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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을 오가며 귀농준비

맑은샘77 2014. 3. 9. 09:59

농촌을 오가며 귀농준비

좋은사람 (ram2***)님 작성글 전체보기 추천 0 | 조회 96 | 2014.03.09 07:55 | 신고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

 

출근하면 도시인 퇴근하면 농사꾼

유행처럼 번지던 귀농현상에 거품이 빠지고 있다. 도시에서의 실패를 만회해볼 욕심으로 귀농했던 사람들은 이미 도시로 돌아왔거나 돌아올 차비를 하고 있다. 다음은 섣부른 귀농 대신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적응기를 갖고, 만반의 준비를 해온 네 가족의 행복한 농촌생활 이야기.

안철환 전국 귀농운동본부 출판기획실장
    IMF 경제위기 이후 귀농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대략 10년 전부터 서서히 불기 시작한 귀농바람은 98년에는 전년도에 비해 3.7배(약 6400여 가구)가 늘어날 정도로 귀농현상은 우리 사회의 한 흐름이 됐다.
이는 농사를 새로운 구직의 대안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도시가 더 이상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농촌으로 눈을 돌렸다. 매스컴도 그런 현상을 좇아 상업적으로 귀농에 성공한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필자가 쓴 ‘희망의 밭을 일구는 사람들’(마가을 출판사)도 초기 기획단계에서는 이런 상업적 귀농현상을 담으려 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귀농자들을 만나본 결과,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고 책의 방향도 완전히 달라졌던 경험이 있다. 농촌 생활이란 도시의 물질적 욕심을 채워줄 새로운 대안일 수 없다는 게 필자의 결론이다. 어째서 농사는 새로운 구직의 대안일 수 없고, 새로운 돈벌이의 희망일 수 없는가? 그 논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보통 한 가족의 노동력으로 농사 지을 수 있는 규모는 2000평 정도 된다. 그런데 중부권 이북으로는 평당 농지 가격이 5만원 이하인 곳이 거의 없다. 도시 근교가 되면 가격은 더욱 올라 10만원 이하의 땅도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계산하기 쉽게 일단 평당 5만원이라고 했을 때 2000평의 땅을 사려면 1억원이라는 자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1억원을 은행에 넣어두면 이자가 10%라고 할 때 연 1000만원의 소득을 얻을 수 있다. 아무런 돈과 노동이 투입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논 2000평의 가치

그렇다면 과연 2000평에 농사를 지어 1년에 이 정도 수입을 얻을 수 있을까? 가장 수입이 안정적이고 재배하기 수월한 논 농사를 예로 들어보자. 지역에 따라 소출이 많은 곳은 한 마지기가 200평인 곳이 있고, 강원도와 같이 소출이 적은 곳은 300평인 데도 있다.
일단 한 마지기를 200평으로 했을 때 2000평이면 10마지기가 된다. 마지기당 보통 서너 가마 소출을 얻을 수 있다고 할 때, 10마지기라고 하면 많아야 40가마의 수확을 거둘 수 있다.
그럼 쌀 1가마당 소비자 가격을 18만원으로 계산해도 2000평에서 얻을 수 있는 수입은 720만원밖에 안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품 하나 안 들이고 투자비 하나 안 들여서 벌어들이는 은행 이자에 비해,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수입은 280만원이나 적다. 만약 720만원을 벌기 위해 들인 품삯과 생산비까지 감안한다면 적자 폭은 더욱 커진다.
반면 밭농사는 2모작이 가능하고 자금 회전이 빠르며 쌀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아무런 노력 없이 벌 수 있는 은행 이자에 비한다면 그 또한 경제적 가치는 매우 낮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매우 불안정한 가격 등락폭 때문에 농사는 결코 안정된 소득이 아니라는 점이다.
논도 아니고 밭도 아니라면, 조금 아는 사람들은 버섯과 같은 특용작물을 들고 나올 것이다. 그러나 특용작물 또한 우리 농업의 근본 문제인 복잡한 농산물 유통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게다가 특용 작물이라는 것들이 대개 재배하는 데 매우 고난도의 노하우를 요구해서 초보 농사꾼이 함부로 달려들 수 없는 작목이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

