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주기/중년

한국의 50대 - 1

맑은샘77 2006. 10. 24. 13:09

2006년 10월 24일 (화) 10:21   주간조선

[특집Ⅰ] 한국의 50대 | 50대 남성을 위한 제언

 


한국 남자 50대. 이미 퇴직을 했거나 혹은 운 좋게도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거나 자영업을 하고 있을 연령이다. 기업에서 강연을 하는 필자는 주로 기업의 현장에서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임원이 되어 있는 운 좋은 분이나, 전문기술을 가지고 생산현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있는 남성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 40대 후반에 퇴직을 한 다른 남성에 비하면 그런대로 행복한 남성을 만나고 있다.


강연이 끝나고 나면 대체로 식사를 같이 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있다. “내년이면 곧 나가게 되는데 뭐 하면 제일 안전하게 돈을 벌까요?” 두 번째 질문은 “제 아내가 음식솜씨가 좋은데 어떤 음식장사가 좋겠어요?” 그리고 마지막은 항상 똑같다. “원장님 남편 되시는 분은 정말 행복하겠어요. 얼마나 좋아요, 부인이 돈 잘 벌어서. 나 같으면 업고 다니겠네.”

한국 남자가 언제부터 사회생활하고 돈 버는 여자를 좋아했을까? 대체로 한국 남성, 특히 한국에서 1950년대에 태어나 가장과 생계부양자로서의 교육을 받아온 남성은 죽으나 사나 역시 바깥일은 남성의 몫이고 여자는 집안일, 애들 교육, 내조나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은 것이 무엇일까? 90살로 치닫는 수명연장 시대에 ‘가정을 책임질 수 없을 것 같다’는 현실과 불편한 타협을 한 결과라 보여진다.

이들이 처해 있는 현실적 처지는 참으로 안타깝다. 과거 그들이 살아온 형태와 습관을 부정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뼈아픈 법칙이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적용되고 있다. 우선 직장에서는 새로운 인력과의 적응에 몸부림을 쳐야 한다. 여성, 외국계 학력취득자, 신세대 등 다양한 인력과 부딪히며 매일 자신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시험 받는다. 여기에서 통과되는 사람은 흔치 않아 보인다.

한국에서 50년 이상을 남자로 길러진 이들은 이 땅의 남자, 즉 아들에게 강요했던 ‘남자다운 유전자’를 고스란히 보유하며 살아왔다. 생각이 유연할 수 없다. 군대 같은 직장 분위기에서 길러온 본능적인 서열 감각과 사수ㆍ부사수로 이어온 끈끈한 남자끼리의 전우애는 너무나 견고한 신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얼마 전 부산으로 3일 일정 강의를 갔을 때의 일이다. 임원 몇 분과 저녁식사를 할 때 한 임원 왈, “원장님, 이렇게 3일씩 밖에서 자고 다녀도 남편이 뭐라고 안 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황당하다. 자고 다니다니? 그날 만난 임원은 아무 생각과 눈치도 없는 분인 듯 “그럼 남편 밥은 누가 해줘요?”라는 질문까지 했다.

여성 인력에 대해 아무리 인력으로 보라고 해도 결국은 ‘아직 밥 누가 하나?’가 기어코 궁금한 50대 남성. 10여년간 임원을 많이 모셔본 한 직장 여성은 “그분들은 진짜 궁금해서 묻는 것”이라는 분석을 했다. 50년 이상 한국에서 생계부양자요, 가장으로 살다 보면 ‘밥을 누가 하나?’가 정말 궁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조직에서 30% 이상의 여성과 일을 해야 하는 남성 관리자들. “여자 상사와 일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라는 40·50대 남성에게는 생존을 위한 유연성이 리더십의 필연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직에서 새로운 트렌드라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서 소외되거나 혹은 따라가느라 진땀을 빼는 그들을 보게 되면 참으로 안타깝다. 그들의 30대 때는 상사의 즉흥적인 술 제안을 거의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술 한잔 하지, 오늘 별일 없지?” 이런 상황에 “아니요” 대답 한번 못하고 아내의 결혼기념일까지 포기하면서 온갖 술자리를 따라 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상사의 느닷없는 술 제안에 젊은 세대가 보이는 반응은 “부장님, 그런 것은 2주일 전에 미리 컨펌(confirm)하셔야 되는데요”다.

후배에 이끌려 마지못해 따라간 와인바에서 나오면서 “어디 가서 소주로 입가심할까?”라고 던지는 쓸쓸한 한마디 속에 50대가 조직에서 겪고 있는 변화에 대한 본능적 저항과 비애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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