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개그에는 아무 의미가 없어” | ||||
KBS‘개그콘서트’(이하 개콘)가 ‘골목대장 마빡이’의 인기에 힘입어 시청률이 상승 중이다. 개콘 시청자 게시판에는 ‘1회에 비해 식상하다’, ‘재미가 없다’ 등의 일부 시청 소감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배꼽 빠지게 웃었다’는 평을 올리고 있다. ‘마빡이’ 정종철이 “우리 개그는 아무 의미가 없어”라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개그 코너로는 드물게 앙코르를 요청받기도 했다. 도대체 '마빡이'는 왜 웃기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계속 웃어야만 할까. ‘골목대장 마빡이’(이하 마빡이)는 정종철, 김시덕, 김대범, 박준형 등이 차례로 나와 자신만의 일정한 동작을 계속하는 일종의 ‘슬랩스틱 코미디’(액션을 과장한 희극)다. 개그는 진일보한다 마빡이는 과거 찰리 채플린, 남철, 남성남, 심형래가 보여준 슬랩스틱 코미디와 다른 무엇이 있다. 슬랩스틱 코미디를 포함해 일반 코미디는 잘 짜여진 극을 바탕으로 번득이는 상상력과 기지가 돋보이는 대사와 연기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그것이 패러디이건, 슬랩스틱이나 재담이던 간에 캐릭터가 끌고 가는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코미디의 이야기는 기존 드라마의 이야기와 동일할 수는 없다. 거기에는 이야기의 매끄러운 전개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동질적 요소나, 내지는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는 이질적 요소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령, 과거 '울엄마'와 같은 코너가 대표적으로 동질성의 자극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였다면,(로맨틱 코미디도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과거 '허무개그'는 이질성의 자극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였다. 문제는 동질성의 자극은 우리나라와 같이 촌극형태의 코너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약 5분내의 시간안에 시청자를 웃기기 위해 사전 조율작업으로 동질성을 깔기에는 터무니 없이 시간이 모자르다. 결국 우리나라 코미디의 경우는 이질적 요소의 강조를 통해 코미디가 발전할 수 밖에 없다. 항상 의외의 사실, 의외의 개그, 시청자의 허를 찌르는 개그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의외의 촌철살인과 같은 유머로 시청자를 사로잡아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촌철살인은 다들 눈치를 하게 되었다. 이제, 너무 똑똑해진 시청자들은 그러한 것들에 놀라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극단에서 나온 코미디가 '허무개그'였다. 그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들을 남발하는, 어찌보면 하나도 웃기지 않는 그 말들이, 의외성을 가지며 웃음을 유발했던 것이다. 사실 허무개그 이후 아주 새로운 의외성을 어필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개그콘서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한계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의외성으로 다가가기 힘들 때, 의외성을 가지게 하는 한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마술사가 관객들을 속일 때, 미녀의 등장이나 화려한 불로 시선을 유혹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개그콘서트는 코미디에 '쇼'적인 요소를 결합시켰던 것이다. 화려한 음악과 외모, 그리고 춤, 조명. 사실 개그콘서트가 지금껏 해온 것이라고는 코미디와 쇼의 결합이었다. 물론, 한가지가 더 있다. 코미디의 속도를 빠르게 전개해, 기존과 동일한 코미디를 구사하지만, 사람들이 그 다음을 예상하기 이전에 미리 개그를 치는 것이었다. 극을 해체함에서 오는 신선함과 의외성 개그콘서트류의 코미디는 이전까지 이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겉으로는 화려해졌을지 모르지만, 코미디 자체가 풍성해졌다고 보기에는 어떤 한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빡이'는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분명 코미디적 요소로만 보았을 때 진일보했다. 즉,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을 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치는 순간까지 그 안에는 이야기가 없다. 마빡이는 특별히 준비된 대사도 없이 무대에 등장한 출연진들이 자신의 이마를 가격하며 지쳐가는 것이 내용의 전부였다. 이것은 항상 무언가를 기대하는 관객의 허를 찌르는 의외성이었다. 이것은 지난 첫 방송에서 마지막 순서로 등장한 갈빡이 박준형이 “이 개그는 … 이게 다여”라고 말한 대사에 그대로 나타난다. 아무 내용도 없다는 허무함은 이전 허무 개그를 뛰어넘는 완벽한 의외성을 보여줬다. 칸트는 ‘일반 상식을 깨면서 오는 즐거움이 웃음’이라고 했다. 마빡이는 ‘코미디’의 극성 자체를 부인하고 해체함에서 오는 신선함과 의외성, 그로 말미암은 즐거움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마빡이, 그 리얼리티에 환호한다 또한 마빡이의 재미는 ‘리얼리티’에 있다. 단순히 의외성이 전부라면 마빡이는 1회 공연에 머무르고 말았을 것이다. 마빡이 출연진의 대본에는 대사가 빼곡히 적혀 있지만 무대에서는 대사의 절반 이상이 애드리브(즉흥 대사)로 바뀐다. “내 이름이 뭔지 아나”, “박수치지 마라. 공연 길어지니까”라는 등의 관객을 향한 직접적인 표현이나, “나 이 코너에서 빠지고 싶다”, “앞부분에 대사를 너무 많이 했다” 등의 무대와 관객의 간극을 허무는 표현은 리얼리티를 더욱 부각시킨다. 이러한 예측되지 않는 현장의 리얼리티에 빠져든 관객들은 옆에서 지쳐 쓰러져가던 정종철이 김시덕에게 “헉헉 ~ 대사 빨리해”라는 말을 건네는 순간 웃음을 터뜨린다. 