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속에서 찾아보는 팀목회의 모델분석
송제근
요즈음 한국교회속에 통용되는 일반론이 하나 있다. 한국사회와 정치계 지도자들의 정치의식이나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가진 목회와 교회정치 의식간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사회의 정치의식이 독재적이었을 때 한국교회의 목회철학도 독재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현재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한국의 정치적인 상황이 획기적으로 발전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재적이고 권위적인 지도자 대신 민중에 의하여 선정되고, 민중을 위하여 일하는 지도자를 선정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정치의식에 대한 이러한 관찰이 어느 정도 옳다고 한다면 우리가 이것과 비교해 보아야 할 것은 한국교회의 목회의식이다. 한국사회나 정치에 나타난 이러한 발전에 비하여 한국교회의 목회와 교회정치는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질문해 볼 때 일반적으로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여전히 한국교회에서는 한 교회에서 한 지도자가 전체를 주관하여야 하고 그 지도자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식의 목회철학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한국교회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소위 '팀목회', '팀사역', 혹은 '공동목회'라고 (Team Ministry) 불리우는 것을 생각한다. 즉 교회의 한 지도자가 모든 것을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도자들이 지도권을 나누는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교회 목회의 민주화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 물론 지도권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교회가 독재적 목회의 원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생긴 폐해에 대해서 반성하는 것은 옳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과연 나이브하게 목회의 민주화를 지향하는 것 자체도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질문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질문을 다루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글을 쓰는 중요한 목적이다. 우리는 과연 성경은 팀목회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구약과 신약은 팀목회의 원리를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가 ? 그리고 그 실제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 그리고 한국교회의 현실은 팀목회를 적용하기에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가 ?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글에서 먼저 팀목회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찾고자 한다. 그리고 나서 구약과 신약을 통하여 팀목회의 원리가 무엇이며 실제로 역사적인 인물들이 어ㄷ게 팀목회를 이루었는가를 알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적인 상황속에서 이 팀목회를 적용하려고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이며 그 문제를 극복하고 난 뒤에 팀목회를 이룩할 가능성을 살피고자 한다.
1. 팀목회란 무엇인가 ?
팀목회를 정의할 때 신학교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같은 사역의 현장에서 협력하여 사역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할 경우가 많다. 독자들은 이 글에서 이런 정의 하에서 팀목회의 문제가 다루어질 것을 기대할 수도 있고 또 전문 목회자들끼리의 팀목회는 실제로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좁은 의미의 팀목회 개념은 그 자체로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목회 전문가들이 팀목회를 완전하게 하려다 보면 반드시 자신들만이 아닌, 여러 면에서 천부적인 달란트를 가지거나 후천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은 소위 '평신도'들이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일에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 공동체가 가진 그 최선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런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아니하였어도 여러 면에서 잘 훈련된 헌신된 평신도들이 교회 목회에 참여하는 것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팀목회라는 용어가 전문적인 목회자들만이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봉사할 수 있다는 어감을 주기 때문에 이 용어보다 '팀사역'이라는 용어가 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리즈가 팀목회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였으므로 이 용어를 앞으로 사용할 것이다.
팀목회를 이렇게 넓게 정의할 때 우리는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즉 팀목회를 고려한다는 것은 사실상 하나님의 공동체인 이스라엘과 교회의 '직분'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팀목회는 정확한 의미에서 교회에 존재하는 모든 섬기는 직분들이 서로 협력하여서 교회를 섬겨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교회 안에는 제일 하부층에 서리집사가 있고 그 위에 안수집사가 있고 그 위에 장로가 있고 그 위에 목사가 있다는 피라밋식의 지도체제에 대한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런 인식을 가지고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골고루 나누어 주신 은사로서의 직분들을 정당하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팀목회를 생각할 때 항상 목회전문가들만의 상호협력만을 생각하고, 평신도들은 단지 그 명령을 듣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 우리가 평신도로 부르지만모든 면에서 준비되었으며 열심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세우는 일에 소외될 수 있다. 평신도들은 수동적으로 명령을 듣고 순종하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목회의 실제적인 작은 부분을 능동적으로 담당하는 데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전통을 만들어낸 한국교회의 역사, 사회, 종교적인 상황들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어떤 지도체제가, 단지 우리가 현재 그 속에서 익숙한 체제이고 그 속에서 우리가 편안함을 누리므로 그것을 지키려는 보수적인 경향이 일반적으로 우리들 속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보수적인 경향을 따르면 교회가 온전하게 발전할 것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이런 전통을 상대적인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더우기 성경이 직분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한국교회에서 팀목회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다시 말하면 팀목회를 목회전문가들만의 협력을 의미하는 좁은 의미에서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교회에 