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료/이단-안티기독교

[스크랩] "빌라도 보고서" 대조작 들통나다 ㅋ

맑은샘77 2010. 4. 3. 10:14

개종카페는 빌라도의 보고서라는 천박한 5류 위조물이 위조 조작 전문가 사기꾼 목사 Mahan, William Dennes 이란 자의 파렴치한 짓이었음을 밝힌 외국 정보를 국내 최초로 공개하는 바입니다.

-'빌라도의 보고서'를 위조.표절한 사기꾼 목사
   W.D.Mahan 목사의 낯판대기 공개-


Pontius Pilate's report
(요지만 번역합니다.)

Pilate is one of the intriguing characters of the New Testament, and he appears in many poems and novels in the Western hemisphere. An apocryphic Pilate-related literature appeared only a couple of centuries after the New Testament, usually dealing with the conversation between Jesus and Pilate. The most well-known is the so-called Nicodemus gospel. Several "Pilatian" apocryphs were among the manuscripts found by Tischendorf, and doubtless these finds inspired an American pastor to write his own ”Pilate's Report”.
라도는 흥미를 끄는 신약의 인물이다.
빌라도에 대한 많은 정보는 외경 "니고데모의 복음서"와  "빌라도 복음서"에 많은 편인데 빌라도에 대한 흥미를 더욱 촉발시킨 것은 미국의 어느 목사가 "빌라도의 보고서"란 팜플렛을 쓴(입수한 고문서라 아니라 write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 이후란 것이 정설이다.

The author was a presbyterian pastor from Boonville, Missouri by the name of W Mahan.

He claims to have found out that there was a Latin manuscript containing Pilate's report in the Vatican library. In 1859 he got hold of a translation of this text, via several helpful people.

However, the people he claimed had obtained the document for him (Henry Whyndaman, Peter Freelinhusen and C Vantberger) have not left any trace in any records on this planet.
러나 그가 입수할 때 도움을 줬다는 Henry Whyndaman, Peter Freelinhusen and C Vantberger
라는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유령으로 밝혀졌다.

 

Freelinhusen is named as chief librarian at the Vatican but the Vatican has never heard of him..

편 바티칸 당국은 Freelinhusen이란 바티칸 도서관 사서장이란 사람도 금시초문이라고 
손사래를 저었다. 

The document is romantic and theatrical, a typical 19th century novel. Later research has demonstrated that Mahan was not even the original author; he stole the work of French dramatist Joseph Mery, whose novel Ponce Pilate a Vienne had been published in
Revue de Paris in 1837.
위조문서는 19세기의 낭만적이고 극적인 소설이다.
그 후 정밀한 분석가들에 의해 증명된 바에 의하면 아예 그는 그 위조문서의 저자도 아닌
것으로 들통났다.
그 사기꾼 목사는 1837년 Revue de Paris명으로 출판된 죠세프 메리의 소설 Ponce Pilate
a Vienne
중의 일부를 베낀 것으로 드러났다.


*.아래는 본문의 비판과 동일하므로 생략합니다.
   본문을 참조바랍니다.


In 1879 Mahan published the "report" which was an immediate bestseller.
1879년 이 위조 문서를 출판함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돼 알부자가 되었다.

At the same time another American, William Overton Clough, included it in an edition of Tischendorf's (genuine) manuscript finds.

In this case, the fictional work of a writer with no intention to make any fake historic claims, was appropriated by a plagiarizer, had a "find story" attached to it, and was published as a genuine manuscript find. The financial success was so great that Mahan immediately began making lots of other sensational manuscript finds. in 1884 he published no less than twelve such hoaxes, all manufactured with the same method, under the impressive title The Archaeological and the Historical Writings of the Sanhedrin and Talmuds of the Jews, Translated from the Ancient Parchments and Scrolls at Constantinople and the Vatican at Rome. Mahan pretended to have visited Rome and Constantinople.
However, observant readers soon noticed that large parts of the text were stolen from Lew Wallace's Ben-Hur (1880).
러나 알만한 독자들은 곧 그의 다른 저서들의 상당 부분도 Lew Wallace's Ben-Hur(1880)의
벤허 까지도 도둑질해 팔아먹은 것임이 드러났다.


Mahan may be the only hoaxer who has been taken to court and punished.
마한이란 작자는 당대 문서위조범으로 법정에 고발된 유일한 성직자란 기사도 남아있다.
An ecclesiastical court sentenced him to one years suspension --
which did not stop new editions of his hoaxes from being printed.
법당국도 아닌 교회 법정에 고소된 사기꾼 Mahan 목사는 1년의 자격정지를 선고 받았다.
그러나 그의 또다른 문서위조에 의한  돈버는 버르장버리는 계속되었다.

