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드의 70가지 [ 결심문 ]중에 나오는 글귀이다.
8.
모든 면에서, 즉 말과 행동에 있어서 아무도 나처럼 그렇게 악하지는 않는 것처럼,
또한 내가 다른 사람과 똑같은 죄를 범하고, 똑같은 잘못과 실수를 범한 것 처럼 행동하자.
다른 사람의 실패를 나 자신의 잘못을 살피는 계기로 삼고,
나의 죄와 비참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기회로만 삼자.
그 순수한 정도가 높지는 않을지라도 나도 다른 분들처럼 가끔은 위와 같은 생각을 한다.
오늘은 에드워드의 결심문을 읽으면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내 생애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들이 있다.
비록 주님께선 내 죄를 사하시고 잊으신다 하더라도 내 평생에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죄를 짓고 난 다음에 한없이 연약해지는 자신을 알게 되었지만
주앞에 서면 한가지 얻게 되는 유익이 있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서기가 부끄럽다는 의미를 진실로 깨닫게 해 주는 것이었다.
사람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거나 그런 느낌을 가져보지 않고서는
죄가 주는 의미를 알 수가 없다.
사함을 많이 받은 자는 많이 사랑하게 된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죄가 얼마나 씻고 싶은지
자신이 얼마나 그 행동을 하지 말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하는 사람이라면
주님의 그 사랑과 사함에 대하여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다.
또한 다른 이들의 잘못에 대하여서 절대로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여기지 못하게 되어 있다.
오직 자신의 죄에 대해서 주앞에서 드러난 적이 있는 사람만이
다른 이가 잘못을 범할 적에 나 자신이 그 일을 한 것처럼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수 있다.
오히려 나아가서 나는 더한 죄인이라고 생각하며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라고 말을 해도 할말이 없어지게 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죄를 지은 것이 감사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나는 항상 낮아지고 남이 나보다 낫게 중심으로 인정하며
주님의 은혜가 항상 더욱 높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도록 만들어 준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지을 것인가?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그 수치심을 누가 다시 반복할 수 있으랴
주님께서 목마르시고 벌거 벗기시면서 못박히신 십자가의 고통이
그 죄때문임에 마음이 아프지 아니하랴.
그 용서함의 은혜의 감미롭고 따스함을 누가 도로 돌려주며 빼앗기랴.
1.
나의 전생애 동안 하나님의 영광과
나 자신의 행복과 유익과 기쁨에 최상의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자.
지금 당장이든지 아니면
지금부터 수많은 세월이 지나가든지 간에 시간은 전혀 고려하지 말자.
믿음의 사람들은 이와같이 그 신앙에 있어서 너무나 적극적인 삶을 살았다
죄를 짓지 '않는 것' 뿐 아니라 반대의 개념에도 열심을 다하였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 8번에 충실하였으나 1번은 알지도 못하였다
이미 관습이 붙을 데로 붙어버린 것을 이제와서 어떻게 고치랴
그러나 주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시다.
하나님의 영광과 나 자신의 행복과 유익과 기쁨이란 일치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야만 하는 것이 아니던가.
'지금 당장' 이란 말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황홀하다.
지금당장 시작하는 일이든지 아니면 수많은 긴 세월동안 인내로 이루어야 할 일이든지
시간을 고려하지 말고 해야 하는 성도들의 선행에 대한 철학이여
그 강한 에너지여...
어린 유년의 시절에 무엇을 하지 말 것에 대한 교훈만이 아니라
이런 적극적인 교훈을 교회에서, 가정에서 들었더라면....그러나
지금 이 굳어진 팔다리와 뇌세포를 일으키어 다시금 주앞에서 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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