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모습은 설교에서 비롯되고 또 설교에 반영된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포럼 회원들은 바른 복음의 이해가 미흡한 것을
현재 한국교회 난맥상과 타락의 원인 중에 으뜸으로 꼽았고
설교가 시급히 정화되어야 할 가장 큰 문제라고 응답했습니다.
이번 설문은 한국개혁포럼 회원들이 현재 출석하는 교회에서 겪는
설교의 문제를 유형별로 알아 본 것입니다.
이는 또 본 포럼의 회원들이 어떤 설교에 상대적으로 더
비판의식을 가지는가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선 흔히 겪게되는 설교 문제 유형 8가지를 정의하여
어느 유형이든 설교 3번 중 1번 이상 빈도로 경험되면 복수 선택하게 하였으며
어느 유형도 1/3 이하의 빈도인 경우에만 문제없음에 표기하게 한 결과
응답자 171명 중 63명 (36.8%)이 문제없음에 표기하였습니다.
이는 대체로 건전한 설교를 듣거나 문제설교의 빈도가 상당히 낮은 경우에 해당합니다.
문제 설교 유형 중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다는 36.8%는 사실 무척 높은 비율입니다.
이는 개혁포럼의 회원들 중에는 설교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바른 설교를 하는 교회를
능동적으로 선택하여 출석하는 분이 많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한국교회에서 설교에 문제가 없는 교회의 비율이 36.8%라는 뜻은 아닙니다.
또한 여기 조사하는 문제 유형들은 성장을 우선시하는 교회관과 결부되어 있어
작은 교회나 평신도 교회, 가정 교회 등에 속한 분들은 적어도 그런 유형에서는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63.2%에 해당하는 108명이나 되는 회원들은 설교의 문제를 유형별로
비평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출석교회에서 그 설교를 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는 근 2/3에 해당하는 숫자로서 설교에 문제가 있어도
그 교회의 공동체 때문에 옮기지 못하거나, 옮길만한 적당한 곳이 어차피 없거나,
설교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다니는 형편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 때,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개혁포럼 회원의 소속이 이러할진대, 전체 한국교회의 설교 현황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상하여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래엔 설교의 문제 유형별로 빈도 높은 것부터 도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대적 빈도는 한국교회의 상황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표한 것으로 보아도
될 것입니다.
신앙과 연결하여 세속적 성공을 부추기는 기복적 설교 (52%)
말은 옳으나 인격적으로 뒷받침이 없는 힘없는 설교 (47%)
삶의 제시는 없고 사변적 주제에만 매달리는 추상적 설교 (45%)
모든 신앙을 교회와 종교 행위 안에 두는 이원론적 설교 (42%)
선교 봉사 헌금 등 미션(사명)에 치우친 율법적인 설교 (41%)
심리적 감동만 노리고 복음적 메시지는 없는 인본적 설교 (35%)
특정 상황이나 사람을 겨냥한 목적형 설교 (25%)
사회적 윤리와 도덕에 치우친 율법적인 설교 (18%)
즉 교회 헌신을 권하며 그 결과(대가)로 세상에서의 성공을 보장하는 유형인 것입니다.
참으로 앞면이나 뒷면이나 고쳐 쓸 도리가 없는 불량 설교입니다.
심리적 감동만 노리는 인본주의적 설교는 실제 빈도는 더 높을지 몰라도
아마 포럼 회원들이 가장 괴로워하는 설교 유형은 아닐 수 있겠습니다.
문제유형의 1/4의 경우는 설교가 교회 권력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실정을 가리킵니다. 설교 중에 교회 정책을 강조하거나 특정인을
공격하는 행태입니다. 설교자의 예배 이해부터 문제가 있는 경우라 봅니다.
사회적 윤리와 도덕에 치우친 율법적인 설교가 가장 적은 유형이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아 삶에 비교적 가까운 문제 유형들은 6,8번으로 밀려 있습니다.
이것 역시 곱씹어 볼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복음주의적이 못되고 율법주의에 빠졌다 할 때에
그 율법주의는 윤리적인 율법들을 말하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믿음이냐 행위냐 하는 문제도 거기 적절한 질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 한국교회의 율법주의는 교회헌신을 강조하는 경우가
생활윤리를 강조하는 경우보다 2배 이상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믿음)이냐 율법이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여
한국교회의 율법주의를 몰아내고 바른 복음을 회복할 것을 많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율법주의는 복음 대 율법, 행위대 믿음, 이런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저 교회에 신자들을 헌신시키고 복종시키기 위한 율법주의일 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법을 높여서 율법이 되는 것이 아니고
지도자들이 신자를 복속시키는 방편으로서 내세우는 율법적 태도입니다.
그러니 율법주의라 부를 수도 없고, 교인에 대한 영적 지배권에 탐닉하여
복음을 굽히는 것일 뿐입니다.
이는 개혁의 주제와 방법, 우선 순위와 관련하여 깊이 생각해 볼 현상이라 봅니다.
한국교회 신자의 성경 실력은 설교 시간에 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설교를 듣고 느는 것이 아니고 설교시간을 이용한 자습 때문이라고 합니다.
듣기 싫은 설교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티 안나게 도망가는 방법이
설교 시간의 성경 탐독이지요.
말씀에 배고픈 문제, 모두 교회를 옮겨서 해결할 수 없다면
더 이상 설교자에게만 젖줄을 대지 않을 방법이 강구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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