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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발가락 편지…38살 금메달리스트 전민재를 아십니까

맑은샘77 2014. 10. 20. 21:45
  • [취재후] 그녀의 발가락 편지…38살 금메달리스트 전민재를 아십니까
    • 입력2014.10.19 (22:54)
    • 텅빈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전민재선수 부모님을 찾는 건 생각 이상으로 쉬웠습니다.

      전민재 선수의 언니와 남동생은 <미소천사 전민재 달려라 파이팅>이란 플래카드를 내걸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떨리는 마음으로 민재 선수가 모습을 드러내길 연신 찾고 계셨습니다.



      전민재 선수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렸더니 어머니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돌아옵니다.

      <녹취> 어머니 : “더운디 이적껀 연습한만큼만 거두고 금메달 따기를 그냥저냥 기원할 뿐입니다.”

      <녹취> 어머니 : “민재한테 한마디 혀봐...”

      <녹취> 아버지 : “하하하...”

      수줍은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못하십니다.

      <녹취> 아버지 : “안하면 안되는겨? 할말이 이렇게 없냐...”

      웃음으로 대신하시는 아버지의 속심정은 긴장으로 가득하셨겠지요.



      드디어 전민재선수가 출발선에 모습을 나타냈고, 스타트 직전까지 어머니는 손을 꼭 모으고 기도를 올리십니다.

      출발과 함께 어린 조카들은 “힘내라 민재이모” 고사리 손으로 박수를 치며 힘찬 응원을 보냈고 응원에 보답하듯 전민재선수는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태극기를 걸어 매고 공동취재구역으로 걸어오며 환한 미소로 자신의 첫 국제대회 금메달을 자축합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런던 패럴림픽 모두 은메달에만 그쳤던 전민재 선수는 그동안 고생한 일이 생각나는 듯 잠시 눈물을 훔치더니 보고싶은 엄마에게 달려갑니다.



      달려오는 딸이 대견했던지 어머니는 눈물 글썽이시며 고맙다고 연신 고맙다고만 하십니다.

      <녹취> 어머니 : “파이팅 금메달 따서 너무 고맙습니다. 지가 열심히 한 노력이죠. 금메달 따서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발가락으로 작성한 금메달 소감

      전민재 선수는 다섯 살때 뇌염으로 얻은 뇌성마비 지체장애로 말을 할수 없습니다.

      손가락이 곱아 손으로도 쓰지 못해 대신 발가락으로 글씨를 씁니다.

      제가 소감 한마디 적어달라고 종이와 펜을 내밀자 전민재 선수는 사각형을 그리면서 소감 써온 것이 있다며 갑자기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종이를 한 장 들고 돌아옵니다.

      A4 용지를 두장 정도 이어붙인 기나긴 종이엔 미리 발가락으로 또박또박 힘주어 쓴 장문의 글귀가 쓰여있었습니다.

      그동안에 곁에 있어준 사람들에게 보내는 감사가 빼곡히 적혀있었습니다. 어찌나 글씨가 바르고 정갈한 지 쓰는 동안 얼마나 애를 썼을까 발가락으로 썼다는 소리를 듣고 주책없이 제가 눈물이 다 쏟아졌습니다.

      남동생에게 대신 읽어줄 것을 부탁드렸고 전문을 이곳에 옮겨드리겠습니다



      메달을 따서 정말 기쁘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를 위해 응원해주신 가족들과 같이 고생한 선수들 친구들에게 감사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올해 여름도 변함없이 모든 선수들이 다같이 각자 위치에서 한가지 목표를 가지고 땀 흘리며 고생많았습니다.
      그땀의 결과가 결실을 맺은 선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실망하지 말고 다음 대회를 기약하면서 힘을 내서 다시 출발선에 서서 힘내시길 바랍니다.
      올해는 훈련기간이 짧아서 연습량이 조금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목표보다 기록이 안나와서 조금 아쉽습니다.
      훈련 기간 내낸 선수들을 위해 고생하신 박정호 감독님 감사하고 그동안 고생많으셨습니다.
      항상 저에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며 격려와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매일매일 감독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연습을 거듭하면서 힘들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 다시 일어설수 잇었습니다.
      제가 항상 힘들 때 항상 긍정의 힘을 불어넣어주시고 오늘의 저를 있게 해주신 박정호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결과에 안주하지 않고 저를 응원 해주시는 모든 분들의 사랑을 채찍삼아 더욱더 노력하는 선수가 돼겠습니다.
      저는 제 목표를 위해 한발한발 앞으로 더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장애인 육상 연맹에도 따뜻한 격려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14년 10월 19일 못생긴 전민재 선수가

      마지막에 남동생도 목이 메어 울컥했고 읽는 동안 전민재 선수는 굵은 눈물방울을 하염없이 떨구었습니다.