이렇게 경제적인 가치를 전혀 보장할 수 없는 농사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귀농 이유에 대해 강화도에 사는 이광구씨(37세)는 뜻밖의 얘기를 전해준다.
“왜 귀농했느냐고요? 나 자신과 가정을 위해섭니다. 우선 농사란 사람과의 관계보다 자연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자연은 나보고 출근 늦게 했다고, 실적 제대로 못 올린다고, 낮술 먹는다고 잔소리를 안하잖아요? 게다가 24시간 가족과 함께 생활하니 가정도 화목하고 더욱 중요한 것은 아이들 건강과 교육에도 좋다는 것입니다. 교육에 좋다는 말은 이해가 안 될지 모르지만 그것도 간단합니다. 내가 비인간적인 경쟁사회가 싫어 내려 왔는데 아이들을 내가 이루지 못한 부와 명예를 위해 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실제 내려와 농사를 한번 지어 보십시오. 자신이 씨 뿌려서 새싹이 돋고 작물이 자라 맛있는 음식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인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어느새 등뒤로 스며온 저녁 노을의 평화로움과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 신비롭기만 한 생명의 기운을 흠뻑 마시며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을 향하는 길이, 내일 일을 걱정하며 집으로 향해야 하는 도시의 퇴근길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실제로 돈벌이의 하나로 귀농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많아도 막상 귀농을 결심하거나 실행에 옮긴 사람 중에는 이광구씨처럼 자연 속의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게 전국귀농운동본부 차성건 사무국장의 말이다.
“작년만 해도, 귀농본부를 찾는 사람 중 90% 이상이 어떤 농사를 지어야 돈을 벌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귀농학교(귀농본부 주관)에 등록하는 사람은 극소수였지요. 올해 들어서는 그런 문의를 하는 사람조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실 돈을 버는 데 관심이 없는 나머지 10%도 안 되는 사람들 중에 실제로 귀농교육을 받고 농촌으로 떠난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차성건 사무국장은 귀농한 사람들이 농사를 구직의 대안이나 또 다른 돈벌이의 희망처로 보아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귀농이란 물조차 돈 주고 사먹어야 하는 도시의 소비적인 생활 습관에서 벗어나 모든 먹을거리를 자기 손으로 생산하는 자급자족의 삶을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자급자족의 삶만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기본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도시의 삶이란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그만큼 많은 돈을 쓰게 돼 있다. 더 큰 문제는 돈을 많이 쓸수록 일은 바빠지고 가족과 자신을 위해 쓸 시간은 점차 줄어든다는 점이다.
반면 자급자족의 삶에는 돈을 적게 버는 만큼 적게 쓰도록 되어 있다. 조금 벌든 많이 벌든 남으면 그게 다 저축이 된다. 2000평에 농사를 짓는 한 귀농자는 필자에게 이런 얘기를 전해주었다.

