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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견지망월이요, 침소봉대다. 1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왜 거리에 나섰는지 그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하고 테러 위협과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만 부각시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 직사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60대 농부의 안위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박 대통령의 독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치권, 특히 야당을 겨냥해 할 일은 안 하고 립서비스나 하는 집단, 위선적 집단이라고 맹비난했다. 전직 대통령의 국가장을 치르는 마당에 어찌 이렇게 적대적이고 살벌할 수 있을까.
생전에 원수 같은 사이라 하더라도 장례 때만은 그래도 조의를 표하고, 다투던 일도 잠시 미뤄놓는 게 우리의 오래된 풍속이자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전직 대통령 서거를 맞아 국가적인 추모 분위기에서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무리 광화문 시위 사태가 엄중하다고 판단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나설 이유가 있었을까. 법무장관이 이미 긴급담화까지 발표한 사안이고, 그러잖아도 검경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고 있지 않은가. 과유불급이다.
정치권에 대한 비난과 매도는 더 그렇다. 오죽하면 조·중·동 같은 신문까지도 박 대통령의 ‘격한 표현’, 국회와 야당에 대한 ‘습관적인 비난’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나섰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쌓인 구원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했을 수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특히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인사들까지 앞다투어 고인의 정치적 후계자임을 자임하면서 마치 상주 노릇하는 게 박 대통령으로서는 꼴불견일 수 있었겠다.
지금이 어느 땐데 국회는 제쳐놓고 상갓집에서 한가하게 ‘자기 정치’나 하고 있느냐는 엄한 질책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예상 밖의 사회적 추모 열기에 탁월한 정치 감각의 소유자로서 본능적 위기의식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김영삼 전 대통령만큼 정치적 역정에서 빛과 그림자가 뚜렷한 정치인도 없다. 1970년대 박정희 유신 독재와 5공 때 모든 것을 걸고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지만 3당 합당으로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되는 지역주의를 결정적으로 고착시켰다는 평가가 교차하고 있다.
집권 후 1980년 신군부의 5·18 광주 학살과 쿠데타를 단죄하고 금융실명제 등 여러 개혁조치를 과단성 있게 추진했지만 노동법 날치기 통과 등으로 거센 민심의 저항에 직면하고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통령이라는 혹평도 따라붙었다. 많은 국민들에게 그만큼 애증이 교차하는 정치인도 없을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사회적 추모 열기는 그런 애증의 스펙트럼을 넘어선 듯하다. 적지 않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주었던 통 큰 리더십, 인간적인 매력이 끌어들이는 자장이 그만큼 셌다. 못 말릴 정도로 솔직하고 활달했던, 한편으론 무척 고집스러웠지만 결코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았던 그의 풍모가 새삼 그리운가 보다.
어찌 보면 이 시절 때문인지도 모른다. 야당과 정치권만 탓하는 대통령, 국민과는 말도 섞으려 하지 않는 대통령, 국민을 혼내고 가르치려는 대통령, 자기만 옳다고 하는 대통령 피로증후군의 반영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박 대통령은 긴급 국무회의를 통해 ‘국민’과 ‘정치권’을 다잡고자 했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사가 그렇듯이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