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주기/노인문제

12주간 ‘잉꼬학교’ 특별수업 받은 노부부

맑은샘77 2012. 6. 2. 23:53

12주간 ‘잉꼬학교’ 특별수업 받은 노부부

[중앙일보]입력 2012.06.02 07:54

남편 “젊을 땐 내 위주로 살았지만 이젠 역지사지”

아내가 말하면 일단 ‘끄덕’… 함께 댄스·텃밭·봉사

황의정(왼쪽)?안영애씨 부부.
“부부는 45년을 살아도 모르는 사이…노후 설계 다시 했다.”

 황의정(72)씨는 지난 3월부터 12주간 특별한 수업을 받았다. 전북 전주시 덕진구 노인복지센터에서 마련한 ‘잉꼬부부학교’에 참가한 것. 두 살 아래인 아내와 매주 한 번씩 손을 꼭 붙잡고 ‘부부가 잘 사는 법’에 대해 배웠다. 황씨는 “지금도 별문제 없이 살고 있지만 나이 들수록 부부 사이가 더 가까워야 할 것 같아서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가 이런 결심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와 특수학교 교장으로 10년 전 명예퇴직을 할 당시의 기억 때문이다. 그는 은퇴 전에는 나름대로 의욕이 넘쳤다. 봉사활동·취미활동만으로도 하루가 빡빡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매일 갈 곳이 사라지고 아들·딸까지 출가시키고 나니 집 안에만 박혀 있는 날이 많았다. 흡연도 늘고 2년 이상을 게임에 빠져 살았다. 아내와의 사이도 나빠졌다. 별일도 아닌 데 말싸움이 될 때가 많았다.

가령 반찬이 문제일 때도 많았다. 데친 채소를 놓고 황씨는 무심코 ‘맛이 별로다’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아내 입장에선 남편의 건강을 생각한 것. 아내는 이유를 말하고 섭섭해하기보다는 짜증을 낼 때가 많았다. 결혼한 자식들에게 자꾸 먹을 것을 보내주는 아내를 나무랐다가 ‘쪼잔하다’는 핀잔을 들을 때도 많았다. 아내 입장에선 예전부터 똑같이 하던 일인데 잔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그는 과거를 돌아보며 “부부는 45년을 살아도 모르는 사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노후 설계’를 다시 하는 계기가 생겼다. 바로 간경화가 악화돼 2년 전 간 절제 수술을 받은 뒤부터다. “젊을 때는 내 위주로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역지사지하는 부부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내가 말하면 일단 끄덕끄덕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고, 할 말은 나중에 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함께 노인복지관을 다니며 부부댄스 강습도 신청했다.

황씨는 “젊을 때도 못 잡아 본 손을 맘껏 잡는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2~3회는 복지관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또 그는 아내와 취미 삼아 텃밭을 사서 농사를 시작했다. 감자·고구마·땅콩을 심는 소일거리다. 황씨는 “혼자 시간을 보낼 땐 복지관에서 배운 수지침으로 경로당을 돌며 봉사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따로 또 같이’ 여가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Saturday팀=이은주·이도은·이소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