행복한 농사꾼이 되는 법

“저는 2000평에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 1년에 500만~700만원 수익을 올립니다. 그것도 저 혼자서가 아니라 아내와 함께 번 것이고, 가끔 우리 두 아이도 일을 거드니까 어떻게 보면 4명이서 1년에 그 정도밖에 못 버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의 모든 걸 자급자족하니 버는 게 몽땅 남습니다. 도시에서는 한 사람이 1년에 그 정도 벌면 거의 극빈자나 다름없겠지요.
사실 시골에서 연간 2000만~3000만원씩 벌어도 저희만큼 저축하며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웃에 2만평 농사짓는 사람이 있는데, 거의 기계화 농업에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여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도시 사람 못지않게 소비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은 매년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럼 누가 더 부자겠습니까?
더구나 그 사람은 기계, 농약, 비료에 의존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생명과 어울리는 농사의 참맛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유일한 꿈은 빨리 돈을 벌어 도시로 진출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누가 더 부자냐가 아니라 누가 더 행복한 농사꾼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자급자족의 농사가 귀농하려는 도시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먹을거리는 자급이 된다 해도 교육이나 의료 문제까지 자급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아무리 절약하며 산다지만 사람 사는 데에는 결국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당장 농사로 수입을 올리기 어려운 초보 귀농자들은 약간의 생활정착자금을 지참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농자에게 가장 큰 문제는 농사 지을 땅을 마련하는 것이다. 땅을 구입하는 데는 앞서 소개했듯이 상당한 자금이 든다. 버젓한 아파트 한 채나 퇴직금이 있어 당장 농지를 구입할 수 있는 형편이라면 좋겠지만 웬만한 땅을 구입하는 데도 억대의 돈이 들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이른바 반(半) 귀농이라는 과도기적 귀농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도시에서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퇴근 후나 주말·휴일을 이용해 농사를 지으며 귀농연습도 하고 현지적응을 하다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면 농촌에 완전히 정착하는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네 가족은 이미 완전귀농에 성공했거나 반(半)귀농 상태로 정착을 준비하고 있는 경우다.
   
반(半)귀농에서 완전귀농으로 강화도 이광구씨네
    강화도의 이광구씨는 3년 정도 도시로 출퇴근하며 반(半) 귀농 생활을 하다 최근 양계를 하는 어엿한 농사꾼으로 완전히 변신했다.
“97년 2월 처음 강화에 이사했을 때는 귀농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귀농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았거든요. 단지 언젠가는 시골에 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사업이 망해 돈도 다 떨어지고 빚만 남았던 거죠. 그 핑계로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8만원 하는 지금의 시골집으로 이사를 왔죠.
그렇지만 생활도 해야 하고 빚도 갚아야 하기 때문에 당장 농사로 전업하기는 힘들어 자동차회사 영업 사원으로 취직했습니다. 집이 강화이다 보니 직장이 멀면 곤란하겠기에 회사에 신청해서 처음에는 인천으로 다니다 다음에는 좀더 가까운 김포로 옮기고, 마지막에는 강화읍에 있는 대리점으로 출퇴근했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도시에서 실패하고 낙향한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저희 부부는 원래부터 가난하게 사는 데 익숙하고 성격도 낙천적인 데다 둘 다 시골생활을 동경해왔기에 오히려 잘됐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귀농결심을 굳힐 수 있었던 것은 세 아이 때문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사내아이면서도 제일 약하고 겁이 많은 둘째 온달이를 위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시골 생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온달이만이 아니라 세 아이 모두 얼마나 건강하게 잘 자라는지 모릅니다. 아직도 경제적인 어려움은 남아 있지만 그 아이들을 보면 이곳으로 오기를 너무나 잘했다고 저희 부부는 늘 자부하고 있습니다.”