 

출처:
http://home.swipnet.se/corbie/Fuskwww/pilate.html

 

맨 아래 WD.Mahan의 위조물을 연구한 영어 원문이 더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이 글 맨 아래)


  (W.D.Mahan이란 이름이 선명한 출판물)

 


-아랫글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문제의 조작 구절'에 이은 
  원문 계속-

 

(2) 빌라보 보고서
 
by :적그리스도

 

한편, 요셉푸스의 기록 외에도 기독교인들이 만들어낸 조잡한 위조문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빌라도 보고서라는 것이 있다.

필자가 조잡한 위조라고 말하는 것에 분개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을지 모르겠는데, 정말로 위조를 하려면 그럴듯하게 해서 사기를 쳐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앞에서 언급한 요세푸스의 문제의 구절을 경우를 따져보자.

요세푸스의 저작물을 이용해 예수가 실존인물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자료를 위조하려 한다면 머리 좋은 사기꾼은 다음과 같이 위조할 것이다.

 

"그 무렵 예수라는 사기꾼이 존재했다.

그는 스스로를 구세주라고 칭하며 대중들?미혹했다.

우리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고소했고, 빌라도는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예수가 3일만에 부활했다는 헛소문을 퍼트리며 다니며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이 글을 읽고 분노를 느낄지 모르겠으나, 요세푸스가 위와 같이 예수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록을 했다면 역설적으로 예수의 실존성을 알려주는 중대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특히 요세푸스의 정치성향과 그가 다른 유대인 메시아들을 강도나 사기꾼으로 매도했던 여러 정황을 파악하면 더욱 그렇다.


바로 이런 글의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이 이른바 빌라도 서신이다.

한동안 빌라도 보고서라는 글이 인터넷의 곳곳에 퍼져있는데, 기독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문서가 빌라도가 로마황제에게 보고한 법정에서 만들어진 공식적인 문서라고 이며, 현재 터어키의 성 소피아사원(寺院)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필자는 이 빌라도 보고서라는 것에 대해서 자료를 수집하려고 했으나, 하나같이 전부 똑같은 카피 글 뿐이어서, 이 문서에 대한 어떠한 배경자료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수많은 카피 글에는 모두 판에 박힌 듯 "본 보고서의 내용은 도날드 N.리드만 박사가 소정의 요금을 지불한 후 특별 허가를 얻어 읽고, 영어로 번역하여 예루살렘에서 간행(刊行) 되고 있는 월간더 마운트 자이언 리포터(The Mount Zion Reporter 시온산 보고서; June 1974)에 게재한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라고 간단히 언급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 글을 퍼트리고 다닌 기독교인들은 한결같이 빌라도가 황제에게 보낸 공문서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읽어보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우리 조상의 종교는 예수의 종교로 대치될 것이며, 이 숭고한 관용의 종교는 로마제국을 허망하게 붕괴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가련한 저는 유대인의 말을 빌자면 하나님의 섭리요, 우리의 말대로 하자면 운명의 도구로 쓰여진 것일 것입니다."

 

빌라도는 보고서 전반에 걸쳐 예수를 칭송하고 있는데, 특히나 위에서 인용한 구절은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다. 로마의 종교를 비하하고, 로마제국까지도 붕괴할 것이라는 말을 감히 총독이 황제에게 보고했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그런데 안티 기독교 운동을 하시는 다른 분이 필자에게 알려준 제보에 의하면 인터넷에 떠돌던 그 글은 미국 미조리주, 분스빌(boonsville)이라는 마을 출신의 W.마한(W. Mahan)목사의 작품이라고 한다.

 

1884년에 마한 목사는 적어도 12개의 날조 문서(The Archaeological and the Historical Writings of the Sanhedrin, Talmuds of the Jews, Translated from the Ancient Parchments and Scrolls at Constantinople and the Vatican at Rome 등등)를 발표했다고 한다.

문제의 빌라도 보고서는 프랑스의 극작가 요셉메리(Joseph Mery)가 1837년에 르뷔 드 파리(Revue de Paris)에 발표한 폰스 빌라도 비엔느(Ponce Pilate a Vienne)라는 소설을 베낀 것이며, 다른 저작물들 중에는 유명한 벤허까지 베꼈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마한목사는 법원에 고소 되어 1년간의 자격정지 처벌을 받았으나 그가 남긴 날조문서는 계속해서 출판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던 빌라도 보고서가 19세기 미국 목사의 창작물 이었다는 점에 필자는 맥이 빠진다. 그런데 빌라도가 예수를 칭송하는 내용으로 편지를 써서 로마황제에게 보냈다는 이른바 빌라도 서신이라는 고문서는 정말로 존재한다. 아마도 빌라도가 기독교의 성자였다는 오래된 전승이 유럽을 떠돌아 다니다가 결국 어느 소설가를 만나 그의 글속에 녹아 들었는지 모른다.