부어주신 여러 은사들을 가진 사람들이 협력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더 본질적으로 팀목회는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에서의 직분론을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팀목회를 행한 구체적인 성경의 인물들을 연구하는 것이 이 팀목회 연구 시리즈의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더 중요한 것은 여러 직분들이 어떻게 원리적으로 이스라엘과 교회를 섬기도록 세워졌는가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세워진 직분을 근본적으로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 이것을 위하여 먼저 우리는 잘 알려진 일반적인 내용을 재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신구약은 교회의 직분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인,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그리고 신약에서는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충만한 삶을, 정상적으로 사는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서 신구약의 직분들이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서 이루기 원하시는 것은 당신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다. 이 나라는 먼저 하나님과 그 백성인 (영적)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이 수립됨으로 골격이 갖추어졌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에 직분들을 허락하신 이유는 이 언약이 정상적이고도 충만한 모습을 늘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즉 이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기 위하여 직분들을 세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팀목회가 가진 목표는 단순히 효과적으로 교인들을 관리한다든지 교회를 숫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 목표를 분명히 할 때 우리는 지금까지 의 전통적인 교회 지도체제를 상대적으로 여길 수 있게 되고 더 훌륭한 체제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2. 구약이 말하는 팀목회
이제 구체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팀목회에 대해서 알아 볼 때가 되었다. 먼저 구약이 말하는 팀목회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고자 한다. 구약은 하나님 나라의 직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 그리고 구체적으로 구약역사속에서 인물들을 통하여 이런 원리들이 어떻게 시행되었는가 ? 이런 질문들을 여기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2.1. 직분에 대한 원리
2.1.1. 제사장 직분 (출 25-민 10)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구약의 직분들은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속에서 정상적이고 충만한 상태에서 살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최초로 주어진 직분은 제사장직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출 19-24) 난 뒤에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인 성막을 운영할 제사장 제도를 제정하셨다 (출 25-31). 그리고 난 뒤 레위기에서 민수기 10장까지 거의 모든 내용은 제사장들이 실제 어떻게 제사를 수행할 것인가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자마자 바로 제사장을 통한 사역을 자세하게 명령하시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면서 범죄할 경우들이 생기고 그 결과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깨어지게 된다. 이 경우를 대비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세우신 언약을 다시 회복하게 하기 위하여 제사장 제도를 마련하셨다.
2.1.2. 모세가 가진 언약의 중보자로서의 직분, 그리고 그 직분의 分化 (출 19-24, 25-31, 신 17:14-20, 18:15-22)
모세라는 인물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다. 무엇보다도 시내산 언약에서 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언약수립의 중보자로서 역할한다. 모세가 가진 이 언약의 중보자라는 직분과 역할은 유일하게 주어진 것이지만 그 역할은 나중에 分化되어 나타날 직분들속에 계속되어진다. 그리고 모세가 이렇게 언약의 중보자라는 직분을 행하는 유일한 위치를 점하였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새언약의 중보자로서의 유일한 직분을 가진 것과 같다. 즉 모세의 직분은 사실상 장차 그리스도의 중보자로서의 직분에 대한 예표이며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신명기에서 이미 모세는 자신의 직분이 分化될 것을 예고한다. 이미 시내산 언약에서 제사장 제도는 수립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왕제도가 허락될 것이며 (신 17:14-20) 또 선지자 제도도 (신 18:15-22) 미리 예견되었다. 이렇게 하여 이 三重職務는 이미 수립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를 정상적으로 그리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조치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서 이미 수립된 제사장제도와 함께 왕제도와 선지자제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계속 머물 수 있는 제도적인 방편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들이 서로 상하관계나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제도도 최상의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사실상 왕제도가 수립되고 난 뒤에 이스라엘은 주위의 국가들의 영향을 받아서 왕들이 다른 직분들을 관장하는 전통을 계속 만들어 갔다. 원리적인 면에서 보면 이스라엘은 신정국가로서 왕에게 소극적인 권위를 허락한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 17:14-20).
2.1.3. 언약의 중보자로서의 여호수아와 사사 (여호수아서, 사사기)
모세의 수행자였고 제자였던 ('모세의 시종' 출 24:13) 여호수아는 여러 면에서 모세의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는 모세의 복제(複製)였다 ('모세의 시종' 수 1:1, '여호와의 종' 24:29). 이 사실은 단순히 한 개인이 그 스승을 이어 받았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즉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언약의 중보자로서 가졌던 역할을 여호수아가 그대로 이어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 8:30-35, 24:1-28). 다시 말해서 모세는 첫언약인 시내산 언약을 수립하고 (출 19 - 민 10), 이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 가면 갱신해야 할 모압언약(신 29:1)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제 여호수아는 이 언약을 세겜에서 완전히 수립하고 (수 8:30-35) 또 죽기 전에 언약을 새롭게 하는 일을 하였다 (수 24:1-28).
여호수아 후의 사사들도 사실상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그들도 언약공동체인 이스라엘에 대한 총괄적인 지도권을 발휘하였다. 그들의 활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속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었다.