농사 지으며 의욕적인 직장생활

이광구씨는 직장을 다닐 때도 비록 텃밭에 불과하지만 퇴근 후의 농사에 열심이었다. 광구씨는 경승용차 뒤에 항상 들통을 싣고 다니며 단골 식당에서 남은 음식물을 얻어다 집의 토끼며 닭, 오리, 거위, 강아지들에게 사료로 주었다. 몇 평 안 되지만 마늘, 파, 고추, 상추, 오이, 고구마 등이 자라는 텃밭 농사도 열심히 해서 쌀 이외의 찬거리는 대부분 자급할 수 있었다. 아침 출근 전에도 그는 매우 바쁘게 움직였다. 토종닭 4마리와 오리 5마리와 토끼 1마리, 그리고 강아지들에게 먹이를 주고 텃밭에 심어놓은 고추며 콩 등등 작물이 잘 자라는지 살피면서 잡초 하나라도 손으로 뽑아주고 출근할 정도로 텃밭 농사에 열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사일도 더 의욕적으로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도시에서 찌든 때를 자연의 신선한 기운으로 씻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 못지않은 자동차 판매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도 자연 덕분이었다고 자평한다.
지금 광구씨네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70년이 넘은 허름하고 낡은 한옥이지만 그는 살면서 남다른 한옥 예찬론자가 됐다. 대개 시골에 살면서도 양옥식으로 고쳐 사는 게 유행이지만 광구씨는 되도록 재래식 집 그대로 살기로 했다. 단 아내를 위해 부엌을 입식으로 바꾼 것 외에 집에 조금도 손을 대지 않았다. 다 사람이 살던 집인데 능력도 안 되면서 불필요하게 집을 고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ㄱ자 모양의 안채에는 안방과 마루와 건넌방, 그리고 부엌이 있고 ㄴ자 모양의 바깥채에는 사랑방과 창고가 있으며 밖에는 축사와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구조다.
“이 사랑방이 얼마나 요긴한지 도시 사람들은 잘 모를 겁니다. 아마 우리 한옥 구조에서 사랑방이 빠지면 별볼일 없을 거예요. 한옥은 바깥의 그 무엇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열린 구조를 하고 있거든요. 아파트 같은 집 구조에서는 시부모 모시기도 불편할 뿐만 아니라, 손님이라도 오면 온식구 생활이 다 드러나고 생활 흐름이 깨지죠. 그렇지만 이런 한옥 구조는 외부와 연결을 끊지 않으면서도 자기 생활을 흐트러짐없이 유지할 수가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한옥에는 사랑방이 백미예요. 사랑방이 있어 언제든지 손님을 맞이할 수 있고 또 사랑방이 있어 안채의 사생활이 가려지는 것이죠.”

시골에 뿌리내리기

광구씨는 도시로 출퇴근할 때도 마을 일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마을 주민으로 뿌리내리는 연습을 했다. 지금의 강화도 환경농민회가 창립되기까지 광구씨도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 퇴근 후에는 농민회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홍보물 작성 등의 일을 도맡아 했다. 올 초 강화도 환경농업농민회가 공식 발족하자 이광구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농민의 길로 들어섰다. 농민회 간사 일을 맡으며 닭 500마리 규모의 양계를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양계만으로는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지 않을 것 같아 계약직으로 틈나는 대로 자동차 영업일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나마도 그만두었다. 우선 양계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고 어느 정도 해보니까 양계만으로도 충분히 생활비를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곧 닭도 1000마리로 늘릴 계획이다.
이광구씨의 양계법은 일반 양계와 다르다. 강화도 환경농민회 차원에서 구성된 양계작목은 인천 연수구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공급하는 음식물 찌꺼기를 닭 사료로 사용한다. 강화도 환경농민회가 내건 새로운 환경농업은 이른바 ‘음식물찌꺼기를 이용한 도농 순환농법’. 도시에서 다량 배출되는 음식물찌꺼기를 가축 사료와 농사에 퇴비로 활용하고 그렇게 생산한 농축산물을 싼 가격으로 도시 주민들에게 공급함으로써 환경 문제도 해결하고 도농 직거래로 고질적인 농축산물 유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강화도 환경농민회가 이런 도농 순환농법을 꾀하는 또 다른 목적은 도시 사람들의 귀농을 더욱 촉진하는 데에 있다. 곧 농지를 살 자금을 갖고 있지 못한 도시 서민들에게 귀농과 정착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양계는 땅 50평 정도면 1000마리 정도 키울 수 있어 다른 농사에 비해 많은 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반 양계장에서 수명이 다한 폐계를 싼 가격으로 사와 유기질 사료로 키우면 일반 닭 못지않게 재활시킬 수 있어 많은 자금도 들지 않는다. 도시 주민에게는 수거비를 받고 사료로 쓸 음식물 찌꺼기를 수거해 오기 때문에 사료비는커녕 도리어 수거비라는 또 다른 수입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유기질 비료를 먹고 낳은 자연유정란을 다시 도시 주민에게 싼 가격으로 공급함으로써 판로가 안정돼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말하자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업인 셈이다.
이광구씨가 완전히 귀농하기까지는 3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당장 귀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준비 기간이 길어진 것은 일단 경제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렇다고 이광구씨는 그 기간이 불필요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만약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정착 기간이 더 빨라지지 않았겠느냐는 질문에도 고개를 젓는다.

