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료/설교학

권위 있게 설교하려면

맑은샘77 2013. 7. 6. 16:43

권위 있게 설교하려면


주님은 설교하실 때 권위 있게 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권세있는 새 교훈'이라고 하였다. 설교는 권위가 있고 권세가 있어야 한다. 권위를 가지고 권세 있게 설교해야 말씀의 역사가 나타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권위있게 설교를 할 수 있는가?


1. 설교자는 겸손히 부족감을 느껴야 한다.

습관적으로 '부족합니다'라는 식의 겸손이 아니고 또한 겸손하라 했기 때문에 겸손하려는 겸손도 아니다. 속으로는 자신이 있는데 겸손이라는 모양을 가져야 남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부족합니다'라는 것은 고등 교만이다. 자기를 깊이 살펴 자기의 단점을 찾아보면 조목조목 자기의 못난 점을 열거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한 후 이런 구체적인 못난 점을 가진 자기를 인식해야 한다. 동시에 주님이 얼마나 크심을 헤아려가며 자기와 비교하게 되면 진정 자기의 부족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 도매금으로 부족합니다가 아니고 진정 부족해서 느껴지는 부족한 자신을 느껴야 한다. 겸손은 은혜를 받는 길이요 받은 은혜를 유지하는 길이다.


2. 설교자는 홀로 주님과만 밀접히 교제하고 주님께 듣고 보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주님 앞에서 나 혼자 가지는 혼자의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져야 한다.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그 시간과 그 정도에 따라 설교는 깊어진다. 설교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설교자 자신이 주님의 어린양으로서 주님과 깊은 교통이 필요하다. 주님은 설교자가 설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영적 생명의 성장과 풍성한 누림을 위해 주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설교자가 영적 생명이 풍성할 때 기름진 꼴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3. 설교자는 많은 사람을 접촉하거나 분주함을 피하고 성경을 가지고 주님과 밀접히 교제를 계속하라. 영안이 열릴 때에는 계속 연구해야 한다.

비록 설교자가 교인이나 교회나 교단의 간부들일지라도 사람을 많이 상대하면 사람으로 치우치게 되고 하나님을 많이 상대하면 하나님으로 가까이 갈 수밖에 없다. 성경으로 주님을 찾아 나서야 영안이 열리는 것이다. 이렇게 영안이 열리게 되는 순간, 또는 연안이 열려 있는 시간을 마귀는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에 총력해서 그것을 막게 된다. 설교자에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나게 한다든지, 갑자기 사람을 방문케 하여 그 영안이 열린 시간을 중단시키려고 할 때 주님과의 교제가 끊어지지 않도록 내적 투쟁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설교자는 기도실을 만들어 기도실로 자꾸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말씀을 갖고 묵상을 많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말씀을 묵상할 때 성령의 감동과 조명이 역사한다.


4. 원고를 작성하고, 평시에 주님께 구해 성경구절을 구하여 얻어야 한다.

부산서부교회 고 백영회 목사님의 설교는 원고 없는 강도가 제일 큰 특색이다. 그 말은 원고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성경을 다 외워버린 그였고, 설교 준비를 위해 대학 노트나 메모지에 적어가며 기록한 것이 10여 년치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마지막 설교까지 여러 형태의 메모지에 그날 설교의 준비를 꼼꼼하게 요약하며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단, 강단에 설 때마다, 주님이 그날 설교를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는지 기도 중에 찾아 강단에 선 순간의 영감으로 설교를 진행하지 준비된 원고가 있다고 그 원고대로 진행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즉 준비는 철저하게, 설교강단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전하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을 간과하고, 준비는 전혀 없는 사람이 강단에 영감을 따른다고 하면 인간의 주관적 착각의 자기 지식 전달만 하기 쉽고, 준비만 철저히 하고 그 강단의 영감을 찾지 않고 준비된 내용만 그대로 전한다면 이는 성경공부일 것이다.


5. 기도하고 조심하여 경외하면서 강단에 서야 한다.

강단을 대할 때마다 목회자는 늘 신부의 조심성을 잃지 말아야 되며, 아이를 여럿 낳은 여자와 같은 자세로 강단을 쉽게 대하지 말아야 한다.

6. 교인 숫자에 관계 두지 말고 하나님 존전에서 증거해야 한다.

참석 교인이 많거나, 큰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될 때 사람은 전력을 다하게 되고, 교인이 적고 교회가 적은 경우 설교자가 힘을 잃거나 아니면 성의 없이 하기 쉽다. 설교자는 앞에 있는 사람을 보지 말고 늘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증거해야 한다. 그리고 설교 때마다 대 집회 때와 차별을 두지 말아야 한다. 매일의 설교와 큰 부흥회 초청 설교에 차이를 두지 말고 전력해야 한다.


7. 요절을 찾아 집회하라. 많은 설교가 이어지는 집회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요절을 붙들어 증거 해야 한다. 그리고 믿음, 사랑, 소망으로 기둥을 삼고 약속, 말씀, 보혈, 성령으로 생명과 능력 삼아 증거해야 한다.


8. 뜻밖에 알게 된 영리, 진리, 비유, 만물의 이치, 증거물 등을 암기해야 한다.

