된다. 그런 얘기를 또 시작을 합니다. 하물며 설교가가 자기의 인격과 또 자기의 성품과 격리시켜서는 성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필립 브룩스의 얘기를 빌리면 그러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현대 사회가 몹시 발전하고 있습니다. 21세기가 이제 눈앞에 있는데 어떤 사람은 21세기에 어떻게 패러다임이 달라질 것인가? 하지만 21세기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뉴밀레니엄은 이미 시작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이미 뉴밀레니엄을 준비해야 되겠다 하면 안됩니다. 벌써 우리는 뉴밀레니엄이 시작된 문화 속에 와 있다. , 여러분이 2001년이 된다고 해서 이상한 그런 변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번에 제가 뉴질랜드에 갔다오다가 비행기에서 잡지를 보니까 2천년 11일날 첫 햇빛을, 태양 빛을 제일 누가 먼저 받느냐? 어디에 가서 태양 빛을 받느냐? 하는 거 보니까 뉴질랜드 앞에 있는 조그마한 섬이 있는데 인구가 한 15십 명밖에 안돼는 조그마한 섬이 새해 뉴밀레니엄 새천년 시대 11일 첫 햇빛을 받는 곳이다,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들기 시작을 합니다. 의료 시설도 없지요, 아무런 그런 여관, 호텔 시설도 없는데 거기 모여들기 시작을 해서 지금 거기가 큰 비상이 걸렸다, 여러 가지 지금 뉴밀레니엄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천년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설교를 준비하고, 설교해야 될 것인가? 큰 도전입니다. 다시 한번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적인 설교만은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 와서 얘기하는 설교의 패턴들은 무슨 대화식의 설교라든지, 스토리 텔링이라든지, 이야기식의 설교라든지, 또 무슨 인덕티브 프리칭이라든지, 균합적인 설교라든지, 뭐 이런 얘기를 많이 하고있습니다. 혹은 투 웨이 프리칭이라고 할까요? 서로 주고 받는 그런 설교라든지, 그런 얘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또 설교 시간도 과거에는 35, 30분 이렇게 했는데 최근에는 설교 시간도 자꾸 단축이 되어 가지고 한 20, 또 어떤 데는 한 15, 최근에 와서는 한 7분 정도 설교하려고 하는 그런 곳도 있어요. 설교 짧게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얘기하다 보면, 여러분 양식으로 식사하실 때에 그 양식 코스가 있잖아요. 에피타이저라든지, 스프라든지, 샐러드라든지, 그 다음에 메인 코스가 들어오는데 이것을 시간을 짧게 하다보면 스프나 마시고 그만 둔다는 밀이에요. 샐러드나 먹고, 고기 맛은 보지도 못하고, 끝난다는 말입니다. 그 주변에 무슨 영상물을 비친다든지, 또 무슨 음악을 넣는다든지 좋아요. 분위기는 좋지만 메세지 자체가 알차게 전달되지 못하고 종교적인 감정은 만족시키는지는 모르지만 영적인 기갈은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향이 미국 교회 가운데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에 대한 도전은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매스미디어의 충격입니다. 오늘날 텔레비전 문화 속에 살고 있고, 요즘 뭐 인터넷이라든지, 컴퓨터라든지, 사람의 얘기를 듣기보다는 기계를 통해서 흥미 위주의 매스미디어를 우리가 보고 있는데 미국의 수많은 텔레비전은 스테이션에 있습니다. 라디오가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 1169개의 텔레비전 스테이션이 있고, 6000개의 라디오가 있고, 1759개 신문이 있습니다. 거의가 다 이 매스컴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일흔 살 난 노인이 죽을 때까지 텔레비전을 몇 년 보았느냐? 시간을 따져 보니까 8년 동안을 텔레비전만 본 시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고등학교 여학생들은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시간보다도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많다. 과거에는 모이게 되면 지난 주일 목사님이 어떤 설교를 했느냐? 또 내가 어떤 작품을 읽었느냐? 그런 얘기가 아니라 요즘은 모이게 되면 어젯밤에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어떤 얘기가 있었다, 그것이 화제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매스미디어의 강한 충격을 받는 시대에 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는, 세속적인 휴머니즘입니다. 기독교문화가 지배하는 시대가 제가 알기에는 포스트, 무슨 크리스챠니티라 그런 얘기도 하고 있습니다마는 오늘 다 자기 쾌락주의적인 돈을 버는 일, 무슨 자기 중심적인 섹스, 알코올, 이런 것들이 현대인의 가치관으로 되고 있다는 말이죠. 여기에 우리의 산상수훈이 무엇이냐? 또 예수님의 사랑의 진리가 무엇이냐? 상당히 현대인에게는 그것이 너무나도 세속적인 휴머니즘 가치관에 젖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제대로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또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이 아주 쾌락주의적이고 또 회개란 말이라든지, 거듭난다는 얘기는 좀처럼 귀에 들어오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가치관이 달라지고 있다, 그 말이죠. 이런 폭풍우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설교하겠느냐?

   

요즘 여러분의 설교는 매스컴과의 경쟁입니다. 여러분은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세 시간 보는 사람에게 일주일에 한 번 교회 와서 약 30분 동안의 설교를 듣는 것으로 그들의 삶을 어떻게 업사이드다운 시키겠느냐? 어떻게 변화시키겠느냐? 오늘 현대 수많은 매스컴과 세속적인 문화에 그런 영향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일날 하루 설교, 20, 30분 가지고 어떻게 그들을 변화시키겠느냐? 굉장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과거와 같이 라이브한 시대 가지고서는 교인들이 교회에 잘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 이런 도전 속에 있는 설교가들이 어떠해야 되겠느냐?

   