3년여의 준비기간

“귀농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선 농사를 미리 체험해 보는 것이죠. 다음으로는 농촌 현실에 적응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 중에도 제일 중요한 것이 이웃들과 잘 어울리는 훈련입니다. 초보 귀농자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것은 농사기술 습득과 이웃과 관계를 맺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사전 경험이 전혀 없이 무조건 귀농을 했다가는 큰코 다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도 들은 얘기입니다만, 강화도 어느 마을에 경매에 걸린 농가주택을 싼 가격으로 사들인 도시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 사람은 현지 사정을 전혀 모른 채 그냥 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덥석 사놓고 본 겁니다. 그리고 이사를 갔는데, 집 앞의 길이 없어진 거예요.
알고 보니 도로가 다 임자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동안 식구처럼 살던 전 주인에게는 도로로 쓸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낯선 사람이 들어오니까 자기네 땅을 다시 접수해 간 겁니다. 어쩔 수 없이 땅을 사려고 하니까 땅 값이 자기가 산 집보다 몇 곱절 비싼 겁니다. 왜냐, 도로의 땅을 사려니 땅이 도로만큼만 등록돼 있는 게 아니라 도로가 포함된 주변의 땅까지 다 포함돼 있었던 것이죠. 자기가 산 땅보다 더 넓은 땅을 살 여력이 있었겠습니까? 결국 그 사람은 쫓겨나다시피 다시 나와야 했다고 합니다.
농촌은 도시와 다르게 아직도 공동체 문화가 많이 살아 있어 이웃이 한 식구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법이나 경제 논리보다 정(情)이 먼저 통하는 곳이기 때문에 낯선 외지인에게는 기본적으로 경계심을 갖게 됩니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일종의 텃세라고도 할 수 있지만, 간단하게 비유하면 자기 집에 낯선 사람을 들일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일단 귀농을 하려면 이웃 관계를 잘 맺어두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3년이라는 준비기간을 통해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급한 귀농보다는 되도록 사전체험 기회를 갖는 것이 귀농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보통 귀농자들이 제일 먼저 걱정하는 것은 땅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다. 그런데 시골에서 땅을 사는 것은 도시에서와는 달리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므로 매우 조심해야 한다.
사실 법 절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웃관계를 잘 맺는 일이다. 보통 시골에선 낯선 외지인이 땅을 사려고 하면 투기꾼으로 오해하여 시세보다 비싸게 부르곤 한다. 그리고 시골에선 위의 예처럼 법보다도 정(情)이 우선이어서 법으로도 되지 않는 일이 많다. 때문에 귀농하기 전에 땅부터 사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좋다. 일단 이광구씨처럼 임대 땅이나 집을 얻어 정착을 한 뒤, 농사도 익히고 마을 사람들과 가족처럼 좋은 관계를 맺은 다음 이웃의 도움을 얻어 천천히 땅을 구입하도록 한다. 확실히 농사 지을 의지가 있고 마을 사람으로 인정받으면 얼마든지 시세보다 더 싸게 좋은 땅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임대로 땅이나 집을 구할 때에도 무턱대고 아무데나 연고 없이 돌아다니지 말고, 연고가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거나, 그것조차 어렵다면 전국귀농운동본부(02/742-4611)와 같은 귀농 관련단체나, 농협에서 운영하는 ‘돌아오는 농촌’(02/397-6459)의 하나로 복덕방 같은 곳의 협조를 얻어 알아보는 게 바람직하다.
   
