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료/이단-안티기독교

[스크랩] 예수 출생 펑

맑은샘77 2010. 4. 3. 10:24

 

예수는 실존 인물인가? 이 물음에 대한 논란은 워낙 넓고 방대하다. 왜냐면 역사적 기록이나 자료에는 이 성경 속의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기 때문. 그렇게 유명하고 위세를 떨친 종교의 교주임에도, 당대나 후대의 역사 기록 속에는 기독교인이라는 불순한 무리들은 예수를 믿는데 그 예수라는 양반이 있었다 카더라~~ 식으로 잠깐 언급될 뿐 실존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다. 기껏해야 예수에 대한 기록은 신약 성서 정도인데, 신약 성서를 역사서로 보는 건 절대 무리가 있지락. 거기다 같은 신약의 복음서끼리도 말을 못 맞추는 통에 다같이 자폭하기 일쑤. 그 부분을 펑해보겠다.

 

헤롯 왕은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마태 복음을 보면 예수는 헤롯 대왕의 통치시절에 태어난 걸로 되어 있다. 근데 누가 복음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총독 구레뇨(퀴리니우스)가 시리아(수리아) 총독일 때 태어났다고 한다. 예수의 미스테리는 딱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 -_-

 

앞에서 말했듯 헤롯 대왕은 예수의 탄생 년도를 기점으로 BC4년에 사망한 사람이고,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으로 부임한것은 AD 6년의 일.

 

"요셉은 일어나서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르켈라오가 자기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리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가서 나자렛이라는 동네에서 살았다. 이리하여 예언자를 시켜 "그를 나자렛 사람이라 부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마태복음 2:22]

 

나자렛 사람이라 부른다는 예언이 구약 어디에도 없다는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위 구절에서 알수 있듯이 유아학살을 자행한 왕은 헤롯 아켈라오(=헤롯 아르켈라우스)의 아버지인 헤롯대왕이며, 퀴리니우스는 헤롯 대왕이 죽고 아들 아켈라오의 즉위로부터 10년 후에 부임한 인물이라 이거다......... -_-;; 복음서 조차도 앞뒤가 안 맞지.

 

마태복음은 BC4세기에 죽은 헤롯이 유아학살을 했다고 하고 누가복음은 AD 6년경 예수가 태어났다는 거다. 거기다 마태는 헤롯이 예수를 죽일라고 날뛰어서 예수 가족이 도망간다고 난린데, 누가복음은 예수가 태어난지 8일후 할례에 이어서 33일의 정결례까지 마치고 태연스럽게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갔다고 하고 앉았다. 성전에서 시므온이 마리아를 칭찬하는데 이것은 레위기 12장 4절에 명시된 율법상 기간으로 볼때 33일의 정결례가 지나간 뒤에나 가능한 일. 도대체 마태는 이 때 헤롯이 예수 죽일라고 해서 이집트로 토꼈다고 하는데, 누가는 유아학살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할례하고 33일 지난 다음 유유히 성전에 가서 시므온을 만났다고 하니 누구 말을 믿어야 되나? -_- 구레뇨는 앞에서 말했듯 아켈라오가 10년간 왕으로 통치하다 실각한뒤에 부임한 총독이니 억지로 구레뇨시절(AD6년) 유대 왕이 유아학살을 했다고 믿는다면 마태복음의 내용을 가짜라고 말하는 꼴이니 이건 뭐...

 

성전의식을 다 마친뒤 요셉부부는 나자렛으로 돌아가는데 -_-;; 도대체 유아학살은 언제 했고 이집트 피신은 언제 했는지 게다가 누가 복음에서는 이집트 탈출 얘기를 하면서 이로서 예언자를 시켜 예언한 것이 이루어졌다고 말하는데 구약에 그런 구절이 어디 있으며 그 예언자라는 인간은 대체 누구냐고 -_-;

 

그리고 예수가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메시아라고들 하는데, 구약에는 예수에 대한 예언이 하나도 없다. 마태복음 쓴 놈은 예레미야의 라마에서 들리는 통곡 소리를 비유로 들어 이것이 헤롯의 유아학살로 애를 잃은 엄마들의 통곡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거 사실 '구라'가 확실하다는 게 정설이다. 왜냐면 학살은 (진짜 있었다면) 베들레헴에서 벌어졌는데 라마는 예루살렘 북쪽으로 8킬로 떨어진 마을이고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으로 8킬로 떨어진 마을로 두 마을은 딴 마을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레미야가 라헬의 통곡을 들어 예언한 것은 예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기들이 예수 땜에 죽는다는 내용이 아니라, 앞의 펑에서 말했듯 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엎어지고 왕과 귀족 백성들이 대량 포로로 끌려가자 다 큰 자식들이 적의 땅으로 포로로 끌려갔기 때문이고, 아주 죽은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 터이니 '최후의 소망'을 버리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던 것이용. [예레미야 31장 15~17절] 즉, 두 이야기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

