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문화

영화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맑은샘77 2006. 9. 30. 09:36

상처는 상처를 치료한다
[리뷰]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한 장면, 어느새 두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꽃피다. (사진제공 무비스트)  
 
솔직히 소설책을 잘 읽는 편이 아니다. 주로 읽는 책들은 전공 서적에 대한 것들과 인간관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들. 그런 종류의 책들을 읽어왔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가끔은 읽는 소설책이 있다. 그 중에서도 공지영 작가의 책들은 종종 내 삶의 일부분이 될 때 있다. 원래 작가가 하나의 책을 대중에게 내놓을 때 책을 사보는 독자는 대체로 두 가지 형태로 분류되는 것 같다. 평소엔 책을 읽지 않지만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에 솔깃해 책을 사는 부류와 또 한 부류는 작가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서 기인해 책을 사는 경우가 있다.

후자 쪽이라면 아마도 고정 팬들이 있는 작가일 것이다. 공지영이라는 작가는 이런 고정 팬이 많은 작가다. 나 같은 문외한 사람도 팬으로 두고 있으니 말이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본다면 그녀의 소설에는 특유의 향기와 개성을 가지고 있고, 독특한 사회적 시각을 마련해주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공지영 소설 속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 몇 개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담배"와 "이혼" 그리고 "운동권"을 들 수 있다. 그녀의 초창기 작품, 즉 그녀가 미혼이었을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품에서 이혼이 줄기차게 등장하고 있다.

또한 그녀의 소설 속에 그녀의 이름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녀는 해피엔딩에 목을 매지 않는다. <봉순이 언니>에서도 그녀는 냉철한 현실 이해일까. 그녀의 작품에서 만일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면 공지영 특유의 청승떠는 소설적 재미가 감소하고 말 것이다.

작가는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봉순이의 서러운 삶에 결코 종지부를 찍지 않고 계속해서 비극을 부풀려나간다. 봉순이의 삶은 매번 배신과 도망으로 이어진다. 끊임없이 그리고 절실하게 좇고 있는 행복은 그녀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절망만을 안겨준다. 그녀 특유의 개성은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도 진하게 녹아있고 어두우면서 때론 민감했던 사회 문제를 소설 속으로 끌어오기 한다.

 

 

별 기대 없이 영화를 보다

 

어째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녀의 책들을 종종 본다. 얼마 전 베스트셀러로 히트 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에 대한 기대일까. 하지만 나에게는 조금만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 <우행시>에 캐스팅 된 배우들을 보니, 사실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사실 강동원, 이나영이라는 배우에 대한 선입견이라고 할까(?). 이 배우들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제대로 연기할까?, 몇 년간 CF에서 지겹게 보고 있는 이나영, 연기력은 없고 그냥 인물만 기억 남는 강동원. 그런 잘못된 선입견 때문일까. 이 두 배우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에, 이 영화에 대한 관심조차 갖기가 싫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행시>를 전에 접해봐서 그런가, 아니면 가을이라 그런가. 속는 셈치고 극장으로 향했다.

<우행시> 속에서 감독은 각기 다른 여러 인물의 시각에서 신산한 세상살이와 삶의 상처들을 들여다본다. 겉으로는 아주 화려하고 가진 게 많은 듯 보이지만, 어린 시절에 겪었던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가족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해 냉소적인 삶을 살아가며 여러 번 자살 기도를 했던 서른 살의 대학 강사 문유정.

그리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세상의 밑바닥으로만 떠돌다가 세 명의 여자를 살해한 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스물일곱의 정윤수. 그 둘은 처음 만남부터 마치 자신을 보는 듯 닮아 있는 서로의 모습을 알아본다.

세 번째 자살도 실패한 그해 겨울, 수녀 모니카 고모의 제안에 따라 교도소를 가게 된다. 정신병원에서 요양보다는 낫겠지 하며. 독해보이는 창백한 얼굴의 사형수. 내내 거칠고 불쾌하게 구는 저 녀석이게 쩔쩔 매는 고모. 이내 내뱉는 한마디. "생긴 건 기집애 같이 생겨가지고. 쟤 몇 명이나 죽이고 들어왔대?" 이에 대한 고모의 따끔한 대답. "넌 누구 처음 만났을 때, 당신 혹시 사람 죽였나요? 왜 죽였나요? 그러고 묻니? 나 오늘 그 아이 처음 만났어." 이 장면은 문유정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사형수 윤수, 그는 "유정"과의 첫 만남에 "진짜 좋은 일 하고 싶으면 탄원이나 해주이소. 내 좀 빨리 죽이 달라고"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뱉는다. 그리고는 "여서는, 죽고 싶단 생각 하나만 가져야 됩니다. 안 그라믄, 머리만 복잡하거든…." 껄렁하고 삐딱한 톤으로 센 척한다.

