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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희돈 장로 간증글

맑은샘77 2013. 11. 1. 15:52

최근에 만난 이희돈(미국명 데이비드 리·48) 세계무역센터협회(WTCA) 부총재는 매우 독특한 캐릭터의 소유자였다.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대 유학생 시절 그는 생활비의 90%를 선교사 후원금으로 보내는 대신 자신은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며 한 달을 30달러로 버텼다. 아직 받지도 않은 교수 월급에서 미리 십일조를 떼어놓는가 하면 교수직을 버리고 멕시코의 오지 선교사로 훌쩍 떠나기도 했다.

하나님은 죽음도 비켜나게 하셨다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WTCA 부총재에 오른 그는 한국보다 세계 경제계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출신인 그는 1998년 칠레 산티아고 총회에서 WTCA 역사상 최연소 세계이사로 선출돼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WTCA에서 일한 지 5년여 만의 일이다. WTCA는 1968년 순수 비영리 비정치 민간경제단체로 출발해 최근에는 개발도상국의 중소기업 육성, 교육 지원 등에 역점을 두고 각종 국제적인 공익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 협회는 현재 세계 91개국 294개 WTCA 회원과 75만여개 기업회원을 두고 있다.

이 부총재는 미국 최대 인명사전 '마르퀴스 후즈 후'에 미국을 움직이는 주요 인물로 등재되기도 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초빙교수이기도 한 그는 2001년 9·11테러 당시 생존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1993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폭탄테러 때도 살아남았다.

"2001년 9월11일 오전 7시발 뉴욕행 비행기를 타기에 앞서 커피를 마시고 싶어졌습니다. 그날따라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사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어 할 수 없이 얼음이 가득 담겨 있는 딸기주스를 사 마셨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배가 아파왔습니다."

그는 뉴욕공항에 내리자마자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뛰어가야 했다. 이 때문에 제때 WTCA 본부가 있는 세계무역센터(WTC)에 도착하지 못했다. "택시를 타고 가던 중 WTCA 수석부총재에게 전화를 했어요. 조금 늦기도 하고 점검할 사항도 있었기 때문이죠.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 터널을 빠져나가던 순간이었어요. 갑자기 '불이야! 나가야 할 것 같아'라는 외마디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습니다."

그는 전화가 끊어지자 가끔 있는 훈련이라고 생각했다.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것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것. WTC 첫번째 건물에서 불길이 치솟고 잔해들이 쏟아져내렸다. 그가 탄 차는 갑자기 몰려든 소방대원들과 장비로 인해 WTC 첫번째 건물과 네번째 건물 사이에 갇히게 됐다. 바로 그 순간 여객기가 낮은 고도로 전속력으로 날아오더니 또다른 WTC 건물을 덮쳤다. "'이것이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보, 안녕!'이라는 말을 되뇌었어요."

다행히 WTC 건물이 빨리 무너지지 않아 그가 탄 차는 소방시설에 의해 통제되던 반대편 차선을 넘어 방금 전 나왔던 터널 속으로 대피할 수 있었다. 이어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그 뒤 WTC 건물은 완전히 붕괴됐고 터널에 남아 있던 차들마저 모두 부서졌다. 만일 공항 화장실에서 지체하지 않았더라면 그 시각 그는 WTCA 회의실에 있었을 것이고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최고의 절정기에 선교사로 떠나고 싶다