 

거기다 헤롯이 유아학살을 했다고 가정하려고 해도, 당시 정황을 보면 이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필요없는 일이기도 하다. 말했듯이 헤롯을 오지게 싫어했던 유대인들이고 진짜 별것도 아닌 거 갖고 온갖 폭동을 다 일으킨 게 역사에 남았는데(예를 들면 성전에 독수리상 세웠다고 바리새인들이 다 몰려와 때려엎은 거) 만약 그 코딱지만한 마을에서 갓난 애들을 다 끌어내 죽이는 게 어떤 결과를 낳을까? 거기다 로마에 반역을 일으켜 유대를 해방시킬 구세주를 찾아 죽이기 위해서라면 말할 것도 없으며,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자 유대 왕들이 기름부음 받은 곳, 메시아가 태어날 땅으로 예언된 유대인들의 성지이자 프라이드 자체다.(근데 그 예언을 한 선지자 미가도 유아 학살이 있을 거란 예언은 전혀 안 함)

 

또 헤롯은 말이 왕이지 사실은 로마 총독 비슷한 신분이고 앞잡이라는 거 의식해서 유대인들이 자길 오지게 싫어하는 거 알기 땜에 폭군 짓 하면서도 은근히 잘 보이고 비위 맞춰줄려고 했고, 로마 역시 유대인들의 특성을 존중해주는 편으로 유대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 써주는 판에 이방인 왕이 뜬 구름 잡는 예언 하나로 로마의 허락도 없이 아기들을 죽여서 반란 빌미를 제공하는데 로마가 이를 방관할 리도 없지 않은가. 모든 사형 선고는 헤롯이 아닌 황제의 권한이었다고 한다. (헤롯이 마누라와 장모, 반역한 지 자식들 죽일 때도 직접 못 하고 황제한테 허락받고 로마 법정에 넘겨줘야했다. 뭐 그거야 걔네들이 로마 시민권이 있어서였지만) 헤롯은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반란과 견제 세력 투성이라 헤롯은 평생 로마 정치가들에게 뇌물 공세를 퍼부어야 했고 메시아라는 녀석이 나타나 반역을 일으켜도 내치를 잘 해 권력 기반도 공고한데다 로마라는 빽이 있으니 굳이 대폭동을 자초할 일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게 상식이 아닐까.

 

더 넓게 생각해보면 백주대낮에 헤롯 졸개들이 지 자식 죽이겠다는데 부모가 가만 있다는 것도 웃긴 일이고, 따라서 저항하는 가족들까지 죽인다면 증거를 잡은 목격자도 없애야하고 이 짓거릴 하려면 꽤 많은 병력이 베들레헴을 포위 통제하고 집집마다 뒤져서 두살 미만 아기들을 수색하는 것부터 시작해 저항하는 아기의 가족까지 몰살하고 소문 안 나게 하려면 상당기간 베들레헴 전체를 봉쇄해야하는데 이렇게 대놓고 사태를 크게 벌이려면 소수 암살자가 아닌 군대가 동원되야하고 군대 이동과 지원 물자가 따라야하므로 여기 저기 서류가 많이 남게 되어 좋든 싫든 기록에 남게 되지 않겠나.  겨우 예언 하나에 성지 베들레헴에서 군대를 동원해 아이들을 죽이고 가족들과 목격자 주민 등을 힘으로 제압하고 이런 폭동과 반란 위험이 높은 짓을 한다? 조용히 다스려도 모자랄 판에 유아학살로 반란 분위기에 불을 지른다는 건 당시 시대적 상황, 헤롯의 상태 등을 고려해도 많이 불가능한 짓이겠다.