첫째로는, 새로운 용기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새로운 용기, 마치 골리앗을 대하는 다윗의 용기와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 말이지요. 그 다음에 새로운 장비가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성경 한 권만 가지고 설교해도 되었지만 요즘은 그런 것만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영상 매체를 늘 장치해 놓고 있고, 웬만한 교회에 가 보면 전부 다 북이라든지, 기타라든지, 뭐 과거와는 다른 인터넷 시설이라든지, 이제는 옛날과 같이 성경 한 권만 가지고는 설교가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기 때문에 저들의 요구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서 설교가 잘 전달될 수 있는 장비를 갖춰야 됩니다. 저번에 새들벡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이 오셔서 세미나를 하신 줄 압니다마는 그 목사님이 그 전 주일날 우리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4부 예배를 드렸는데 저희 교회는 영어예배까지 해서 다섯 번 보는데, 오후2시에 청년들을 위한 예배를 봅니다. 청년들과 같이 요즘 흔히 하는 프레이징스, 찬양예배 쭉 하고, 설교는 제가 1, 2, 3부하던 설교를 그대로 합니다. 그 찬양이라는 것은 찬송가를 떠나서 혹은 리터러지 예배의식은 좀 다르게 합니다. 제가 워렌 목사님 교회도 가 보았습니다. 갔더니 거기에는 축도도 없어요. 아주 완전히 리터러지 예배의식을 무시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뭐 크로리카 칼런 한다든지, 뭐 가운이라든지 그거 없지요. 반바지에다가 노타이에다가 아주 심플하게, 누구든지 자유스럽게 예배 올 수 있고, 어찌 보면 경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장기예요. 설교도 가만 들으면 평범해요. 특별한 연구를 많이 했거나 그런 것 같지를 않아요. 우리 교회 4부 예배 와서 청년들하고 같이 예배 드리는 것 보더니 깜짝 놀라는 거예요. 저도 그 분의 교회를 가 보았지만 우리 교회 와서 보더니 우리 청년 대학생이 3천 명이나 나옵니다. 두시 예배. 청년 대학생들만. 워렌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허 젊은이들이 이렇게 많이 와 있느냐, 젊은이들에 맞는 장비와 맞는 분위기를 형성했을 때에 청년들이 꾸역꾸역 모여 온다 말이지요. 새로운 어떤 그런 패러다임 쉬프트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벌써 우리가 패러다임 쉬프트를 해야 된다, 말이죠. 1, 2, 3부는 정통적인 예배를 보지마는 4부는 새시대에 걸맞는 예배를 드리는 것을 이 워렌 목사가 와서 보고서는 깜짝 놀라 가지고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 그래요. 제 방에 와서 차를 마시는데 난 내가 처음으로 만난 줄 알았더니 자기가 20년 전에 내 설교를 쥴러 목사님 교회에서 들었다는 거예요. 20년 전에 당신 설교를 내가 들었다, 그래요. 그리고 10년 전에 어디서 내 얘기를 들었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자기가 도리어 도전을 받고 간다,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러기 때문에 어떡하든지 효과적으로 복음이 젊은이에게 전달될 것인가? 현대적인 찬송가를 부르면서 손을 들고, 박수를 치고, 어떤 때는 몸짓을 하면서 그러면서 마음이 열려질 때에 아주 강도 높은 메시지가 그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그런 새로운 장비와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새로운 창의력입니다. 여러분, 아이디어의 경쟁시대입니다. 아이디어의 경쟁시대인데 이 설교도 좀 창의력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해야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교회가 새롭게 창의력을 가지고 이노베이션이라고 할까요? 변화와 뭐 이런 걸 하게 되면은 이건 심심하게 하는가? , 이걸 좀 어떻게 우리 교회가 무슨 잘못되지 않았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엊그저께 텔레비전을 보니까 대학생들도 자꾸 강의 잘하는 교수에게 모여들기 시작을 하기 때문에 어떤 대학에서는 100개 과목이 폐강이 됐다, 그래요. 그 강사나, 교수나, 강의방법에 따라서 학생들이 모이기도 하고, 안 모이기도 한다는 말이지요. 어제 텔레비전을 보니까 딱딱한 물리학을 가르치는데 현대 영화를 보여주면서 가르치더라구요. 우리가 새로운 창의력을 가지고 설교하지 아니하면 새시대의 젊은이들의 영혼을 붙잡기가 어렵겠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 다음에는 새로운 영적 자원이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설교는 랭귀지 게임이 아닙니다. 말장난이 아닙니다. 말의 유희가 아닙니다. 똑같은 말에도 그 위에 영적인 파워가 얼마나 있느냐, 어떤 능력을 가진 설교자냐, 평범한 얘기지마는 기도 많이 하고 영적인 파워를 가진 사람은 평범한 얘기 한마디에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한다, 그 말이예요. 영적인 파워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요즘 와서 뭐인고 하니 대개는 이 랭귀지 게임을 할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어떤 분을 보니까 다른 분이 설교 준비를 해놓은 걸 다 베껴 가지고 와서 내 것인 양 나누어주고, 월요일이나, 화요일이나 한번 남의 설교 강의 듣고 나면은 설교 준비 안 해도 된다, 그 말이예요. 이것은 우리가 너무 라이브한 태도입니다. 남의 설교를 베껴서 모방을 하게 되면 내 스스로의 영적인 파워가 없이는, 그것은 랭귀지 게임밖에 안된다, 그 말이예요. 설교 하나를 '에멀슨 파스티일'라고 하는 분이 있어요. 리버사이드 교회 설교가인데, 저는 그 분의 설교를 퍽 좋아합니다마는 그 분은 1분 설교하기 위해서 1시간을 준비를 해야 된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런지 그 분의 설교를 가만히 보면은 그 문장 하나하나가 그렇게 정성스럽게 다듬어질 수가 없어요. 영적 자원이 흐르는 거예요.

   

그 다음에 다섯 번째로는 성실성입니다. 스포츠맨도 성실성을 가진 스포츠맨이 영향력이 있다고 하는데 하물며 요즘 와서는 성공적인 얘기를 많이 하는데 석세스풀이라고, 석세스풀이라고 하는 얘기를 성공적인 뭣이라고 하는 거예요. 성공적인 거보다도 피트풀, 성공적인 거보다도 성실성을 가지고 설교를 해야만 오늘의 성도들은 크리티피리티, 신뢰감을 준다, 그 말이에요.

   

제가 이런 얘기좀 하고 난 다음에 혹 여러분이 질문하실 거 있지요? 그렇게 하십시다. 이제 가만히 보면 저도 교회 성장을 연구하기 위해서 좀 미국의 큰 교회, 영국까지 돌아도 보고 왔는데 공통점이 뭔고 하니 역시 대설교가들이 설교하는 교회는 부흥되고 있고, 또 설교 내용은 한결같이 긍정적인 설교예요. 저를 보고서 긍정적인 설교라고 해서 자꾸 얘기를 한 사람이 있지마는 대개의 목사님들은 거의가 다 대설교가뿐만 아니라 설교가 긍정적이고, 성서적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뭐 요즘 와서 무슨 예배의식을 달리하고, 카운셀링을 하고, 새로운 찬송을 부르고, 뭐 갖가지 우리 무슨 영상매체를 통일한다. 하지만은 역시 여전히 설교입니다. 그래서 대개 보면 아주 인간을 구원하자고 하는 그런 열정이 있는 설교가들입니다.

   

여러분,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여러분의 영혼만 구원하고 내세에 구원에만 촛점을 맞춰서 설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자체는 구원받아야 됩니다. 모든 것을 구원받아야 됩니다. 왜 열심히 나가서 땀흘리고 일합니까? 재정적인 빈곤에서 구원받으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왜 병원에 갑니까? 병에서 구원받으려고 가지 않습니까? 대학은 왜 갑니까? 무지에서 구원받으려고. 모든 것이 구원의 병에 존재해요. 그런데 종합적인, 전체적으로 구원받는 것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거다, 이렇게 해야 돼요. 영혼만의 구원이 아니라 전체가 구원받아요. 그러기 때문에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그랬단 말이에요. 네 집 전체가 구원 얻는 거란 말이에요. 이 구원의 개념을 이제는 토탈 셀브레이션, 전체의 구원을 받도록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에 불타는 교회, 그 다음에 설교, 그 다음에는 복음적인 설교라. 이건 뭐 늘 여러분이 여기서 들으신 줄로 압니다. 복음적인 설교가 뭐냐? 성서중심의 설교입니다. 복음, 말씀 중심의 설교입니다. 개인의 의견이라든지, 개인의 신학이 중심이 되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깊이있는 하나님말씀의 연구에서부터 나와야 됩니다. 그 다음은 뭡니까? 그리스도 중심입니다. 여러분! 예수 보기 원하고, 예수님 찾기를 원하고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세 번째로는, 십자가 중심의 설교가 되어야 됩니다. 이것이 복음적인 설교입니다. 한번 칼 바르트에게 어떤 사람이 묻기를 당신이 내세에 히틀러를 만난다면 뭐라고 당신이 얘기를 하겠소?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이 칼 바르트가 얘기를 하기를 영어로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다이드 포 유어 셀프!’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위해서 죽으셨다그 얘기란 말이에요. 당신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 여러분, 바르트가 십자가 중심의, 복음 중심의 그런 얘기를 한 것을 우리가 들을 수가 있습니다. 하여튼 가만히 보면은 설교도 복음 중심으로 하는 설교가 교인들이 많이 모입니다. 뭐 이상한 아주 미사여구를 섞어가지고 에세이식으로 아무리 해도 그 안에 복음이 없으면 영혼에 감동이 없기 때문에 잘 모여 있지 않아요.

