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주기/노인문제

모두가 행복해지는 노년

맑은샘77 2006. 11. 17. 16:29
모두가 행복해지는 노년을 꿈꾼다


▲ “모든 어르신들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 그것이 내가 바라고 지향하는 세상이다”라고 말하는 노년 전문가 유경 ©구굿닷컴

참 용기 있고 복도 많은 사람이다. 16년째 노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경(47) 사회복지사를 만나 애기하면서 든 생각이다. ‘3D 직종’으로 불릴 만큼 고된 직업인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CBS 아나운서를 그만뒀고, 프리랜서가 되고자 송파노인종합복지관 복지과장 자리도 털고 나온 그다.

이런 무모함에 가까운 그의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인생의 반려자인 남편과 아이들, 4명의 부모(시부모와 친정부모)로부터 아낌없는 격려와 신뢰, 사랑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40줄을 훌쩍 넘어선 나이에도 활달하고 꿈도 많다. 한국은 2026년이면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에 들어설 전망이다. 그 전까지 중년의 노년준비를 더욱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키고 싶고, 이를 위한 교회의 사회적 책임도 알리고 싶다.

그는 ‘이러한 모든 활동이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열심히 뛰는 그의 모습이 아름다울 뿐이다. 이하 유경 사회복지사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 사회 복지 분야가 다양한데 특별히 노년 전문가가 된 이유와 송파노인복지관 복지과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 CBS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하세요’라는 공개방송을 담당하면서 어르신들에 관심이 생겨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오면 노인복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아나운서로 7년여 동안 지내면서 내 자신이 너무 안주하는 것 같아 자리를 털고 나오게 됐다. 당시 사내연애 중이어서 스스로 불편하기도 했다.(웃음)

1996년, 송파노인복지관 개관멤버로 참여해 국내 최초로 ‘노인 포켓볼 대회’, ‘노인방송모니터 모임’ 등을 만들면서 재미있게 일했다. 하지만 일중독이 돼 심신이 피곤했고 기관을 떠나 소신 있게 일하고 싶은 마음도 들어 39세에 다시 퇴직을 결심했다.

- 그때 가족들이 반대하지 않았나

▲ 나의 가족은 나의 삶의 영원한 후원자다. 특히 남편은 고민하는 내게 “‘평생 직장’은 없고 오직 ‘평생 직업’이 있을 뿐”이라고 나를 격려한 후 ‘사회복지사 유경’이라는 명함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부모님도 아이들을 봐주시면서 내가 하는 일을 후원했다. 노년 전문가라고 하지만 정작 부모님께는 해드린 것이 없어 부끄러울 뿐이다.

나의 부모님은 자원봉사자이기도 하다. 특히 시아버지와 친정아버지는 성산 복지관의 일본어 교실과 한글 자서전 교실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두 분은 일주일에 세 번 복지관에서 만나 봉사한 후 함께 식사도 하고 포켓볼을 즐기기도 한다. 한때는 ‘사돈 봉사팀’으로 상도 받고 TV에 출연하기도 했다. 두 분이 자랑스럽다.

- 노년 전문가로 활동하며 가장 힘들었을 때와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 부모님처럼 여기던 어르신들이 돌아가실 때다. 복지관에서 일할 때, 친했던 할아버지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셔서 복지관에서 마련한 수의를 가져다 드렸는데 너무나 슬퍼 앓아 누운 일이 있다. ‘이런 고통을 반복적으로 겪는다면 사람 죽어나가겠다’ 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했었다.

하지만 ‘나의 작은 노력이 죽음을 앞 둔 어르신들께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추스르면서 여기까지 왔다.

보람을 느낄 때는 어르신들이 그 연세에도 무언가 배우려 노력하고 또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다. 한번은 강의가 끝난 후 한 할머님이 앞으로 나와 “나 며느리와 사이가 안 좋은데 오늘 내가 먼저 전화해서 화해할꺼야”라고 말했다. 후에 그 할머니를 다시 만났는데 “나 며느리와 화해했어”라고 대답했다.

그 분은 ‘어른이 먼저 말을 걸고 연락하는 것은 너그럽기 때문이고 당당한 것이라’라는 나의 강의 내용에 필이 꽂혀 자신의 삶에 실천하신 것이다.(웃음)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나 나는 행복하다.

