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팀이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함께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50세 이상 부모 세대 22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절반 이상이 "자식
결혼 비용 대느라 노후가 걱정스럽다"고 했다(54.1%). 그러면서도 10명 중 6명이 "남들처럼 지원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62.3%).
이런 한국 부모 특유의 이중심리를 잘 보여주는 사람이
김옥희(가명·56)씨다. 김씨는 회사원 남편과 함께 1남1녀를 키웠다. 다른 집 아들은 서른 넘어도 취직 못 하는 경우도 많은데, 김씨의 장남(29)은 28세 때 버젓한 회사에 취직했다. 장남은 또 입사 1년 만에, 그것도 아파트까지 마련해온 며느릿감을 데려왔다. 며느리는 예단도 김씨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해왔다.
주위에선 "봉 잡았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마음이 편치 않다. 원래 김씨 부부는 내후년까지 적금 들고
오피스텔과 집 팔아서 남매를 결혼시킨 뒤 시골 가서 살 생각이었다. 김씨는 "준비가 안 된 상황이었지만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하니 아들 뜻대로 따르긴 했다"며 "그런데 집 마련해온 며느리에게 기가 죽어 아들이 사는 아파트
비밀번호도 못 물어보고 산다"고 했다.
김씨의 며느리는 아들보다 두 살 연상이다. 김씨가 정말 서운해하는 건 며느리 나이가 많은 것이 아니다. 김씨는 한편으로는
노후자금을 아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
시어머니의 권위'를 내세울 수 없는 점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일단 사돈이 집을 마련하니까 아들 결혼 준비하는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결혼식 장소도, 예물도, 한복도 다 그 집에서 하자는 대로 했어요. '호텔에서 결혼시키자' 하면 '네', '한복은 청담동에서 맞추자'고 하면 '네'. 대놓고 '싼 거 합시다' 이런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예단 값이 예상보다 많이 왔을 때도 반갑기는커녕 '이런 걸 대체 왜 보냈나? 내가 없어 보였나?' 싶었어요. 바로 아들 편에 돌려보내고, 2000만원 빚내서 며느리에게 1캐럿짜리 다이아 반지를 사줬는데 그 빚을 아직 못 갚고 있어요."
김씨는 "며느리가 집을 마련해오니 아들이 마치 처가살이를 하는 것 같아 너무 마음이 불편하다"며 "주변에서도 아들 장가 잘 보냈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들 잘 키워서 빼앗겼다'고 수군대는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아들 결혼 자금으로 모으던 적금을 계속 붓고 있다. 내후년 만기가 되면, 그 돈을 아들에게 주고 "처가에서 마련해준 아파트에서 나와 이 돈으로 전세
구하라"고 할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야 아들 부부에게 떳떳할 것 같기 때문이다.
조윤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금까지 많은 한국 부모, 특히 어머니들이 '나는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하지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서 권위와 정(情)을 유지해왔다"면서 "앞으로는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부모도 자식도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아들·며느리에게 재산을 줘야 시어머니의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지 말고, 결혼은 집안의 결합이 아니라 아들·며느리의 개인적인 결합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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