 

그리고 크리스찬들이 역사적 변증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 자료가 변절한 유대인인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와 터툴리안의 저서다. 유대의 귀족층이었던 요세푸스의 본명은 요셉 마티아스로 70년 독립 전쟁 때 로마에 맞서 싸우다 생포됐는데 자기 말로는 로마를 못 이길 게 뻔하니 자기 나름대로 정의를 택해 동족들을 구하겠다 결심하고 로마 편에 철썩 들러붙어 지 동족 멸망시키는 거 존나 잘 구경하고 이 이야기를 역사서로 남겼다. 뭐 변명이야 어쨌든 별 수 없는 변절자 매국노니까 하도 욕을 쳐먹어서 자기 변명도 하고 난 그래도 유대인이고 애국자라며 유대인 풍습을 옹호하고자 역사책을 썼는데 이것이 바로 유대 고대사와 유대 전쟁사다. 그는 자신이 외가 쪽으로 헤롯의 처가인 하스몬 왕가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며 헤롯의 치세에 있었던 일들을 완전 드라마틱하게 묘사해놓았는데(현대로 와서 드라마 작가 해도 될 듯 당대 사극계의 임성한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헤롯이 가족들을 죽이고 그 시대 폭동과 사건들을 상세히 적고 헤롯= 쌍똘아이 조낸 무서운 폭군 쯤으로 써놨다. 근데 헤롯을 이렇게 써놓은 요세푸스의 기록에도 이 유아학살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고, 오히려 예수라는 이름들이 철수와 영희 수준으로 튀어나온다-_- 즉 예수라는 이름은 당시 철수 영희 수준으로 흔했고 예수라는 이름으로 사고친 놈이 한둘이 아니란 소리다.

 

두번째 문제는 누가 복음에 나오는 '인구 조사'

 

누가에선 예수가 시리아 총독이 행한 인구조사 땜에 베들레헴에 가서 태어났다고 써놨다. 근데 마태는 예수가 헤롯의 통치기에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 시리아 총독은 헤롯이 죽고 나서 10년 후인 기원 6년, 헤롯 아켈라오가 10년 간 통치하다 실각한 후에나 시리아 총독으로 부임했다. 거기다 두 복음서 내용대로라면 마리아는 기원전 4~기원후 6년까지 10년 임신하고 있어야되는데 이 기간은 헤롯이 죽은 후 즉위한 아켈라오가 통치한 기간 10년과 정확히 일치한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은 칼비누스(Calvinus)와 폴리오(Pollio)가 지방 총독(proconsul)이었을 때 왕이 되고 이때가 BC 40년이었는데 그 후로 37년을 통치, 헤롯이 사망할때 월식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천문학적 계산에 의하면 월식은 BC 5년 3월 23일, 9월 15일, BC 4 년 3월 12일, BC 1 년 1월 9일에 있었고 아켈라오가 통치 제10년, 즉 AD 6년에 폐위 되었다고 기록했는데 이것은 헤롯의 사망 연대가 BC 4년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헤롯은 죽기 얼마 전에 유월절을 지켰다고 하는데 BC 4년의 유월절은 4월11일에 시작 했으므로 그의 죽음은 BC 4년 4월초.) 헤롯 아켈라오가 쫓겨난 뒤 유대 지방을 편입한 시리아의 총독으로 부임한 구레뇨는 AD 6년에 유대의 대리 통치자인 코포니우스와 함께 인구조사를 했고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으로 재임했던 기간은 AD 6~9년. .   뭐 혹자는 구레뇨가 헤롯 때도 총독을 하다 두번째 부임 때 인구조사를 했다고 구라를 끼워맞추기도 하는데 터툴리안은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Sentius Saturninus)가 BC 9~6년까지, 퀸틸루스 바루스(Quintilus Varus)가 BC 7년~ AD 4년까지 시리아의 총독이었다고 적어놔서 구라 인증. 그리고 BC4년 다 죽어가는 헤롯이 인구 조사 시켰다는 기록도 없으니 헤롯이 기원전 4년 죽고, 아켈라오가 왕 되고, 10년 후 아켈라오가 실각하고 시리아 총독이 유대 땅을 접수한 게 AD 6년으로 인구 조사를 그 때 시작했다고 보는 게 딱 들어맞는다.

 

