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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가 또다시 분열되어야 하는가?찬송가 분열의 역사와 대안

맑은샘77 2014. 10. 29. 21:10

찬송가가 또다시 분열되어야 하는가?찬송가 분열의 역사와 대안

이보철  |  holbaw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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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년 10월 27일 (월) 16:44:52
최종편집 : 2014년 10월 28일 (화) 22:51:13 [조회수 :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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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가 또다시 분열되어야 하는가?

 이보철

서론

기대와 환영가운데 탄생한 ‘21세기 찬송가’가, 파동에 휩싸여 한국교회에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또다시 찬송가가 분열될 위기에 처해 있다.

재작년에 예장 합동, 통합, 고신 총회에 안건이 상정되었다가 모두 부결되었고, 감리교, 성결교, 기장 등은 안건을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작년 총회에는 모든 교단이 조용하다가, 금년 총회에 합동과 기장 두 교단 총회만 현 찬송가 구입 및 사용을 중지하는 결의가 이루어 졌다. 내용적으로 보면, 합동은 판권지분의 절반을 가진 당사자이고, 기장은 신임 기독교서회 사장인 교단이다. 다른 교단은 금년에도 안건 상정이 되지 않았다. 성결교에서는 사태를 관망한 후, 내년에 결정하기로 결의를 보류했다. (한기총에서 분파된 한교연에서 느닷없이 새찬송가 발간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감리교는 이와 무관하다.)

그런데, 10월 총회를 앞둔 감리교 총회실행부회의에서 ‘현 찬송가 사용중지 안건’을 채택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사용중지 안건’이 아니고 ‘구입중지 안건’이 맞는 말일 것이다. 찬송가 없이 예배드리라는 말인가?

지난 100여년 동안 어떤 명분이었든지 찬송가는 바뀌었어도 늘 그 찬송이 그 찬송이었다. 단지 새찬송과 창작찬송이 조금씩 늘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찬송가를 만든다 해도, 통일찬송가와 21세기찬송가의 범주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 찬송이 그 찬송인데 개체 교회에서 왜 찬송가를 비싼 댓가를 지불하며 교체하겠는가? 애꿎은 교회에 판매를 강요하다 목회자와 성도들의 분노와 거부를 어찌 감당하겠는가? 만약에 출판권 독점만을 생각하여 서둘러 졸속으로 낸다면 출판사가 더 큰 낭패에 직면할지 모른다. 절판됐다는 통일찬송가도 지금 얼마든지 싸게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결국 통일찬송가, 21세기찬송가, ?찬송가로 분열되어 40년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이는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감리교가 찬송가 파동의 한복판에 서서 공을 떠넘겨 받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왜 찬송가 파동이 되풀이 되고 있는지, 한국 찬송가의 역사를 통하여 그 원인과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본론 - 찬송가 분열의 역사

 

1. 최초 찬송가와 1차 분열 - ‘찬미가(1892)’ ‘찬양가(1894)’ ‘찬셩시(1895)’

한국에서 최초의 찬송가는, 1892년에 감리교선교사 존스(George A. Jones,조원시)와 로스와일러(Louis C. Rothweiler)가 공편한 ‘찬미가(1892)’이며, 2년 뒤인 1894년에 장로교선교사 언더우드(H. G. Underwood)가 ‘찬양가(1894)’를 발간하였다. 원래 ‘찬양가’는 감리교와 장로교가 함께 사용하려고 양 교단 대표들이 합동으로 작업하여 편집을 끝냈는데, 하나님의 호칭 문제 등으로 의견이 엇갈리자 언더우드가 자비로 단독 발간하였다.

그래서, 감리교에서는 ‘찬미가’를 수정 보완하여 1895년에 ‘찬미가 증보판(1895)’을 발간하였다. 장로교에서도 하나님 호칭문제로 언더우드의 ‘찬양가’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듬해 1895년에, 북장로교 선교사 리(Graham Lee)와 기포드 부인(Mrs. M. H. Gifford)이 공편하여 ‘찬셩시(1895)’를 발간하므로써, 장로교에서 두 개의 찬송가가 사용되다가, ‘찬셩시’를 1905년에 장로교 공인 찬송가로 정했다.

