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 - 이루마
걱정 마요 실망 마요
저 멀리서 별이 내려올 때
울지 말고 바라봐요
내 손에 담긴 작은 별들을
쉽게 놓쳐버릴까봐
그만 놓쳐버릴까봐
걱정 말고 믿어봐요
나의꿈을 잊지마요 나의 꿈을
걱정 마요 실망 마요
저 멀리서 별이 내려올 때
울지 말고 바라봐요
내 손에 담긴 작은 별들을
쉽게 놓쳐버릴까봐
그만 놓쳐버릴까봐
걱정 말고 믿어봐요
나의 꿈을 잊지마요 나의 꿈을
쉽게 놓쳐버릴까봐
그만 놓쳐버릴까봐
걱정 말고 믿어봐요
나의 꿈을 잊지마요
걱정 말고 믿어봐요
나의 꿈을 잊지마요
울지 말고 바라봐요
나의 손에 담긴 작은 별들을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 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
-강아지똥중에서
[ 한국의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9.10 ~2007.5.17)]
■ 선생님의 일생
일제 강점기 도쿄 빈민가에서 가난한 노무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복 후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다. 가난 때문에 재봉기 상회 점원,
나무 장수, 고구마 장수 등을 하며 객지를 떠돌던 그는 5년 뒤인 1957년
경상북도 안동 일직면 조탑리에 들어왔다. 그때 나이가 18세였다.
이후 22세 때에 지병인 결핵 때문에 집을 나갔다가, 1966년에 다시 정착하여
1982년까지 마을 교회 종지기로 살았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물을 보듬는 따뜻하고 진솔한 글을 써왔던 것처럼
고인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물질주의와 담을 쌓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살았다
'강아지똥'과 '몽실언니'가 각각 60여만 부나 팔리는 성공을 거뒀지만
고인이 소유한 것은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의 5평 남짓한
오두막집이 전부였다.
그는 모든 상을 거절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1995년 아동문학가 윤석중씨가
고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 '새싹문학상' 수상자로 선정, 오두막으로 직접 상패와
상금을 가져오자 다음 날 우편으로 돌려보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김용락 시인은 "권정생 선생님은 거의 모든 인세 수입을 자선 단체에 기부했으며,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오두막을 없애 자연 상태로 돌려놓고 자신을 기념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늘 당부하셨다"라면서 "진정한 무소유의 삶을 사셨던 성자"라고
고인을 회고했다.
2007년 5월 17일 지병이 악화되어 대구 가톨릭대학교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작품
권정생의 작품은 대체로 기독교적 믿음을 바탕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것들에
대한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처마 밑의 강아지 똥을 보고 썼다는 《강아지똥》과 절름발이 소녀의
꿋꿋한 이야기를 담은 《몽실언니》는, 무시당하고 상처받는, 그리고 소외된
주인공들의 모습을 잘 그려내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강아지똥》은 닭과 진흙에게 무시를 당하고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던
강아지 똥이 민들레의 거름이 되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 내용으로
많은이들에게 감동을 주어 60만 부 이상이 팔렸으며, 현재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있다.
《몽실언니》는 해방 직후부터 50년대 까지를 배경으로 삶이 피폐해진 생활
속에서도 착한 마음을 잃지 않는 몽실이와 동생 난남이가 겪는
세상살이를 담은 장편동화이다 .
아버지와 엄마, 새아버지와 새엄마, 인민군 언니들과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성장해 가는 몽실이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렸다.
또한 절름발이 몽실이가 겪는 삶을 통해 당시의 상황과 풍속을
잘 드러냈다.,
1984년 첫 출간 이래 50만 부가 넘게 팔렸다.
1990년에 MBC에서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 유언
'
무소유'를 실천하며 소박한 삶을 살아오다 세상을 떠난 아동문학가 권정생씨가
어린이들을 위해 인세를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재작년 어린이날 몇 자 적어 놓은 글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 작가 권정생이 말하는 하느님과 인간의 뜻 ]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사람들에게 그 많은 고통을 주는 것도
하나님의 뜻인가요? 인간이 한 것이지요.”
권 선생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낙엽만이 침묵의 공간 속을 뒹굴었다.
마침내 여든여덟살 난 마을 할머니 얘기를 꺼냈다.
“할머니가 네살 때 부모가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 뒤 아직까지 소식을 모른다.
그는 지금도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버렸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못 오셨을까’만 생각한다.
결혼해 자식 손자까지 다 있는데도 할머니는 아직까지 네살짜리 아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하느님 뜻인가. 하느님이 일제 36년과 6·25의
고통을 우리에게 주었는가?”
권 선생은 “아니다”라고 자답했다.
그 고통 역시 “인간 때문”이라는 것이다.
얘기 중에도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눈으로 산과 들과 마을을 바라보던
그가 다시 마을 얘기를 이어갔다.
“우리 마을엔 당집이 있다. 거기엔 할머니신을 포함해 세 분이 모셔져 있다.
한 분은 후삼국시대에 백제에서 온 장군인데, 죽을 줄 알던 마을 사람들을
모두 살려줬다.
또 한 분은 비구니 스님인데, 이 마을에 전염병이 돌 때 와서 사람들을 살려줬다.
당집에선 한해 동안 싸움 안하고 가장 깨끗하게 산 사람이 제주가 되어
정월 보름마다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면서, 또는 당집 앞을 지날 때마다
스스로 착하게 살려고 자신을 다잡는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평안하게 살아간다.”
그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착하게 살아가라’는 설교를 귀가 따갑게 들으면서도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기 일쑤인데 왜 그럴까. 세상에
교회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는 또 “교회나 절이 없었더라도 더 나빠지지 않았을 것 같다”고 자답했다.
그는 “세상에 교회와 절이 이렇게 많은데, 왜 전쟁을 막지 못하는가”라며
다시 낙엽을 바라보았다.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에서 600만명이나
죽는 고통을 당하고도 왜 그렇게 남을 죽이고 고통스럽게 하는가.
1940년대 유대인들이 처음 팔레스타인 땅에 돌아올 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키부츠 등에 땅도 내주고 함께 살자고 했는데, 이젠 ‘처음부터 막았어야 했는데’
라며 후회한다고 들었다.
영화 〈쉘부르의 우산〉의 배경이 된 전쟁은 베트남전이다. 프랑스는 당시
베트남인들을 노예처럼 끌어다가 칠레 남부의 섬에 가둬 비행장 건설 노역을
시켰다. 그러다 전쟁이 끝나자 베트남인들은 그대로 남겨둔 채 자기들만
고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섬엔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베트남
노인들이 살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악행만 얘기하지 자신들이 한 것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중국도 일본이 난징학살 때 30만명이나 살육한 것을 지금까지 그토록
분개하면서도 티베트인들을 그렇게 죽인 것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억압만 하고 있다. 미국은 자기는 핵무기를 만 개도 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나라들만 나쁘다고 한다.”
권 선생은 “모두가 자기는 잘하고 옳은데, 상대방이 문제라고 한다”고 했다.
그것이 불화와 고통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죽어서 가는 천당 생각 하고 싶지 않다.
사는 동안만이라도 서로 따뜻하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권 선생님은 “하느님은 언제나 ‘인간이 하는 것’을 보고 계신다”며
“그렇기에 홀로 있어도 나쁜 짓을 할 수 없고,
착한 일을 했어도 으스댈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