거기다 당시 인구조사는 굳이 고향 갈 필요없이 모든 남성은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서 가장만이 보고하지 아내나, 혹은 다른 피부양인들이 함께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재산이나 신분 좀 있는 사람들을 주대상으로 했으니 여기서 요셉 해당 안 되고, 장애인과 노예, 애들, 여자, 거동 불편한 사람들은 제외했으니 임신한 마리아도 제외. 게다가 갈릴리는 헤롯의 자치구였으니 요셉 마리아 둘 다 베들레헴으로 올 이유에 해당 사항 없음. 젤 중요한 것은 아우구스투스가 인구 조사령하라고 시켰으면 로마의 총독 신분인 헤롯이 했지, 유대에 권한이 없는 시리아 총독이 인구 조사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아우구스투스가 시리아 총독한테 인구 조사 시킬 수 있으면 당연히 헤롯한테도 시킬 수 있고, 헤롯한테 시키는 게 당연한데. 헤롯이 기원전 4년 죽고, 아켈라오가 10년간 통치하다 황제한테 짤리고, 시리아 총독이 유대 지방을 접수한 것이 기원후 6년의 일. 아켈라오가 잘린 이유는 지나친 압제로 반란 조짐이 있었기 때문인데 시리아 총독의 인구 조사도 이 반란 조짐과 관련해서 기원후 6년 시작했다고 보면 정황이 들어맞는다. 이 10년의 기간 동안,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도 불확실하고 유아학살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오. 결국 복음서는 예수의 제자들이 썼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는 초기 기독교도들이 언제 그리스도가 태어났는가에 대해 전적으로 아는 바가 없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기독교들은 메시아가 지구에 나타났던 해에 관해, 서로 다른 근거로 백서른세 가지의 서로 상반되는 의견들을 추측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세번째 문제는 족보.

 

이건 상당수 기독교인들이 모르고 있어서 충격을 받은 부분인데 -_-(기독교인들 아무도 몰라서 성경 읽기는 뭘로 읽나 싶었음) 마태와 누가는 예수의 족보를 적고 있는데 이것도 서로 말을 못 맞춰서 내용이 다르다. 마태는 "아브라함"에서 "다윗"을 거쳐 "요셉"까지 41 대, 누가는 요셉부터 거슬러 올라가 "아브라함"부터 "요셉"까지 55대인데 그나마 조상 이름도 틀리다. 여기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여러가지 설을 제시하는데 한개는 요셉 계열의 족보이고 한개는 마리아 계열의 족보라고 둘러대는 설도 있고 법적 계승자와 육체적 계승자라고 둘러대는 설도 있다. 하지만 둘다 <근거없음>인데. 첫번째 설의 문제는 마리아가 레위가문의 후손인 엘리사벳과 사촌지간이라는 복음서 내용때문에 말이 안 되고 두번째설은 법적 계승자,육체적 조상이라고 구분할만한 증거가 기독경전 어디에도 없어서다. 그리고 중요한 건, 같은 사람의 계열이 이렇게 다른 이유를 자기 주관대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셉 계열과 마리아 계열, 법적 계승과 육체적 조상이라는 것도 각자 생각 아닌가) 만약 내가 기독교인이라도 두 개가 다른 이유는 하나는 영적인 족보고 하나는 육체적 족보라고 멋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이거야말로 이 두 가계도가 저자가 하나의 자료를 토대로 지꼴리는대로 써서 상상과 의견만 분분할 뿐 확실한 역사적 증명이 못 된다는 것 같다.
 


네번째 문제는 예수의 출생지.

 
마태와 누가를 제외하고는 신약 어디서도 예수를 베들레헴 사람으로 안 보고 있다. 오히려 요한 복음에는 그가 갈릴리 출신인 것을 놓고 '어떻게 갈릴리 사람이 그리스도일 수 있냐? 구세주는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잖냐'고 사람들이 싸우는 내용이 나온다. 나다나엘도 예수더러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예수는 자기가 베들레헴에서 났다고 대답한다.

 

더 큰 문제는 나사렛이라는 마을도 원래 역사서나 지도 어디서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사렛은 지명으로 복음서에서 '나사렛 사람'이라고 한건 그가 나사렛에서 기거했기 때문에 불리워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과거 그런 예언이 있었다고, 박해에 도망쳤다가 나사렛이라는 촌에 기거했다, 그래서 나사렛사람이라 불리워진다는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문제는 구약 어디에도 그딴 예언이 없다는 거. 더구나 나사렛이란 지명은 예수 시절이나 갈릴리 군대 지휘관으로 갈릴리 마을들 목록을 작성했던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도, 복음서보다 일찍 쓰여진 바울의 서신에도 없고 당시 기록 아무데도 없다가 기원후 2~3세기부터인가 지도에 등장하지 그 이전에는 어느 지도에도 없었다. 난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마태나 누가의 기록은 예수가 어디서 태어났건 메시아로서 믿어지게 하기 위해 미가가 구세주 탄생지로 예언한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났다고 적어 놓은 걸로 생각된다.

