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센세이션하게 할 수 있는 방법?
12년 전 경기도 화성 남양에서 목회하던 시절, 꼭 이맘때였다. 밤늦게 전화벨이 울린다. 수화기를 들었더니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 모 전도사였다. 내가 섬기던 J교회의 이 아무개 장로의 막내아들이었다. 한참 뜸을 들이던 그가 내일 토요일 오후, 바쁘시겠지만 전해야 할 말이 있으니 꼭 만나자고 한다. 그런데 말투가 뾰족한 게 나한테 무슨 유감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약속 장소인 음식점으로 갔다. 그가 먼저 와 있었다.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음식을 시키더니 일단 음식을 먹고 얘기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기분이 찜찜했지만 그의 말대로 대충 음식을 먹는 시늉을 하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목사님. 기분 나쁘시겠지만,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세요. 그간 목사님이 J교회에 오신 후 지금껏 쭉 지켜보았는데, 그런 식으로 목회를 해서 교회가 부흥되겠어요? 좀 센세이션한 방법으로 목회를 하셔야 교회가 부흥하지 않겠어요. 어제 저희 집에서 가족회의를 했는데, 가족회의를 통해서 내려진 내용을 제가 목사님께 전달하기로 했어요. 내일 당회가 있지요. 아마 단단히 마음 각오를 하셔야 될 것 같아요. 우리 아버지가 폭탄선언을 하기로 했어요.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저도 장담하지 못하겠어요.” 솔직히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의 반사적으로 구역질이 나왔다. 음식물을 토해 버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 되었다. 내용인즉슨 이리 짐작되었다. 이 모라는 전도사가 수원에서 개척 교회를 시작하였고, 40일 금식기도를 할 정도로 신비주의 심취해서 어떻게든 사람을 끌어들여 교회의 외관을 갖추려고 노방전도, 철야기도 등 불철주야로 뛰어다니는데 자기 모(母)교회 목사는 자기가 보기에는 만날 하릴없이 노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가끔 자기 집에 올 때마다 가족들을 선동해서 목사와 대적하도록 은근히 부추겼던 것이었다. 내가 시무하던 J회는 이 아무개 장로가 자기 집 땅을 희사해서 세운 교회였다. 교회 역사가 20년쯤 되었는데 아마 나를 몰아내고 그 교회를 차지하고 싶었던 것일까. 기분이 더러웠다. 나보다 열 살쯤 아래인 전도사가 무슨 억하심정으로 나를 공격하는 것인지, 무슨 의도가 있었는지…. 황당하기도 하고 참담하기도 하고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잘 기억나질 않지만 ‘잘 알았다’는 말을 하고 음식점에서 나왔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다음 날 주일 설교준비를 하는데 참 한심했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설교준비를 마쳤다 ‘도대체 이 아무개 장로가 당회에서 무슨 폭탄선언을 한다는 것인가?’ 이 모 전도사의 말대로라면 천지가 개벽할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무슨 공갈 협박도 아니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분이 더러웠다. 드디어 다음 날 강단에 섰다. 예배분위기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예배 후 교회의 한해 살림을 결산하는 당회가 시작되었다. 모든 보고가 끝나고 기타토의 시간이 되었다. 그때까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던 이 장로가 손을 들고 벌떡 일어나더니 강단 앞으로 나와 마이크 앞에 섰다. “여러분, 이제 오늘 당회를 마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심령대부흥성회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강사는 울산 ○○교회 최아무개 목사인데 신유은사가 강한 분입니다. 우리 아들네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교인들이 모두 방언은사를 받았고, 시간시간 성령 충만한 역사가 나타났답니다. 그래서 그분을 모시고 신년 초, 심령대부흥성회를 하려고 하오니 그렇게 아시고 오늘부터 특별기도에 들어가겠습니다.” 떠듬떠듬 덜덜 떨면서 대충 그런 요지의 발언을 했다. 이게 폭탄선언의 전부였다. 담임목사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임원회의 결의도 없이 자신이 이 교회의 터줏대감이니, 목사고 교인이고 알아서 기라는 것이었다. 순박하기 그지없는 촌로의 이 장로가 아들의 꼬임에 이끌려 무슨 독립투사로도 된 듯이, 비분강개해서 열변을 토하는 것이었다. 그 때 솔직히 내 심정이 어땠는가 하면 박장대소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저급한 코미디가 교회 현장에서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교회에서 8년 목회를 했다. 최장수 목회를 한 셈이었다. 그 교회를 떠나 목회임지를 강화 교동으로 가게 되었을 때, 이 장로 내외가 제일 많이 울었다.