2.1.4. 三重職務의 형성과 그 상호 관계 (삼상 8)
사사시대의 마지막에 드디어 예기되었던 삼중직무가 뚜렷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지막 사사이자 동시에 선지자였던 사무엘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즉 사무엘은 왕제도를 세우고 동시에 선지자제도를 세운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사사시대라는 한 시대를 마감하고 전혀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이다. 이렇게 하여서 이미 있던 제사장제도와 함께 삼중직무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면 이 삼중직무의 상호관계는 무엇인가 ? 이 질문이 바로 구약에서의 팀목회의 원리에 대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제사장들은 이스라엘이 언제든지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를 깨뜨릴 수 있으므로 그것을 회복하게 하는 기능을 가졌다. 왕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현실의 삶을 언약법 아래서 온전하게 영위하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종교를 시작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은 세습적으로 세워졌던 제사장들과 왕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권능과 카리스마에 의하여 불규칙적으로 세워졌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간혹 이스라엘이 외부의 공격을 받아서 위기에 봉착하거나, 또 주로 내부적으로 왕들과 제사장들이 타락하여서 언약공동체로서 유지될 수 없을 때에 세워진 직분들이었다.
이 세 직분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공동체로서 유지되고 발전되는 것을 향해서 봉사하는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어느 직분 자체를 더 혹은 덜 중요하게 생각할 수 없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세 제도중에서 왕 제도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뜻에 의하여 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적극적인 요구에 의하여 허락된 것이었다. 하나님이 인간들의 이러한 요구를 허용하여서 시작된 왕제도는 결과적으로 보면 흥미롭게도 이스라엘을 파멸에 이르게 하였다. 물론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타락도 백성들의 범죄와 함께 이스라엘이 멸망한 원인이 되었지만 왕들의 타락이 이스라엘 멸망의 주요 원인으로 묘사된 것을 우리는 역사서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설적인 은혜가 거두는 승리는 바로 이 왕제도의 최후의 인물인 다윗의 한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인간들의 요구에 의하여 소극적으로 허락된 제도인 왕제도의 모든 부족을 완전하게 하시고 역사를 새롭게 하시는 분이다.
2.1.5. 일반 평신도들이 지도자의 직분을 나눔 : 구약의 장로 (출 19:7, 24:1,9, 신 31:9),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출 18:13-27)
이렇게 세워진 三重職務뿐 아니라 보통의 이스라엘 백성중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하여서 세워진 직분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장로와, 모세의 재판을 실제적으로 도우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이다. 그 중에서도 장로들은 백성의 대표자로서 언약을 맺는데 참여하고 (출 19:7, 24:1,9), 매 칠년마다 열리는 언약축제를 제사장과 함께 주관할 기능이 주어진 것이 (신 31:9) 특이하다. 이렇게 구약시대에는 세습적인 제사장이나 왕도 아니고, 또 하나님의 카리스마로 세워진 선지자도 아닌 보통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지도권의 일부를 채웠다.
2.2. 구약의 지도자들이 팀목회를 한 구체적인 경우들
이제 구약의 인물들이 이러한 원리적인 직분을 나누어 팀목회를 한 경우들을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역사가 정상적으로 발전했을 경우에는 직분의 分化에 따라서 직분들이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역사서나 선지서에서 볼 수 있는 팀목회의 구체적인 사례들은 예외적이나 특별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2.2.1. 모세, 아론, 미리암 (출 4:14, 28:1, 출 15:20, 민 12)
언약의 중보자로서 모세는 언약을 유지하는 기능을 하는 제사장으로서의 아론과 함께 그 당시에 효과적으로 팀목회를 하였다. 형과 동생이라는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팀목회가 유지된 것이 아니라 각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로서의 직분에 충성했다. 아론은 모세의 대변자로서 출발하였다가 (출 4:14) 언약이 수립되면서 제일 먼저 요구된 제도인 제사장으로서의 첫 직분을 행한 사람이 됨으로서 (출 28:1) 팀목회의 첫 예를 보였다. 그리고 미리암은 선지자로 소개되었는데 (출 15:20) 그 구체적인 모습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동생인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였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사실은 (민 12) 권위에 있어서 명확한 질서가 있어야 함을 나타낸다. 이것은 언약의 중보자로서 총체적인 역할을 감당하던 모세가 차지하였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분명히 보여준 예이다.
2.2.2. 모세와 여호수아 (출 24:13, 신 31:3,7, 34:9, 수 1:1, 24:29)
모세와 여호수아가 팀목회에서 서로 동등한 차원의 동역관계를 이룬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여호수아는 모세의 충실한 조수였으며 이 관계는 모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고 또 그것 때문에 여호수아는 제 2의 모세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사례는 한국교회의 현실속에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이어갈 때 이루어야 할 발전을 위한 팀목회의 중요한 모본이다.