귀농 5개월째, 부업거리만 갖고 시골행
충남 아산 이동범씨네
    충남 아산의 이동범씨(36)는 귀농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부업거리만 남겨 둔 채 전격적으로 농촌으로 내려갔다. 농사를 짓는 것은 아직 텃밭에 불과하지만 도시로 출퇴근하지 않고 집에서 원고 집필과 몇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3분의 2 귀농이라 해야 정확할 것 같다.
“귀농을 서두른 것은 저보다는 아내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결혼하고부터 귀농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들 때문에 계획보다 빨라졌지요.
아내는 두 아이를 매일 어린이집에 보내는 일로 걱정이 많았습니다. 걸핏하면 병을 얻어오고 무엇보다 텔레비전과 콘크리트 박스 속에서는 도저히 아이들에게 맑은 정서를 키워줄 수 없다는 걱정이 컸던 모양입니다. 도시의 아이들은 유별나게 엄마에게 의존합니다. 떼만 부리는 거예요. 애들이 혼자 맘껏 뛰어 놀 곳이 없기 때문이죠. 이렇게 되면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도 피곤해집니다.
다음으로 아내가 더 귀농을 재촉한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제 벌이도 시원치 않은데 워낙 없이 결혼하여 빚이 많다 보니 빚으로 빚을 메우고 빚으로 먹고 사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 생활에 지친 거죠.
그러던 차에 시골에 계신 처 조부모님의 건강이 안 좋으셔서 장인어른 댁으로 이사를 가시고 시골집이 비었습니다. 전세 보증금을 빼서 빚을 청산하고, 직장도 그만두고 한 달에 50만원 정도 벌 수 있는 부업 거리만 갖고 얼른 내려온 겁니다. 당장 농사로 돈을 벌 자신은 없고, 시골 생활을 계산해보니 얼추 50만원이면 충분히 생활을 꾸려나가겠더라구요. 귀농한 지 이제 5개월째 접어드는데, 저희 가족은 모두 대만족입니다.”
이동범씨 가족은 내려오자마자 제일 먼저 집 수리를 시작했다. 우선 집을 고치는 데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되도록 모든 걸 내 손으로 고치자, 둘째 한옥의 기본구조를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살리는 방향으로 고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동범씨 집은 재래식 화장실과 재래식 부엌조차 그대로 살려 쓰고 있다.
현대화시키기보다 오히려 옛날 것들을 다시 살려내려고 애썼다. 우선 전통 구들 난방을 다시 살려놓았고, 두 개의 부뚜막 위에는 가마솥을 사다 얹어 놓았다. 마당 한켠에 있는 수동 펌프도 손질해서 쓰고, 사랑방이며 창고며 가축 울타리 등을 직접 수리해 원래대로 고쳐 놓았다.
유일하게 현대화시킨 것이라면 안방과 건넌방에 설치한 보일러인데 그것도 기름과 장작 겸용이며 또한 구들 난방도 그대로 쓸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평소에는 그냥 장작 구들을 때지만 겨울에는 아이들 때문에 금방 따뜻하게 데워지도록 보일러를 설치한 것이다. 그것도 급할 때만 기름으로 데우고 되도록 장작을 쓴다. 시골에서는 땔감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 한겨울에도 기름값이 월 4만원밖에 안 든다고 한다.
단지 이동범씨가 후회하고 있는 것은 수리비 중에 꽤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마당 처마 공사였다.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기존 처마에 플라스틱 함석을 덧붙여 처마를 늘리는 공사를 했는데, 혼자 하려니 엄두가 안 나 사람을 썼다. 그런데 공사하는 것을 살펴보니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괜히 겁먹어 비싼 품값만 들였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어쨌든 지금도 틈나는 대로 여기저기 손을 보고 있는 이동범씨는 자신의 경험을 놓고 볼 때 귀농자들이 쓸데없이 많은 돈 들여 통나무집이다 흙집이다 새 집을 짓기보다, 낡은 집이지만 아주 싼 값으로 농가를 구해 수리해가면서 살면 돈도 적게 들고 사는 재미도 커진다고 한다.
다음으로 이동범씨가 한 일은 아이들을 위해 마당 한켠에 모래를 깔아 간단히 시소를 만들고, 아이들 친구 삼아 닭이며 고양이 강아지 토끼 등을 사오고 우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약 200평의 텃밭 일구는 일도 이동범씨의 몫이었다. 이제는 그 밭에서 나는 것으로 찬거리는 해결하고 남는 것은 친구들,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 그렇게 이동범씨는 텃밭 정도로 올해 농사 연습을 마치고 내년부터는 마을 사람에게 빌려 준 1500평의 논을 직접 지어볼 계획이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농사에 익숙해지면 무공해 유기농사도 시도해보고 능력이 닿으면 임대 땅이라도 빌려 차츰 농사 규모를 늘릴 요량이다.
이광구씨나 이동범씨와 달리 집도 직장도 도시에 있지만 주말마다 농사를 지으러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름하여 주말 귀농의 형태다.
   
