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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삯군 목자인가 선한 목자인가?

맑은샘77 2013. 7. 6. 20:29

당신은 삯군 목자인가 선한 목자인가?

 

제자훈련을 통한 교회가 이루어야 할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질문에 몇 가지 가정을 해볼 수 있을 겁니다. 주님의 지상 명령인 제자 삼으라는 대위임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훈련이라는 형태를 취하여 평신도들을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몇 년을 시도해 보다가 표면적으로 어떤 결과가 없을 때는 슬그머니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하여 시행을 해 봅니다. 그것은 자신의 몸에 맞추어 입지 않는 기성복이라서 결국은 몸에 맞지 않아 또 다른 기성복으로 갈아입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가 일관성 있는  교육 목표를 향해 나갈 수가 없는 경우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제자훈련을 다 시행해본 것으로 치부하고 제자훈련을 한물간 기성품으로 취급하며 폄하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해아래 무슨 새것이 있다고 새것을 찾아 헤매는 오늘의 목회 현장의 단면을 보게된 것같아 필자는 기분이 찜찜합니다. 왜냐하면 제자훈련의 진수를 모르고 수박 겉핱기식의 미세한 시도를 가지고 주님이 제시한 목양방법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훈련의 유일한 목표가 무엇인가?
목회자가 제자훈련의 궁극적인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지 못하면 중도에서 포기하거나 좌절을  경험할 것입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교회가 수적 부흥되는 교회성장쪽으로 기울여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물론 주님의 시행한 훈련의 방법을 준수하면서 사역을 시행한다면 부흥의 열매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12명의 소수의 사람들과 3년을 거치면서 3년동안은 수적 증가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일정한 시간을 소수의 사람들에게 투자하여 그들로 피값으로 사신 교회의 양무리를 먹이고 치도록 위임하셨습니다. 그것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위로부터 공급된 주님의 부활의 영으로 초대교회가 탄생되고 내주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재생산을 위한 양치기로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재생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재생산에 투입되는 평신도 지도자들을 작은 목자로 세워서 주님이 맡긴 양들을 치게 하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의 유일한 목표는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의 마인드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목자마인드 작업이 제자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선한 목자로 어떤 목양의 철학을 가지고 사역을 하였는가를 먼저 체험하고 보여주며 가르쳐서 그것을 실행하도록 평신도를 주님의 제자로 훈련해야 하는 것이 제자훈련 사역의 목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평신도 모두를 양치기로 부르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시몬 베드로에게 주님을 얼마나 사랑한가를 확인하시면서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위임하십니다. 이 때 양은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양치는 목자는 주님을 사랑하는 동기에서 출발되어야 하고 그 양치는 원리는 잃은 양을 찾아 그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와 잔치를 벌리고 기뻐한 그분의 심정을 실현하는 하는 것입니다.

필자는 분당에 개척한 이래 주님의 핏값으로 사신 교회를 재생산을 위한 전략적 목회 방식을 그대로 제자교회의 비전으로 제시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10여명의 작은 목자를 배출하고 이들과 함께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목표를 세운 만큼 눈에 보이는 큰 열매들은 없지만 주님의 마인드를 가지고 함께 나아갈 평신도 지도자를 세워가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지금 교회를 섬기고 있는 일군들은 제자훈련을 통하여 세움을 받는 평신도 지도자들입니다. 훈련을 받지 못한 분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주님의 목자의 마음을 전달하는 훈련을 다양하게 실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교회를 향한 비젼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미숙하고 연약하지만 주님의 제자들이 세계를 복음화 했던 주역들임을 알게 되면 분명히 주님의 교회를 위한 소중한 기둥들인 것입니다.   