   

그 다음에 세 번째로, 정열적인 설교여야 됩니다. 열심이셔야 됩니다. 여러분! 설교도 열심히 준비하고, 열심히 하는 설교, 아브라함 링컨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당신이 설교할 때 마치 벌떼와 싸우는 것같이 냉금냉금 뛰면서 설교하는 것 같대요. 벌떼와 싸우는 거 같습니다. 그런 거를 보기 원한다, 그렇게 아브라함 링컨이 그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정열적인 설교, 적극적인 설교를 해야 돼요. 아주 내 마음속에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불이 내 마음속에 발하도다하는 시편 기자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불을 토하는 설교를 해야 돼요. 열심 있는 설교.

   

그 다음에 네 번째로는, 설득력 있는 설교여야 됩니다. 요즘은 이프락크라메이션, 선포하는 설교, 좋습니다. 일방적인 선포, 믿으라. 그러면 된다,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설득력 있어야 돼요. 예수님도 비유가 아니면 말씀을 안하셨다고 그랬어요. ?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신비스러운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주변의 얘기, 설득력 있는 예화를 들지 아니하면 그 진리가 바로 그들에게 깨달음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폴슈에이션, 뭐 예화를 많이 듭니까? 왜 책을 많이 봅니까? 왜 다른 사람의 주석책을 많이 봅니까? 어떻게 하든지 그 진리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고 그런데 말이에요. 폴슈에이션, 봐야 된다고. 예수님도 예화가 아니면 말씀을 안하셨다고 그랬어요. 왜 그러냐? 설득력 있는 프리칭을 하기 위해.

   

그 다음에 다섯 번째는, 목회적인 설교여야 됩니다. 패러스토럴 프리칭이라 그거예요. 여러분! 이 주석설교, 우리나라에 많이들 지금 주석설교를 연구합니다. 많이들 지금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목회를 보게되면 주일날 설교를 제가 네번하고, 영어설교 한번 있습니다. 그 다음은 아침에 새벽기도회 두 번하고, 저녁설교를 합니다. 그래, 난 주로 주일날만은 네번 제가 설교를 합니다.

   

요즘 우리교회 호렙산 기도회라고 해서 40일 연속기도회를 하는데 매일 아침4, 5백명씩 모입니다. 또 저희교회는, 교회가 좁기 때문에 위성 교회로 예배를 보는데 위성으로 녹음을 해다가 미국의 위성에다가 쏘아 가지고 상계한, 부천, 분당, 일산 수지에다가 한 15백명 모이는 예배당을 지어 줬습니다. 지금 일산에는 25백명 모이는 교회를 백억을 들여서 지금 짓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남북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 거의 우리 교회 만한 교회를 거기다 짓고 있습니다. 원래는 거기다가 낮에는 대학을 하고, 주말에는 교회를 하려고 했더니 요즘 대학이, 대학 인구가 자꾸자꾸 줄지 않습니까? 이 때문에 시골대학의 학생들은 목회가 힘들어요. 그런데 신생대학교 지어 가지고는 도적을 얻기 때문에 제가 포기를 했습니다. 그 대신에 교육시설을 저기다 해 가지고 지역사회에 무슨 아카데미 비슷하게 해서 지역사람들, 부녀대학이라든지 이렇게 해 가지고 할려고 그래서 내 이상으로는 한 주일 내내 이 공간을 말이죠. 큰 예배당을 비워 놓을 수가 없으니까 근데 교육부에서 하라는 거예요. 광림교회가 하겠다고 그러면 우리가 무조건 대학인가해 주겠다는 겁니다. 근데 대학인가 해 놓고 학생들이 모이지 않으면 도리어 선교회, 에너지가 많이 분산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포기하고 그거예요. 그거는 지금도 인공위성으로 예배를 봅니다. 만일에 우리 부목사님을 거기다가 예배당을 지어서 파송을 해도 거기서 그 교인들을 천명 모아 놓으려면 요즘은 죽을 힘을 써도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1천명, 12백명, 2천명, 3천명 교인 모이는 데까지는 인공위성 설교를 듣고, 설교를 하고 그 다음에는 그 부목사에게 책임을 맡기려고 하는 그런 설교 전략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교회 좋은 교인은 자꾸만 나가요. 새교인 오면은 훈련시켜서보내고, 요즘 아파트가 자꾸 그쪽으로 가니까 그쪽으로 자꾸 해진다, 말이에요. 우리 새교인 훈련시켜서도 보내고 말이에요. 그래서 그 교인들이 같이 제 설교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와서 제 설교 프로그램 얘기하느라 그랬군요. 주일날에는 제가 그런 설교를 하고, 매 화요일마다 성경공부를 하는데 그야말로 주석설교입니다. 성경이 주석입니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도 근 6천명이 등록을 했습니다. 매 화요일마다 새벽, 아침 10시 반부터 속회지도자, 평신도 지도학교 다 합해서 아침과 저녁에 한 6천명 가까이 등록한 성서공부, 우리 교인들이 모여 와서 성경공부를 합니다. 한 시간 반동안 그리고 시험을 칩니다. 이것이 저는 이 성경공부에 액센트를 두는 겁니다.

   