2.2.3. 드보라와 바락 (삿 4)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여선지자 드보라는 하솔왕 야빈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바락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바락은 이 소명을 받았을 때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한 듯 드보라도 같이 전쟁에 나갈 것을 요구하였다. 바락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어떤 조건을 제시하였으므로 전쟁에 이겼어도 승리의 영광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영적인 권위인 드보라를 존중하는 것은 좋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새로운 권위가 그 나름대로 독자적인 중요성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잇다. 그래서 우리는 기존의 권위에 대하여 지나치게 혹은 인간적으로 의존적이 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배운다.
2.2.4. 왕과 선지자의 팀목회
(1) 이 관계의 최초의 인물들은 사무엘과 사울이다. 사무엘은 왕제도를 세우고 최초의 왕으로서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 (삼상 11:15). 사무엘은 왕제도가 잘 시행되고 모든 권력이 왕에게 집중되어서 이스라엘이 정치구조적으로 튼튼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언약 공동체로서 유지되고 발전되는 것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즉 절대권력을 가진 왕을 세우기 위하여 노력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언약의 백성으로 남아 있게 하기 위하여 노력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사울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사울 대신 다른 왕이 세월질 것을 선언할 수 있었다 (삼상 13:14, 15:22-28). 그렇지만 사무엘은 사울 개인을 위하여 슬퍼하며 기도하는 열심과 성실을 보이고 있다.
(2) 그 다음으로 다윗왕과 선지자 나단과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삼하 12). 하나님은 다윗이 범한 결정적인 범죄에 대하여 선지자 나단을 보내시고 준엄한 책망과 심판을 선언하셨다. 이에 대해 다윗은 사울과는 달리 근본적인 회개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과 다윗이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에게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서 여디디아라는 이름까지 주셨다 (삼하 12:25). 선지자 나단은 다윗의 마지막 일인 왕위 계승을 순조롭게 하는 일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왕상 1).
(3) 아사왕과 아사랴는 또 다른 사례다 (대하 15). 아사왕은 등극하면서부터 종교개혁에 대하여 열심이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은 선지자 아사랴를 보내어서 종교개혁의 근본적인 원리를 세우고 격려하셨다. 그 결과 아사왕은 더 완전한 종교개혁을 할 수 있었고 아세라 목상을 세운 친어머니의 태후의 위를 폐하기까지 하였다.
(4) 하나의 특이한 예를 우리는 아합왕과 선지자 엘리야에게서 볼 수 있다 (왕하 17). 이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는 적대관계에 있었지만 하나님 나라의 차원에서는 동역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사람은 왕으로서 역할을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선지자로서 악한 왕에 대하여 회개를 외치고 심판을 선언하였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은 동시대에 이스라엘의 공적인 직분자로 세워졌으므로 역설적인 의미에서 팀목회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아합이 왕으로 등극한 것과 엘리야의 등장은 동시적으로 기록되었다 (왕하 16:29, 17:1). 아합왕은 前代의 이스라엘의 왕과는 다르게 시돈 왕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데려와 이스라엘로 하나님을 더욱 떠나 다른 신을 섬기게 하였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연단하신 후에 (왕하 17), 비를 내리지 아니하시리라는 선언으로 아합에게 도전하게 하신다 (왕하 18).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하나님의 자비로 그동안 오지 않았던 비를 내리게 하고 그 사실을 아합에게 예언함으로써 하나님의 관심이 왕에게 있음을 나타내었다 (왕하 18:41-46).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강제로 탈취하였을 때 엘리야는 다시 그를 만나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했다. 이것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아합왕은 적어도 외적으로는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고 하나님은 그것을 가상하게 여기셨다 (왕하 21).
(5) 시드기야와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왕과 선지자가 행한 팀목회의 전형이다. 예레미야는 그 이전 왕들의 통치기간에도 예언 활동을 하였으나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와 중요한 팀목회를 하였다. 그러나 우유부단한 왕 시드기야를 격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려는 예레미야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렘 37-39).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케 하려는 예레미야의 처절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시는 것을 분명히 보인 것은 그의 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2.2.5. 왕, 제사장, 선지자의 팀목회
(1) 여호사밧 왕과 선지자 예후 그리고 제사장 아마랴(그리고 레위인 야하시엘)의 경우는 삼중직무가 행한 팀목회에 관한 중요한 모본이다 (대하 19-20). 선지자 예후는 아합왕과 연합한 여호사밧의 잘못을 용감하게 지적하는 동시에 그의 잘한 일도 말해 주었다 (대하 19:2). 그 결과 여호사밧 왕은 브엘세바부터 에브라임을 순행하면서 백성들을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오게 하였으며 (대하 19:4), 원래의 언약제도에 충실하게 살 수 있도록 하였다 (대하 19:5-11). 그 때에 닥쳐온 외적인 위협에 대하여 하나님은 레위인 중에서 야하시엘을 일으켜 확신의 멧세지를 주셨다. 그리고 레위인들의 찬송중에 전쟁이 승리로 돌아간 특이한 역사가 벌어졌다 (대하 20).