이런 사정으로 교인수가 얼마 되지도 않는 한국교회가, ‘찬미가’ ‘찬양가’ ‘찬셩시’ 등 3개의 찬송가를 갖게 되었는데, 이것이 각 교단 선교부 간의 갈등 및 추후 찬송가 분열의 씨앗이 되었다.

 

2. 1차 통합 - 연합 찬송가 ‘찬숑가(1908)’, 개정증보판 ‘신뎡 찬숑가(1931)’

이래선 안 되겠다 하여 1905년 9월 15일에 감리교와 장로교의 6개 선교부대표 125명이 모여 ‘재한 복음주의선교부 통합공의회’를 결성했다. 그 첫 사업이 찬송가 통일 작업을 위한 ‘통합공의회 찬송가위원회’를 출범시키는 것이었고 1908년에 총 262장으로 구성된 가사만 있는 ‘찬숑가(1908)’를 발간하였다.

이듬해엔 ‘곡보부 찬숑가’를 발간했고, 1916년에 4편을 첨가해 266장의 찬송이 확정되어, 새로운 찬송가를 발간하기 전인 1930년까지 22년간 감리교, 장로교 연합 찬송가로 사용되었다. ‘찬숑가’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의 가사와 곡조의 원본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요꼬하마의 복음인쇄소에 보관되어 있던 ‘찬숑가’ 지형이 불타 없어져 버렸다.

마침 1924년에 감리교, 장로교 연합공의회가 체제를 개편하면서 명칭도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로 하고, 그 첫 사업으로 ‘찬숑가’를 새로 개정하여 발간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찬송가개정위원회’를 발족하고 번역이 원문과 같은지, 창작가사가 찬송으로 적당한지, 곡조가 적당한지, 가사와 곡조가 억양이 맞는지(신뎡 찬숑가 서문.1931) 등, 가사와 음악의 조화, 찬송가로서의 가치를 위해 노력한 결과 드디어 1931년 6월 14일 조선예수교서회 발행으로 ‘신뎡 찬숑가(1931)’를 발간하였다.

 

3. 2차 분열 - ‘신뎡 찬숑가(1931)’, ‘신편 찬송가(1935)’

그러나 막상 새로운 개정 찬송가가 나오자, 그해 장로교 총회에서는 ‘전 찬송가를 그대로 쓰라’면서 사실상의 거부의사를 나타냈는데, ‘조선예수교서회(현 기독교서회)’가 장로교총회와 상의 없이 찬송가를 출판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서 은밀히 장로교에서는 자체의 새 찬송가 발간을 계획하였는데, 그 중심인물은 장로교총회 종교교육부 총무 정인과 목사였다. 그는 연합공의회에서 장로교 단독으로 찬송가를 편집하고 있다고 선언하고 개인 명의의 판권을 확보하여 1935년 11월 7일 ‘신편 찬송가(1935)’를 발간하였다.

그 후 그는 커다란 비판에 직면하게 되는데, 판권을 개인 명의로 한 것, 졸속작업으로 인한 찬송가의 권위실추, 경비낭비, 교파간의 친선훼손으로 찬송가의 일치가 깨진 것, ‘감리교회가 신편 찬송가를 쓰기로 했다’고 총회에서 허위로 보고한 것, 불신자였던 이광수가 가사를 개사한 것, 50년 역사의 장로교가 찬송가 편찬 실무를 선교사에게만 맡긴 것 등이 문제가 되면서 결국 그는 1937년 총무직에서 물러났고, 이리하여 한국교회는 다시 찬송가가 분열되고 말았다.

 

4. 2차 통합 - ‘합동 찬송가(1949)’

해방될 당시에 감리교는 ‘신정 찬송가’, 장로교는 ‘신편 찬송가’, 성결교는 ‘부흥성가’를 각각 사용하고 있었는데, 해방 후 서둘러 이 3개의 찬송가를 합쳐서, 1949년 8월 21일 586장의 ‘합동 찬송가(1949)’를 발간하였다.