뭐 주일날 보면 저 화요일날 무슨 일 있어도 성경 공부해야 됩니다. 아주 순수한 성경공부. 저는 이 성경공부를 위해서 대학강의도 내가 안갑니다. 화요일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해야 됩니다. 성경공부를 부목사나 장로에게 맡겨놓으면 성경공부의 가치가 떨어진 것같이 보인단 말이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담임목사가 성경을 가르쳐야 돼요. 그 다음에는 수요일에는 저녁에 기도에 신약을 걸었습니다. 기도하기 바라지요. 벌써 한 10여년 동안저가 가라지인데 기도가 무엇이냐? 요즘 현대에는 기도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체험을 하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체험을 하기를 원합니다. 웨던스프리철 포메이션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매 수요일마다 저는 기도에 대한 책을 많이 모아 놓고는 기도 신학을 강의를 하는데 한 50분 동안을 강의를 하고는 기도시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속회를 하고 있는데 속회라는 건 여러분, 장로교회에서는 구역이라고 그럽니다마는 우리 감리교회에서는 속회라고 그럽니다. 소집단, 우리교회 3천 한 3백 개의 소집단이 서울 장안에 널려져 있습니다. 거기서 성경공부하고, 교재는 우리교회에서 만듭니다마는 기도하고 그리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환자 찾아가고, 그런 조직 요즘은 큰 교회가 우리는 소집단이 조직되지 아니하면 모래 위에 세운 집과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지도자를 육성해서 속회 매주 금요일마다 속회를 보라고 그런다 말이에요. 그게 웨슬레의 전통입니다. 여러분, 구역예배라 그래서 한 4,50명 한 30명 한 집에 모여서 한다는 것은 찻잔도 모자를 뿐만 아니라 이 아이컨텍이 안돼요. 이 소그룹의 원리에 벗어난 겁니다. 소그룹은 열명이내 7,8명이 꼭 알맞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 설교는 낮에 무슨 설교를 하느냐? 저는 라이프시츄레이션 프리칭이라 말이에요. 목회설교라 그 말이에요. 여러분, 때로는 이 성경을, 주석을 보고서 성경을 준비해 가지고 여러 사람 주석설교를 아주 성경본문에 의지해서 이것, 디덕티브 프리칭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하게 되면 설교의 진리는 다 잘 깨닫게 되는데 'so what?'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되겠느냐? 여기 대해 해답이 안나오는 겁니다. 문제는 오늘 저 자식이 집을 나가고, 남편과 이혼하고, 부도를 내서 남편이 행방불명이 되고, 라이프 시제, 삶의 정막이 지금 IMF 이후에 길가에 나와 앉아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의 상황을 바로 파악해서 여기에서 어떻게 구원해 내야 되겠느냐?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구원해 내겠느냐? 여기에 대한 관심이 없이 목사 일방적인 말씀은 뭐라고, 뭐라고 그래서 일방적으로 디덕티프 프리칭이라고 그래요. 연역적인 방법을 설계했을 때에 교인들은 쿨쿨하고, 답답해서 왔는데 오늘도 목사님이 해결점을 안 주시는구나. 그럼 자꾸 왔다갔다한단 말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이 서재에 앉아서 많은 사람의 책을 읽고, 주석책을 읽고 그러고 앉아서 설교 준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또 중요한 것은 저 밖에 예배보고 나갈 때에 저는 문밖에 서서 꼭 악수를 합니다. 어떤 데는 악수를 다 끝나고 나면 손이 아주 부을 때가 있어요. 왜 그러냐? 제가 큰 교회 목사이기 때문에 교인들 하나하나 심방을 못하니까 부목사님, 다 심방하니까 내 그분하고 손 한번 만져주는 것이 내 심방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들의 눈동자를 보고 그의 표정을 읽으면서 내가 악수를 합니다. 근데 내가 이 심방 오늘 내가 여기 요 얼마전에 심방을 갑니다. 한주일에 제 생각으로는 적어도 다섯, 여섯 가정은 심방 해야 되겠다. 병원심방을 비롯해서, 왜 그러냐 하면은 내 교인이 지금 살고 있는 상황이 어떤 상황이냐? 그걸 알지 못하고, 내가 설교를 할 수가 없어요. 지금 어떤 상황 속에 있나하는 것을 살피기 위해서는 라이프 미스 올세스’, 그 삶의 자료를 내가 찾아야 되겠다, 그 말이에요. 그래 가지고 그걸 찾아가지고, 내가 와! 문제가 여기 있구나. 그래 개인이, 한 사람의 문제지만은 대개 보면 거의가 다 같은 문제를 안고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이프 시츄에이션, 패스트랄 프리칭.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집 보셨습니까?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집은 거의 한 7,80%가 목회설교입니다. 우리의 상황과 똑 떨어진 메세지는 때로는 교인들로 하여금 상당한 갈증을 느끼게 한단 말이에요. 물론 여러분이 어떤 이런 얘기를 했지요. 지금 사막길을 헐떡거리면서 목이 말라서 죽을 지경으로 해매다가 교회 찾아오는 사람에게 갑자기 자기도 잘 모르는 얘기, 신구약성경에 두터운 성서적인 언어와 신학적인 언어를 섞어서 설교할 때에 그사람은 이 갑자기 비후스텍 고기를 먼저 먹는 거와 마찬가지라 말이에요. 그런 사람에게는 쥬스를 먼저 먹여 주고, 야채를 먼저 먹여 주고, 에피타이즈를 먹여 주고, 그 다음에 고기를 먹여 주어야만이 영양가 있는 섭취가 될 수 있다, 그 말이에요. 목마른 사람에게 제일 먼저 비후스텍 먼저주어서는 안되거든요. 물을, 시원한 냉수를 먹여 주고, 쥬스를 먼저 먹여줘야 됩니다. 그 상황을 알아채려 가지고 그 상황에 맞는 것으로부터 프리칭을 시작해야 되겠다, 그래서 엥골슨 파스틱같은 사람은 프리칭 이즈 카운셀링, 설교는 바로 상담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 다음에 교인들의 요구가 무엇이냐? 그래서 'need', 교인들이 지금 영적인 need가 뭐냐? 또 육체적인 need가 뭐냐? 가정의 need가 뭐냐? 요구가 뭐냐? 이것을 알아차려가지고 마치 의사가 처방을 하는 것처럼 목회설교를 준비해야 된다.

   

그 다음에 여섯 번째는, 성육신의 설교라, 그렇게 썼습니다. 이 목회자가설교 강단에 섰을 때 설교하고 내 생활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다, 설교자가 뭐 완전하냐? 그러니까 설교는 설교고, 생활은 생활이다,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이 혹 있습니다. 그건 안된 말입니다. 목회자는 강단에서 가장 높은 도덕적인 표준을 얘기하면서 자기 생활은 거기 미치지 못한다고 할 때에 이것은 교인들로 하여금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것입니다. 최선의 삶을 살아야됩니다. 가족들이 그 강단에서 설교하는 설교에 예증거리가 되어야 됩니다. 아내도 그러하고, 자식도 그러하고, 심지어 손자들까지라도 자녀들의 생활자체, 가정생활이 평화스럽고, 정말 복음적으로 은혜스러운 화목한 가정으로 내가 보여지는 것이 인카네이셔너럴, 성육신의 설교다, 그 말이에요. 그렇게되면은 교인들이 아무런 불평이 없어요. ‘노 크리스천 에어터워’, 이게 어려운 것입니다. 이 하늘의 종이 다른 얘기 할 필요가 없어요. 구실을 붙일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설교 자체를 이런 개념을 가지고 설교를 할 때에 여러분의 교회는 부흥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개신교 목회는 설교 하나만을 이런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깨끗이 하기만 하면은 목회는 자동적으로 성취됩니다. 교인들이 목회에 불평 안합니다.

   

여러분, 양떼들을, 양에게 꼴을 잘 먹이면 젖이 퉁퉁 부어요. 부풀어올라요. 저도 짜라고 그러는 거예요. 시원해 합니다. 그런데 꼴은 먹이지 않고, 자꾸 양의 젖만 짜려고 젖꼭지만 자꾸 붙들고 있으면 양은 신경질을 내는 거예요. 발로 차는 거예요. 꼴 있는 거, 풍부한 영양가 있는 꼴을 잘 먹인 양은 젖을 자꾸 짜라는 거예요. 목회에 불평이 없어요. 이제 말한 대로 그런 설교에 우리의 노력을 기울일 때에 목회는 설교 잘하게 되면은 목회는 자동적으로 성취가 된다, 그렇게도 얘기할 수가 있어요.