(2) 히스기야 왕과 제사장들과 선지자 이사야도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개혁이라는 결과를 낳은 삼중직무의 팀목회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히스기야 자신이 종교개혁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또 그 열정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유월절 축제를 오랫만에 즐길 수 있었다 (대하 28-31). 그러나 이러한 내적인 종교개혁이 마무리 되었을 때 나타난 산헤립이라는 외부의 적에 대하여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허락하셨고 두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한 결과 전무후무한 승전보를 거두었다 (왕하 19, 대하 32). 그 후 히스기야는 중병이 들자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그것에 대하여 이사야는 하나님의 치유를 선언하였다 (왕하 20:1-11). 또 바벨론의 사절들에게 모든 시설을 다 보였을 때에 이샤야는 장래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다 (왕하 20:12-21).
(3) 왕 요시야, 제사장 힐기야 그리고 선지자 훌다의 팀목회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역사에 빛나는 금자탑과 같은 것이다 (왕하 22). 모압언약에서 언약의 책인 '토라'는 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맡기워졌다 (신 31:9). 따라서 이 책을 백성에게 가르칠 책임이 주로 제사장들에게 있었다. 그동안 분실되었던 이 책이 성전을 수리하는 중에 발견하였다. 제사장 힐기야를 비롯한 신하들은 요시야 왕에게 그것을 가져감으로서 이스라엘의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하였고 여선지자 훌다도 이 개혁에 참여하였다 (왕하 22). 이 세 직분이 행한 놀라운 팀목회의 결과 이스라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차원의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3. 신약이 말하는 팀목회
이제 우리는 신약이 말하는 팀목회를 보고자 한다. 신약에 대한 연구 역시 신약의 직분관과 신약의 지도자들이 행한 구체적인 팀목회를 함께 생각해 볼 것이다.
3.1. 신약의 직분의 원리
3.1.1. 그리스도의 중보자로서의 직분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영적 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언약의 가장 완전하며 유일한 본래의 중보자이다. 특히 구약에서 나타난 언약의 삼중직무인 제사장, 왕, 그리고 선지자 직분을 가장 본래적인 의미에서 수행하신 분이시다. 그는 제사장이시지만 동물들로 희생을 드리는 보통의 제사장과는 다르게 당신 자신을 제물로 영원히 그리고 단번에 드리심으로 구약에서 드려진 모든 그림자와 같은 제물들이 실제적인 의미를 가지게 하셨다. 또한 섬김을 받는 보통의 왕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게 만왕의 왕이시지만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으로서 자신을 보이셨다. 그리고 그는 진리에 대해서 말하고 그 진리를 받아서 선포한 선지자들과는 다르게 어떤 특정한 사실이 진리라고 말하기보다 자신이 진리이심을 보이신 선지자의 원형이셨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구약의 중요한 삼중직무를 완성하신 분이시고 그것을 신약교회에 적용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신약교회의 모든 직분은 구약적인 의미에서 말하자면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삼중직무를 나누어 수행한다고 보아야 한다.
3.1.2. 신약이 말하는 직분들의 팀목회의 원리
우선 신약의 직분을 총제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약에서는 직분을 초자연적인 성령의 은사로 말하고 있다 (고전 12-14). 초자연적인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근본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이 초자연적인 은사중에는 직분과 관계없이 주어지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영들 분별함, 능력, 병고치는 은사, 돕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각종 방언하는 은사, 통역하는 은사, 예언의 은사들이다 (고전 12: 롬 12:4-8). 여기서 직분이 초자연적인 은사로 주신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 직분으로서 주신 것은 초대교회 수립 초기에는 선지자와 교사로 표현되기도 하고 (행전 13), 사도, 선지자, 교사로 나와 있기도 하고 (고전 12:28), 후대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로 나누기도 한다 (엡 4:11).
신약의 직분을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집사 : 초대교회에서 가장 최초로 나누어졌던 직분은 집사이다 (행전 6). 사도직을 가진 사람들이 거의 모든 교회의 일을 관장하다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기 위하여 구제를 전념하는 직분으로서 집사를 세웠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세운 집사중에서 말씀의 은사를 받은 스데반과 빌립 같은 사람들이 사도들의 말씀 사역을 보충하게 될 정도로 교회는 발전했다 (행전 7-8).
(2) 교사 : 이런 말씀 전파의 사역이, 특별히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됨으로, 긴급히 확대되었다. 이 일을 위하여 바나바가 다소에 있던 사울을 안디옥에 데려와 함께 가르쳤고 여기서 교사라는 직분이 생겨난 것 같다 (행전 11:26, 13:1). 칼빈은 자신을 이 초대교회에서 말하는 교회의 교사(doctor)의 직분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이것은 성경의 깊이를 잘 가르치는 직분이 교회에 얼마나 필요한가를 말해준다.