 

5. 3차 분열 - ‘합동 찬송가(1949)’, ‘새찬송가(1962)’, ‘개편 찬송가(1967)’

그러나 대한예수교장로회의 1차 분열로, 1951년 예장 고신측 경남법통노회를 결성하며 ‘신편 찬송가’를 채택하고, 교단 내에 새로운 찬송가편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959년 예장이 ‘통합’과 ‘합동’으로 2차 분열되면서, 합동측은 합동찬송가의 사용을 거부하고, 별도의 찬송가편찬위원회를 만들었다. 합동측과 고신측이 1960년에 합하여 총회를 구성하면서(나중에 다시 갈라짐) 찬송가편찬위원회를 합쳐서 ‘새찬송가위원회’를 통하여 1962년 12월에 671장의 ‘새찬송가(1962)’를 발간하였다.

한편, 합동찬송가에 대한 개편 요구는 초기부터 있었는데 이에 감리교, 예장통합, 기장, 성결교가 연합으로 ‘한국찬송가위원회’를 조직하여 찬송가의 현대화, 한국화를 목표로 1967년에 ‘개편 찬송가(1967)’가 발간되었다.

그러나 합동찬송가를 고수하는 교단과 교회들이 있어, 또다시 한국교회는 ‘합동 찬송가’,‘새 찬송가’, ‘개편 찬송가’ 로 분열되고 말았다.

 

6. 3차 통합 - ‘통일 찬송가(1983)’, ‘통일찬송가 개정증보판(1994)’

1975년에 이르러 한국찬송가위원회가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99.8%의 교인들이 찬송가의 통일을 원한다는 통계가 나오자, 서둘러 한국찬송가위원회와 새찬송가위원회가 ‘찬송가합동추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찬송가 통일작업과 찬송가 공모와 위촉 등을 통한 새로운 찬송가 발굴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1981년에 ‘한국찬송가공회’를 출범시켰고, 1983년 12월 30일에 ‘통일 찬송가’라고 불리는 ‘찬송가(1983)’가 탄생하였다.

한국교회의 모든 교파가 신학과 교리의 차이를 넘어서 참여하고 환영한, 유래를 찾아 볼 수없는 세계적인 일이었고, 선교백주년을 기리는 한국교회의 기념비였다. 일부의 비판과 불만이 나왔으나,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호응 속에 20년 이상 사용되었다.

1994년에는 통일찬송가 발간 10주년을 기념하며 성서적, 문학적, 음악적으로 문제가 있는 가사와 화성을 수정하고 3%에 불과한 한국인 창작찬송을 보완하여 139곡의 창작찬송가가 별책으로 달린  ‘통일찬송가 개정증보판(1994)’을 발간하였다.

 

7. ‘21세기 찬송가(2006)’

찬송가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들이 30년 주기로 새롭게 개정하여 발간한다.

한국찬송가공회에서도 시대의 변화에 따른 또 한 번의 현대화와 한국화를 위해 20여년을 사용한 기존 통일찬송가를 개편하여 보다 발전된 찬송가를 발간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기존 찬송가 개편 및 개정, 신작 한국찬송가 선정, 공모, 위촉, 해외찬송 선정 등을 각 분과위원회와 음악전문위원들이 10여년의 엄격한 심사와 선곡, 개정, 편집 작업을 거쳐 드디어 2006년 12월에 ‘21세기찬송가’로 이름 지은, 한국찬송가 128곡이 수록된 645장의 ‘찬송가(2006)’를 한국교회의 기대와 환영 속에 발간하게 되었다.

처음엔 바로 일어난 출판권 소송으로 관망하다가, 시간이 지나며 급격히 보급이 늘어나게 되었고, 지켜보던 교회들도 새로운 찬송가로 교체하며 잘 정착되어 가고 있었다.