주말농사로 귀농 맹훈련 출판사 편집부장 김장환씨네
    토요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경기도 안산으로 농사를 지으러 가는 김장환씨(32)는 만 5년 경력의 소나무 출판사 편집부장이다. 그리고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고 있는 아내 정영화(32)씨는 전국귀농운동본부 (사단법인) 귀농학교 1기 출신. 아내는 결혼 전부터 경기도 포천에서 300평의 밭을 빌려 일찍이 주말농사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다. 현재 안산에서 두 부부가 짓고 있는 농사도 재미삼아 해보는 주말농사라고 하기 어려운 밭 200평 규모. 보통 도시 사람이 주말농사를 한다고 하면 잘해야 10평 안팎인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들의 농사는 프로 농사꾼 수준이다.
“저는 진작부터 귀농할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차에 귀농학교 출신에 주말농사 경험이 있는 아내를 만나 먼 장래의 귀농이 아닌 현재 귀농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귀농이라고 하니까 우스운데요, 주말농사도 귀농에 끼워준다면 저도 어엿한 귀농자라 하겠네요. 어쨌든 아내와 저는 주말농사를 레저의 의미보다는 진짜 농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귀농연습도 할 겸 무리해서 조금 큰 평수를 마련했지요. 10평짜리 주말농사를 하는 친구 얘기가 그 정도로는 농사기분도 안 나고 긴장감도 떨어져 일주일에 한 번 농사 지으러 가는 일마저 잊어버리거나 어쩌다 가보면 순 잡초밭이 돼 있어 더 의욕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큰 땅 빌려 친구들과 함께 경작

아내가 300평씩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어 농사에 대한 두려움도 적었고, 이왕 하는 거 조금 부담을 느낄 정도로 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해보니까 일주일 내내 머리 속에서 밭이 떠나지 않을 정도로 매일 밭에 가보고 싶더라고요. 저희가 심어 놓은 게 20여 가지 되는데 그중 열매 맺히는 작물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요즘 수박이 한참 자라고 있는데 처음엔 콩알만한데도 어른수박처럼 줄무늬가 있더라구요. 꼭 애기 얼굴에 어른 수염이 달린 느낌이 들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또 그 모양이 얼마나 앙증맞고 예쁜지…. 하여튼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수가 없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가보면 고놈들이 얼마나 쑥쑥 자라는지, 저희는 따먹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통 주말농장 간판을 건 곳을 가면 한평에 1만원 가량 하기 때문에 임대료 때문이라도 도저히 큰 규모를 경작할 수 없다. 그래서 김장환씨가 생각해낸 것이 도시 근교의 노는 땅을 빌려 직접 소작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곳은 작은 평수가 안 나오기 때문에 우선 큰 땅을 빌리고 나머지는 주변 친구나 주말농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재분양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 800평이나 되는 땅을 선불을 주고 빌렸다. 일단 빌린 뒤 그 넓은 땅을 어떻게 다 처분할까 걱정을 했는데 친구들 사이에 이리저리 입소문이 나서 김장환씨네가 지을 200평을 떼고 나머지를 다 재분양했다. 그리고 땅 한쪽에 원두막처럼 비닐하우스를 짓고 안에 큰 평상을 만들어 누구라도 쉬어가며 일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김장환씨의 첫 고민은 매일매일 격무에 시달리느라 주말만큼은 푹 쉬어야 하는데 그 시간을 내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막상 부딪쳐보니 푹신하고 따뜻한 흙을 맨발로 밟으며 신선한 공기와 살아있는 생명들과 마주치다 보면 저절로 피로가 풀린다고 한다.
그래서 김장환씨는 아마추어 농사꾼이지만 자기 밭에는 절대 농약과 화학비료를 안 주기로 했다. 주말 농사를 지어 돈 벌 것도 아닌데, 벌레가 먹으면 어떻고 잡초가 좀 밟히면 어떠냐는 생각이다.
   
