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 세계에도 나름대로 품격이 있어서 건달, 깡패, 양아치로 나뉜다. 건달은 풍류도 있고 나름 의리와 정의를 지킨다고 알려져서 뒷골목 세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개나 소나 자기는 건달이라고 생각한다.
건달의 특징은 좋은 옷 입고, 좋은 곳에서 자고, 좋은 차 타고, 좋은 술 마시고 잘 노는 것이다. 단 본인만. 가족까지 책임을 지지는 못한다. 이유는 한국 건달은 아직 미국의 마피아나 일본의 야쿠자 정도의 규모가 되지 못하고 영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은 폼을 잡을 수 있지만 가정까지 책임을 지기가 어렵다.
깡패는 단순히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오직 주먹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인간들이다. 양아치는 깡패처럼 깡도 힘도 없으면서 깡패 흉내는 내고 싶어 비열한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류를 말한다.
나는 한국 교회의 신앙 형태에서 조폭의 행동양식과 비슷한 점을 발견한다.
우선 호칭 문제이다. 한 번은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친구가 내게 물었다.
“야! 너희 기독교에 UFO라는 단체가 있지? 도대체 그게 뭐냐?”, “UFO라니?”
“그거 있잖아? 뭐 대학생 선교회인가 뭔가 하는?” 나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아! UFO가 아니고 University Bible Fellowship, UBF!”
친구의 이야기는 이랬다. 자기 강의를 듣는 여학생 하나가 신경쇠약을 앓다가 자살을 했는데 그 학생의 일기에 “이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충격이 어쩌꾸 저쩌구........” 하는 내용이 있었단다. 이 여학생은 UBF의 회원이었는데 같은 선교회의 회원들이 문제의 일기 내용 때문에 항의(?)성 방문을 왔단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항의의 내용이 아니라 항의의 형식이었다. 이 교수는 얌전한 젊은이들의 방문을 받고 처음에는 유족들인 줄 알고 정중하게 모셨단다.
“실례지만 고인과는 어떤 사이들이신지?” “ㅇㅇㅇ는 저희들의 자매입니다.”
“자매라니? 한 분이 아니고 여러분들인데 어떻게 자매가 되시는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자매입니다.”
“뭐요? 혈연적 자매라면 혹시 내가 댁들과 대화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지만 종교적 관계의 사람들과는 내가 할 말이 없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형제자매로서 마땅히…….”
“그런 관계는 당신네들 조직 안에서 내부적으로 성립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회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관계가 아니오.” 라고 하고 쫒아버렸단다.
친구의 논리는 특정 신앙체계 안에서 서로를 형제자매로 규정하고 그 논리를 바깥 세상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은 조폭에서 형제를 맺은 사람들이 문제가 생겼다고 시비를 거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럴 듯한 말이었다.
다음은 행동 양식이다.
건달의 특징은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것인데 ‘은혜가 된다면’ 무슨 짓이든 가리지 않는 개신교 풍토와 비슷하다. 물론 그것은 본회퍼가 지적한 ‘싸구려 은혜’에도 미치지 못하는 ‘불량품 은혜’이지만 일단 ‘Feeling Good'이면 만사가 OK이다.
끊임없이 감동거리를 찾는 개신교는 특별한 간증 거리를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즉 닳고 닳은 간증으로 귀가 무뎌진 대중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절도, 사기 따위의 시시한 죄로는 안 되고 깡패, 흉악범 등등 자극성이 있어야 관심을 끌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김태촌, 조양은 같은 거물들은 회개를 해도 조그만 개척교회 목사를 찾아가서 하지 않고 반드시 용기 형님 같은 거물을 찾아가서 한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그래야 피차간에 때깔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 거물들이 회개를 한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주선해야 옳겠지만 '모로 가도 은혜만 되면’ 되는 개신교 풍토에서는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고 아무개를 회개 시켰다는 선전 효과가 필요할 뿐이다.
이 점에서 가톨릭은 상당히 훈련이 잘되어서 여간해서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과거에 하도 엄청난 실수, 아니 악수를 많이 둔 역사적 경험이 많은 탓이기도 하지만 가톨릭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은혜 보다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교회라는 제도에 더 의지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만나는 사람 중에 가장 곤란한 사람은 양아치 기질을 가진 사람이다. 양아치 기질은 신분이나 지위와 상관이 없고 심지어 목사, 승려, 신부가 되어도 양아치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 승려와 신부는 몰라도 내가 속한 목회자 세계에서는 양아치를 많이 보았다.
양아치란 무엇인가? 사람은 누구나 급하면 비굴해질 수 있지만 나중에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양아치는 그런 경우에도 떳떳하게 자기 합리화를 하는 인간이다. 양아치의 특징은 생각이 얇고 이해관계에 민감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교양과 신앙으로 포장되어 있으면 잘 분별할 수가 없다. 결과를 보고 나서야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객관적 시각을 통하여 좌표수정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을 계속 합리화하다가 보면 개인의 인격과는 전혀 관계가 없이 사회적으로 양아치가 되어 버리는 수가 있다. 예를 들면 ‘말짱 황씨’의 시조가 되어 버린 황우석 박사는 과학계의 양아치가 되어 버렸고 종교계에서는 큰 목사님이 양아치가 되어 버렸듯이. 그래서 예수는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고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시지 않았던가?
요즘 많이 논란이 되고 있는 과격성과 폭력성 그리고 저속함으로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극우 막장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베’는 온라인의 양아치 집단이다. 그들은 인륜과 천륜을 모두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누가 더 쌍스럽고 거칠고 꼬였는지 내기라도 하듯 마구 배설을 한다.
일베는 저속함과 파괴적인 이미지로 스스로 무장 하지만 기독교 양아치는 거룩과 권위로 정교하게 치장한다. 일베가 사용하는 표현들이 원초적, 말초적, 감정적, 살벌, 무지막지, 무논리에 단순, 과격, 무식의 3 박자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기독교 양아치의 표현은 고상, 부드러움, 점잖음이다. 그러나 전자의 모습이 경악스럽고 공포스럽다면 후자의 이런 겉모습들은 역겹고 어색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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