▲ 그는 “행복한 노년을 위한 살뜰한 안내자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구굿닷컴
- 강의 때마다 반복적으로 전하는 말이 있다고 들었다

▲ 나는 어르신들에게 ‘살면서 버려야 할 세 가지’와 ‘지녀야 할 세 가지’를 꼭 얘기한다. 어르신들이 살면서 버려야 할 세 가지는 ‘물질에 대한 욕심’, ‘자녀에 대한 집착’, ‘지나간 젊음에 대한 향수’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지녀야 할 세 가지는 ‘감사하는 마음’, ‘웃는 얼굴’, ‘무엇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하기’다. 이렇게 사셔야 노년에 깊어지는 ‘고독함’과 ‘소외감’을 떨칠 수 있다.

- 현재 경로당과 복지관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 시설적인 면에서는 2005년이 되서야 ‘1개구ㆍ1노인복지관’ 시대가 열렸고 지방의 복지관이 열악하다는 것이 문제다. 시설적으로 상당히 개선됐다하더라도 그 안에 어르신들이 배우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빈약하다는 것도 문제다.

문화적으로는 연령의 차이 없이 어르신 전체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을 고쳐야 한다. 20대 아가씨와 40대 아주머지 간에 세대차가 큰 것처럼, 60대 할머니와 80대 할머니는 세대가 전혀 다르다.

그런데 사람들은 ‘노인’을 모두 하나로 묶어 생각한다. 교회 노인대학도 마찬가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에게 함께 노인대학을 다니라고 하면 다니겠나. 연령층을 세분화해서 세대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 일흔 넘은 노인네들의 사랑을 그린, 영화 ‘죽어도 좋아’를 어떻게 봤나

▲ 그 영화는 ‘노년준비교실’의 과제로 내주었던 건데,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사람들마다 반응이 달랐다. ‘부모님의 잠자리를 훔쳐보는 것 같아 불편하다’, ‘노인들이 주책이다’, ‘아 노인들도 연애하고 싶어 하는구나’ 등 다양한 의견을 보였다.

중요한 것은 ‘다름’과 ‘틀림’을 구별해야 한다는 거다. 사람들마다 사랑과 성, 연애의 방정식이 다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힘을 주셨으니, 힘이 남아있는 한 성생활도 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생각은 나와 다르더라도 틀린 것은 아니다.

영화 ‘죽어도 좋아’는 노인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욕구’를 다뤘다는 면에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울며 웃으며 봤다.

- 그럼 자녀가 혼자 남은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연애를 어떻게 봐야 하나

▲ 자녀를 양육하는 교육법과 같다. 자녀를 키울 때, 이성친구가 생기면 부모와 얘기하며 자연스럽게 화제로 삼도록 해 가족구성원과 의견을 조율하고 성숙한 결정을 하도록 유도한다.

마찬가지로 홀로 남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복지관에 다니시면서 이성친구를 사귀셨는지’ 묻고 화제로 삼을 수 있는 분위기를 유도해야 한다. ‘노인이 무슨 연애냐’는 식의 편견은 어르신들의 욕구가 음성적으로 나타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왜 노인들에게 ‘성병’이 많고, ‘연애’와 ‘재혼’문제로 자녀와 다투겠는가. 어느날 갑자기 ‘애들아 나 재혼한다’라는 충격적인 발표를 듣지 않으려면, 평소에 대화를 많이 나눠 부모의 욕구와 관심을 알아야 한다.

어르신들도 ‘재혼을 하면 호적ㆍ유산ㆍ묘지 문제 등 현실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가져온다는 것’을 인식하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현명히 결정해야 한다.

- 교회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 이제 교회는 한국 사회의 노인복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1교회 1노인대학’을 주장하는 사람이다. 교회가 노인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종교적ㆍ물질적ㆍ인적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어르신들을 정성껏 섬기면 젊은이에게 ‘아 나도 나이가 들면 의지할 곳이 있구나’라는 안정감과 신뢰감을 줄 수 있다. ‘교회가 노년 이후의 삶을 맡길 수 있는 공동체로 자리매김한다’면 ‘한국사회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

또한 어르신들의 욕구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노인은 한번 결혼했으니 성경만 보고 기도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현실적 욕구를 묵살하면 안 된다. 교회는 다양한 욕구를 수렴해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 앞으로 활동 방향을 설명해 달라

▲ 올해는 ‘죽음준비교육’과 같은 강의에 집중했는데, 앞으로는 ‘중년들이 노년을 준비해야하는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더욱 공론화시키고,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교회 노인대학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모든 어르신들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 그것이 내가 바라고 지향하는 세상이다.
이영주기자,joseph@googood.com(구굿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