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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하얗디 하얀 발레복을 입은 열다섯살 소녀 강진희는 자신이 꼭 3등상은 탈거라고 생각했다. 선생님도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오늘 춘 춤은 만족스러웠다. 보통 중학교 3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진학할 요량으로 상을 노리는데다 심사위원들도 이를 고려해 보통 3학년생들을 중심으로 1,2등을 정하기 때문에 중학교 2학년생이었던 진희는 아무리 잘해야 3등상이면 최고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부풀어올랐다. 이제 저 단을 걸어 들어가면 되는구나 하고 앞꿈치에 힘을 바짝 주고 있었다. 그런데 3등상 발표가 지나자 선생님의 얼굴이 싹 바뀌었다. 어느새 단 위에는 다른 학생이 발걸음도 가볍게 올라서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쫙 빠지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참 잘했는데, 혹시 음악과 동작이 맞지 않았던걸까. 그럴 리가 없다. 선생님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녀가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주섬주섬 짐을 꾸리신다. 그만 가자는 말이다. 1,2등은 어차피 3학년 생들의 몫이니 더 있어 봐야 마음만 아프다는 의미일게다. 진희도 발레복 위에 겉옷을 걸쳐 입었다. 상을 받으면 나비처럼 날아갈 요량으로 추위를 참고 있었는데 눈물이 다 나왔다. "심사위원들 엉터리다. 엉터리야." 선생님은 화가 나시는지 제법 큰 목소리로 이야기 하셨다. 그런데 다음 순간 선생님의 고개가 홱 돌아가더니 갑자기 진희를 껴 안는 것이었다. 갑자기 선생님 품에 꽉 안긴 진희는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싶어 그 품을 빠져 나오려고만 했다. 고개를 든 순간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진희를 바라보며 엄지 손가락을 내밀고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진희야, 니가 1등이래. 3학년 생들 모두 제치고 니가 1등이래." 귀가 들리지 않고, 말도 할 수 없는 발레리나 강진희가 정상인들과 경쟁해 당당하게 1등을 하던 순간이었다. 단 위로 오르면서 진희는 딱 1분만이라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등 강진희' 하고 제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를 단 한 번만이라도 듣고 싶었다. 아마 그 순간 귀가 열렸다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심사위원의 음성 뿐 아니라 '저 아이 귀가 안 들린대. 그런데도 발레를 한대. 정말 감동이지 않니?' 하는 사람들의 속닥거림도 들었을 것이다. | |||
조승미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강진희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청각장애인 발레리나다. 사람들은 대체 음악도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발레를 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 이가 발레라니, 시각 장애인이 그림을 그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의미일까 하며 제 나름대로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 한단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진희 씨의 부모는 '똑같이 키우고 싶다'며 진희 씨를 일반 중학교로 보냈다. 열셋 먹은 청각장애아 아이. 그 아이의 인생을 위해 무언가 도움될 만한 일을 찾던 진희 씨의 어머니는 진희 씨가 초등학교 시절 춤을 따라 추면서 기뻐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학기도 시작하기 전에 무용선생님을 찾아가 딸을 받아달라고 했다. 그 때부터 진희 씨의 무용 인생은 시작되었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남들보다 더 많이, 죽어라고 해야 남들만큼 할 수 있었다. 음악을 듣지 못하는 핸디캡 때문이었다. 진희 씨가 한국 무용계에서 알아주던 조승미 교수를 알게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우연히 부산에 공연을 온 조승미 발레단에서 배경으로 출연게 된 것이다. 진희 씨는 조 교수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무용 발표를 앞두고 생긴 갈등 때문에 진희 씨는 학생으로써 하지 말아야할 말까지 쏟아붙이고는 조 교수가 채 대답하기 전에 방을 뛰쳐나온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교정을 방황하면서 진희 씨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단다. 다시는 조 교수 아래서 무용 배울 수 없겠구나. 서슬 퍼런 교수에게 그렇게 대들었으니 위계질서가 까다로운 무용계에서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진희야, 조승미 교수님께 전화왔다." | |||
하시는 것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에게까지 전화를 하다니... 뭐라고 하셨는지 안 들어도 뻔했다. "교수님이 널 참 많이 사랑하시나 보다. 이 엄마보다 더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아." 무용 발표회를 갖던 날 진희 씨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자기에게 대들고 뛰어나간 진희 씨를 감싸 안아 주시던 조승미 교수. 실력 뿐 아니라 마음도 배워야 한다고 진희 씨는 열 번 스무번도 더 다짐했다. 그 마음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발레를 접할 수 있도록 우리 나라 최초로 야외 발레 행사를 성사시킨 것도 진희 씨였다. 장애인들을 위해, 교도소에서 냉랭한 기온에 몸이 얼어버릴 것 같아서 기쁨으로 춤을 춘 것도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고 싶어서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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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 나는 공연요? 중국 공연이었어요. 하필 우리 발레단 발표일과 볼쇼이 발레단이 같은 날이더군요. 중국 무용협회에서도 우리 공연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이더군요.결국 표가 거의 나가지 않을 거라 생각해 협회에서도 자기 쪽 로열티를 받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공연 당일 깜짝 놀랐어요. 표가 매진됐더라구요. 조승미 발레단의 진가를 알아준 것이지요." 진희 씨는 얼마 전 유산을 하고 몸을 채 추스르기 전에 발레 '신데렐라' 공연을 앞두고 있다. 지금껏 어느 무용단에서 한 번도 올려보지 않은 새로운 발레극. 그 때문에 부담이 더 크단다. 음악 소리도 박수 소리도 들을 수 없지만, 춤이 좋아서 춤을 춘다는 그는 가슴이 따뜻한 이 시대의 최고의 발레리나, 문화 CEO다. <낮은울타리에 실린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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