 

8. 또다시 분열 위기 - ‘통일 찬송가(1983)’, ‘21세기 찬송가(2006)’, ‘ ? 찬송가’

그런데, 출판권 분쟁과 소송, 저작권 소송, ‘한국찬송가위원회’와 ‘새찬송가위원회’의 절차를 어기고 한국찬송가공회를 재단법인화한 문제로 인한 소송 등, 현재까지 지루한 법정 다툼이 이어졌다.

해당 기관들의 이해다툼이 결국 한국교회에 찬송가 파동을 일으키게 되었고, 이러한 파동이 결국 출판 기관들로 하여금 새 찬송가를 발행하기로 방향을 잡게 하는 빌미가 되었으며 전방위적 활동을 하여 새로운 찬송가 발행문제가 대두하게 되므로, 자칫 큰 혼란과 피해를 가져올지 모르게 되었다.

 

결론 - 대안

 

본론에서 찬송가 분열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았는데, 분열의 원인은 신학적 입장 차이, 교파 내 갈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출판권 문제이다. 현재도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21세기찬송가 발간 후 얼마 안 되어서 시작된 출판권 소송과 찬송가공회 파동, 전 찬송가와 큰 차이를 못 느끼는 많은 교회들은 통일 찬송가를 현재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찬송가로 바꾼 교회들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바꾼지 몇년 되지도 않는데 또다시 찬송가를 바꾸란 말인가? 반문하며, ‘누구 맘대로?’ 라며 분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교회 앞에 부끄러워하고 사죄해야 할 찬송가 파동의 당사자들이, 마치 자기들은 잘못 없다는 듯이 책임을 전가하고 있으며, 마치 찬송가와 작가들에게 모든 문제가 있는 듯 남 탓하고 떠넘기며 침소봉대하고 있어서,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들의 일방적인 얘기만 듣고 오판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로, 새 찬송가 출판보다 먼저 한국찬송가공회를 정상화하고, 출판권 문제를 당사자들이 해결하여야 한다.

현재 양분된 재단법인 공회와 비법인 공회가 다시 하나되어 출판권 소유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극단적이고 감정적인 대립에서 벗어나 서로 양보하고 대화하여야 한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지 언제까지 사회법정에서 우롱당할 것인가? 새 찬송가를 논하기 전에 공회를 정상화 하여 정상적인 찬송가 발행과 찬송가 창작개발 및 진흥과 보급에 힘쓰고, 수익금을 감리교를 비롯한 출판권 소유 교단에 규정대로 정상적으로 분배하여 선교에 쓰이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출판권 문제로 개체 교회가 희생되어서는 안된다. 물론 기독교서회 등 출판 당사자들의 고충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자적 판권을 갖는 새로운 찬송가를 만들어 교회에 판매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기에는 교회와 교인들의 재정적 피해가 막심하다. 더군다나 성경합본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은가. 그리고 찬송가의 혼란을 틈타서 벌써 사설 출판사가 발간한 비공인 유사 찬송가가 몇 개나 시중에 나와 있어 성도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출판 당사자들은 공회문제를 해결하여 출판권을 되찾는데 먼저 힘을 써야 할 것이다.

 

둘째로, 새 찬송가 출판을 위해 저작권 문제와 찬송작가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사회법적으로 저작권이 등록되어 있는 곡에 대해서는 저작료를 내는 것이 원칙이고, 찬송가를 수백만부 발행했으니 많이 지출된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 개정할 때 참고하여 저작권문제를 미리 확인하고 보완하면 된다. 현재는 발행부수가 적으므로 저작료가 많이 나가는 것도 아닌데, 많은 예산을 들여 10여년 걸려 만든 찬송가를 폐기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리고, 원로 작곡가들 몇 분은 저작권을 요구하였지만 180여명의 대부분의 작사, 작곡가들은 하나님께 봉헌한 것으로 여기고 저작권을 요구하지 않았다. 원로 작곡가분들이 저작권을 요구한 사정을들여다 보면, 복음성가에는 저작료를 지불하고 막대한 수입을 올리면서도 한국찬송작가들에게는 창작비조차 안주며 공회 임원들은 해외여행이나 다니는 것에 대하여 원로로써 가만있으면 안되겠다 해서 문제제기를 하다 보니 소송까지 불사한 것이다.