주말마다 고향 찾는 효자농사꾼 교사 오충식씨네
경기도 안산공고의 교사로 있는 오충식씨(41)는 주말마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이 계시는 청주에 간다.
“저는 딱히 귀농이나 농사를 짓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주말마다 부모님 농사를 도우러 다니기 시작한 지 벌써 15년이나 됐는데, 그 때는 귀농이라는 말도 없었어요. 단지 장남인 제가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른 체할 수도 없고 또 언젠가 고향에 내려가 농사지을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시작한 것이죠. 제가 그렇게 하다 보니 동생들도 주말이면 다 모여듭니다. 물론 일이 바쁘거나 몸이 안 좋으면 건너뛰기도 하지만 서로 분담을 해서 한 사람도 안 오는 일은 없도록 합니다.
차로만 3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매주 왕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어차피 일요일이면 아이들 데리고 나가야 하는데 대신 부모님 계신 곳으로 가는 거죠. 그렇게 농사 지으러 가면 여러 가지 부수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먼저 부모님만 남겨 두고 도시로 떠난 죄송한 마음이 약간은 위안받을 수 있고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효도와 자연학습을 시킬 수 있지요. 또 수확한 것으로 우리가 먹을 쌀과 찬거리 과일 등은 다 해결합니다. 유원지에 놀러가는 것보다 돈도 적게 들고 가족간에 화목을 돈독히 할 수 있는 등 장점은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남들은 명절에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고향을 주말마다 농사일 도우러 내려오는 자식들이 부모님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고향에 내려가면 부모님만 반겨주는 것이 아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마주치는 고향 어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 자식 맞이하듯 정겹게 두 손을 꼭 잡으며 반가워하신다. 바로 이 맛 때문에 오충식씨는 고향을 향한 차가 충청도 경계선만 넘으면 벌써부터 가슴이 뜨뜻해져 온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오충식씨에게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그러지 않아도 노인들만 남은 고향이 항상 뒷머리를 잡아끌었는데, 아버님이 먼저 떠나시고 어머님만 홀로 남아 한층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 후로는 더 열심히 고향을 찾지만 무거운 마음은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오충식씨는 귀농도 중요하지만 귀농이 농사 그 자체에만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우리 고향을 지키는 운동으로 나아가길 바라고 있다.
여기 소개한 네 가족의 귀농방식이 귀농의 정답은 아니다. 다만 귀농이란 단순히 돈벌이의 새로운 대안이 아니며, ‘안 되면 농사나 짓지’ 식의 패배적인 발상에서 결정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확실히 해두고자 한다. 이제 귀농의 개념을 돈에 의존한 도시의 소비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기 먹을 것은 자기의 힘으로 해결하는 생산적인 삶으로 전환하는 적극적인 선택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생각을 갖고 이광구씨네, 이동범씨네, 김장환씨네, 오충식씨네 네 가족처럼 각자의 환경에 맞는 다양한 귀농연습을 통해 준비된 귀농자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 정답 없는 귀농의 성공 비결이다. 클릭>농부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