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갱신 2 :‘설교없는 주일예배’ 로의 예배 갱신, 가능할까요?
- ‘연설’(rhetoric) 적 전달 방식, 여전히 유효한가? -
지금 우리는 너무도 급격하게 변천되어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연 교회에서, 종교개혁 이후 500년간 계속되어 온, 낡은 방식인, ‘말로 하는’ 연설식 (rhetoric)전달 방법이 아직도 과연 효과적일까? 교회를 사랑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것이다.
1. 미국 감리교회에서 ‘속회’제도가 사라진 이유?
감리교회 제도에서, 웨슬리 때부터 있었던 중요한 ‘감리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속회’(Class)였다. 한데 웨슬리가 직접 파송한 전도자들에 의해 세워진 미국 감리교회는 이제 속회 제도가 없다. 한국 감리교회 목사님들은 ‘속회 없는 감리교회 있을수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한국 감리교회의 모교회인 미국 감리교회에서 속회제도가 사라진지 벌서 오래다.
그 이유는 더 이상 속회가 교인 훈련이나 교육을 위한 ‘방법’으로서의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속회 모임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과거 단순하던 사회 시대 때는, 저녁에 별로 갈 데가 없던 시절이라 이웃 가정에서 모이는 속회 모임을 사람들이 가기 좋아했다. 그러나 점점 사람들은 저녁시간에 재미있는 것으로 붙잡아두는 매체들(TV 등)이 늘어나고, 혹은 유익한 많은 모임들이 생겨나게 되자, 속회 모이기를 좋아하지 않게 되어 속회는 자연히 소멸되고 만 것이다. 이와 같이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고 유익하던 제도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하게 되는 것이다.
‘높은 위치’에서 일방적으로, ‘연설식’으로 전달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있다. 정치인들이 아직도 그런 방법을 일부 사용하고 있으나 이제 거리 연설 유세같은것은 사라졌고, 연설보다 소외계층을 찾아가 봉사하는등 ‘이미지’ 혹은 ‘행동’ 정치로 변신되었다.
2. 시대적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불과 반세기 전쯤의 인류가 상상할수도 없었던 놀라운 변화(change)가 매일 폭발되고 있다. S.N.S.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한 커뮤니티 안에서 연결되고, 개인들은 그런 연결을 통해 ‘1인 커뮤니티’를 현성한다. 인터넷의 Wi-Fi 서비스 확장은 이제 어디서나 어떤 정보던지 다 접속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이런 I.T.의 발전은 교회생활, 신앙생황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아직도 부흥사 중에 “주일이 되면 성경 툭툭 (먼지)털어 들고 교회간다”는 말 하는 분이 있는데, 이제는 성경찬송 들고 다니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스마트 폰에 저장된것을 열어보면 된다.
성경공부, 신학적 해석, ‘설교’ ‘좋은 말씀, ’유익한 말씀‘ 등 등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섭렵할수 있다. 그래서 이제 오늘날의 평신도들은 더 이상 목사보다 성경 지식이나 신학적 이해 혹은 교회 생활 등에서 뒤떨어지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은 분들이 많다. 내가 아는 교수님 한분은 (그는 공과대학 교수인데도) 온라인으로 신학공부를 마치고, 그의 학교에서 영어로 성경공부 클래스를 특별활동으로 인도하고 있다.
인터넷 설교뱅크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면 유명 목사님들의 좋은 말씀을 얼마든지 볼수 있다. C.T.S. 화면에서는 거의 하루종일 목사님들의 설교가 방영되고 있다. 나이많은 권사님들까지도 이제는 유명 목사님들의 설교에 ‘귀가 높아져’ 담임목사의 설교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젊은이들이 점점 교회를 떠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잇겠지만, 설교듣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다. 한국교회도 이대로 가다간 앞으로 유럽교회들처럼 텅텅 비게되는 시절이 올지도 모른다. 교회는 지금까지 몇 백년동안 하던 방식을 고집하고만 있어서는 안될것이다. 무언가 패러다임 변경이 필요하다.
