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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귀로 음악을 듣는 청각장애 발레리나 강진희

맑은샘77 2015. 7. 29. 12:28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하얗디 하얀 발레복을 입은 열다섯살 소녀 강진희는 자신이 꼭 3등상은 탈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최고였다. 3등상은 탈 거야."

선생님도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오늘 춘 춤은 만족스러웠다. 보통 중학교 3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진학할 요량으로 상을 노리는데다 심사위원들도 이를 고려해 보통 3학년생들을 중심으로 1,2등을 정하기 때문에 중학교 2학년생이었던 진희는 아무리 잘해야 3등상이면 최고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부풀어올랐다. 이제 저 단을 걸어 들어가면 되는구나 하고 앞꿈치에 힘을 바짝 주고 있었다. 그런데 3등상 발표가 지나자 선생님의 얼굴이 싹 바뀌었다. 어느새 단 위에는 다른 학생이 발걸음도 가볍게 올라서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쫙 빠지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참 잘했는데, 혹시 음악과 동작이 맞지 않았던걸까. 그럴 리가 없다. 선생님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녀가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주섬주섬 짐을 꾸리신다. 그만 가자는 말이다. 1,2등은 어차피 3학년 생들의 몫이니 더 있어 봐야 마음만 아프다는 의미일게다. 진희도 발레복 위에 겉옷을 걸쳐 입었다. 상을 받으면 나비처럼 날아갈 요량으로 추위를 참고 있었는데 눈물이 다 나왔다.

"심사위원들 엉터리다. 엉터리야."

선생님은 화가 나시는지 제법 큰 목소리로 이야기 하셨다. 그런데 다음 순간 선생님의 고개가 홱 돌아가더니 갑자기 진희를 껴 안는 것이었다. 갑자기 선생님 품에 꽉 안긴 진희는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싶어 그 품을 빠져 나오려고만 했다. 고개를 든 순간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진희를 바라보며 엄지 손가락을 내밀고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진희야, 니가 1등이래. 3학년 생들 모두 제치고 니가 1등이래."

귀가 들리지 않고, 말도 할 수 없는 발레리나 강진희가 정상인들과 경쟁해 당당하게 1등을 하던 순간이었다. 단 위로 오르면서 진희는 딱 1분만이라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등 강진희' 하고 제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를 단 한 번만이라도 듣고 싶었다. 아마 그 순간 귀가 열렸다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심사위원의 음성 뿐 아니라 '저 아이 귀가 안 들린대. 그런데도 발레를 한대. 정말 감동이지 않니?' 하는 사람들의 속닥거림도 들었을 것이다.

조승미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강진희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청각장애인 발레리나다. 사람들은 대체 음악도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발레를 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 이가 발레라니, 시각 장애인이 그림을 그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의미일까 하며 제 나름대로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 한단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진희 씨의 부모는 '똑같이 키우고 싶다'며 진희 씨를 일반 중학교로 보냈다. 열셋 먹은 청각장애아 아이. 그 아이의 인생을 위해 무언가 도움될 만한 일을 찾던 진희 씨의 어머니는 진희 씨가 초등학교 시절 춤을 따라 추면서 기뻐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학기도 시작하기 전에 무용선생님을 찾아가 딸을 받아달라고 했다. 그 때부터 진희 씨의 무용 인생은 시작되었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남들보다 더 많이, 죽어라고 해야 남들만큼 할 수 있었다. 음악을 듣지 못하는 핸디캡 때문이었다.

진희 씨가 한국 무용계에서 알아주던 조승미 교수를 알게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우연히 부산에 공연을 온 조승미 발레단에서 배경으로 출연게 된 것이다. 진희 씨는 조 교수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무용 발표를 앞두고 생긴 갈등 때문에 진희 씨는 학생으로써 하지 말아야할 말까지 쏟아붙이고는 조 교수가 채 대답하기 전에 방을 뛰쳐나온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교정을 방황하면서 진희 씨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단다. 다시는 조 교수 아래서 무용 배울 수 없겠구나. 서슬 퍼런 교수에게 그렇게 대들었으니 위계질서가 까다로운 무용계에서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진희야, 조승미 교수님께 전화왔다."

하시는 것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에게까지 전화를 하다니... 뭐라고 하셨는지 안 들어도 뻔했다.

"교수님이 진희가 참 열심히 해서 참 예쁘다고 하시더라."

이게 무슨 소리일까? 엄마는 환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진희 씨는 너무도 궁금해서 엄마의 달싹거리는 입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교수님이 널 참 많이 사랑하시나 보다. 이 엄마보다 더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아."

무용 발표회를 갖던 날 진희 씨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자기에게 대들고 뛰어나간 진희 씨를 감싸 안아 주시던 조승미 교수. 실력 뿐 아니라 마음도 배워야 한다고 진희 씨는 열 번 스무번도 더 다짐했다. 그 마음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발레를 접할 수 있도록 우리 나라 최초로 야외 발레 행사를 성사시킨 것도 진희 씨였다. 장애인들을 위해, 교도소에서 냉랭한 기온에 몸이 얼어버릴 것 같아서 기쁨으로 춤을 춘 것도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고 싶어서였단다.

 

음악을 듣고 감정을 춤으로 표현하는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진희 씨는 마음으로 음악을 들어야 한다.기존에 있던 발레면 비디오를 보고 동작을 익혔고, 창작극이면, 악보를 보고 음악의

 

느낌을 익히고,사람들이 '기쁜 느낌' 이라든지 혹은 '슬픈', '애절한', '그리운' 등 이야기해준 느낌에 따라 동작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음악 없이 감정에 깊이 몰입되어 춤을 춘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진희 씨는 음악 없이도 춤추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가능하다 뿐인가 영혼으로 음악을 흡수해 남들은 들을 수 없는 깊은 음악의 세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더 그윽한 표정으로 더 풍부한 몸짓으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 조승미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강진희 씨. 발레단과 함께 세계를 돌아다니며 영혼의 음악을 듣는 발레리나로 그 아름다운 몸짓을 보이고 있다.


"가장 기억 나는 공연요? 중국 공연이었어요. 하필 우리 발레단 발표일과 볼쇼이 발레단이 같은 날이더군요. 중국 무용협회에서도 우리 공연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이더군요.결국 표가 거의 나가지 않을 거라 생각해 협회에서도 자기 쪽 로열티를 받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공연 당일 깜짝 놀랐어요. 표가 매진됐더라구요. 조승미 발레단의 진가를 알아준 것이지요."

진희 씨는 얼마 전 유산을 하고 몸을 채 추스르기 전에 발레 '신데렐라' 공연을 앞두고 있다. 지금껏 어느 무용단에서 한 번도 올려보지 않은 새로운 발레극. 그 때문에 부담이 더 크단다. 음악 소리도 박수 소리도 들을 수 없지만, 춤이 좋아서 춤을 춘다는 그는 가슴이 따뜻한 이 시대의 최고의 발레리나, 문화 CEO다.

<낮은울타리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