중세의 카톨릭 전승에 따르면 빌라도의 아내 프로클라는 기독교인이었으며 성인의 대열에 들어가 있다. 이디오피아에서는 빌라도 부부가 성인으로 되어있다.

(카톨릭과 이디오피아의 성인 축일표에도 빌라도 부부의 날이 있다)

또한 초대교회 서술가 테르툴리아누스는 빌라도를 성인과 비슷하게 취급했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 성서(the other bible) 2권 / 이동진 역 /문학수첩 / p.365]

 

이런 배경을 기반으로 빌라도를 성인(聖人)으로 올려놓기 위한 빌라도 보고서는 또 있다.

위에서 언급한 어느 목사의 위조문서가 아니라, 6세기~7세기의 시리아어 필사본으로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있고, 숨겨진 성서(the other bible)에서 소개된 비슷한 내용의 빌라도 서신들이 있다.

빌라도의 서신들은 비슷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내용이 각각 다른 유사문서들이 여러 가지 버전으로 현존하고 있다.

(인터넷에 떠돌던 그 빌라도 보고서와 착각하면 않된다.

 빌라도가 예수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아 황제에게 보낸 것은 동일하지만 본문의 내용은 완벽하게 다르다.) 

'숨겨진 성서'(the other bible)의 저자는 빌라도 서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티센도르프 박사는 그의 저서 비경전 계시록들에서 파리 필사본 가운데 그리스어로 된 사본을 구했는데 본문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논의할 가치가 없다.라고 말했다.

빌라도의 편지 뒤에는 후대에 필사자가 추가한 요약 구절이 들어있다.

거기 나오는 유스티누스는, 역사가 요세푸스가 자기와 동시대의 역사가라고 말한 티베리아의 유스투스로 이해된다.

우리는 이 요약된 구절의 진정성을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 수가 없다.

유스투스가 그리스도에 관해서 언급한 적이 없다고 포니우스가 증언하기 때문이다.

테오도루스라는 인물을 우리는 티베리우스 황제라고 이해한다. "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 성서(the other bible) 2권 / 이동진 역 /문학수첩 / P.347]

 

위조화폐의 경우에는 정밀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고대의 위조문서들은 메스메디아 부재나 지식의 일부층 독점 등으로 오히려 그 위조의 수법이 유치해도 무지자들은 그대로 믿을 수 있었다.

빌리도 서신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문서인지는 직접 읽어보기만 하면 금새 알 수가 있다.

로마총독이 공식적으로 왕들에게 보냈다는 공문서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하다. (위에서 언급한 위조 빌라도 보고서와 유사하다)

 

아예 한술 더 떠서 헤롯이 빌라도에게 보낸 서신 중에는 "당신네 부부는 밤이나 낮이나 예수를 기억하면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정의로움을 받아들이십시오"라고 권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빌라도 뿐만 아니라 헤롯까지도 기독교로 개종한 듯 보인다.

 

한편, 빌라도가 헤롯에게 보낸 서신에 따르자면, 그는 백부장 롱기누스로부터 예수의 부활에 대한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빌라도와 그의 아내 앞에 부활한 예수가 등장한 후, 두 부부는 예수의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 편지들은 직접 전문을 다 읽어보면 너무도 기독교적인 찬양과 서술에 조잡한 위조를 한눈에  알아채게 만든다)

 

그리고, 빌라도가 로마황제에게 보낸 서신들은 위의 빌라도의 보고서와 유사한 성격의 문서이다.

이 서신에도 후대의 필사자가 "빌라도는 개인적인 보고서와 함께 아래 내용을 로마의 황제에게 보고했다"라면서 이것이 공문서임을 미리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숨겨진 성서에는 앞에서 소개한 빌라도 보고서 바로 뒤에, 내용은 유사하지만 또 다른 빌라도 보고서가 2개 더 실려있다.

전부 유사한 내용이지만 각각 다른 글들인 것이다.

 

빌라도는 똑같은 내용의 서신을 황제에게 계속해서 보냈단 말인가?

 

빌라도 보고서라고 주장하는 여러 가지 버전의 글들을 보면 한눈에 그 조잡함을 느끼게 한다.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복음서의 축소판에 불과하다.

즉, 예수가 병자들을 치료한 기적으로 서신의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복음서에 있는 나자로의 부활, 예수의 옷자락을 만진 후 치유된 여인...등등 복음서의 내용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예수의 기적이 실제로 있었던 것이라고 가정해도, 빌라도는 이런 기적들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도 아닐 터인데, 이런 기적행위들로 서신의 대부분을 할애해서 공문서를 작성해 보낸 빌라도는 황제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리고 숨겨진성서에서 이 빌라도 서신과 함께 소개되어 있는 빌라도의 최후는 더 가관이다.

