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리더십

21세기 목회를 위한 제사장적 리더쉽

맑은샘77 2013. 7. 6. 14:19

21세기 목회를 위한 제사장적 리더쉽


정중호(계명대 교수)

I. 머리말
구약에 나타나는 종교지도자들을 대별해보면 제사장, 예언자, 지혜자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들은 각각 독특한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목회자들의 리더쉽 유형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종합적이며 복합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강단은 개신교의 일반적인 전통에 따라 구약의 예언서를 강조하여 왔으며 계시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위엄있게 선포하는 "높은 강단"이었다. 설교 내용은 분명히 예언서이지만 전달 태도와 방법은 오히려 제사장적 권위를 내세워왔다.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목회자가 제사장적 권위를 선호하지만 생활방식과 태도에 있어서는 제사장다운 정결함과 투철한 책임의식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공동체적 윤리와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메시지 보다 개인 구원과 개인의 형통함을 더욱 강조하여 온 면이 있다.
21세기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현대의 목회자들은 목회자로서의 지도력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시대를 선도해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올바르고 힘있는 지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도자가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기술을 연마해야 할 것이다. 하이테크와 컴퓨터로 대표되는 정보시대인 21세기는 분명 새로운 유형의 리더쉽을 요청한다. 새로운 리더쉽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서에 나타난 리더쉽을 점검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특별히 그동안 개신교에서 소홀히 여기고 부정적으로 여겨온 제사장적 리더쉽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성전에서 예배의식을 집전하며 신앙교육을 계속적으로 실시하고 교인들의 조직을 만들며 안정적인 목회상담을 하는 리더쉽은 다른 어떤 리더쉽보다 제사장적 리더쉽에 가깝다. 이 리더쉽을 다시금 살펴보며 21세기의 목회를 위한 우리의 리더쉽을 창출하고자 한다.

II. 제사장적 리더쉽과 예언자적 리더쉽의 비교
교회지도자의 모델을 이야기할 때 개신교에서는 제사장보다 예언자를 선호하게 된다. 율법 보다는 복음을 우위에 두며 제사의식 보다는 예언서의 말씀을 강조하는 종교개혁의 전통 속에서는 제사장에 관한 것은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왜냐하면 예언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지도자이지만 제사장은 그 직분을 세습적으로 이어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언자는 영적인 능력을 인정받아 예언자로 나타나지만 제사장은 제도적이며 관습적인 힘에 의지해서 지도자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평신도들과 가장 많이 대면하고 삶의 문제와 신앙에 대해 상담하며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를 대중적으로 줄기차게 이끌어 온 지도자는 예언자라기 보다 제사장이었음을 우리는 분명히 보아야 한다. 헤이스(John H. Hayes)는 제사장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예언자들이 아닌 제사장들이 영혼들을 보살피는 책임자들이었으며, 제사장신학이 삶의 여러 면에서 그리고 삶의 여러 위기 상황에서 삶 전체를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의미체계를 고안해 내었다.

우리는 여기서 예언자적 리더쉽과 제사장적 리더쉽을 비교하여 제사장적 리더쉽의 상대적 장점과 특수한 면을 찾아내어서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목회자 리더쉽의 모델을 창출해 보고져 한다.