(3) 선지자 : 흥미롭게도 칼빈은 의도적으로 사도와 함께 이 직분이 언급될 때 순서를 바꾸어서 선지자와 사도라고 함으로서 선지자는 구약의 선지자로서 옛언약의 대표로, 사도는 새로운 약속의 대표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초대교회에서 신약적 의미의 선지자의 직분은 명확하였다. 안디옥 교회에 이 직분을 가진 자들이 모여 들었고, 이미 교사로 활동을 하던 바나바와 사울과 함께 그 교회의 중요한 지도권을 형성하였다 (행전 11:27, 13:1, 15:32, 21:10).
(4) 장로 : 이 직분이 처음 소개된 것은 첫 예루살렘 공회에서였다 (행전 15:2,5,22). 단순히 사도들만이 예루살렘 교회를 지도하던 데서 발전하여 장로들도 지도권에 참여하였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와 같이 이미 굳건하게 선 교회에서 장로들을 세웠던 것 같다 (행전 20:17).
(5) 목사 : 이 직분은 교회가 더 발전하고 난 뒤에 생겨난 것 같다 (엡 4:11). 신약에서 한 번 쓰인 이 단어는 교인들을 목양한다는 개념을 가진 직분을 나타내는 것 같다. 이 외에 감독과 (빌 1:1) 복음전하는 자와 (엡 4:11) 같은 직분이 있으나 그 구체적인 것을 자세히 알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신약의 직분들에는 ㅁ가지 특징이 있다.
(1) 사도직을 제외한 나머지 직분들은 교회가 확장될 때마다 생긴 실제적인 필요성을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다. 집사와 교사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2) 신약의 직분은 구약에서 정해진 삼중직무와는 달리 다양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분들은 구약에 나타난 세 직분을 더욱 현실적인 신약의 상황에 반영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세분화한 것이다.
(3) 이런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는 고전 12장과 엡 4장에서 같은 순서로 기록되었다. 이는 집사를 세울 때에 사도들이 표현한대로 (행전 6:4)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이러한 말씀과 관련된 직분들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먼저 언급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 구약에서의 왕과 제사장의 두 직분과 같은 세습적인 직분은 신약에서는 없고 모두가 하나님이 위에서 부어주신 것으로 채워졌다. 이것은 신약교회의 영적인 원리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보이는 외적인 제도에 의해서 유지되고 통일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존한다는 것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평신도들이 교회를 세우는 직분에 참여하는 기회가 많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3.2. 신약의 지도자들이 팀목회를 한 구체적인 경우들
3.1.1. 베드로와 열한 사도들 (행전 1-15)
신약교회가 초기에 수립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은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부터 발휘된 베드로의 지도력이 이 때도 발휘되었으며 그것이 자연스럽게 가롯유다 대신에 다른 사도를 뽑는 일을 제의하는데 나타났다 (행전 1:15). 오순절의 첫 설교도 그가 했으며 (행전 2), 성전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일도 요한과 함께 그가 하였다 (행전 3). 또한 첫 핍박이 일어날 때에도 베드로가 요한과 함께 대변자로 나섰다 (행전 3:11-26, 4:8-12,19-20). 그 이후의 초대교회의 거의 모든 사역에 베드로가 관여하였다. 행전 10장과 행전 15장은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하여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에 들어오는 것을 신학적으로 준비시키시는 것을 보고하고 있다. 예수께서 계실 때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의 지도권은 초대교회 시대에도 이어졌으며 다른 사도들과 함께 그들은 하나님 교회의 기둥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3.1.2. 안디옥 교회의 5인의 지도자들 (행전 13:1)
안디옥 교회에서 섬긴 바나바,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구레네 사람 루기오,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그리고 사울은 선지자와 교사로 불리웠다. 이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으로서 선지자들이 먼저 소개된 것이 특이하다. 선지자들의 왕성한 활동을 통하여 우리는 교회의 구체적인 상황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많이 알려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교사들이 언급되었는데 이 일은 아마도 바나바와 바울이 담당했을 가능성이 많다. 이 지도자들이 금식하면서 교회를 섬겨 나갔고 그 결과 이들은 이방인 선교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3.1.3. 바나바와 바울 (행전 13:2-15:35)
바나바와 바울의 팀사역은 신약교회의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그들은 팀목회를 하기 전부터 오래동안 관계를 맺어 왔다. 바울이 회심하자 예루살렘의 제자들이 바울을 만나기를 두려워하였지만 바나바는 바울을 그들 중에 용감히 천거하여 그들과 사귈 수 있도록 하였다 (행전 9:26-30). 후에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사역을 할 때 큰 무리가 더하므로 다소에 있던 바울을 데리고 와 안디옥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같이 하였다. 이 사역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졌고 그 결과 그 곳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가 되었다 (행전 11:25-26). 성령께서는 이 두 사람이 팀사역에 적합하다는 것을 아시고 이방인 선교를 본격적으로 감당할 도구로 이 두 사람을 지정하셨다 (행전 13:1-2). 그러므로 일차 전도여행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행전 13-14). 그들이 안디옥에 되돌아와서도 첫 예루살렘 공회에 안디옥 교회의 대표로서 둘은 함께 참여하였고 또 돌아와서도 함께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행전 15). 이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된 것은 일차 전도여행 시에 중도하차한 마가라 하는 요한을 다시 데려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바울은 마가를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인물로 생각하게 되었지만 (딤후 4:11) 이 때는 적어도 바나바와 갈라지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3.1.4. 바울 전도대 (실라 : 행전 15:40, 디모데 : 행전 18:5, 소스데네 : 고전 1:1, 아굴라와 브리스가 : 행전 18:2-3, 고전 16:19, 누가 : 딤후 4:11)
바울은 자신의 전도대에 필요한 사람을 선택할 줄 알았다. 실라와 디모데 그리고 소스데네, 아굴라와 브리스가, 누가 등은 바울의 놀라운 동역자들이었다. 이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바울은 그 많은 교회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
4. 성경적인 팀목회의 원리를 한국상황속에 적용함에 대하여
이제 우리는 위에서 말한 팀목회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를 한국적인 상황속에 적용하고자 한다.