빌라도의 최후 역시 두가지 버전이 있다.

첫번재는 빌라도를 성인으로 만든 파라도시스이다.

편지를 읽고 난 로마황제는 "그렇게 위대하신 분을 죽였단 말인가?"라고 화를 내며, 빌라도를 로마로 소환하여 목을 베라는 사형선고를 내린다.

사형을 당하기전 빌라도는 기도를 했고, 그 순간 하늘에서 빌라도를 축복해 주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의 목이 떨어지자 천사가 빌라도의 머리를 받았으며, 그 모습을 본 빌라도의 아내 프로크라는 기쁨에 넘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빌라도의 처참한 자살버전이다.

빌라도의 편지를 읽은 황제는 화가나서 그를 소환했으나, 빌라도는 예수의 옷을 걸치고 황제앞에 나타났다. 예수의 옷을 걸친 그를 볼 때 마다 이상하게 황제는 분노가 가라앉았으나, 황제의 측근인 어느 기독교 신자의 권유로 빌라도의 옷을 벗기니 황제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빌라도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빌라도는 처형당하기 전에 자신의 단검으로 자살해 버렸다.

빌라도 보고서는 여러 가지의 버전이 있으며, 담긴 내용조차 도저히 공문서라고 볼 수 없는 기독교인들의 조잡한 문서일 뿐이다.

차라리 빌라도 복음서라고 부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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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 보고서를 꾸며낸 사기꾼 목사 들통나...

 

빌라도의 보고서를 발견한 고고학자라는 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빌라도의 보고서라는 소설을 쓴 미국 미조리주, boonsville이라는 마을 출신의 W. Mahan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신교 사기꾼목사가 존재할 뿐 입니다.

 

그는 바티칸 도서관에서 라틴어로 쓰여진 빌라도의 보고서라는 문서를 발견했다고 주장했으며, 자신이 1859년 여러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이 보고서의 번역본을 구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목사에게 번역본을 구해줬다는 사람들(Henry Whyndaman, Peter Freelinhusen, C Vantberger) 에 관한 흔적은 이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볼수가 없습니다.

완전히 꾸며낸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Mahan 목사는 자신에게 번역본을 구해준 Peter Freelinhusen 이라는 자가 바티칸 도서관의 주임사서 라고 주장을 했지만 바티칸 도서관 측에서는 그런 이름을 가진 직원은 없다고 공식 밝혔습니다. 도서관 사서라는 직원 이름도 사기꾼이 지어낸 것입니다. 

 

이 빌라도의 보고서라는 문서는 매우 낭만적이고 극적인 서체의 전형적인 19세기의 소설체 입니다. 후에 더 조사가 진행된 후에는 Mahan 사기꾼 목사도 이 글의 원작자가 아님이 공식 밝혀졌습다.

 

Mahan 목사는 단지 프랑스의 극작가 Joseph Mery가 1837년에 Revue de Paris 에 발표한 "Ponce Pilate a Vienne" 이라는 소설을 베껴 쓴것임이 공식 밝혀졌습니다.

 

1879년에 Mahan목사가 발표한 이글은 미국에서 바로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같은 시기에 또다른 미국인인 William Overton Clough는 이 소설을 "Tischendorf의 고문서 발견" 이라는 책에 포함 시키게 됩니다.

 

이 경우 원작자는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에서 쓴 글이 고문서학자에 의해 마치 고문서가 발견이라도 된 것인양 사기극이 되어버린 경우입니다.

 

Mahan 목사는 이 사기극으로 엄청난 돈을 벌게 되자 곧 바로 더 많은 날조 문서들을 발견해 낸것처럼 발표하기 시작합니다.

 

1884년에 Mahan 목사는 적어도 12개의 날조 문서

(The Archaeological and the Historical Writings of the Sanhedrin, Talmuds of the Jews, Translated from the Ancient Parchments and Scrolls at Constantinople and the Vatican at Rome 등등)를 발표했는데 모두 빌라도 보고서와 똑같은 방법의 날조수법이 사용되었습니다..