온 몸이 땀에 범벅돼 이마를 겨우 쳐 내는 정종철에게 박준형이 “힘내라 마빡아 아무리 힘들고 괴롭고 치쳐도 진정한 개그는 더 빨리 치는 거야”라고 말하면 관객들은 열렬한 호응과 격려의 박수로 화답한다. 이러한 선상에서 인제대 김웅래 교수는 ‘(관객들은) 말 그대로 땀의 결정체인 (출연진의)육체노동에서 리얼리티를 한껏 느끼는 것 같다’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마빡이'와 '고도를 기다리며' 코미디는 당대의 잠재의식을 반영한다고 한다. 마빡이를 보고 환호하는 우리 안에는 바로 또 다른 마빡이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는 그 개그에는 내용도 없고 의미도 없다. 마치 이 시대의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는 듯 하다며 설교에서 피력하기도 하였다. 즉, 허무주의와 현실도피적 감성이 유행하는 현세대에게서, 동질적 요소의 코미디는 힘을 잃고, 이질적인 요소들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진짜 '슬픔'과 진짜 '기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된 형태의 감정 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오버랩된다. 이 연극에서 블라디므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린다. 그들은 연극이 끝날 때까지 고도를 기다리지만, 고도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연극은 막을 내린다. '고도(Godot)'가 누구인가에 대해선 많은 해석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 가장 유력한 해석 중 하나는 바로 '신(God)'이라는 것이다. 즉, 그 연극은 신의 부재나 그것을 기다리지만 나타나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마빡이'에서 우리는 어디가 개그의 지점인가를 기다린다. 하지만, 개그가 끝나가는 그 때까지도 그러한 이야기는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가 웃을만한 꺼리를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대자에 대한 부재로 인한 불안감이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표출되고 있다면, '마빡이'에서는 웃음의 내러티브 부재로 인한 불안감이 유머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 웃어야 할 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무엇을 놓고 웃어야 할 지도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그 웃음은 현실적 웃음의 공허감에 대한 웃음이다. 웃고 싶지만, 웃을 대상이 없자, 결국은 없는 대상을 놓고 웃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른 형태로 표현하자면, 이것은 복잡한 현대 사회에 지친 대중을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다. 너무 복잡하고 다난한 일상 속에 있는 이들은 솔직한 감정 표현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들은 텔레비전을 보는 시기만이라도 모든 것을 잊고 쉬고 싶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생각할 꺼리가 적은 형태의 웃음에 동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이것이 극단적인 자기 파괴 이미지와 연결된다는 비판도 있다. 즉, 과거의 코미디가 이미지를 건설하고 만들어 가는데에 집중이 되었다면, '마빡이'에서는 어떤 이미지 구축보다는 그 이미지 자체에 유보적이라는 것이다. '마빡이'에서는 의미없는 행동들이 반복해 나타난다. 그들이 팔을 흔들거나, 이마를 치는 행위는 개그 전체에 어떤 요소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발생하는 행위들에 대한 부정이며,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우리의 시도가 어리석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러한 코미디가 더 극단으로 치닫는다면, 자기 파괴적인 형태의 코미디가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일본에서 1990년에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는 '도쿄 쇼크 보이즈(Tokyo Shock Boys)’형태의 코미디가 나올 것이란 전망이다. '도쿄 쇼크 보이즈'의 코미디는 '엉덩이로 선인장 절단하기' '입안에서 폭죽 터트리기' '머리에 물체 붙이기'와 같은 엽기 행각을 하고는 끝이 난다. 자신이 가진 기존의 이미지를 파괴하는 행위가 코미디의 전부이고, 그 안에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비판 아닌 비판을 넘어서 그것은 또 다른 세대의 사유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어와 문자를 중심으로한 내러티브 중심의 사회에서, 이제는 영상과 음향을 중심으로 한 이미지 중심의 사회로 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제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내러티브를 넘어서 그 내용 자체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가사 중심의 과거 포크 음악이 미미해진 것처럼, 코미디도 그렇게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는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지도 모르며,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마빡이를 긍정하던 부정하던, 그것은 분명 이 시대를 반영하며 동시에 당분간 하나의 흥행코드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영주기자,joseph@googood.com(구굿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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