그 다음에 믿을 만한 설교라. 목회의 병리적 직무는 신뢰 구혈증이 제일 큰 질병중 하나입니다.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 요즘 와서 제일 많이 쓰는 용어가 비전이라는 말과 리더쉽이라는 말입니다. 비젼이라는 말과 리더쉽인데 이 목회도 큰 꿈이 있는 목회자와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목회자는 교회가 잘됩니다. 비젼도 없고, 리더쉽도 없으면은 교회가 잘 성장하지 못합니다. 물론 영적인 이미지는 가져야 됩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목회자를 따라오지 않는 가장 큰 근본적인 원인은 신뢰 구혈증입니다. 신뢰를 하지 않아요. 양떼들이 목사님의 설교라든지, 목사님의 목회에 대해서 우선 신뢰를 해야만이 교인들이 따라오는데 신뢰 안 하게 되면은 교인들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목회를 하는데 목회학적으로 보게 되면 여러분이 처음으로 교회를 위임 맡아 가지고 갔을 때에 2, 3년 근 4년까지는 교인들이 지켜봅니다. 저분이 정말 저 목사님이 선한 목자인가? 우리 양떼들이 믿을 만한 목사인가? 신뢰를 하면서 자꾸 탐색을 합니다. 그런데 1,2년 동안에 뭐 이거 굉장한 프로그램을 내놓고, , 이렇게 해야 됩니다. 예배당을 부숴 버리고, 새로 예배당을 집시다. 해도 교인들이 잘 따라주지 않아요. 왜 그런고 하니 아직도 목사님에게는 신뢰가 아직 구축이 안됐으니까 기다려봐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게 안되게 되면 4년전에 교회를 떠나야 됩니다. 거기 갔더니 교회가 새로워지고, 교인들이 목회자에 대한 신뢰를 가질 때에 4년이 지나야만이 교인들이 비로소 목회자를 신뢰하기 시작을 해요. 그러고 목회자가 최대의 마력을 발휘할 시간이 어느 시간인고 하니 약 8년 내지 9년이 지나가야 됩니다. 그때에 여러분이 교인들이 한 근 10년 가까이 교인들이 여러분을 모시고 목회 영적인 지도자로 신뢰를 구축했습니다. 하면은 예배당을 짓자고 해도 아무 걱정 없이 지을 수가 있습니다. 그 전에는 어렵습니다. 3년 내지 4년 동안은 교인들이 아직도 신뢰가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려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목회의 과정을 보게 되면 우선 교인들이 신뢰 구혈증에 걸리게 되면 그 다음에 교회 목회자가 목회 지도력을 발휘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메시지가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 목회자가 설교하는데 나는 이제 대학원에서도 목회학을 21세기의 목회라 그래서 저보고 바쁜 중에도 와서 해 달라고 그래서 가서 화요일마다 쭉 강의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신학대학원 학생들이 저이가 목회적으로 거듭났다,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런데 목회는 세가지 이 필요하다,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영어로 의 목회란 뭐냐? 이 목회라고 하는 것은 생명의 관계성입니다. 라이프이레이션위션.

   

여러분, 하나님과의 생명의 관계지요. 이웃과의 생명의 관계지요. 라이프이레이션. 목회가 뭐냐? 한마디로 얘기하면 생명의 관계성이라. 두번째로는, ‘어 러빙 릴에이션식이다. 사랑의 관계성이라 그래요. 여러분, 목회자의 마음은 늘 뜨거운 마음이어야 됩니다. 목회자의 마음은 교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교인들이 따라 합니다. 러빙 릴에이션쉽이라 그래요. 그 다음에 또 하나는 랭귀지 어브 릴레이션쉽’, 관계성의 언어입니다. 관계성의 언어. 여러분, 랭귀지 어브드 하우으랜’. 나우랠 하우라고 하는 목회학자가 얘기를 했습니다마는 목회자가 두 가지 말을 쓰고 있다, 하나는 랭귀지 어브 우드, 언어의 의사표현이고, 말의 의사표현이고, 또 하나는 관계성의 언어를 쓰고 있다 말이에요. 예를 들어서 어떤 교인과 담임 목사님과 참 관계성이 좋고 우리 목사님, 참 신령한 목사님이고, 훌륭한 목회자이고, 목회자를 존경하는 그런 좋은 관계성이면 목사님의 설교를 100% 받아들입니다. 더 이상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목사님과 교인 사이에 관계성이 파괴되어 있을 때에 교인과 무언가 석연치 않는 관계성이 돼 있을 때는 이 강단에서 무슨 얘기를 해도 이 사람은 관계성이라고 하는 그런 참투막이라고 할까요? 무슨 이런 것을 걸러서 듣는단 말이에요. 말씀 그대로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 목사님은 나하고 그런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어찌 목사님이 설교, 내가 알기로는 목사님의 관계성이 이런 관계인데 목사님의 설교는 도무지 내가 그 관계성에 비춰 보면 아니에요. 관계성의 언어를 가지고 먼저 해석해야 된다, 그 얘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효가 가지는 랭귀지 게임한 건 랭귀지 그 말씀의, 언어의 이 말만 가지고는 참된 설교를 못하는 시대다, 그 말이에요. 랭귀지 어브 릴레이션쉽. 관계성의 언어가 더 중요하다, 그 얘기예요. 그러기 때문에 관계성이라고 하는 거, 아까 얘기했지요. 라이프 릴레이션쉽, 생명의 관계성, 러빙 릴레이션쉽, 사랑의 관계성, 랭귀지 어브 릴레이션쉽, 관계성의 언어. 이것을 가지고 목회를 할 때에 여러분의 목회는 효과적인 목회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메신저의 진실한 설교자, 신뢰할 수 있는 설교자지요. 생활로 증거하는 설교자. 정직해야 됩니다. 성실해야 됩니다.

   

어떤 미국의 감리교 감독하고 테니스를 했는데 그 교인하고 테니스 시합을 했는데 테니스를 다 치고 나서 그 교인이 그 감독보고 하는 말이 감독님은 테니스를 칠 때 보니까 비기독교적입니다무엇보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은 그러니까 여러분이 생활과 강단과 일치가 되자하는 그 얘기입니다. 이중적인 태도를 합리화하려고 하지만은 저는 그건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성경에도 없는 얘기예요. 생활은 생활이고, 설교는 설교가 아닙니다. 그러기때문에 설교가 더 어려워. 그래서 빌립 브루스는 설교는 인격을 가지고 전달해야 된다, 그랬어요. 학문 가지고는 안돼요. 제가 연세대학교에 객원교수로 있습니다. 연세대에 때때로 가서 엊그제에 내가 채플을 가서 인도하고, 또 특별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신학교의 경향이 뭔고 하니 어떻게 하든지 박사학위 해야 된다, 미국 유학을 갔다 와야된다, B.H 들어야 되고, D.min를 해야 되고, THD를 해야 된다,

   

여러분! 목회학 박사나, 신학 박사나, 철학 박사가 여러분의 목회 일을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영적 생활을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내가 목회학 박사가 됐기 때문에 이것 가지고 뭘 하리라 하고 무슨 그런 유혹 받지 말아야 됩니다. 이것이 한때 내가 크리스챤 센츄리라는 잡지를 보니까 처음으로 미국의 목회학 사가 생겨났을 때에 교회가 조금 빛을 보는 것같다가 그 다음에는 떨어지기 시작해요. 왜 그런고 하니 자기의 영적인 실력, 경건생활, 이런 성실한 말씀의 입각한 인카네이셔널, 성육적인 목회가 아니라 자기 학위나 가지고 적당히 학위가 대신해 줘. 학위가 여러분의 영적인 생활을 대신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유혹을 오늘 많이 받고있어요.