 

Mahan 목사는 자신이 직접 Rome 과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한것처럼 행세했으나, 곧 그의 글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Mahan 목사가 1880년에 쓰여진 Lew Wallaces 의 벤허 라는 소설을 베껴 쓴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벤허래요 벤허 ㅋㅋㅋㅋ 나 지금 너무 웃겨서 뒤집어 지고 있음... ㅋㅋㅋ)

 

이 일로 인해 Mahan 목사는 법원에 고소 되어 일년간의 자격정지 처벌을 받았으나 날조문서의 출판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사기범으로 고소된 자의 통장으로 인세 수익 돈은 들어오고 있는 셈이죠.
사기꾼은 바로 이런 법의 헛점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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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공개

 

아래 기독교에서 예수 실존 증거의 하나라고 떠들어 대며 한 때 퍼뜨린 '빌라도의 보고서'라는요셉 메리의 폰스 빌라드 비엔느를 읽어보자.
황제에게 보낸 공문서라는 점을 전제하고 읽어보기 바란다.
아마 5류 코메디 대본만도 못한 어처구니 없는 사기극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게 될 것이다.
요셉메리라는 자의 어설픈 연극대사 표절이라는 사실을...

 

필자도 기독교 신앙에 푹 미혹되어 있을 때, 그리고 기독교 신학을 공부이 푹 빠져 있었을  즈음에 저 보고서를 구입해서 읽어 봤는데 기독교 신앙에 푹 빠진 사람의 생각에도 도저히 납득히 가지 않는 유치한 장난이라는 것을 확신했었다.

누구든 아래 보고서라는 것을 읽은 후로는 어떤 경우에도 이같은 기독교 조작문서들의 난동난립쇼에 귀조차 빌려주지 말아야 겠다는 각오를 무의식적으로 정립케 될 것이다.

 

조작 연극대본 빌라도의 보고서는 아래와 같이 보고서에 대한 친절한 설명서 첨부로 부터 시작한다.

괄호 숫자는 아래 각주가 있다는 뜻이다.

연극.희극대사를 써봤거나 전문가이거나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프랑스 연극대사를 훔쳐다
각색한 것이라는 것을 단빡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빌라도의 보고서를 대사로 연극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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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극작가 Joseph Mery가 1837년에 Revue de Paris 에 발표한 "Ponce Pilate a Vienne" 이라는 소설을 베낀 미국 미조리주, boonsville이라는 마을 출신의 W. Mahan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신교 사기꾼 목사가 위조한..............

 

「빌라도」의 보고서(報告書)

 

빌라도의 보고서에 관한 설명
   

이 보고서(報告書)는 「메시아」시대에 법정에서 만들어진 공문서로서, 현재「터어키」의 성「소피아」사원(寺院)에 소장되어 있다. 50권으로 되어있는 이 원고는 서기관(書記官)의 손으로 씌어졌는데, 각권이 2×4피트로 되어 있는 것의 전문(全文)을 옮긴 것이다.

 

「로마」사가(史家) 「빌레루스 파테르쿠러스」의 주(註)에 의한 원명(原名)은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카이사르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로 되어 있다. 예수가 태어났을 때 이 사가(史家)는 19세였으며, 그의 작품은 모두 소멸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사가(史家) 「프리시안」과 「타키투스」의 글을 빌면, 그는 「캄파니아」출신으로 카이사르와는 친한 벗이었고 16년동안 로마군을 지휘하였으며, 그 후 로마로 돌아가 「로마史」집필을 끝낸 후 집정관(執政官)의 직책에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사가(史家)「발레루스」 자신이 유다지방에서 만난 「나사렛」예수는 그가 만난 인물 중 가장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자신은 전 군대보다도 예수를 더 두려워했다고 기록하였다. 예수는 모든 종류의 병자들을 치료하였으며 죽은 자를 살렸고, 그가 결실하지 못한 과일나무를 저주하였을 때 그 나무는 즉시 뿌리까지 시들어 말라죽었다고 기록하였다. 예수는 그의 놀라운 능력을 타인을 해치기 위해서는 결코 사용치 않았으며 항상 유대인의 여론은 양분되었다. 빈민층은 「로마」의 권력으로부터 구원해 낼 그들의 구원자로 여겨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지도층 계급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증오하고 시기하였으며 등뒤에서는 그를 저주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죽음만큼이나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애굽의 마술사라고 빈정거렸다고 사가(史家)「발레루스」는 기록하였다.

 

본 보고서의 내용은 「도날드 N.리드만」박사가 소정의 요금을 지불한 후 특별 허가를 얻어 읽고, 영어로 번역하여 「예루살렘」에서 간행(刊行) 되고 있는 월간{더 마운트 자이언 리포터(The Mount Zion Reporter 「시온산 보고서」; June 1974)}에 게재한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로마」의 황제,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각하에게

 

각하께 문안드립니다.

