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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교역자'에 대한 소고

맑은샘77 2013. 7. 18. 23:42

'부교역자'에 대한 소고

   

    부교역자는 '기능적 존재'인가? 언젠가 열린 한 세미나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교역자를 위한 이 세미나의 강사였던 목사는 부교역자에게 있어서 담임 교역자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면 그의 의견이 옳든 그렇지 않음을 떠나서 무조건 따라야 하며 때로는 자신의 모든 공을 담임교역자의 것으로 꾸며주는 센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망언은 단순히 교회 안에서 뿐 만 아니라 이 사회 자체와 나아가 평신도들마저 철저하게 무시하는 발언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수도 없이 많으나 결정적인 발언의 문제는 역시 담임교역자의 위치를 철저하게 잘못 잡고 있다는 것에 있다. 여기서 원론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목회자들이 과연 예수님의 후예인가? 그 결의가 없지 않은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우리의 대속물 되신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인정한다면 한낱 인간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후예가 될 리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사도들의 후예인가? 여기에도 어느 정도 오류가 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1차적으로 듣고 본 자들이다. 그들이 직접 증명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2, 3, 4차 계속적으로 이어져 오는 구전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는 목회자들을 어찌 같은 말씀의 권위 위에 판별할 수 있는가? 설령 '인간'이라는 가치적 측면에서는 동일할 것이나 경험적, 체험적 측면에서 동일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부교역자나 담임교역자나 둘 모두 동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 예수 그리스도 이래 2천 년 후에 그를 전하는 이들. 1517년 종교개혁 이후 그 정신을 계승하는 이들. 그저 그 자리에 불과하며 누가 더 우월하고 열등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교역자들은 '기능적 위치'에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할 만큼 어리석은 자들은 성경을 한번도 읽지 않은 자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성경 속 믿음의 인물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기능적'으로 사용하신 인물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기능적'으로 역사하신 것은 사건이지 인간이 아니다. 궁극적인 역사의 흐름은 설령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졌을 지라도 인간을 기능적으로 마치 로봇처럼 사용하고 폐기하신 자는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음을 상기하라. 인간을 '기능적측면'으로 파악하는 것 자체가 비성경적 행위이며 하물며 담임 교역자는 인격적 존재이고 부교역자는 기능적 존재라 부르는 것은 심각한 죄악에 까지 이른다. 이는 기독교 정신에 명백하게 위배되는 이단적 발언이다.

 

  이제 부교역자가 모든 공을 담임 교역자에게 돌려야 하며 담임교역자보다 뛰어나면 쫓겨난다고 한 문제의 발언을 짚어보자. 교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물론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인가? 그것은 교회의 '모두'이다. 담임 교역자, 부 교역자, 평신도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누구의 공을 받는다는 것인가?

 

  물론 담임교역자의 경력, 연륜, 인격 등을 존중해줘야 하고 존대해줘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윤리적, 도덕적 존경이며 자발적 존경이지 결코 하나님 앞에서, 교회 안의 암묵적 상하관계에 대한 굴복이 아니란 말이다. 만일 담임교역자를 의식하여 부교역자가 뛰어난 기량을 자제한다면 그것은 같은 하나님의 자녀인 평신도들을 농락하는 행위이며 아울러 하나님의 이름조차 능멸하는 행위이다. 모든 성도는 직책을 떠나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며 예배를 드릴 의무가 있다. 예배에 목숨을 걸었던 로마 시대 그리스도인들을 상기해보라.

이러한 세미나를 옹호하는 자들은 실질적으로 현재 교회가 이렇게 해야 잘 돌아간다는 현실을 근거로 든다. 그들은 기업체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계급사회를 형성해야 전체적으로 잘 돌아가야 안전하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인 현상에 비추어본다면 이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교회인가? 비성경적이고 비기독교적이고 비정통적이고 비역사적인 교회. 마치 자본주의 대기업의 체계와 판박이로 돌아가는 교회가 온전한 교회인가?

 

  현실적인 대안만을 생각하고 기독교의 근본을 집어던져버리려는 교역자들은 분명히 정신차리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교역자의 역할을 상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