   

우리가 요즘 지난 주일, 연세대학교를 설교를 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내 인생의 빅딜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분, 돌감나무와 참감람나무 접붙이는 얘기를 바울이 얘기를 했지요. 열매가 없고, 생산성이 없을 때는 빅딜을 해야된다, 말이에요. 구라파에 있는 자동차 공장하고, 미국 공장하고 빅딜을 해야된다, 그 말이에요. 한국에서도 생산성이 없고, 또 무슨 부채 비율이 자꾸 높아지는 것은 자꾸만 빅딜을 해서 그래요. 하나가 되지 안된다, 말이에요. 내 인생의 부채율은 누가 탕감해 주겠느냐 말이에요. 살면 살수록 부채는 높아만 가는데 높아지기만 하면 이 부채율은 누가 탕감해 주겠느냐? 누구하고 빅딜을 할 것이냐? 빅딜을 하려면 투명성이 있어야 돼요. 나무에 꼭 붙어있어야 된다, 말이에요. 상징적인 이유는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얘기입니다. 투명성이 있어야 된다, 말이에요. 요즘은 이 목회자는 마치 인형의 유리관 속에 들어있는 거와 마찬가지다. 그랬어요. 요즘은 숨길 게 없어요. 요즘은 집에 앉아서도 퍼스널 컴퓨터만 연결되면 여러분의 모든 것이 확 드러나게 돼 있어요. ‘패러조나’, 퍼스널리티라는 말은 패러조나라는 라틴말에서 왔는데 역할 분담을 하기 위해서 마스크를 쓴다, 말이에요. 연극을 하기 위해서 연극제 얘들이 그 연극 분장을 해 가지고 그사람 똑같이 액팅, 모션을 하고, 배우 노릇을 하게 되면 훌륭한 배우가 돼요. 그러나 목회자는 뭣이냐? 그런 배우가 아니에요. 사실, 사실대로 와서 표현해야 돼요. 그것이 목회자예요. 그런데 요즘 영적인 생활마저도 테크니칼하게 지식적으로 어떻게 좀 잘 이렇게 눈가림을 해서 해볼 수가 있겠느냐?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미국에서도 스퓨리쳐 포메이션이라고 하는 것을 그냥 테크니적으로 말이야. 뭐 보여지는 대로만 그렇게 해서 해보려고 하는 거지만 그렇게 하면 그건 투명성이 없는 거예요.

   

그 다음에 여기 보면 확실한 메세지라고 그랬어요. 제가 여러분, 목회자는 자기 새끼에게 먹이를 먹여 주기 위해서 버러지를 어디 가서 잡아서 자기는 맛도 안보고 그 새끼에게 자꾸 입에다가 넣어 줍니다. 그건 모성애에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설교는 내가 이 설교 준비하는 가운데 도치가 돼야 돼요. , 감사합니다. 설교의 폼이나, 설교의 내용이나, 예화만을 수집해서 하는게 아니라 이 말씀 속에서 내가 빠져 들어가야 돼요. 저는 화요일마다 성서공부 하는데 월요일날 쉬는 시간에 저는 성경을 연구하느라고 있다 보면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성경공부 하는 것이 내가 이 성경공부를 가르치고 생각을 하니까 빨리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지요. 설교 준비가 잘 되면은 빨리 설교 했으면 좋겠네. 시간이 왜 빨리 안오나. 설교 준비를 내가 은혜 받아 준비하고 난 다음에는 성경공부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그 말이에요. 그게 뭐예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생기기 때문에. 뭐든지 자신이 있는 사람이어야 돼요. 특별히 메신저는 확실한 자기의 소신을 가져야 됩니다. 저번에 우리교회에서 전에 걸어다닐 만한 거리이기 때문에 그 길목에 요즘 IMF 이후에 얼굴이 다 회사 사장이나, 전무나 부장쯤 하고 있는 사람이 길가에 앉아서 과자 장사를 하고, 저 수박장사를 한다고. 그래 지나갈 때 얼굴을 보면 이분이 과일 장사 안 할 분 같아 보이는데 이 과자 장사 안할 분 같아 보이는데 될 수 있으면 하나 사가지고 갈라 그래요. 과자 봉지를 이만한 박스를 두개를 놨어요. 그래서 어느 것이 과자가 더 맛있습니까?” 이만한 통에 저 전라도에서 올라 왔더라구요. “과자가. 이게 맛있습니까?” 그러니까 , 이건 맛이 괜찮아요.” “요건 어떻습니까?” “난 이거 맛을 안보아서 모르겠어요.” , 그럼 내가 이걸 사갈 수가 없겠고. 이분 솔직해서 좋습니다. 그렇지만은 내가 맛을 안 보았기 때문에 모르겠습니다.’ 하는 것 보다도 내가 맛을 보고 추천할 수 있어야 된다, 말이에요. 설교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맛도 안보고, 내가 맛있는지 맛없는지 불확실성의 메세지 가지고서는 안된다, 그 말이에요.

   

좋은 설교자의 영향, 저는 이렇게 해 보고싶어서 여기다 이렇게, 첫째로는 하나님의 음성의 총치입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돼요. 오늘 자기의 이기적인 생각만 보다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돼요. 두 번째로는 심령의 구원,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말씀이 역사하셔서 은혜를 통해서 저들에게 구원의 역사,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이것이 변해서 가정이 복음화가 되고, 사회의 복음화가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 사회복음과 개인복음이라 자꾸 이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사회구원과 개인, 개인구원과 가정구원과 사회구원이 일직선이 되어야 돼요. 이원론적으로 뭐 내가 구원받지 못하고, 사회 구원받는다는 말이 안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사회변화, 네 번째는 영감있는 예배입니다. 영감있는 예배를 가르쳐서 저는 이런 얘기를 해요. 주일 예배시간에 하나님 나라를 맛보게 하라. ‘! 천국이 이런 곳이로구나!’ 우리교회에서 터어키에 선교사를 파송을 했는데 터어키의 청년들을 변화시킨 다음에는 우리교회 데리고 와서 두 달 동안을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가는데 그때에 제가 세례를 주어서 보냅니다. 그런데 세례를 주어서 보낼 때에 당신이 우리교회 와서 예배 볼 때에 무슨 느낌이 드느냐? 그러니까 하, 이것이 천국입니다. 예배보는 시간에, 영어로 이래요. ‘렛 뎀 테이스트 킹덤 어브 갓(Let them taste Kingdom of God)',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게 해 주라 그 말이에요. ,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로구나 말이야. 세속적인 사회에서 그렇게 갖은 고통, 고민, 번민, 밤잠을 자지 못하고 시련을 당하고있는 그 사람이 교회 와서 하나님 말씀에 위안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거로 구나. 이것이 하나님 나라로구나. 렛 뎀 테이스트 킹덤 어브 갓,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게 해 주는 거예요.