4.1. 한국교회의 현실적인 문제들
한국교회 상황속에 팀목회를 적용할 때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서, 목회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깊이 있는 고려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현실은 사람들이 너무나 모든 것을 빨리 성취하려고 하고, 또 무슨 목적으로 그 일을 하는가를 깊이 고려하지 않고 남이 하기 때문에 내가 따라서 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동일한 현상이 한국교회속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현재 한국교회가 물량주의에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다. 이런 상황가운데서 성경이 말하는 목회원리 대신 그 물량주의적인 목적을 이루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합법화되는 것이 현실이다. 목회에 있어서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팽배되어 있다.
(2) 한국 목회자들 중에서 팽배해 있는 또 하나의 의식은 내 양은 내 것이라는 생각이다. 목회자들이 원리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섬기지만 실제에는 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내 양으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는 목회를 통하여서도 인간의 지배욕이 발휘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말로 설득하여 어떤 행동을 하게 할 경우는 일단 그 사람을 사상적으로 지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세상에서 언제든지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설명과 설득과 선포가 근본적으로 세상의 그것들과 다른 것은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만드는 것을 최종의 목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예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나면 전도자는 그 사이에서 물러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로 남아 있으려는 것 자체가 사실상 인간의 뿌리깊은 지배욕의 발휘라고 할 수 있다. 목회자가 아무리 성경을 정확히 깊이있게 가르쳐 그 결과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다른 사람을 다스린다는 사실에 은밀히 만족을 누린다면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예가 교회속에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한 교회속에 인간 지도자는 하나가 되어야지 둘은 되어서는 안된다는 세상적인 목회관이 어느새 우리 목회자들의 머리를 정복하게 된 것이다. 한 인간속에 교묘하게 숨어있는 개인적 지배욕이 모든 목회자들의 마음에 있는 한, 한국교회속에서 팀목회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3) 교회의 직분자들 사이에 직분을 하나의 계급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래서 한국교회에서 어떤 경우는 장로들 스스로 자신을 목사들에 대한 하나의 견제세력으로서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의 전통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전통이 있는 곳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팀목회는 불가능할 가능성이 많다.
(4) 한국교회 목회의 또 하나의 문제는 전문 목회자와 소위 평신도를 너무 지나치게 구분한다는 것이다. 목회전문가들은 목회를 자신의 전문영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참여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평신도들 역시 자신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 평신도의 폭넓은 참여를 통한 팀목회는 불가능할 것이다.
4.2. 한국교회 속에서 팀목회를 이루기 위한 실제적 제언
이런 한국적인 부정적인 목회 현실들을 극복하면서 팀목회를 이루기 위한 제언은 다음과 같다.
(1) 이미 언급하였듯이 팀목회론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를 섬기는 직분론이다. 하나님께서 영적 이스라엘인 공동체를 세우기 위하여 여러가지 직분의 은사를 주셨는데 신약뿐 아니라 구약에서도 이 직분들 중에서 우월한 권위를 가진 것이 없다. 다만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이 일을 담당하는 직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엄청나게 다양한 직분들이 교회의 현실적인 요구에 맞게 주어졌고 그에 따라서 은사들이 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직분들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영역의 독특성을 잘 알고 그것을 충분히 개발하도록 서로 도우는 일이 중요하다.
