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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칠대 선서 /박윤선 목사

맑은샘77 2013. 7. 6. 15:00

목사의 칠대 선서 /박윤선 목사

1. 신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앙과 본분(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믿습니다.
이 신앙고백에 있어서 우리가 특별히 기억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니, (1) “신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라는 것. 이것은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만큼 들어 있다는 부분영감설이 아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만전영감 도리이다. (2) “신앙과 본문에 대하여”라는 것. “신앙과 본분”이란 말이 신앙고백에 들어 있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되는 범위를 종교와 윤리관계의 말씀에만 제한시키는 것이 아니다. 즉, 이 말은 신앙과 본분(행위) 밖의 일들(예컨대 역사나 과학 방면)에 대한 말씀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니다.

성경(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전지전능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역사나 과학 관계의 기록에도 실수란 것이 있을 리 없다(요 10:34-35; 딤후 3:16 참조)

2. 본 장로교 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 요리문답은 신 구약 성경의 교훈한 도리를 총괄한 것으로 알고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신종(信從)합니다.
장로교 신조와 헌법, 예배모범의 기본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다. 그것은 영국 웨스트민스터회의(회원 151명 중 121명은 신학자)가 1643년 7월 1일부터 1649년 2월 12일까지 5년 반 이사의 긴 세월에 걸쳐 작성한 것이다. 이런 경건한 모임은 사도 이후 처음으로 있었다고 한다. 이 신앙고백을 작성하기 위해 회원들이 모일때마다 두 사람이 설교하고 세 사람이 기도하였다고 한다. 이 교리 체계는 기독교계에서 가장 많은 교회에 채납되었고, 또한 영향을 주었다. 이 교리 체계가 발표된 뒤에 스코틀랜드에서는 이 신앙고백대로 믿는 신자들 중에서 많이 순교하여 하나님께 충성하였고, 영국의 자연신론과 프랑스의 유물주의 사상을 반박하고 승리하는 자들이 일어났다.

3. 본 장로회 정치와 권징조례와 예배 모범을 정당한 것으로 승낙합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1645년에 웨스트민스터 회의가 작성한 청치와 권징조례, 예배모범을 채납하였다. 그 후에 스코틀랜드의 교회는 안정되었고 정화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장로교회는 장로교 정치는 좋아하지 않고 타협적 걸음을 걸어가다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유니테리안주의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4. 주 안에서 같은 직원된 형제들과 같은 마음으로 협력하기를 맹세합니다.
목사는 행 5:29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것이 마땅하니라”고 한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사람과 하나님을 비교하여 보는 때에 나온 말씀이다. 사람과 하나님을 비교하는 일이 없는 다른 경우에 있어서 목사는 언제나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 하며(빌 2:3), 특히 동역자들의 의견을 존중시해야 한다. 하나님 밖에는 누구든지 홀로 바로 행히가 어렵다. 장로교주의는 “장로들(목사도 장로임)은 동등(parity of elders)"임을 귀중한 정치 원리로 가진다. 삼삼 15:23의 말씀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형제 간에 피차 순종함에도 관계된다.

5. 목사 성직을 구한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 독생자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는 본심에서 발생한 줄로 자인(自認)합니다.

이것은 목사직을 받는 자가 그 목사직을 구하게 된 것이 단순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된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복음 전파로 나타내려는 동기에서 되었다는 것이다.

(1)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기. 목사는 하나님의 양을 치는 자니 양을 위하여 목숨이라도 바칠 자이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단(一端)으로 하나님의 양 무리를 사랑한다(요 21:15-17).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시기 전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목사직을 받기도 한다. 이런 목사는 사욕은 채울지언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는 자이다. 사도 바울은 고후 5:13-14 상반에 말하기를,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하였다.

(2) 복음 전파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동기. 목사는 성경만이 진리요 그것만이 구원하는 능력인 줄 믿는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은 복음을 전하는 길 밖에 없는 줄로 그는 믿는다. 그는 복음을 가지고 산을 넘어간다(사 52:7). 그는 복음에 이끌려 움직인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거하였다(행 18:5).

6. 어떠한 핍박이나 반대를 당할지라도 인내하고 충심으로 복음의 진리를 보호하며 교회의 성결과 화평을 힘써 도모하여 근실히 역사하기로 작정합니다.