   

근데 영감있는 예배, 예배를 주일날 한 시간 와서 예배 볼 때에 영감을 주지 못하면 무엇가지고 영감을 주겠습니까? 그들이 텔레비젼 보면서 영감을 받겠습니까? 영감있는 예배는 네 가지가 꼭 필요합니다. 하나는 뭐인고 하니 영감있는 음악입니다. 찬송, 그래서 이 성가대가 영감있는 찬양을 불러줘야 되고, 여러분이 함께 부르는 찬송이 영감이 넘치는 찬송이 되야 돼요. 여러분, 이 찬송이 매우 중요합니다. 순복음 교회가 처음에 왔을 때에 순복음 교회가 복음성가를 먼저 보급한 그 교파가 순복음 교회입니다. 찬송을 새롭게 부르니까 뭐 심령이 새로워지는 거예요. 참신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뜨겁게 부르고. 요즘 청년들이 그 찬양을 뜨겁게 부르는 것은 그만치 찬송의 영감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가대, 우리교회는 오케스트라가 셋이 있습니다. 우리 성가대만 해도 천 백명이 됩니다. 여섯 개 성가대가 있어요. 이번에 101일날 에베소에서 복음주의자들이 모여가지고 바울이 설교했던, 요한이 서서 얘기했던 원형극장에서 세계의 교인들이 한 3만명 가량 네시간 동안 찬양예배를 드립니다. 비토 웨그너가 주동이 됐어요. 어떻게 터어키에 가느냐? 십가가군의 잘못을 회개하러 갑니다. 명목은 그거예요. 우리가 터어키 나라에 전도하러 간다면 안되는 거거든요. 이 터어키도 지금 EC공동체에 들어 갈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어요. 그래 제가 머지 않아 교회를 세울려고 하는 기독교를, 문을 열려고 하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그 피터 와그너라는 일행이 우리가 쿠르세이디의 잘못에 대한 회개를 우리가 지금 하려고 합니다. 그래 허가를 맡은 거예요. 그래서 그 바울이 설교가 되는 거고, 원형극장에 다 모여가지고 네 시간 동안 찬양예배를 드립니다. 거기에 우리교회 성가대하고, 오케스트라가 초청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코러스 마지막에 해요. 거기 24장로가 선택이 됐는데 그중에 하나가 제가 또 21세기 장로로 오라고 그래요. 가서 제가 기도를 해야 될겁니다. 아주 2천년 뉴밀레니엄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의 큰 페스티발이 거기서 열려요. 미국의 내 친구 목사들이 물어 봐요. 당신의 다음 비젼이 어디입니까? 무엇입니까? 그래서 제 비젼은 바울과 누가와 베드로, 바나바 모여서 성찬을 하고 예배드렸던 최초의 선교교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던 교회, 안디옥교회, 여러분, 가 보셨겠지요. 굴로 된 거예요. 안디옥교회, 교회를 세우는 것이 제 꿈입니다. 안디옥교회 집을 봐놓았습니다. 50만불 내라고 그래요. 거기다가 그 집을 사가지고 예배당을 개척할 것입니다. 의사를 보낼 것입니다. 치과의사를 보낼 것입니다. 안디옥교회 부활을 한국교회에서 해야 되겠다, 그 얘기예요. 이것이 제 꿈입니다. 할 수 있습니다. 저번에 에배소에 가서 거기 가 볼 것입니다. 오늘 거기에 가는데도 무어 중요한 겁니까? 성가대인데 한국교회 성가대가 영감이 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하고 데려 오라고 그래요. 영감있는 찬양, 영감있는 설교, 영감있는 설교입니다. 인스퍼링 퓨리스칭이에요.

   

영감있는 설교를 위해서도 아까도 얘기했지만은 설교 준비가 그렇게 소중합니다. 저는 토요일에 지금까지 기도원에 아침에 올라가서 하루종일 그냥 설교 준비하고, 저희 기도 공원으로 아마 가보신 분 계시겠습니다마는 예수님의 동상을 아홉 곳에 산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거기 가보면은 말입니다. 성지순례하고 오는 것 같다, 말이에요. 제가 거기 오르내리면서 밤에도 거기 오르내리면서 예수님, 겟세네마네에서 어제 기도하신 동상, 그 옆에 가서 같이 기도하면서 토요일날은 될 수 있는 대로 얘기를 안할려고 그래요. 사람과는. 사람과의 얘기만 해도 기가 다 빠져요. 그리고 이 주일날 이 기를 잘 저축을 했다가 주일날 아침에 강단에 서서 폭발적으로 영감에 싸여가지고. 내 토요일날은 운동을 좀 해봤어요. 테니스를 좀 하고. 설교를 할 수가 없어요. 기진맥진해서. 토요일날에 내 기를 다 빼버렸단 말이에요. , 안되겠다, 말이에요. 여러분! 토요일 설교 다 했으니까 토요일날 야구 구경 가자. 등산 갔다 오자, 아니에요. 토요일냘 여러분의 루아하하’, ‘부녀모니아’. 이것을 저축을 해야 돼요. 그럴 때에 주일날 여러분의 설교에 박력있는 설교를 할 수가 있어요.

   

영감있는 크리스챤, 세 번째로는 영감있는 안내예요. ‘어쉬아’. 주일날 안내하는 사람이 영감을 줘야 돼요. 주일예배의 초청장은 누구냐? 안내위원이에요. 목사가 아니에요. 앞으로 이 우리 나라 교회에 안내위원 훈련을 좀 할 때가 됐어요. 미국에 가게 되면 어쉬아에 대한 교과서가 많이 나오는데 앞으로 이 교회 안내를 어떻게 함으로 교회를 부흥시켜야 되느냐하는 안내위원에 대한 평신도 훈련을 할 때가 됐다 하는 결론입니다. 교재도 만들어야 되고 할 거예요. 벌써 이제 안내하는 사람이 성의껏, 정성껏 안내를 했을 때에 그분은 마음 문이 열려서 설교를 잘 들을 수가 있지마는 문밖에서 안내하는 사람이 느낌이 않 좋으면 마음 문이 닫혀요. 교만해 보인다. 내가 이거 뭐 옷을 잘못 입고 왔나? 자기 열등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면 안된다, 말이에요. 그러기때문에 그 교회부흥은, 설교는 중요한 것이 인스파이러어쉬어.

   

또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인스파이비토어치. 예배순서예요. 예배의식이에요. 예배의식이 물 흐르듯이 기가 막히게 흘러가야 돼요. 뭐이 좀 어떻게 감정이 이상하게 다른 데 관심이 있고 그러면 안된다, 그 말이에요. 영감있는 예배, 영감있는 설교, 영감있는 음악, 영감있는 안내, 영감있는 예배의식이에요. 그 다음에 우리가 설교를 했을 때에 목회의 성취가 온다.

   