제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최근 수년동안에 일어난 사건은 너무나 독특한 일이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 나라의 운명까지 변하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저는 사건이 일어난 대로 각하께 소상히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최근에 발생한 사건은 모든 다른 신(神)들과는 조화될 수 없는 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발레리우스 플라쿠스」를 계승하여 유대 총독이 된 날을 저주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부임한 이래로 제 생활은 불안과 근심의 연속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직위를 인수하고 큰 연회(宴會)를 베풀 것을 명하고 「갈릴리」의 영주(領主)들과 대제사장, 그리고 그의 부하직원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정해진 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저와 제가 속하고 있는 정부 전체에 대한 일종의 모욕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며칠 후 대제사장이 저를 방문하였습니다. 그의 거동(擧動)은 엄숙(嚴肅)하였으나 외식(外飾)에 가득찬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종교가, 그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로마」사람들과 자리를 같이하는 것이라든지 먹는 것이라든지 마시는 것을 금지한다고 변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변명은 신앙심이 깊은 체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의 안색으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변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략(政略)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순간부터 피정복자는 정복자를 적(敵)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으며, 「로마」인들에게 이 나라의 제사장들을 요주의(要注意)할 것을 경고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벼슬과 호사스러운 생활을 위해서는 그들의 어머니라도 배신할 자들입니다. 제가 통치하는 모든 도시 가운데 「예루살렘」은 가장 다스리기 힘든 도시라고 여겨집니다. 백성들은 매우 거칠어서, 저 자신 순간순간마다 폭동(暴動)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저는 폭동을 진압할 만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저의 지휘 하에 한 명의 백부장(百夫長)과 그가 거느린 군대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자기의 통치지역을 방어할 만한 충분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다고 알려 온 「시리아」의 사령관(司令官)에게 증원군을 요청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이미 획득한 영토를 방어하는 일을 등한히 한다면, 우리 제국의 확장을 꾀하는 지나친 욕심은 결국 우리 정부 전체의 붕괴(崩壞)를 초래케 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가능한한, 대중들을 가까이하지 .......................중략................................

 

**** 역자 후기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은..."(행 3:13) 이라고 베드로가 말한  것같이, 그가 예수를 석방하려 얼마나 고심했는가 하는 장면을 읽으면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 3:16)는 말씀이 쨍하고 빛을 발하면서 우리들의 가슴에 부?H쳐온다.
   

이 보고서의 중심인물은 어디까지나 우리 주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또 이 보고서는 책임을 회피하고 손을 씻던 빌라도의 대야가 아니라 사랑하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주님의 대야에 손을 담그라고 결단을 요구한다.
   

읽는 도중 의미가 명확히 파악되지 않는 곳이 서너 곳 있을 줄 안다.   히브리원문이 입수되는 대로 스승에게 문의할 작정이다.  불신자를 염두에  두었으므로 부족하나마 주를 달아 보았다.
   

주님께서 이 작은 책자를 사랑하사 그의 이름을 아는 지식에 이르는 자가 무수히 일어나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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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종 카페의 공식 입장


빌라도의 보고서에 대한 진위는 공방 자체가 금기시 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간명합니다.
위조라 해도 일정 수준이 되어야 하는데 너무 저급이라서 위조냐 아니냐를 놓고 공방을
벌일만한 수준도 안된다는 학자들의 자존심 때문입니다.

개종 카페도 이런 저급한 위조물을 놓고 그 진위 공방에 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치욕스럽기고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기독교인들은 역사적으로나 기독교의 신학적으로도 전혀 상반되는 이런 천박한 위조물을 갖고 교인들을 혹신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거의 다 이 저급 위조물이 진짜인양 소장하고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는 좌시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우리 카페는 이 천박한 위조물이


미국 미조리주, boonsville이라는 마을 출신의 마한(W. Mahan)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신교 사기꾼 목사가 프랑스의 극작가 Joseph Mery가 1837년에 Revue de Paris 에 발표한 "Ponce Pilate a Vienne" 이라는 소설을 베낀  천박한 5류 위조물이라는
사실을 공식 발표하는 바입니다.

 

=참고:WD.Mahan을 파헤친 EDGAR J. GOODSPEED의 글=
   (시간이 없어 중요 부분만 번역합니다.
    영어 중간에 한글이 보이면 원문과 대조하며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V. PILATE'S COURT, AND THE ARCHKO VOLUME

By

EDGAR J. GOODSPEED


 

IN 1879, the Rev. W. D. Mahan, a Cumberland Presbyterian minister, of Boonville, Missouri, published a pamphlet of thirty-two pages, entitled "A Correct Transcript of Pilate's Court."

1879년 미 미조리주 분스빌의 큠버랜드(오이가 많이 나는 동네?)의 W.D.Mahan이란 목사가 "빌라도
법정의 공문서"라는 제목으로 32페이지 분량의 팜플렛을 출판했다.
 

 It consisted chiefly of an official report of the trial and death of Jesus, made directly to the Emperor Tiberius, by Pilate, as governor of Judea.