이 서약에 포함된 것은 주로 두 가지니, 교회의 “성결”과 “화평”을 유지함이다. 약 3:17에 말하기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라고 하였고, 히 12:14에는 말하기를,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고 하였다. 목사는 자기 개인의 성결로 만족하거나 자기 개인의 화평스러운 생활로 만족할 자가 아니라, 온 교회의 성결과 화평을 유지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1) 성결의 중요성. 교회의 화평은 교회의 성결성(교리의 성결성, 곧 성경만 표준하는 신앙생활)과 병행해 있어야 된다. 다시 말하면, 화평을 유지하기 위해 세속주의와 타협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욕을 돌림이니 진정한 화평이 아니다. 화평은 하나님을 참되이 높이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목적에서 떠난 화평주의는 교회의 성결성을 파괴하는 동시에 교회의 타락을 초래한다. 그 뿐 아니라, 그런 자리에서 돌이키지 않고 그 타락이 심해지면 주님의 경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어두움에 빠진다. 이렇게 될 경우에, 교회의 성결성을 보존하려는 신자들이 기존 교회(혹은 기존 교단)로부터 부득이 떠나게 된다. 히 12:14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2) 화평의 중요성. ① 교리를 파수하기 위함. 개교회들이 연합하지 않고 각기 개체대로 있으면 그릇된 교훈의 침투를 막기 어렵다. 그러나 여러 교회들이 연합체에 들어 있으면 상호 감독(multural oversight)에 의하여 이단 사설을 막아낸다. ② 규율 있게 권징을 시행하기 위함. 권징 시행의 통일은 매우 위험하다. 권징 시행에 있어서 어는 교회는 너그럽게 하고 어느 교회는 엄하게 한다면 교계는 문란해지고 교회의 권위는 떨어진다. 따라서 권징의 진리에 댛나 불신 풍조가 퍼지게 된다. 이런 폐해를 막는 방법은 교회 연합으로 성립되는 공동체 밖에 없다. ③ 힘을 합해 진리운동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함. 개교회주의나 교파 대 교파의 경쟁은 진리운동에 큰 지장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기독신자들은 연합을 힘쓰고 분열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교회 역사상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분열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그 중에는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교회 역사상에는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분열을 초래한 유감스러운 사례도 없지 않다. 인간의 감정 문제, 편파주의, 권리투쟁, 이권개입 등의 작용으로 교회가 요란케 되며 분열되는 폐단은 교계에서 사라져야 한다.

칼빈은 종교개혁의 지도자로서 로마 천주교에서 나왔지만 교회의 연합을 극력 원하였다. 그는 연합함에 유익하다면 열 개의 바다라도 건너갈 마음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가톨릭 교회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인정하였고, 다만 고위층 성직자들이 그 교회에 황폐와 파멸로써 채웠다고 말하였다.

칼빈은 성찬 교리에 대하여 루터와 죽장을 달리한 후에도 그를 계속 존경하였다. 루터에게 보낸 단 한 통의 편지에도 칼빈은 존경으로 일관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당신과 두어 시간 동안 교제의 행복이라도 누리기 위하여 날아가고 싶습니다. … 가장 유명한 그리스도의 종이요, 나의 높이는 아버지여!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령으로 당신을 지도하시어 당신으로 하여금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끝까지 힘쓰게 하시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그 후에 루타가 구에게서 멀어졌을 때에도 그는 말하기를, “루터가 나를 마귀라고 해도 나는 변함 없이 그를 하나님의 유명한 종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칼빈의 태도는 루터파의 멜랑톤(Philip Melanchton)에게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멜랑톤이 교리적으로 상당히 멀어졌고 먼저 별세하였는데 칼빈은 그에게 대해 말하기를, “멜랑톤이여! 우리가 내세에 가서 연합할 때까지 기다려 주시오. … 나는 천 번이라도 우리의 최후가 공통적인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칼빈은 지엽문제 때문에 신자들이 나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는 아 라스코(John a Lasco)를 권면하여 자근 문제로 오라도파를 제외시키지 말라고 하였고, 요한 낙스(J. Knox)를 권면하여 어떤 예배 의식을 반대하는 것을 좀 양보하라고 하였으며, 다른 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성상(聖像) 파괴운동(iconoclasm)을 금하기도 하였다.

그는 생애의 끝에 임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발표하였다.
“나는 많은 과오를 범하였는데 이를 용납해 주십시오. 내가 이루었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못됩니다. 악인들이 나의 이같은 고백을 기회로 삼을 것이지만, 나는 나의 이룬 것이 가치가 적다고 거듭 말합니다. 나의 허물은 항상 나의 마음을 괴롭혔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생각이 항상 내 마음 속에 머물렀습니다. 나의 믿는 바를 내가 충성되이 가르쳤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주셔서 책을 저술하게 하셨습니다. 나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문구들을 잘못 풀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려는 유혹을 제재하며, 언제난 단순히 성경을 그대로 믿으려고 힘써 왔습니다. 나는 남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 적이 없습니다. 나는 언제나 나의 생각한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지 살펴 보았습니다.”

7. 신자요 겸하여 목사가 되었은즉 자신의 본분과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와 직무에 대한 책임을 성실히 실행하여 복음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명하사 관리하게 하신 교회 앞에 경건함 모본을 세우기로 서약합니다.

이것은 목사가 교회 앞에서 모본이 되어야 할 것을 서약함이다. 다시 말하면, 목사는 다른 사람들이 흠 잡을 수 없을 만큼 경건하며, 신앙생활에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딤전 4:12에 말하기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라고 하였다.

생활의 모본은 무언(無言)의 설교다. 그러나 목사로서 교인들을 대할 때에 “나를 모본하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선 줄로 알면 안된다. 목사는 교인들에게 예수님을 모본하라고 주장해야 한다. 전에 평양신학교 교수였던 클락 박사(Dr. Allen Clark)는 말하기를, “목사는 유리집에서 산다”고 하였다. 이 말은 목사의 생활을 모든 사람들이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는 것이다. 목사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그리고 자기 양심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생활을 계속함으로 양 무리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