 

그리고 중요한 문제 마리아의 처녀잉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태복음 1장23절]

 

이 구절은 다 알겠지만 구약 이사야 7장 14절에 나오는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인데, 문제는 이거 쓴 놈이 오역본을 보고 썼다는 거 -_-;;;

 

자칭 마태 얘가 보고 쓴 그리스어 번역 70인역 성경에는 파르테노스(parthenos),즉 '처녀'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인 Tanakh 에 는 '알마'(almah),즉 '젊은 여인'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오역이라는 말이제.

 

히브리 어로 젊은 여인은 ("ha'almah"), 처녀는 ("ha'bethulah")이다. [오강남 / 예수는 없다 / 현암사]

 

뭐 어떤 성경에 보면 '젊은 여자' 또는 '젊은 여인'이라고 나왔거나 주석달린 것도 있을 건데 '젊은 여인'과 '처녀'와의 차이나 단어상 착각할 가능성도 없는 내용 변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사야가 이 예언을 한 건 예수를 예언한 게 아니라 구약에 나와있는 북왕국과 아람 연합군의 유대침략 때, 앗시리아에 알아서 기겠다는 아하스 왕 앞에서 이게 어따대고 굴복이냐고 야단치면서 한 말로, 젊은 여자가 임신해서 아들을 낳을 거고 그 애가 좀 크기 전에 북왕국과 아람 연합군, 즉 미워하는 왕의 땅들이 황폐해질 거라고 했는데 이는 예언이라기 보다 국제적인 정세를 내다보고 읽은 것에 가깝다. 사실 이 아이는 이사야의 아들 마헤르샬랄하스바스를 말한 것이고 실제로 이 이 애가 좀 자라고 나서 앗시리아의 침략으로 북왕국과 아람 연합군은 유대 침략하기도 전에 시망하고 말았음.

 

그 때문에 이게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기독교 초대 교부들은 완전 빡빡 우기고 유대인들은 걔들대로 열받아서 이것들이 짜가리를 구세주 만들려고 구약까지 위장하냐 이런 이명박같은 것들이라며 자기들이 편집한 나름대로의 성경 '아퀼라'역 이라는것도 내놓는다. 결국 라틴역 '불가타 vulgata'성경을 내놓은 성 '제롬'이 고백하기를

 

"유대인들이 Almah가 처녀가 아니고 젊은 여인이라고 항의하는 것에 대해 알고는 있다. 사실 처녀는 Bethulah라 불리지만, 젊은 여인은 almah가 아니고 naarah라 불린다" (Jerome, Adv. Javianum I, 32; N&PNF, vi, 370.)

 

"처녀가 성령으로 잉태 한다고 썼다면 그당시 누가 믿었겠는가?..... 수잔나와같이 간통한 여인으로 몰릴 것이 아닌가?....." (Jerome, The Perpetual Virginity of Blessed Mary, N&PNF, vi, 336.)  

 

"현대 신학은 이사야서 7:14 절이 그리스도의 동정녀 잉태에 대한 예언 이라는 것을 인정 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 마태가 '보라 처녀가 잉태 하여 아이를 낳으리니 그 이름을 ....." 한 것은 이사야 구절을 잘못 이해 한 것 으로 판정 된다.(Catholic Encyclopedia. xv, 451.) -카톨릭 백과사전

 

근데 이걸 단순히 오역 문제라고 볼 수는 없는 게, 앞의 펑들에서 말한대로 성경은 바빌론 유수기를 거치면서 이방신화의 영향을 상당히 받아 그대로 베끼기도 했다. 특히 조로아스터, 미트라, 그리스 신화 등에서 처녀가 임신해서 낳은 신의 아들 구세주라는 모티브를 이 마태복음 쓴 놈도 지네 구세주가 태어날 때 팩트가 부족하다 싶으니까 그대로 인용해서 이 이교도 신화를 마리아의 예수 출산에 끼워넣었다 이거. 모세도 이집트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구원되어 영웅이 되었는데 이 모세의 이야기도 고대 사르곤 왕이 물푸레나무로 만든 바구니에 넣어져 강에 떠내려가던 걸 누가 주워 길러 결국 왕까지 됐다는 전설에서 따온 것으로 생각되고, 결국 예수도 이런 고난을 거친 영웅인 것처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어쨌든 이 전설 덕분에 마리아의 수태고지를 의미하는 안눈치아타(Annunziata)와 무원죄잉태를 뜻하는 임마쿨라타(Immacolata)는 성모 공경이라는 의미로 유럽의 가톨릭 왕실에서도 널리 쓰이는 이름이 되었다는 뒷담.

  

 

출처 : 흑기린의 도서관
글쓴이 : 평생 저주 장옥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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