그 분들 가운데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를 작곡하신 감리교 원로장로이신 구두회 장로님은 받은 저작료를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장학금으로 전액 기부하셨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작곡하신 박재훈 목사님은 그 후 작품 전체를 기독교서회에 기부하셨다. 지금도 대부분의 찬송 작사가, 작곡가들은 한국적 신앙고백이 담긴 찬송을 만들어 한국교회와 하나님께 봉헌하기 위해 저작료에 관심 없이 열심히 창작 작업을 하고 있다.

 

셋째로, 새 찬송가 출판의 명분인 가사문제는 교파연합 찬송가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문제이고, 문제 있는 곡은 안 부르면 된다.

교파 연합 찬송가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신학과 교리적 주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늘 그렇듯 일부에서 불만과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것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 찬송은 안 부르면 된다. 신학대학원에서 학생들에게 개체 교회 각종 예배에서 연간 부르는 찬송을 집계해 보니 70여곡에서 많아야 100여곡 정도였다고 한다. 늘 부르는 찬송만 부르는 다는 말이고 교회 현장에서 목회자가 알아서 선곡하는 현실이다. 더구나 새로운 찬송이 교회에 뿌리 내리려면 10여년 이상 걸린다.

그러므로 가사문제는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야 할 사항이다. 예를 들어,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은 예정론적 입장,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은 자유의지론적 입장이며, 원곡가사도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이지만, 감리교가 양보하여 현재 ‘하게함은’으로 되어 있다.

또한 ‘기저귀 발언’을 한 목사 등 문제 있는 작사자들도 있고, ‘보아라 저 하늘에 백마타고 계신 주님’등 문제 있는 가사들도 있다. 이런 것은 전술한대로 안 부르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 개정증보판을 내어 고치거나 다른 곡으로 바꾸면 된다. 빈대 때문에 집을 허물고 다시 지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새 찬송가를 만드는 것보다, 통일찬송가처럼 10여년정도 사용하고 개정증보판을 발행하는 것이 합리적 대안이다.

21세기찬송가를 발간하여 보급하고 사용한지 8년쯤 되었다. 지금부터 몇 년간 차분히 준비하여 2017년초 즈음에 찬송가 발행 10주년기념으로 개정증보판을 내어 고칠 것 고치고 뺄 것 빼서 저작권 문제, 가사문제 등을 해결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찬송 장 수 변동에 따르는 혼란도 없고 비용도 안든다. 교회에서도 대대적 교체없이 새로 구입하는 교인들과 원하는 교인들만 개정증보판을 사게 하고, 영상 등을 이용해 예배하며 서서히 바꾸어 나가면 된다. 그러다가 한세대인 30년쯤 사용 후에 완전히 개편한 새로운 찬송가를 발행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러므로 무리하게 추진하여 큰 혼란과 피해를 초래하지 말고 당사자들 모두가 초심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내려놓는 정도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촉구한다.

무엇보다 눈앞에 닥친 총회에서 총회대표들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후일의 역사에서 장로교 합동, 기장 2개 교단만 통과 시킨 안에, 감리교가 오판으로 가세하여 찬송가가 분열되었다는 오명을 쓸 수는 없기 때문에 고언을 드린다.

오히려 찬송가의 분열을 막고, 130여년의 한국교회에 전승된 찬송가를 잘 계승하고 발전시켜, 예배를 더욱 은혜가 넘치고 아름답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멋진 한국찬송가가 이루어져 가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웨슬리의 후예답게

뜨거운 가슴의 감리교(Warm Hearted Methodist),

노래하는 감리교(Singing Methodist)를 이루어 가자.

찬송가는 한국교회의 신앙고백이 들어 있는 거룩한 책이다. 끝.

 

* 이 기고문을 작성한 이보철 목사는 현재 잠실지방 한가람교회 담임목사이며, 한국찬송가작가총연합회 상임회장이다. 감신대와 협성대신학대학원에서 교회음악 강사 및 겸임교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