1. 권위의 인정 유무
분명히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흐름을 크게 혁신시킨 지도자들이었지만 제사장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러면 과연 세습적이며 제도적인 힘에 의해서 종교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지도력의 약화현상을 초래하게 될까?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을 비교해 보면, 제사장들은 자신의 권위와 자격에 대해 별로 주장하지 않는 반면 예언자들은 자신의 권위와 자격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예언서 마다 있는 소위 '소명설화'라는 것이 바로 예언자의 권위에 대한 주장이다. 왜 예언자들은 자기주장을 하고 자기 방어를 해야만 하는가? 그 이유는 제도적인 권위가 뒷받침되지 않는 지도자인 예언자들의 경우 스스로 권위를 만들어 나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예언자들이 저마다 권위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누가 거짓예언자인지 누가 참예언자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예레미야의 경우 평생 이러한 논란에 휩싸여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제사장의 경우 그 권위는 세습적이며 제도적인 힘에 의해 주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다. 제사장의 권위있는 지도력은 제사장으로 임명받는 복잡한 의식에서부터 이미 대내외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이 지도력은 백성들 사이에 이미 인정된 것이기에 안정적으로 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분명 종교권을 장악하고 지도력을 발휘하는 지도자는 제사장이었다. 그러나 제사장이 그 권위와 지도력을 잘못 사용했을 때는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하였다.
21세기는 기존의 권위가 계속 파괴될 것이지만 자체 개혁을 통해 살아남는 권위도 있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모습이 될 때 그 권위는 살아남을 뿐 만 아니라 새로운 권위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영적갈증을 느끼면서 종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지만 종교를 선택하거나 종교단체를 선택하는 안목도 높아질것이다. 역사적으로 검증되고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종교단체는 권위가 더욱 높아지겠지만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거나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는 종교단체는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목회자의 제사장적 권위와 지도력은 계속 공격을 받고 도전을 받겠지만 그 본연의 핵심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부단히 개혁할 수만 있다면 분명 새롭고도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목회자가 기존의 제사장적 권위를 활용하면서 그 지도력을 높여나가기 위해서는 개인이나 개교회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보다더 큰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노회와 총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며, 더 나아가서 교단 연합 차원에서의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노회도 총회도 교단연합활동도 이제는 획기적인 개혁을 통해 살아남기위한 전략을 구상해야하고 더 나아가서 더 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2. 생활과 행동양식의 차이
예언자와 제사장은 생활과 행동양식에 있어서도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예언자들의 경우 일치된 생활자세와 행동양식이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특수한 소수의 사람들이 예언자들의 생활과 행동양식을 이해하고 권위를 인정해 주지만 많은 대중이 인정해주기 어려운 면이 있다. 반면 제사장의 경우는 먹는 음식(레 10:8-9, 12-20), 입는 의복(출 28:2-39; 40-43), 결혼(레 21:7, 13-14) 등 일상생활의 행동들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시체에 접근하는 행동까지 규정하고 있다(레 21:1-4, 11). 이러한 행동양식은 외식적인 행동이라 비판하기 앞서서 일상생활을 정결하게 유지하기 위한 생활양식임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종교지도자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줄 수 있는 전형적인 생활태도와 행동양식이기에 제사장의 지도자적 권위를 한층 더 강화시켜 준다.
21세기의 목회자는 신뢰받을 수 있는 생활양식과 행동양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개신교 목회자는 가정생활을 영위하면서 목회를 하기 때문에 모범적이며 정결한 가정생활이 요구되어진다. 목회자가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경제생활의 투명함이 있어야 하고 도덕적인 지도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동이 먼저 도덕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미 실명제가 실시되고 있고 모든 것이 전산화되어 가는 흐름에 비추어 볼 때 목회자와 교회의 재정상황도 이러한 추세에 적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이 경우 재정운용의 정당성을 갖추어야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목회자임을 나타내는 특색있는 복장을 개발하고 그 복장을 입은 목회자들이 훌륭한 행동을 계속하는 노회나 교단이 있다면 그 노회와 교단은 21세기에 높은 권위를 인정받고 더욱 강력한 목회자적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제사장 특유의 생활양식과 행동양식이 나타나지 않을 때 그 지도력은 약화되고 사라질 수도 있다.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의 행패와 제사장 사무엘의 아들들의 악행은 제사장의 지도력을 상실하게되었을 뿐 만 아니라 생명까지 잃게 되었다.
강력한 종교적 지도력은 지도자의 말과 생활자세 그리고 행동의 일치에서 나온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21세기 목회자들 역시 신뢰받을 수 있는 생활자세와 행동양식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것이다.