이 부총재가 하나님의 일과 인간의 일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궁금해졌다. 그의 대답은 단순명료했다. "5분이상 고민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일을 기쁘게 감당하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면 됩니다. 해낼 수 있는 힘은 그분이 주시니까요." 그는 "모든 기독인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면서 "'하나님을 빚지게 하라'는 성경적 재정관도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꼭 필요한 것만 빼고 자신에게 있는 재정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면 하나님이 몇 배로 갚아준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주일이면 다른 일정을 잡지 않고 현재 장로로 섬기고 있는 워싱턴성광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또 교회 성도들을 위해 주차 봉사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서 떼지 말라고 한 성경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그는 영어 스페인어 등으로 된 성경구절과 간단한 설교를 읽고 외우기도 한다. 아울러 아내 및 자녀들과 최대한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애쓴다. "결혼한 이후 단 한번도 이·미용실에 간 적이 없어요. 아내가 늘 머리를 깎아주었습니다. 아내와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 부총재는 최고의 인생 절정기에 다다르게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선교사로 변신, 하나님이 지명하는 땅을 향해 떠날 예정이다. 또 400∼500명의 선교사들이 승선해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서둘러 선교선도 구입하려고 한다. "하늘을 바라보고 운 적도 많아요. 선교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곤 허탈하기도 했어요. 하나님은 그때 위로해주시며 하늘의 뭇 별들을 바라보게 하셨죠. 저를 통해 복음을 전할 자들이 '별 곱하기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이 부총재는 마지막으로 기독인이라면 결코 좌절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하나님의 응답은 가끔 늦게 올 때가 있어요. 그러나 반드시 응답이 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만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이희돈 장로는 세계무역센터 부총재다. 15분 단위로 일한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면서 바쁘게 일하면서도 4시 반 새벽기도는 반드시 한다. 매일 2시간 이상 기도한다. 7시까지는 반드시 새벽기도하고. 모든 공예배는 다 참석한다. 금요철야 역시 어디 가도 빠지지 않는다. 하루도 불편하게 사는 훈련을 안하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또 1년 중 10분의 1은 반드시 해외선교를 한다. 중국에서 만리장성 앞 방이 25개짜리 방이 있는 호텔에서 투숙하기도 하고, 선교지에서 땅바닥에서 자다 일어나기도 한다. 어쩔 때는 최고급 호텔에서 잤는데 땅바닥에서 자다깨는 꿈을 꾸면 억울하기도 했다. 어떻게 이렇게 사는데 축복하지 않으실 수 있을까? 1959년 생이고 외대출신이다. 미국에서 박사를 한 후에 한인 1세인데 불가능해 보이는 미국 주류 사회 진입에 성공했다. 믿음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이런 믿음을 훈련하기 위해 스페인 유학생활을 시작할 때 아프리카 케냐에 있는 선교사님을 위해 수입의 90%를 하나님께 드리는 훈련을 했다. 모든 생활에서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한다. 무작정 기도하고 무데뽀로 밀어붙이는 믿음으로 살아온 것이 그의 인생이다. 그는 박사학위를 한 후에 무작정 평신도선교사로 헌신했다. 월급을 받으면서는 십일조를 월급 받기 전에 전달 월급에 비해 훨씬 더 많이 드린다. 조용기 목사님에게 하나님을 빚지우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다. 믿음으로 십일조를 드렸는데 그 결과 매년 20-30%씩 월급을 더 받았다. 사람은 연악하다. 자기같이 보잘 것없는 사람을 통해 정말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세계무역센터 직원 하나가 이희돈 장로가 15분 단위로 일할 정도로 바쁜 사람인데 새벽기도를 위해 2시간 30분을 쓰는 것을 뭐가 뭔가 있기는 있나보다 했다. 그래서 전도했다. 나는 바쁜 사람이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이시지 않는다면 하루에 바쁜 시간 2시간 반씩이나 내겠느냐? 하나님을 믿어라. 그렇게 전도했더니 그 직원은 지금 교회에 잘 나간다고 한다.

 