(2) 직분들은 이스라엘와 교회라는 언약의 백성을 세우기 위해서 주셨다는 사실을 근본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구약에서의 언약관계는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신약에서는 언약관계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결혼을 하는 신부로서의 교회로 표현되었다. 이제 교회를 이런 유기체로서의 언약공동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 특정한 인간 지도자가 교회의 머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각 지도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영역에서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하나의 유기체로서 연합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3) 구약에서 백성들을 다스리는 직분은 말씀을 가르치는 직분인 제사장이나 선지자이 아닌 왕이 수행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지배욕을 발휘하는 수단으로서 말씀의 직분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4)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주신 선천적인 탈란트들과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인정하고 개발하며 그것들이 교회속에서 충분히 드러나도록 하여야 한다. 우선 선천적으로 주신 달란트에 대한 인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이것이 있다고 해서 바로 하나님 나라에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 선천적인 탈란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할례를 받지 않을 경우는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진행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부어주시는 은사들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일단 부어진 은사들이 자연스럽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인정되며 다른 은사들과 합하여 유기체로서의 교회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여야 할 것이다.
(5) 전문적인 신학교육을 받은 목회자들끼리 같이 사역을 할 경우에 바로 위에서 언급한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즉 각 목회자가 가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천부적인 탈란트가 무엇인가를 알고 개발할 뿐 아니라 각 목회자가 그 공동체를 섬기기 위하여 하나님께 후천적으로 받은 은사들이 무엇인가를 알고 확인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어떤 목회자를 그 공동체 속에서 같이 사역하도록 보내신 사실이 확실하다면 그가 공동체를 섬기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은사가 있다는 것을 믿고 그것이 충분히 드러나도록 같이 간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때에 우리에게 현재 익숙한 담임목사, 부목사 제도가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문제를 다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나이가 든 담임목사중에서 교회를 전체로 관장할 능력이 없는 대신 특정한 사역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또한 젊은 부목사중에서 정반대로 교회 전체를 관장할 탁월한 능력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의 한국교회는 이런 경우를 반영하여 지도체제를 개선할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6) 목사와 교사를 하나로 보는 전통에서 칼빈이 엡 4:11을 해석한 것과 같이 교회를 목양하며 섬기는 목사와 성경의 깊은 진리를 가르치는 성경박사(doctor)로서의 교사라는 직분을 별도의 직분으로 나누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한 것이다.
(7) 목회의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여서 그것에 맞는 직분의 개념을 발전시킬 수도 있다. 물론 말씀을 가르치는 직분을 중심으로 하여 성경이 말하는 항구적인 직분들은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야 하지만 다른 직분들을 새로운 현실에 맞게 개발하는 것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8) 현재의 한국교회의 장로들이 단순히 치리하고 교회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기구로만 생각하는데서 나아가 목회의 일선에 목사와 같이 서야 한다. 화란 개혁교회의 장로들은 정기적인 교인들의 심방을 담당함으로서 목사들의 목회를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그렇게 하려면 장로들이 심방할 때마다 짧은 설교와 권면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목사와 마찬가지로 말씀에 대한 권위를 어느 정도는 가져야 한다. 장로에 대하여 고려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항은 장로가 교회의 치리와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 외에 교회를 실제적으로 섬기는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한 교회안에 여러가지 실제적인 일을 하는 위원회가 있을 수 있고 특별히 교육에 장로들이 적극적으로 참여ㅎ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장로들이 각종 위원회의 위원장이 되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하다.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오랫동안 훈련받고 실천한 경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팀목회를 위하여 앞으로 교회에서 장로를 선정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인격이나 영적인 능력뿐 아니라 그 장로 후보가 과연 자신이 평생 봉사할 특수한 영역에 대하여 아마추어로서 훈련을 잘 받았느냐는 것이다. 아마추어가 오랫동안 한 영역에서 잘 훈련받으면 프로를 뺨칠 능력이 있을 것이 사실이 아닌가 ! 자기가 전공하여서 봉사할 영역을 가지며, 그 영역에서 탁월한 식견과 영적인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정된 사람들이 장로로서 선정이 되는 시대가 와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청년 사역을 전공하는 장로는 그 분야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고, 그 분야 세미나나 야간 교육에 참석하여 정기적인 훈련을 받아서, 청소년들의 영적인 상태와 현실과 그들의 심리를 잘 알고 그들과 모든 면에서 대화가 가능하고 그들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다른 평신도들도 자신들이 교회에 봉사하기 위하여 자신의 전문영역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훈련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9) 한국적인 상황 가운데서 신학교에서 신학교육을 정식으로 받지 아니한 소위 평신도들을 교회 목회의 지도권에 포함시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교회내의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영적인 훈련과 함께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평신도들이 목회를 실제적으로 도운다면 목회에 활기가 넘치게 될 것이다. 어느 교회 목회자가 피력한 바와 같이 잘 훈련된 평신도가 작은 목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잘 훈련받은 평신도는 목회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이것을 위하여 우선 영적으로 기본적인 소양이 있는 평신도가 실제적인 교회사역을 하기 위하여 잘 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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