3. 종교지도자를 위한 전문 교육
지도자는 어떠한 형태이든 교육을 받은 인물이다. 예언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고 해서 교육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많은 예언자들이 정규교육 혹은 비정규교육을 받은 인물들이지만 그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한편 제사장은 종교지도자 교육을 정식으로 받은 지도자라 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 신학대학원같은 교육은 아니지만 제사장 가문에서 자라나 그 생활습관과 행동양식을 체득하고 제사를 집전하기 위한 전문적인 지식과 태도를 배우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아버지 제사장이 아들 제사장을 교육시키는 도제교육의 형태이지만 예루살렘같은 큰 성전에서는 도제교육의 규모가 상당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사무엘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교육을 받을 때 제사장 신분을 상징하는 세마포 에봇을 입고 교육을 받는 현장교육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삼상 2:19).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를 잘못 집전하다가 죽은 사건(레 10:1-2)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제사장교육이 상당히 엄격하게 시행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제사장은 율법을 가르치는 일(겔 44:23; 대하 17:7-9)과 종교적인 재판을 하는 역할(신 17:8-13: 21:5)도 담당해야함으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이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는 제사장의 역할은 전체의 상황을 통찰하는 통찰력과 분별력을 필요로한다(레 8:8). 그리고 환자의 상태를 판별할 수 있어야 하며(레 15:1-33) 동물들의 정결함과 부정함을 구별할 수 있어야하는 제사장(레 11:1-47)은 동물들에 관한 상당한 지식이 있어야 됨을 알 수 있다. 밀그롬(Jacob Milgrom)은 제사장 교육이 교육여건의 안정성과 전문가에 의한 높은 수준의 교육이라 지적하였다. 많은 사람들로 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안정되고 권위있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1세기의 신학

교육은 정보사회에 걸맞는 "평생교육"으로 나아가며 그 어느 시대 보다 계속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질 것이다.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육도 현장교육이 중요시될 것이지만 목회를 담당하는 목회자도 현장감있는 신학연구를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의 목회자는 사회 전반에 관한 폭넓은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며 다양한 학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가져야 한다.

4. 제의를 통한 리더쉽과 말을 통한 리더쉽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전하는 임무를 위주로 한다면 제사장은 제사의식을 집전하는 임무를 주로 하게된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제사의식은 형식적이며 말은 내용을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글보다는 말이 더 생동감이 있을 것이며 감각을 활용하며 함께 참여하는 제사의식은 훨씬 더 생생한 체험을 나눌 수 있다. 제사의식은 오늘날의 예배의식과 마찬가지로 그 형식 속에 신앙의 핵심이 담겨있다. 이러한 의식을 반복해서 시행하며 함께 참여하는 활동을 통해 하나님과 만나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실시되었던 제사의식의 독특한 점은 개인적인 제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서 개인들은 각자의 예물을 들고 제사장의 인도를 받아 제사를 드렸다. 중요한 것은 제사드리기 전 반드시 제사장과 상담하는 과정을 거쳐서 제사를 드린다는 점이다.
그리고 제사장은 제사의식을 통해서 신앙교육을 실시하였다. 문자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시대에서, 그리고 말로서 설명하기 힘든 신앙을 가르치기 위해서 제사장은 제사의식을 통해 종합적이며 지속적인 신앙교육을 실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죄 때문에 소중하고 귀여운 짐승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피 냄새를 맡으며 속죄제를 드리는 사람은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체험적으로 배우는 것이다.
21세기의 시대는 감각적이며 개인들의 개성이 뚜렷해지는 시대라 볼 수 있다. 말과 글 만으로 신앙교육을 실시하기 보다 영상매체와 가상세계 기법을 활용하는 시대가 21세기라면 우리는 감각을 활용하며 개개인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예배의식을 중시하고 새롭게 개발할 필요가 있다. 어른을 위주로한 예배의식이 아니라 각 연령층에 맞는 예배의식을 개발하고 하이테크를 활용한 예배모형 그리고 드라마, 무용,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예배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예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예배에 직접 참여하여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예배를 개발하여야 한다.
21세기는 각자의 개성이 강하며 개개인이 목회자와 대화하는 상담이 더욱 필요해질 것이다. 정보매체의 발달로 목회자는 언제 어느 곳에서도 목회자와 교인 개개인과 상담할 수 있기에 21세기는 그 어느 시대보다 목회자의 상담기술을 절실하게 요구하게 된다. 대중을 구름같이 이끌어가던 시대는 흘러가고 이제는 개개인을 개성있게 만나야하는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다. 목회자가 죄인의 고백과 회개를 유도하고 용서의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개신교의 목회자들은 그동안 "만인제사장설"이라는 이론에 근거하여 이 책무를 너무 소홀히 여겨왔다. 이제는 개인적인 상담을 활성화시켜 목회자가 제사장적 지도력을 강화해 나아가야 할 때이다.

