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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요, 영등포 슈바이처!

맑은샘77 2006. 12. 8. 07:21

2006년 12월 7일 (목) 02:45   조선일보

힘내요, 영등포 슈바이처!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나으시네요.”



“저도 아주 못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이만하기 정말 다행이지요.”



초겨울 서울 길음동의 한 단독주택 거실에선 이런 대화가 오갔다. 서울 영등포역사(驛舍) 옆 노숙자·행려병자 무료 진료기관인 ‘요셉의원’ 선우경식(61·사진) 원장, 그리고 전직 외교관 이동진씨, 서양화가 김경인씨가 나눈 대화였다. 이씨는 요셉의원을 돕기 위한 잡지 ‘착한 이웃’을 발행하고 있으며, 이중섭미술상 수상자이기도 한 김 화백은 4년째 미술인들을 규합해 ‘요셉의원’ 기금마련을 위한 자선 전시회를 열고 있다. 두 사람이 이날 선우 원장 자택을 찾은 것은 지난 10월말 암 때문에 위의 3분의 2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고 1차 항암치료를 마친 선우 원장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십자가가 벽에 걸린 거실 구석엔 정진석 추기경 같은, 그의 ‘팬’들이 보낸 난초 분 10여 개가 보였다.



선우 원장은 영등포 일대 노숙자, 행려병자들에겐 슈바이처 박사 같은 존재다. 1987년 이 병원 설립 이후로 거의 자원봉사로 병들고 돈 없는 이들을 돌봐왔다. 선우 원장은 원래 ‘잘 나가는’ 의사였다. 가톨릭의대를 나와 미국유학을 거쳐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내과과장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1983년 서울 신림동 철거민촌 의료봉사를 계기로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겨우 차비 정도만 받으면서 ‘요셉의원’ 살림을 맡았다. 그는 “처음엔 3년만 맡겠다고 했는데, 맡길 사람이 없어 ‘다시 2년만…’하다가 지금까지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 해, 두 해 미루다 보니 결혼시기도 지나버렸다. 장남임에도 팔순 노모를 모시는 비용은 미국 사는 누님과 동생들의 신세를 졌다. 집도 1961년 선친이 지으신 그대로다. 그러나 20년간 자신의 모든 것을 ‘요셉의원’에 쏟아 부은 그는 제 몸의 병을 놓치고 있었다. 5년 간 위내시경 검사를 걸렀던 것이 문제였다.





“창피해서 원, 의사가 암에 걸릴 때까지 모르고…. 진단지를 흘끗 보니까 ‘암’ ‘전이는 안 됐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살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아직은 저 없으면 어려움이 많은 환자들을 생각하니 기뻤고, 한편으론 부끄러웠습니다.”



천주교 신자로 40년 이상 살았고, 늘 죽을 환자를 대하고 살았으나 정작 자신은 죽을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고, 죽음이 다가온 게 두려웠다고 털어 놓는다. 그래서 수술 후 회복하고 가장 먼저 고백성사부터 했다. 선우 원장은 지난주부터 1주에 한두 번씩 병원에 들른다. “진료는 못하지만 자원봉사자들과 환자들이 ‘원장이 죽었나, 살았나’ 궁금해할 것 같아서”다.



‘요셉의원’에 모든 걸 바친 그를 위해 강남성모병원에서는 수술비를 받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도 병문안을 다녀갔다. 이동진씨나 김경인 화백처럼 선우 원장에게 반한 ‘팬’들은 그를 “수도자 같은 분”이라고 부른다.



김경인 화백은 올해도 15일부터 21일까지 ‘요셉의원 돕기 자선미술전람회’를 개최한다. 서울 내수동 갤러리정에서 열리는 전시회엔 김 화백을 비롯해 김춘옥 박관욱 박기호 박혜원 송민호 신승우 신옥 오원배 유인수 윤해남 이두식 이만익 이승연 이환범 전창운 조광호 최경한씨 등이 작품을 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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