이제 조금만 더하고 여러분, 질문을 받도록 하십시다. 이 시간에 이거 다 하기가 어렵겠네요. 위대한 설교의 공통점은 무엇인고 하니 영적 체험입니다. 영적 체험은 그 뿌리가 있어야 돼요. 우리 워렌 목사님을 자기가 자살할 뻔하다가 하나님께 구원의 체험을 하고 난 다음에 그 얘기가 뿌리가 됐어요. 젊은 목사인데. 그래 가면 저기 저 교회가서 설교했는데 가만히 뒤에서 들어 니까 내 나중에 그랬습니다. 당신의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된 것은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의 설교 들어보니까. 하나님의 영적체험이 있어야 돼요. 그 다음에는 설교의 우선 순위, 하여간 설교가 제일 먼저 해야 돼요. 우리가 보다 보면은 한주일 내내 뭐 딴 거, 행정, 뭐 건축하는 거, 다 하다가 주일날 설교를 토요일날 와서 설교집이나 뒤적거리다가 하게 해서는 안된다, 말이에요. 그건 뭡니까? 목사님이 해야 할 대여섯 가지 있잖아요? 프라이어리티가 설교 맨 나중에 행정, 심방, 뭐 뭐 다 하다가 맨 마지막에 설교가 프라이어리티가 그렇게 돼서는 안된다, 그거예요. 프라이어리티, 첫째가. 하여간 설교는요, 설교 준비를, 제목을 한 한달 걸려 준비를 해 놓을 수도 있습니다. 또 상황이 달라지면 달라지는 대로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설교 제목을 떨어진 밀알 열매 맺게 하라’. 마침 주일이고, 현충일이기 때문에 현대 오늘 우리 나라의 상황이 이게 다시 되돌아볼 시기가 되지 않았느냐? 사실은 저희 쪽에 정원식 총재도 와 앉았고, 통일원 장관도 앉았고, 모두 앉았는데 오늘 지금 우리 나라가 국민의 소리를 듣는 겸손한 정부가 되어야 할텐데 무엇인가 좀 오만해지지 않았느냐? 1차 대전 때는 헤밍웨이가 탄생이 됐습니다. 2차 대전 때는 지상에서 영원으로라고 하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월남 전쟁 때는 수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한국 전쟁이 이제 잊혀지기 쉬워요. 하나의 기억 남는 미국사람들이 네슈라고 하는 텔레비젼 드라마 하는 거예요. 잊혀져 가는 우리 젊은 사람들의 피의 희생이 땅에 떨어진 밀알이 열매를 맺도록 우리의 책임입니다. IMF가 어떻게 지났는데 러시아의 귀부인들이 오페라 하우스에 들어가서 울면서, 웃으면서 한, 두 시간 오페라를 보고, 즐기고 있는 동안에 그 귀부인을 모시고 온 마차의 마부가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오늘, 엊그제 우리가 금을 다 끄집어 내가지고 IMF에서 살아날려고 했지만은 오늘날 고관부인들이 마치 패션쇼에 들어가서 밍크 오바를 갈아 입고 수천만원짜리 옷을 갈아입어 보는 패션쇼를 구경하는 동안에 실직자들이 자살을 하고, 결식아동들이 공부를 못하고, 영양실조로 비틀거리는 거예요. 누가 이 책임을 지겠느냐? 난 좀 저런 시사적인 설교를 안하지만은 이게 오늘의 상황이기 때문에 이것이 목회적인 설교라 보는 겁니다. 이제 예수님의 인터뷰가 중요하잖아요. 헬라사람이 인터뷰를 하잖아요. 인터뷰의 말 한마디가 요즘 세계 여론을 좌우하잖아요. 인터뷰 한마디 때문에 마녀와 사랑이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얼마나 지금 대통령이 피를 본지 몰라요. 자칫하면 인민재판이라는 데서 마녀와 사랑이라는 말은 국민들의 연어를 모독하는 얘기가 되는 거예요. 이런 예기도 할 수 있어야 돼요. 이것이 이론자의 설교예요. 나는 그런 분들, 아주 안 좋은 사람입니다. 또 김영삼 대통령은 뭣하러 일본 가서 무슨 얘기들을 하고 다닙니까? 품위있는 일을 해야 돼요. 그렇게 쓰면 못써요. 이것도 야당과 잘 해줘야 된다, 그거예요. 이것이 오늘 현대의 라이프 시츄에이션의 메세지라 그 말이에요. 말씀 중심의 설교, 끊임없이 노력, 사람을 사랑하는 설교자, 설교의 인격화, 설교자의 인격적 공통점이 있습니다. 인격을 통해서 터치. 여러분이 스미스소니아에 가게 되면 달나라에서 온 돌을 만져보기 위해서 2, 3불씩을 내고서 줄을 서서 있다가 가서 달나라에서 가져온 돌을 만져봅니다. 만져보고 갑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이게 과학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질 때에 혈루 근원이 마른, 그와 같은 그런 체험이 우리 목회에서 일어나야 된다, 그 말이에요. 청중들의 설교를 듣는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 됩니다.

   

제 설교는, 제 강의는, 그만 하고 시간이 한10분 남았는데 혹 여러분이 저에게 문의할 말씀이 있으면 문의해 주시면 제가 대답을 하겠습니다. , 질문의 유형은 무엇입니까? 대형 교회 때문에 적은 교회가 안된다? 일자리가 없다? 그런데 여러분! 대형교회가 할 일이 따로 있고, 중형 교회가 할 일이 따로 있고, 적은 교회가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대형교회를 무조건 부인해서도 어렵습니다. 우리가 이를테면은 용서하십시오. 우리가 사랑의 집에 사할린 동포를 모셔올 때에 우리교회가 그런 양로원을 지어 놓았기 때문에 모셔올 수 있단 말이에요. 그 때문에 기독교가 한번 다른 종파에 비해서 역시 개신교가 큰 일한다는 얘기를 들었단 말이에요. 광림교회가 한 것만 아닙니다. 그러기때문에 그런 것은 대형교회 목회자는 목회자 나름대로 대형교회 목회에서는 리더쉽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누구나 다 그렇게만 할 수는 없을 거예요. 또 적은 교회라고 무시해서 안돼요. 적은 교회라도 그 영혼 하나 하나는 마찬가지입니다. 교인 20명 모이는 교회가서 강단에서 기도할 때 기도의 응답 받는 거나, 큰 교회 목사가 기도해서 응답 받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제 소견은 그렇습니다. 이제 말한 대로 교회를 여러 군데 우리 지방에 교회에 세워준 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큰 교회이기 때문에 책임을 느껴서 그렇게 도와드리고 있지요. 문제는 아까 뭐 대학을 두, 세 개나가, 똑같은 얘기입니다. 그것이 교회성장의 요인이 될 수는 없어요. 그걸 아셔야 됩니다. 이제 말한 대로 제가 거듭 거듭 얘기합니다. 여러분의 영력은 학력으로 대신할 수가 없다 하는 것을 알고 노력하셔야 되고요, 할 수 있습니다. 안된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광림교회 제일 피폐된 교회에 왔습니다. 나는 그 교회 갈 때에 내가 사관학교 군목, 군종 실장 할 때 거기 갔는데 거기 갈 때 다른 사람이 다 가지 말라고 그랬어요. 어떻게 그런 교회를 가느냐? 그런데 가서 내가 꿈을 가졌어요. 세계에서 제일 큰 장로교회가 영락교회이고, 세계에서 제일 큰 하나님의 성회가 순복음 교회인데 감리교회는 세계에서 제일 큰 것이 텍사스 휴스턴에 있어요. 한국에는 이런 큰 교회가 없을까? 그래 꿈을 가지고기도 하기 시작했어요. 연구하기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했어요. 지금우리 교회는 그야말로 세계에서 제일 큰 감리교회 됐어요. 85천명 교인이에요. 아프리카에 교회를 세웠어요. 에스토니아에 교회를 세웠어요. 뉴질랜드, 마닐라, 이 국내의 교회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모스크바에 교회, 천평짜리 예배당을 지었어요. 교회가 크니까 하지요. 그렇게 해야지요. 그러니까 비젼과 리더쉽과 영력이 있으면 할 수 있어요. 안된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 다 할 수 있어요. 릭 워렌도 어디 가서 영감을 받아내요? 우리 한국에 와서 영감을 받아 가지고 큰 교회 한 거예요. 개척을 해 가지고 지금도 개척을 할 수가 있습니다. 너무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아주 비젼을 가지고, 강력한 그런 리더쉽을 가지고, 영력을 가질 때에 여러분도 큰 교회가 될 수 있다,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