일상 생활에서조차 묵상의 연속이 많아야 한다. 일상 생활에서 묵상하는 동안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 많다. 그럴 때는 바로 적을 수 있도록 작은 연필과 메모지를 늘 가지고 다녀 기록해야 한다. 기록해 놓지 않고 나중에 기록하려고 하면 그 당시의 감동이 사라지고 만다.


9. 열심, 간절, 절대 믿음, 인내, 대망이 강해야 한다.

권위로(하나님의 것) 설교를 할 것. 하나님의 것으로 전하면 권위가 있는 것이니 권위의 기준부터 바로 알아야 한다. 세상적인 것을 권위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열심, 간절, 절대 믿음, 인내와 대망에 대해 하나 하나 깊이 새겨 보면 크게 유익하다.


10. 주님만 증거하고 명예심 때문에 나를 끼우지 말아야 한다.

설교자가 주님을 증거해야 하는데 하다 보면 설교가 자신이 불쑥 나와버려 주님과 자기를 바꾸는 실수가 많다. 특히 미국식의 설교가들이 초기 한국교회를 주도하면서 이런 현상은 심했고 그것이 일반교회에 편만하게 까지 되어 강단에서 자기를 가지고 나타나는 경우가 너무 허다했다. 그렇다면 유교적 기본 소양이 나타난 듯 오해하기 쉽겠으나, 나는 죽고 주님이 살아야 대속의 기본이다.

그러기 위해 자기 관계사를 제3자 격으로 소개해야 한다. 꼭 자신의 예를 들 필요가 있을 때, 어느 사람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제3자적 소개로 하는 것이 좋다. 자신의 경험이었으나 제3자로 돌려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11. 주님과 성신이 하시나니 믿고 의지하여 쓰이기만 하고 자기가 하듯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증거하고는 크게 믿고 기다려야 한다.


12. 조급하지 말고 긴장하여 조직적으로 설교해야 한다.

말씀을 전하려는 열심이 조급으로 나타나기 쉽다. 차근차근 체계적으로 설교가 이어져야 한다.


13.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생명 함께 계시니 늘 다시 하여도 좋다.

한 번 한 설교를 다시 하면 은혜가 없으리라는 시험에 들지 말아야 한다. 한번 전한 말씀을 또 다시 전하면 은혜가 없으리라는 것은 모든 설교자들에게 공통된 인식이다. 창조의 능력과 생명이란 동일한 것이 아무리 반복이 되어도 또 새로움이 있고 성장이 있는 것이다. 말씀은 능력과 생명의 것이라 인간 생각으로 설교를 자꾸 바꿀 노력을 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같은 말씀이 그 속에서 생명과 능력으로 나타나도록 힘을 쓰는 것이 옳다. 백영희 목사님은 단 한 절을 가지고 한달 이상 설교하는 경우도 있었다. 애양원교회 1961년 사경회에서 단 한 말씀으로만 집회를 끝까지 인도하였고 그 교회 교인들이 아직까지도 그때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14. 뜻은 높고 말은 쉽게 해야 한다.

신학자일수록, 학식이 있는 목회자일수록 단어와 수사를 어렵게 만들어 가기 쉽다. 성경부터가 가장 쉬운 말이지만 그 속에 무한을 담고 있듯이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그러나 그 속에 뜻은 무한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일 주간 들은 것, 본 것, 생각한 것, 계시받은 것, 감동받은 것, 영적인 것 다 모아서 토요일 정리하는 것이 좋다.


15. 성경구절, 찬송, 비유는 미리 준비하여 실수 없게 해야 한다.

성구의 장 절과 찬송의 장수 등을 혼돈하여 강단의 진행에 흠이 없도록 할 것이다.


16. 군중의 심리와 태도를 보아 적합하게 해석하되 성경은 성경으로 해야 한다.

교인의 고통을 체휼치 않고 그 양떼의 갈급함이나 어린 신앙의 어려운 형편에 상관없는 설교자의 자세가 문제이다. 평생을 '목회'설교를 하고 정해진 궤도를 이어가는 '강의'를 하지 말라. 박사의 강의가 아니라 목회자의 목회설교라야 할 것이다.

17. 책망을 말고 포옹과 부르는 격, 탕자 아버지 격으로 해야 한다.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는 설교 중에 실명으로 불러 야단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흉내를 젊은 교역자들이 같이 내고 있지만, 실은 그는 교인의 종의 종이었다. 야단을 쳐서 감사히 받을 사람과 오히려 목사가 종노릇을 해야 될 어린 신앙을 구별하였다. 그러나 그 야단도 그를 위해 친 아버지 이상의 사랑과 정성을 들인 후 꼭 필요한 범위 내에 조심스런 책망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의 책망은 뒤탈이 없고 오히려 책망 받기를 기다리는 교인이 되기까지 만들었다. 목회자가 교인을 위해 희생한 것은 없고 권위 있게 책망하는 것만 가지기 쉬운 점을 조심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장점을 먼저 칭찬하고 후에 결점을 책망하는 것이 좋다. 칭찬 7, 책망 3 (평시 장점 찾기를 힘쓸 것).

또한 남을 훼방하거나 폄논하는 설교는 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