이상 네가지 면에서 찾아 본 제사장적 리더쉽의 상대적 장점과 특수한 면들은 21세기 목회를 위한 중요한 리더쉽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다. 관습적이고 제도적인 권위를 바탕으로하는 제사장적 리더쉽은 기존의 권위가 갖는 전통적 리더쉽을 말한다. 새로운 리더쉽을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쉽게 수용할 수 있고 인정해주는 기존의 리더쉽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신앙을 지도하는 목회자는 그 어느 지도자보다 말과 생활 및 행동의 일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목회자의 생활태도와 행동양식은 목회자의 지도력을 한층 높여 줄 수 있을 것이다. 목회자의 리더쉽 전체가 교육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안정되고 선진화된 고학력 사회에서 높은 수준의 전문 교육을 받지않은 목회자가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감각적이며 개성이 뚜렷한 21세기의 교인들을 지도해야할 목회자는 제사장들이 마련했던 제의를 통한 신앙교육의 현장을 재개발하여야 하며 목회상담의 기법을 활용하여 개인적인 지도를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III. 회막을 중심한 제사장의 리더쉽
1. "만남"을 선도하는 제사장
회막(會幕)이라는 용어는 제사장자료(Priestly Source)에서 성전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회막은 천막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머무를 때 완성되었다고 전해지는(출 40장) 회막은 광야에서 잠시 머무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천막들 한가운데 자리잡게 된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소에 충만하다"(출 40:34)는 것은 하나님이 회막의 지성소에 계시다는 의미이다. 하늘이나 시내산 정상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한가운데 살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다. 광야를 이동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선두에서 인도하실 때 제사장은 회막과 그 기구들을 인솔하여 하나님과 백성의 중간에서 행진하게 되고 백성들 앞에서 행진하게 된다.
회막은 문자 그데로 "만남의 장막(Tent of Meeting)"이다. 제사장은 바로 이 회막을 지키는 사람들이며 회막에서 제사를 집전하고 레위인들과 더불어 회막의 이동과 설치를 책임지고 있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세운 거룩한 사람으로 먼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활동하는 사람이다. 즉 제사장은 "만남의 장막"에서 만남을 주선하고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과 사람이 만날 수 있게 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나님 앞에서 친교를 도모하도록 주선한다. 물론 제사장은 이러한 만남에 장애요소가 되는 것을 제거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기본적인 제사장의 리더쉽은 바로 "만남의 장막"에서 "만남"을 선도하는데서 나온다.
21세기의 목회자들은 기존의 교회와는 다른 교회들을 만날 수 있다. TV를 통해 교회를 형성하는 단계를 넘어서 영상을 주고 받는 컴퓨터로 연결되는 교회(Cyber Church)도 만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지역적이며 공간적인 요인이나 시간적인 요인에 비교적 적게 구애받는 새로운 교회공동체가 탄생될 수 있는 것이다. 한 곳에 있는 교회가 아니라 움직이는 교회도 가능해진다. 하나의 큰 교회가 아니라 여러개의 작은 소집단들을 목회하는 목회형태도 가능할 수 있다. 어떠한 형태의 집단들을 목회하든 중요한 것은 목회자의 리더쉽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하나님과의 "만남"을 주선할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친교와 화목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말하면 그 특정 집단이 어느 곳에 있든지 혹은 어디로 이동하든지 그 집단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는 "회막"을 설치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집단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목회자들은 새로운 집단에 파고들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목회자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목회자가 하나님과의 만남을 바라는 교인들의 영적인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 때 그 리더쉽은 뿌리채 흔들리게 된다.