Pilate describes his arrival in Jerusalem as governor, the arrogance with which the Jewish leaders treated his advances, his encounter with Jesus, and the impression Jesus' words made upon him. Pilate invites Jesus to an interview, warns him of his danger from the Jews, and urges him to be more moderate in his condemnation of them, but Jesus is unmoved. Herod calls upon Pilate, and expresses his interest in Jesus. At the Passover, an insurrection against Pilate's authority broke out. Jesus was seized |43 by the rabble, brought before the high priest, and condemned to death. Caiaphas turned him over to Pilate for sentence and execution. As he was a Galilean, Pilate sent him to Herod, who again threw the responsibility upon Pilate. Pilate's wife, a Gaul of clairvoyant powers, warned him against harming Jesus. But he was carried away by the clamor of the mob, and unable with the few soldiers then at his command to assert his authority against the people, he washed his hands in disapproval, and allowed Jesus to be hurried away to crucifixion. Fearful portents and unnatural darkness attended his death. Joseph of Arimathea begged for his body, and placed it in a tomb. A few days later this was found empty, and the disciples declared that he was risen. Just as Pilate was finishing his report of the case to the Emperor, the night following "the fatal catastrophe," he heard the long-desired reinforcements, two thousand legionaries, marching to his relief--just too late to enable him to save Jesus.

 

Mr. Mahan accompanied this "Report" with a circumstantial account of how he came to know of the work and to become possessed of it. He stated that while he was living in |44 De Witt, Missouri, in 1856, a German scholar named Henry C. Whydaman was icebound there and spent several days at his house. In the course of their conversations Mr. Whydaman told him of the existence of these "Acts of Pilate" in the Vatican Library, and thought a transcript of them could be obtained. Mr. Mahan became interested in the matter, and afterward, on September 22, 1856, he wrote Mr. Whydaman for a copy of the text. Mr. Whydaman had1 returned to Germany, but answered from Westphalia, promising to do what he could to secure one. Some months later he wrote that Father Peter Freelinhusen, the chief guardian of the Vatican, would provide a copy of the Latin text for thirty-five darics, or sixty-two dollars and forty-two cents. Mr. Mahan sent him a check on the Foreign Exchange Bank of New York, and on April 26, 1859, Mr. Whydaman's brother-in-law, Mr. C. C. Vantberger, of New York, reported the arrival of the document, and offered to translate it for ten dollars. Eight letters in all are printed in explanation of how the document came into Mr. Mahan's hands. The eighth is a letter from Father Freelinhusen to |45 Mr. Whydaman certifying to the accuracy of his copy of the Latin manuscript.

 

Mr. Mahan does not explain what he did with the "Report" during the twenty years that followed.

마한 목사는 출판 후 20년 동안이나 그가 문제의 보고서를 입수한 경위에 대해 함구했다. 
But in 1879 he did at last publish it in the modest pamphlet above described.
그러나 1879년 요즘 형태로 마지막 출판을 또 했다.
It seems to have met with gratifying success.

판매 흥행에서 대박을 터트린 것으로 보인다.


Mr. Frederick W. Ashley, chief assistant librarian of the Library of Congress, informs me that it was republished within a year at Shelbyville, Indiana, by the Rev. George Sluter, A.M., who accompanied it with almost a hundred pages of introduction and notes, calling it "The Acta Pilati."

Mr. Frederick W. Ashley라는 국회 도서관의 총 책임자는 1년 안에 인디아나 쉘비빌의 George
Sluter라는 목사가 100페이지에 달하는 서문과 주석을 덧붙인 "빌라도의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재출판한 바 있다고 귀뜸해 주었다.

 

In 1880 William Overton Clough republished it at Indianapolis, as the "Gesta Pilati." Mr. Clough went so far as to print several passages from it in Latin, but without saying whence he obtained the Latin form, and it must be admitted that the Latin has a very modern sound.1

 

There are obviously some grave difficulties |46 

그러나 이 보고서는 분명하고 중대한 몇가지 헛점을 안고 있다. 


1
This earliest form of the "Report," which appears in substantially identical form in the publications of Mahan, Sluter, and Clough, in 1879 and 1880, has recently been reissued in a mimeographed pamphlet, entitled "Pilate's Court," without date or place, except that the copyright for "Oregon and Washington Territory" is described as "owned by S. Monro Hubbard."