3. 떼제 공동체 예배
프랑스에 있는 ‘떼제 공동체’(The Taize Community)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것이다. 어떤 주간에는 전세계에서 6천명이 모여들기도 한다. 그런데 거기에서의 예배에는 ‘설교’나 ‘강론’이 없다. 정말 은혜로운 찬송, 침묵 기도, 성경말씀, 고요한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 정말 ‘영성’이 충만한 ‘신령과 진정의’ 예배다. 물론 떼제 공동체는 수도원이기 때문에, 일반 교회 예배와는 다르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왜 거기에 매주간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드는지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4. 실제적 제안
일반 교회, 주일 예배에서도, ‘설교없는’ 이런 ‘영적’인 예배를 시도해 볼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설교’가 완전히 필요없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집회’에서는 설교는 여전히 유효하다. 부흥회, 빌리그레이엄 전도대회, TD 제이크스의 ‘메가 페스트’ 같은 ‘특별집회’에서는 여전히 설교는 파워풀한 전달 수단이다(물론 ‘영상’ 등이 같이 일한다.) 하나 개교회의 주일예배는 ‘예식적’(liturgical) 순서를 무시하지 않는 영적 예배가 되어야 한다. ‘집회식’ 순서의 예배가 되어서는 안된다. ‘리터지’(liturgy)에 충실하면서 설교없는 예배를 시도해 볼수 있지 않을까?
물론 예배에서 ‘말씀’을 배제하라는 말이 아니다. ‘말’로만 하는 ‘전달 수단’을 바꾸라는 말이다. ‘하나님 말씀, 진리’는 변해서는 안되지만, ‘전달 방법’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 여전히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령하게, 효과적 방법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제1부 예배나 어떤 다른 시간 대의 예배를 ‘설교없는 예배’로 시작해보는것도 좋을것이다. (대신 은혜로운 성경 낭독이 ‘말씀’ 순서가 되어야 할것이다.) 그리고 ‘성경공부’는, 소그룹 클래스를 통해서 체계적으로, 지속적으로 성도의 신앙 성장을 위한 ‘말씀’ 사역으로 힘써지는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설교를 통해서 사람이 변화되던 ‘기대’의 시대는 지났다. 오죽하면 어떤 유명한 부흥사가 “내가 평생 설교해 오지만 설교를 통해 변화되는 사람 못 보았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변하기로 했다.”라는 고백의 말을 했겠는가?
5. 나가는 말- ‘영성의 예배’로의 갱신
워싱턴 DC의 유명한 감리교 영성운동가 Dr. Gerald G. May (Pilgrimage Home 의 저자)가 그의 책에서 이런 고백을 했다. (그는 의사이며 평신도이다.) “매주일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평신도 지도자로 봉사하고, 집으로 올 때마다, 나는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은, 무언가 빠진 것 같은 (something missing)느낌을 가지곤 했다. 무엇일까? 결국 그것은 ‘영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대인들은 '영성’에 목말라 있다.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예배에서는 깊은 영성은 없고, 귀청을 때리는, 여러 악기를 동원한 ‘찬양팀이 인도하는 요란한(?) 찬양시간’,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같이 외처대는 통성기도, 그리고 또 장시간의 현란한 수식어, 개그 같은 표현이 춤추는 장시간의 외치는 설교, 등이 대세다. 과연 그런 순서를 통해서 정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세미한 소리’가운데 들려졌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는가? 시끄러운 ‘소음’ 가운데 피곤하게 사는 현대인들은 또 교회에 와서, 역시 ‘noisy' 한(시끄럽고 떠들썩한)순서들을 통해서 ’평안‘이 아니라, 어떤 ’피곤‘이 더해지는 것은 아닐까? 현대인이 목말라 하는 ’신령한‘ 예배로의 갱신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