2. 정결한 "회막"을 유지하는 제사장
하나님이 떠난 회막은 무용지물이다. 하나님이 없는 회막을 지키는 제사장은 아무런 리더쉽을 발휘할 수 없다. 제사장이 회막 만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회막에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그 첫째번 방법은 부정한 것이 회막을 침투하지 않도록 회막을 경비하는 것인데 이 일은 제사장이 제사장직을 은퇴한 후에도 계속하는 평생의 임무이다. 목회자는 교회에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는 모든 것들 그들이 상업주의, 물질주의, 정치 권력, 혹은 퇴폐문화 등 어떤 형태이든 하나님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교회를 방어해야 한다. 성전을 청결하시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막 11:17)는 예수님의 호통소리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두번째 방법은 백성들의 죄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여 백성들의 죄로 인해 오염된 하나님의 환경을 정상화 시켜야한다.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그 죄의 결과는 하나님이 계시는 회막을 오염시키는데 개인적인 죄는 회막 뜰에 있는 제단을 오염시키고, 집단적인 죄와 제사장의 죄는 성소를 오염시킨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 죄는 지성소를 오염시키는 가장 흉악한 죄로 나타난다. 제사장은 죄인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할 때 속죄제(정화제사) 혹은 속건제(배상제사)를 드리게 된다. 이 때 제사장은 희생제물의 피를 받아 오염된 부분에 뿌림으로 그 부분을 정결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성소를 오염시킨 회개하지 않은 죄는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대신 죄를 고백하고 지성소에 희생제물의 피를 뿌려 정결을 회복시킨다. 이로서 하나님은 오염이 제거된 회막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으며, 회막을 중심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제사장이 태만하거나 백성들이 너무 많은 죄를 저지를 경우 하나님은 극심하게 오염된 회막에 살 수 없어서 회막을 떠나게 된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회막을 둔 백성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파멸할 수 밖에 없다.
제사장의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 하나님을 편안하게 모시는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의 목회자적 리더쉽을 점검할 때 먼저 물으시는 것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17)라는 질문을 하신 것이다. 목회자가 하나님을 편안하게 회막에 살 수 있도록 모시는 방법은 바로 백성들의 죄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백성들이 죄를 스스로 회개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며 회개하지 않은 죄에 대해서는 제사장이 백성의 대표로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제사장은 공동체를 파멸에서 구할 수 있으며 공동체를 살리는 사람으로 제사장은 리더쉽을 튼튼하게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죄문제를 소홀히 여기는 목회자는 21세기 교회에서도 리더쉽을 확보하기 어렵다.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의 짐을 덜어주지 못하고 공동체를 파멸시키는 죄의 연쇄적인 악영향을 차단하지 못하는 목회자는 그 지도력이 무시될 수 밖에 없다. 회개를 촉구하는 목회자가 되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러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목회자는 그 존재 자체를 위협받게 된다. 죄로 인해 공동체가 파멸할 때 그 공동체를 이끄는 제사장이 제외될 수 없는 것이다. 공동체에 대한 사랑도 중요하지만 공동체를 책임질 수 있는 선한 목자로서의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IV. 예배의식과 삶을 연결시키는 제사장적 리더쉽
회막을 중심한 제사의식은 이스라엘 백성의 일상적인 삶의 핵심 부분에 자리잡고 있고 일상적인 생활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정결하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길은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 행진의 선두에 회막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레위기 19장에는 제사장들의 문서 중 하나인 성결법전(Holiness Code)의 핵심이 있는데 그 내용은 2절에 요약되어 있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거룩을 강조하는 19장은 제사의식을 강조하기보다 일상적인 삶의 윤리를 확립하는데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제사 가운데도 공동체의 친교를 증진시키는 화목제를 이야기하며, 가난한 자와 약한자를 위하여 배려하고 동물의 생명까지도 귀하게 여길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경향은 18절의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라는 구절에서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