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고 발표한 날부터 이사하게 된 날까지 4박5일을 서럽게 우는데, 속으로 생각했다 ‘저 분들 혹시 쑈하는 거 아닐까?’ 한참 세월이 지난 다음 들은 이야기지만 이모 전도자는 개척교회가 너무 힘들고 안 되서 목회를 그만두고 택시운전을 몇 년 하다가 다시 목회를 재개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목회를 하다보면 별별 일이 다 벌어진다. 연말이 되면 목사의 마음이 이래저래 고단하다. 과중한 업무 때문만은 아니다. 평소에 잠잠하던 침전물이 연말, 당회, 구역회를 앞두고 떠오른다. 예의와 격식도 필요 없다. 약육강식의 살벌한 전투장을 방불케 하는 소란행위가 벌어지기도 한다. 잘한 것은 자기 탓, 못한 것은 전부 목사 탓. 모든 타깃은 목사한테 집중된다. 그러면 목사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진다. 그동안 강단에서 외쳤던 사랑, 겸손, 온유함 따위는 종적을 감추고, 무례함 자기주장이 난무하게 된다. ‘왜 나는 임원을 안 시켜 주냐?’고 삐치는 사람,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이 생긴다. 물질만능주의에 익숙해서 그런가, 교회 재정에는 왜 그리 관심이 많은지, 거기다 목사가 받는 생활비가 문제가 도마에 오른다. 구역회를 인도하는 감리사는 목사의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올려주려고 교인들과 흥정을 한다. 그럴 때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다. 간단하게 배낭을 꾸려 어디라도 탈출하고 싶은 것이 이맘때 목사의 심정이라면 과장일까? 하느님의 은혜를 싸구려로 받다보니 목사도 싸구려로 취급당하는 것 같다. 이런 푸념조차도 자업자득런지 모르겠다. 목사가 교인들을 잘못 가르쳐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갈 때까지 가서 그런 것인가?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도 궁금하다. 12년 전 이 모 전도사가 내게 한 말, ‘목회를 센세이션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그는 목회를 센세이션하게 하고 있을까?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마음의 고요함을 잃어버린 탓일까, 분주하기만 하다. 녹차라도 한 잔 하면서 마음을 다스려야 할 모양이다. 목회하다가 가끔 말도 안 되는 일에 대하여 마음 상하다고 사람을 찾아가거나 해명하려 하지 말라. 그냥 못 본 척 지나쳐 버려라. 속에선 불이 나겠지만 그 불을 끄려고 뒤적거리다보면 그 불은 더 커질 것이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예수를 수십 년 믿어도 어떤 사람은 그 속이 밴댕이 속만도 못하다. 만날 칭얼거리며 젖 달라고 떼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미 젖을 줄 때가 지났다 싶으면 과감히 젖을 떼라. 밥 짓는 목사가 되라. 잡곡밥이 좋단다. 그걸 꼭꼭 씹어 먹는 훈련을 시켜라. 안 그러면 만날 젖이나 주고 애나 보는 유모신세 면치 못할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만 보다간 얼간이가 되고 말테니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울 때 일수록 침묵하라. 더욱 고요하고 삶이 깊어질 때 그분께서 다가올 것이다. 어차피 돈 벌고 인기 얻고 박수 받으려고 목회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면 기분 나쁘게 생각할 것 없다. 네 마음을 몰라준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 사람들이 하는 짓이 유치하고 미숙하기 짝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라. 속상하다고 안달복달 하다간 결국 네 마음만 다치게 될 것이고 너만 외로워질 것이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대로 그냥 네 길을 가라. 목사의 설교에 사람들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실망할 것 없다. 다 부질없는 욕심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위에 계신 그분을 생각하라. 이 땅에 그분만큼 실패한 자가 또 어디 있었겠는가. 그것으로 위로를 삼으라. 너를 불러주신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라.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그 분이 너를 사랑한 만큼 네가 그걸 느끼는 만큼 너도 밴댕이 속만도 못한 그 사람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쉬어도 내 속을 박박 긁어대고 만날 젖이나 달라고 조르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네 마음을 속된 일에 빼앗기지 않도록 하라. 네 안에 계신 그분을 빼앗기지 않으면 그것으로 너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너는 목사, 지금까지 네가 해오던 일을 결코 멈추지 말라. 그게 네 일이다. 그게 네 길이다. 그게 네 힘이다.
-박철. 목회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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