1879년과 1880년에 Mahan, Sluter, and Clough 공동 출판명의로 된 초기 형태의 출판버젼이
출판 날짜도 없고 출판 장소의 정확히 기재하지 않은 채 그저 Oregon and Washington 지역

S. Monro Hubbard소유라고만 기재된 채 "빌라도 법정"이란 제목으로 최근 재발행 되었다는 사실이다.

 

The reference to "Washington Territory" seems to point to a date for this edition prior to 1889 when Washington became a state. The form differs from Mahan's earliest only in that the name of Pilate does not stand at the beginning.
워싱턴 테러토리라는 표현을 참고해보면 1889년 워싱턴이 주로 승격되기 전의 개정판 날짜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with Mr. Mahan's document and his story of how he secured it. To begin with, the name of Henry C. Whydaman does not have a German ring.

마한 목사가 자신이 입수한 문서 경위를 쉬쉬하고 감춘것은 처음부터 Henry C. Whydaman이란
독일인 일당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As Professor Schmiedel, the distinguished scholar of Zurich, has since pointed out, Whydaman is no German name, and Westphalia is not a place but a province.

Schmiedel 쥬리쉬 대학 교수는 분명히 해명했다.
Whydaman과 Westphalia이란 독일 이름이나 지역은 아예 존재하지도 는다. 

No such name as Vantberger appears in the New York City directories from 1853 to 1863, and the "Foreign Exchange Bank" does not appear among New York banks of 1858.

Vantberger란 이름은 1853년에서 1863년 사이 뉴욕시 인명부에 아예 나타나지도 는다.

The name of Father Peter Freelinhusen is unknown to the annals of the Vatican Library.

Father Peter Freelinhusen이란 이름은 바티칸 도서관 애널에 아예 있지도 다.

 

*.이만하면 될 거 같습니다.
   영어 원문을 다 읽어봐도 기가막히는 소리뿐입니다.
   다 번역하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죠.
   이 영어 원문의 출처를 아래에 명기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The use of darics in Rome in the nineteenth century is a surprise to most of us, who know that coin best from its use in Xenophon's "Anabasis." It is noteworthy that Mr. Mahan had to have the document translated for him, though it was in a language as well known as Latin. It is also noteworthy that Father Freelinhusen made no announcement of the discovery to the world of scholarship, although the extraordinary importance of it, if it was genuine, could not possibly have escaped him. The learned Mr. |47 Whydaman, who transmitted the Latin text to America, must have been aware of its importance, and even the mysterious Mr. Vantberger, of New York, should have known that the transaction left him possessed of a Latin text of extreme interest.

The misgivings raised by the story of how the "Report" was obtained are not relieved by the contents of the "Report" itself. The remark of Pilate that Herod "then reigned in Galilee" is a strange thing for Pilate to write to the Emperor the night after the Crucifixion; the Emperor must have known who was governing Galilee, and, as a matter of fact, Herod's tenure of office outlasted Pilate's. The excited words of Pilate's wife, "The statues of Caesar are filled with gemonide, the columns of the interium have given way," are certainly obscure. At this point, the translator, Mr. Vantberger, seems to have done his work very imperfectly. The crowd that hurries Jesus away to crucifixion utters such cries as "were never heard in the seditions of the panonia." The mob "streams out of the funeral gate leading to the Gemonica." This looks like an allusion to the Gemonian stairs at Rome. Dionysius the Areopagite, the Athenian mentioned in the |48 Acts, is in Jerusalem on the day of the Crucifixion. The picture of Jesus in his interview with Pilate is romantic and theatrical, and the Pilate reflected in the "Report" is historically improbable. The whole work is a weak, crude fancy, a jumble of high-sounding but meaningless words, and hardly worth serious criticism. It is difficult to see how it could have deceived anyone.

..............................중략....................................

 

At all events, in the late seventies, when attacks on the Bible were most violent, this uneducated man, fully convinced that such documents as would support his views of it must exist or have existed, saw no harm in inventing a document calculated as he supposed to confirm! the statements of the New Testament as he understood it. Hardly had it appeared in print (March, 1879) when in 1880 Lew Wallace's "Ben-Hur" made its sensational appearance. This gave wings to Mr. Mahan's imagination, and in 1884 "Pilate's Report" has grown into the twelve chapters of the "Archaeological and Historical Writings." He writes without taste or skill; his unrefined |62 fancy sometimes descends to the vulgar and the indecent; his book is as Montague James calls it a "ridiculous and disgusting volume." Yet it has been printed and reprinted, however obscurely, in a dozen places, and actually welcomed as an aid to faith by earnest but uninformed people who should have been protected against such deception. The lesson is clear: We cannot dispense with the methods and resources of exact scholarship without exposing ourselves to pious frauds. |63

 

출처:

http://www.tertullian.org/articles/goodspeed_strange_new_gospels.htm#6

 

-원문을 다 보시려면:
http://cafe.daum.net/AdConversion

 

출처 : 흑기린의 도서관
글쓴이 : 흑기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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