1. 생명을 존중하는 제사장적 리더쉽
이스라엘 백성은 생명이 피에 있다고 믿었다(레 17:11). 그리고 생명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인간은 관리자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의미의 상징적인 것은 '생명나무'를 인간에게 넘겨주지 않는 하나님의 조치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창 3:22-23). 생명을 선물로 받은 인간은 생명에 손을 댈 수 없으며 동물의 생명까지도 존중하도록 제사장은 지도하였다. 즉 동물을 희생제물로 도살할 때는 제사장이 반드시 그 피를 제단옆에 쏟음으로서 그 생명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도록 하였다. 또 동물을 사냥할 경우에는 그 피를 땅에 쏟아 흙으로 덮도록 하였다. 인간의 건강을 위해 동물을 음식물로 허용하되 동물의 생명인 그 피를 결코 먹지 않도록 금령을 내렸다(창 9:3-6; 레 17:10-14). 만약 이러한 명령을 어길 경우 즉 동물을 불법적으로 도살할 경우 살인죄에 해당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피를 먹지말라라는 금지명령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내려진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내려진 명령이다. 이러한 금령은 고대 근동지역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특별한 종교적 명령으로 이스라엘 제사장들의 독창적인 신학으로 여겨진다. 제사장들은 이 명령을 통해 제사의식과 생활윤리를 연결시켰다.
21세기의 사회는 전자공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간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로봇이 크게 활약을 할 것이고 유전공학의 발전은 인간복제를 보편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요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보다 network의 한 부분이요 생산해기도 하고 폐기처분할 수도 있는 상품의 하나로 취급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발전시킨 하이테크 사회 속에서 인간의 생명이 위협받지 않도록 그리고 수많은 로봇 속에서 인간이 비명을 지르며 살지 않도록 인간 생명을 존중하는 생명경외의 신학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러한 신학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기에 선교적 차원에서도 가장 필요한 신학이다. 이러한 신학을 바탕으로 실시되는 리더쉽이 바로 제사장적 리더쉽이다.
21세기의 사회는 network를 통해 모든 개인이 모든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사회이다. 따라서 다원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며 각자 자신의 개성과 자신의 가치기준을 발전시킬 것이다. 기존의 권위와 집단적인 가치기준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윤리적인 기준이 무엇일까? 그것은 모두가 소중히 여기는 생명을 존중하는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환경을 살리는 제사장적 리더쉽
제사장은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며 시체를 가까이 할 수 없다(레 21:10-12). 부정한 것이라 선언한 것들을 살펴보면 죽음과 상관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몸에서 피가 흐르는 유출병은 부정한 것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생명인 피가 몸 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죽음과 관련있다. 문둥병이라 부르는 악성피부병도 부정한 것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피부가 흰색으로 변하는 현상이 시체의 창백한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제사장은 죽음이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것을 공동체에서 제거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공동체의 중앙에 있는 회막에는 결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도록 철저한 노력을 기울인다. 제사장은 회막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 내부에 생명의 기운이 가득차도록 노력해야 하며 이러한 노력을 통해 공동체가 생동감 넘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제사장신학에서의 공동체의 개념은 인간 공동체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이 사는 마을 한 복판에 "하나님의 집"이 자리잡고 있고 인간이 하나님의 환경을 이루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고 보호하며 인도하고, 인간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한편 인간이 죄를 지을 때는 "하나님의 집"이 오염되고 심하면 하나님은 그 집을 떠나게 된다. 하나님께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악령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과 인간이 어울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분명히 신과 인간은 구별되지만 서로가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서로가 영향을 받는 모습은 공동체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이 공동체에는 동물을 비롯한 자연을 또한 제외시킬 수 없다. 인간은 자연을 관리하며 자연은 인간의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하나님과 자연 또한 창조자와 피조물로서 땅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게 되며 때로는 하나님께 호소하기도 한다.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이 함께 어울려 사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작품이며 하나님이 주도적 위치에 있지만 지상에서는 제사장이 그 일을 대신하게 된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방향으로 그리고 하나님도 이 공동체 안에서 편안히 계실 수 있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이 공동체를 병들게 하고 상처를 입히는 구성원은 바로 인간이다. 마치 악령과 같이 인간은 막강한 힘을 행사한다. 인간이 많은 죄를 짓고 제사장은 죄문제를 해결하는 직무에 게으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에서 떠나게 되고, 하나님의 보호가 없는 인간의 마을과 그 땅은 재앙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 상황을 예로들어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환경은 오염되며 자연은 인간의 죄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고 공해에 시달리게 된다.
21세기의 세계적 중요한 문제는 바로 환경문제이다. 이 문제는 과학이나 경제 혹은 정치적 문제이기 이전에 인간윤리의 문제이며 신학적인 문제이다. 창조주가 인간에게 맡긴 자연을 인간이 상처입히고 파괴시켰다면 인간은 다시 자연을 회복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을 선두에 서서 진두지휘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제사장들이며 21세기의 목회자들이다.