그녀의 모습 속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느낌이 숨겨져 있다. 어색한 기색 없이 그저 서늘하게만 보고 있다. 두 번째 만난 날. 억지로 왔다며, 기분 더럽다며, 신경질을 부리는 이 여자, 어쩐지 나를 보는 것 같다.

또 다시 만나는 두 사람, 처음엔 삐딱하고 매몰찬 말들로 서로를 밀어내지만, 이내 서로가 닮았음을 알아챈다. 텔레파시가 통했을까. 삶의 절망에 찬 두 사람은 조금씩 경계를 풀고 서로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리곤 조그만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처럼, 그들은 비로소,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꺼내놓게 된다.

유정의 고백을 들은 윤수의 진심 어린 눈물은 유정의 상처를 아물게 한다. 윤수는 그녀에게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울어요?" 유정이 묻자, 자신의 심경 변화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 윤수가 외친다. "내는 당신 같은 사람들이 더 무서워. X같이 착한 척하는 얼굴로 찾아와갔고, 얘기 몇 번했다고 전부 아는 것처럼…." 이내 상처로 상처를 위로하고 다독이면서 그들의 절망은 기적처럼 행복으로 바뀌어간다.

이제, 두 사람은 인생이 조금씩 바뀐다. 더 이상 여자는 죽을 결심 따위는 하지 않는다. 남자는 이제까지 죽고 싶었지만 이제는 간절히 살고 싶어진다.

나는 원래 영화를 보면 감동을 받는다는 느낌을 잘 못 느끼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가슴이 저미는구나!"라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가을을 타서 그럴 걸까! 옆에 있던 아내는 이내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지 않은가. 이내 아내에게 핀잔을 주자 아내는 내 얼굴을 보더니, "눈가에 있는 거는 뭐예요", "아니야, 영화를 오래 봤더니, 눈이 아파서 그런 거야", "어서 나가자!" 하고 이 상황을 모면했다.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영화

 

먼저, 이 영화에서 두 배우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깨는 계기되었다. 다들 영화를 봐서 알겠지만, 이제까지 보여준 이 사람 이미지는 전혀 볼 수 없었다. 꽃미남의 대표였던 강동원은 정이 뚝 떨어지는 사형수 역할을 멋들어지게 연기했으며, 그의 닭똥 같은 눈물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이제까지 CF스타로만 인식해온 이나영의 연기 변신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차디찬 성격에 표독스러운 표정 연기, 그리고 정이 뚝 떨어지게 만드는 언변. 더 말을 하면 영화 자랑 같아서 여기서 접어야겠다.

영화를 보면서 뼈저리게 느끼게 만드는 것은 저마다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고민과 번민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죽음 앞에서 그 번민마저도 끌어내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외모, 학력, 내지는 신분 등으로 평가한다. 너무 세상에 것만을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인생마저 포기하는 사람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그리고 너무 쉽게 포기하려 한다. 사람은 참으로 얄팍한 생각을 갖고 있다. 늘 자신의 삶을 만족하지 못한다. 내가 갖고 있는 가족과 환경, 주위에 있는 사람들 등, 왜 사람은 저 깊은 수렁에 빠져봐야 소중함을 깨달을까?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깨달게 되는 걸까.

하지만 세상은 아직도 살만하다. 유정과 윤수를 연결 시켜준 모니카 수녀처럼 작고 낮은 자리에서 삶의 소중함을 깨달게 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모니카는 두 남녀에게 소중한 배려와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대한 소중한 의미를 전하는 "사랑의 전도자"다.

비록 영화이지만, 아직도 사회에는 이런 소중한 일들을 행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 따뜻한 사람 냄새를 맡게 해주는 사람들, 우리도 그런 따뜻한 사람 냄새를 전해주면 어떨까. 

[뉴스앤조이] 09-28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