그는 스페인 마드리드대학에 유학갈 때 어머니께서 원웨이티켓만 끊어주고 6개월치 생활비를 달라고 했는데 편지에 달랑 종이한장을 넣어주었다. 그 종이에는 네 조상의 하나님을 의지하라였다. 아무 말씀도 안 하셨기에 미리 1달라도 준비하지 못했다. 공항에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그때부터 거의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공부했다. 공부는 잘 하지 못했고 성적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전도를 대단히 열심히 했다. 전도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러다 한번은 배낭을 메고 영국의 옥스포드대학에 갔더니 여기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학장을 만나러 갔다. 약속이 되어 있냐고 비서가 말하는데 위에 있는 분의 주선으로 왔다고 했다. 학장을 만나니 나는 약속한 일 없는데 무슨 일로 왔냐고 했다. 그래서 God의 주선으로 왔다. God! 그랬더니 기가 막혀서 웃었다. 그는 자기에게 옥스포드가 투자해야 한다. 자기 같은 인재를 빼앗기면 안 된다.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고 했다. 그랬더니 하루 있어보라고 하더니 하루만에 전액장학금을 주었다.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다. 주소가 없었다. 당시 도로 중앙선 분리대같은 곳에서 잤다. 당시 전도를 많이 했는데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은 현찰거래를 하지 않는다. 믿으라. 그럼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것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네 주제나 파악해라고 하는 식이었다. 그런 이희돈씨가 옥스포드에서 전액장학금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학교측에서는 너는 성적도 좋지 않은데.. 공부도 잘 못하는 것 같은데 하면서.. 요구한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 학비는 해결되었는데 생활비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반대편 캠브리지였다. 캠브리지대학에 갔더니 캠브리지 미션이라는 곳이 있었다. 들어갔다. 여기서도 똑같이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나한테 투자해라. 나같은 사람에게 투자 안하면 어디에 투자할거냐? 중국어를 하냐고 물어봤다. 못하지만 중국 문자는 안다고 했다. 그랬더니 중국어 성경을 꺼내어 해석해 보라고 한다. 천자문에서 500자 정도는 알았던 것같은데 성경은 많이 봤으니까 한자는 대강 알고 줄줄 해석했다. 그랬더니 놀라서 그럼 중국선교 담당자로 일하는 조건으로 생활비를 대주기로 했다. 결국 그렇게 해서 옥스포드에서 공부했다. 옥스포드에서 공부하려면 돈이 많든지 아주 공부를 잘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는 공부를 잘 하지 못했다. 돈도 없었다. 그러나 옥스포드에서 공부했다. 손학규 지사도 여기서 공부했는데 공부 잘 하셨나봐요 했더니 옥스포드를 공부 잘 해서 가나 그러더라. 우리는 옥스포드에서 공부했다는 말을 하지 말자고 했다.

 

중남미 지역 경제학을 공부했는데 그게 뜰 줄 아무도 몰랐다. 나프타때문에.. 29살에 미국 대학교수가 되었다. 교수로 임용되자 한마디 하는데 네가 실력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니라 희소가치 때문에 되었다. 네가 5개국어를 하고 다른 사람이 안 하는 분야의 공부를 했다. 그래서 교수직을 주니까 앞으로 열심히 해라.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나중에 그 학교에서 최우수교수로 평가받았다.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니까 된다.

 

세계무역센터회장은 미국에서 전설적인 인물이고 83세 노인인데 결혼을 공식적으로 5번 했다. 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살았다. 월급이 1억달라(1000억원)다. 10년 동안 이런 거물급 인사 한명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어느 날 내 기도가 달라졌다. 나는 1년에 200만불(20억)을 헌금한다. 사업가가 아닌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헌금하는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나는 내게 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 나는 능력이 30정도 되는 것 같다. 그에 비해 나는 부족하다. 그런데 어느날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회장 말이 나는 네가 다 좋은데 한가지가 맘에 안 든다. 왜 나를 쳐다볼 때 불쌍하다는 눈으로 보냐? 어떻게 알았지? 그 회장의 말이 자기는 자기 능력의 80를 자기를 위해서 쓰고, 20만 다른 사람과 일을 위해서 쓴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마자 기도가 달라졌다. 하나님, 저를 쓰세요. 저는 능력은 30밖에 안 될지 모르지만 제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세계무역센터수석부총재를 뽑는데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아내가 자기가 될 것을 믿었다. 총재는 자기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후보를 추천하는데 반대파대표가 나를 지목하면서 추천했다. 그 말을 듣고 자기네가 분열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총재가 무기명으로 다 자기를 밀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 바람에 전원 찬성으로 자기가 되었다. 두번째 임기에서는 다들 떨어뜨리려고 했다. 그런데....

출처 : 1년만미치자(MD) 사관학교
글쓴이 : 기도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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