제자훈련에서 다루어져야 할 주님의 목자 상을 살아내야 합니다.
저희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연구하는 목회자 모임에서 함께 고민하며 이 문제를 나누고 있음을 감사합니다. 제일 큰 과제는 목회자 스스로가 주님의 방식과 철학으로 목회의 방향이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욕망은 가지고 있지만 아직 자신도 준비되거나 훈련되지 못한 부족함 때문에 자신감이 없어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모든 프로그램을 적용한다고 할지라도 같은 결과가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제자훈련을 통하여 주님의 길을 먼저 발견해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목회자가 먼저 주님의 도구로 쓰일 수 있는  복음의 그릇으로 훈련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연구원들의 간증은 성서 안에서 주님이 제시한 그 초점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바로 제자훈련에 대한 마인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모든 것이 주님의 목회 방식으로 변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하는 제자훈련의 원리인 것입니다. 먼저 목회자 스스로가 충성된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충성된 자를 제자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훈련 내용에 포함해야 할 작은 목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에스겔서 34장에서 목자상에 자질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화들은 에스겔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이상을 확실히 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목자장되실 그리스도를 보여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삯군목자들을 언급하면서 이스리엘 지도자들을 통렬히 지적하고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양에게 무관심하고 자신의 배만 채우는 목자는 훈련되어야 합니다.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않았던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지 않고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을 다스렸다는 것입니다. 목자로써 전혀 자질이 없는 지도자  가 양을 맡아 목양을 하다보니 양들은 다 흩어지고 그 양들은 들짐승의 밥이 되고 유리 방황하는 양들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주의 일을 맡은 직분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양들을 치는 것이 아니라 양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양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배를 채우며 직무를 유기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 이런 무자격 목자들이 존재한다면 주님의 제자로 훈련되어 양치기를 잘 하는 작은 목자를 삼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선한 목자는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목자장 되신 주님께서 그 양들을 삯군 목자들의 손에서 찾으신 다는 말씀입니다.  잃은 양을 찾으시던 주님은 지도자들이 잃어버린 양들을 다 찾아 건져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겔34:10)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지시고 그들을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로 먹이되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 야들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겔34:13-14) 그렇습니다. 주님의 양을 치는 모든 직분자들은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양들을 위하여 푸른 초장인 생명의 떡상으로 인도하며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 성장하도록 영을 치고 먹이는 작은 목자로 훈련되어야 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떤 대가라도 지불합니다.
겔34:16에서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강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분이 바로 이 땅에 성육신 하시고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어린양으로 희생하시고 부활의 영으로 살리는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 안에 내주 하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치유하시며 상처를 싸매시며 병을 고쳐주시는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제자훈련은  우선 평신도가 이런 한 주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치료하심과 능력주심을 체험하고 그것을 배우고 훈련하여 목자의 그 마음으로 변화되어 주님의 양들을 다루는 작은 목자로 세워야 합니다. 마치 부모가 어린이를 놀이터에 놀게 한뒤 그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보호하는 것처럼 목자는 양떼를 생각하며 양을 치는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필립 목사님은 시편 23편의 다윗의 체험을 이해하기 위하여 양을 직접 쳐보았습니다. 양들의 많은 기질과 속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들은 방향감각이 없는 동물입니다.  갈 길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목자의 인도가 없으면 살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양은 방어 기제가 없습니다. 흉한 짐승들의 공격을 받으면 그냥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양은 고집이 셉니다. 오래된 양은 텃새를 합니다. 면역체가 약해서 자주 병들게 됩니다. 이런 속성이 우리가 치는 양의 속성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주 넘어지기 쉽고 병들기 쉽고 길을 잃고 방황하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목자의 보호와 관심 속에서 성장하여야 합니다. 당신들이 치는 양들은 건강합니까?   

한 목자를 세우셔서 우리에게 표본을 보여 주십니다.
(겔34:22-23) "그러므로 내가 내 양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 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주님은 이스라엘의 삯군 목자들의 예를 들어서 이 땅에 선한 목자 되신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을 에스겔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분이 성육신 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선한 우리의 목자는 양의 음성을 알고 양은 그의 음성을 알게 됩니다. 오늘 주의 목자들이 우리에게 맡겨준 양들을 얼마나 아는가? 그들을 인격적으로 얼마나 이해하고 그들의 필요를 알고 채워주는가? 수많은 군중을 모아놓고 설교하기를 즐기는 목자들이 양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묻고 싶습니다. 필자는 목회를 하면서 체험한 것이 100여명의 성도들을 목회 하는데도 양의 개개인을 다 알지 못합니다. 양의 욕구와 그들의 필요를 다 알지 못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10:7-8)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구약시대의 모든 목자들은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만이 양으로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하여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양을 위해 생명을 버리신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 
(요10:11-15)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2)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 을 버리노라"

제자훈련은 이 주님의 양을 향한 마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 정신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를 훈련하여 주님의 양들을 돌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훈련은 바로 목자의 심정으로 양치기를 잘하도록 훈련하는 사역입니다.  진정한 목자의 마음으로 변화 받지 못한 주님의 사역자들은 오히려 양들을 병들게 하고 양들을 넘어지게 하고 주님의 목장인 교회를 혼란에 빠지도록 일만 만들어 내는 거치는 삯군 목자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목회의 현장을 주님의 목장으로 회복하기 위한 훈련을 위하여 먼저 던저야 할 질문 당신은 삯군목자입니가? 선한 목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