3. 자유와 복지를 위한 제사장적 리더쉽
왕을 비판하며 지도자들을 질책하는 모습은 예언자들이 할 몫으로 보통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쿠데타를 일으켜 새 왕을 추대한 여호야다는 바로 대제사장이었다(왕하 11:4-20). 유다왕 요시야의 개혁을 위한 문서는 성전에서 나왔으며 제사장의 손에서 건네 받았다(왕하 22:1-20). 제사장은 정치에 어느정도 개입하고 있었을까? 정치와 종교가 분리될 수 없는 시대에 왕과 제사장은 가장 가까운 사이일 수 있다. 때로는 왕이 제사장을 임명하기도 하고 제사장이 왕권 유지에 적극 동참하기도 한다. 다윗의 경우와같이 왕의 아들들이 제사장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억눌린 자가 해방되고 가난한 자가 기본 생활권을 되찾는 일은 주로 예언자들이 외칠 항목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안식년과 희년을 선포하는 내용이 나타나는 곳은 제사장이 저술한 "성결법전"이다(레위기 25장). "이웃을 네 몸과같이 사랑하라"는 명령도 제사장들이 강조한 내용이었다(레 19:18). 제사장은 결코 회막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전통 속에 굳어있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유를 누리고 기본적인 생활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일을 하였다. 이상적인 계획을 제도화하고 의식으로 변형시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제사장들이야말로 종교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종교권을 많이 장악하고 있으며 개혁을 현실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들이었다.
사회정의와 경제정의를 부르짖는 지도자들은 예언자들이었지만 정의로운 사회와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지도자들로서는 제사장이 적합하다. 21세기의 목회는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목회이다.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교회 안에서만 맴도는 목회는 설 자리를 잃게될 것이다.


V. 맺는말
21세기 목회를 위한 새로운 리더쉽을 창출하기 위해 이제까지 제사장적 리더쉽을 점검하여 왔다. 제사장적 리더쉽을 예언자적 리더쉽과 비교하여 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적인 점들을 파악할 수 있다; 제사장적 리더쉽은
(1) 기존의 제도적이며 관습적인 권위를 등에 업고 있는 전통적인 리더쉽이며,
(2) 특수한 생활태도와 행동양식이 있고,
(3) 전문적인 종교지도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리더쉽이며,
(4) 제의를 통해 신앙교육을 실시하고 상담을 통해 개별적으로 지도하는 리더쉽이다.
제사장적 리더쉽의 핵심은 역시 회막을 중심하여 형성되는데, 이동하는 회막(만남의 장막)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의 만남을 선도하는데 있으며, 정결한 회막을 유지하는데 있다.
이러한 핵심적 활동내용을 바탕으로 목회하는 제사장은 구체적으로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을 포함하는 전체 공동체를 유지하고 살리며 풍성하게 하기위하여 노력하게 된다.
21세기 목회에서 제사장적 리더쉽을 수행하는데 특히 중점을 두어야 될 것은 예배의식과 삶을 연결시키는 과제인데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면을 중요시하여야 할 것이다;
(1) 생명을 존중하는 리더쉽,
(2) 환경을 살리는 리더쉽,
(3) 자유와 복지를 위한 리더쉽 등이다.

{계명신학} 제11집(1996) 299-324 에 게재된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