      다섯 살 때 장애판정을 받은 이후 자신은 스무살까지만 살겠다며 학교도 친구도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세상과의 소통을 닫아뒀던 전민재 선수였습니다.

      그러다 19살이던 96년에 특수학교를 소개받아 초등학생이 됐고 중학교 2학년이던 2003년에 달리기에 입문합니다.

      키도 작고 다리도 짧아 남들보다 체격조건이 불리해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지만 잠재력이 폭발해 2004년부터 장애인체전에서 늘 금메달을 도맡게 됐습니다.

      눈물투성이의 전민재선수를 다시 웃게 한건 어린 조카들이었습니다.

      조카들은 태극기를 자랑스러운 이모 어깨에 다시 걸어주며 '잘했다'고, '이모 파이팅'이라며 뽀뽀세례를 퍼붓습니다. 경기 전 긴장된 모습의 아버지도 이제야 딸을 꼭 안아주십니다.

      조카들과 함께 다시 미소를 되찾은 민재 선수는 취재진과 가족들을 뒤로 한채 조용히 내일 있을 100미터 준비를 위해 조금은 쓸쓸히 돌아서 혼자 걸어갑니다.

      P.S. 방송에서 못다 보여드린 미공개 영상.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한쪽 구석에서 전민재 선수를 지켜보고 있던 육상대표팀의 박정호 감독님이 눈에 들어옵니다.

      전민재 선수가 금메달 소감 종이에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해 큼지막한 글씨로 감사의 뜻을 적었던 박감독입니다.

      (편지 중 '제가 항상 힘들 때 항상 긍정의 힘을 불어넣어주시고 오늘의 저를 있게 해주신 박정호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박 감독에게 전민재 선수의 금메달 소감이 적힌 종이를 드리자 박 감독은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아...미치겠다..’라며 꾹 참던 눈물을 연신 닦아냅니다.

      민재 선수의 힘든 시간을 어떻게 함께 이겨내셨는지 물어보는 제 목소리도 속절없이 눈물에 잠깁니다.

      <녹취> 박정호 감독 : “민재가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장애인의 육상 국가대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가대표선수라는 걸 잊지말라고 얘기하거든요. 민재가 많이 힘들어했었어요. 제가 휠체어타고 같이 달리기 시합도 하고...연습을 같이 했던거 같아요. 아침 8시부터 시작해서 11시까지...”

      전민재 선수의 강점은 폭발적인 스타트와 뒷심입니다.

      국제대회마다 은메달에 그쳐 금메달에 대한 압박감이 상당했다고 하네요.

      <녹취> 박정호 감독 : “민재가 사실 포커스를 받잖아요. 늘 메달을 딴다라는 선수라고 생각을 하시니까 선수로서 부담감이 심해요. 특히 이번에 새로 나서는 두명의 선수가 있어서 그 선수의 정보가 없으니까 어떻게 될지 불안한거예요. 어제밤까지 카톡 주고 받을정도로 압박감이 심했는데 제가 해줄 수 있는말은 '너가 최고야'였어요.”

      전 선수의 다음 목표는 리우패럴림픽 금메달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괜찮을지 조금은 염려하는 기자에게 박 감독은“해드릴수 있는 말은 전민재만큼 성실하고 노력하는 선수 없습니다. 체격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민재가 중요한건 하고자 하는 의욕이 강해요. 도전의식이 강하고 힘든 과정을 노력으로 승부를 내는 친굽니다.”

      장애인스포츠대회 취재를 다닐때마다 저는 그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기자가 냉정을 잃고 끝없는 눈물을 흘리게 만든 올해 우리나이 38살 전민재 선수에게 깊은 감사와 축하를 보냅니다.

      다시 신발끈을 조이는 전민재 선수의 눈부신 질주를 리우대회 때 또한번 보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