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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천주교는 과연 이단인가? 성경을 뒤집은 카톨릭에 대한 강력한 반론!

맑은샘77 2012. 1. 21. 23:57

카톨릭은 과연 이단인가? 성경을 뒤집은 카톨릭에 대한 강력한 반론!

 

이 글은 다른 종교인과 안티들에게 복사와 스크렙을 금지합니다.

충격적으로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개종한 곳은 은밀하게 포장된 카톨릭일 것입니다.

 

[본문내용]ㅡ마리아는 자신에게 기도하라고 단 한번도 가르치지 않았다.

 

인간은 왜 시간이 오래 흘러가면서 점점 우상숭배로 발전하는지 의문이 들어갈 것이다.

인간은 오백년 전 인물보다 천년 전 사람을 더 숭배하고 이천년 된 사람을 더 숭배한다.

 

이것은 철저히 인간들 마음속에 장수가 복이라는 기복신앙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으로 말한다면 5천년 된 사람이나 현재 우리들이나 똑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누가 더 높고 낮은 것이 아닌 시대적으로 먼저 온 것과 늦게 온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오래된 자들에 대해서 더 의미를 부여하고 숭배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것은 단군신화이며 모든 이방종교들의 교주들에서 숭배사상이 나타났다.

2천년 전 마리아도 자기 가족들과 이웃들 안에서는 한 사람에 불과한 동네 사람이었다.

 

그녀의 가족도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그 이후 교회 공동체도 마리아를 신성시하지 않았다.

성경을 보면 그 당시 마리아를 통해서 기도했다는 내용이 전무하다.(1세기 문헌도 전무)

 

그런데 불과 수백 년이 흘러가면서 점점 마리아 당시와 전혀 다른 숭배사상이 나타났다.

이것은 교회가 세속화 되는 중요한 문제였고 그 결과 교회는 심각하게 부패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마리아의 친족들이나 교회 공동체나 사도들이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했는가?

아마 당시에 그런 일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으며 어느 그 누구도 생각조차 못했을 것!

 

그 당시에 공동체 중 한 사람이 마리아를 통해서 기도했었다면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리아와 같이 생활했던 사람들이 그렇게 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당시에는 마리아 숭배자체가 불가능한 가장 가까운 동시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마리아 숭배사상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그 심각성은 신의 위치까지 끌어 올려서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이교적 발상으로 변질된다.

요즘 이단 사이비 교주들이 하나님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불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것은 비단 마리아 뿐 아니라 부처를 숭배하는 것에서도 매우 잘 드러나고 있다.

부처 당시 부처도 미래 자기의 형상들을 세워서 그 앞에 비는 것을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부처 당시에 부처에게 절하면서 빌었다는 내용들도 거의 없었다고 들었다.

사실 요즘 종교적인 우상숭배들은 인간들의 단순한 종교심인 숭배사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위대하다고 생각되는 4대 성인이라는 자들이 과연 그것을 원했을까?

그들은 모두 자기의 동상을 만들고 그 앞에 절하라고 가르친 자들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현재 인간들이 만든 동상의 실체는 사실일까? 모두 진짜 얼굴이 아닌 가짜라는 것이다.

단군 동상도, 부처 동상도, 마리아 동상도 모두 인간들이 자의적으로 조작한 그림들이다.

 

이렇게 인간들은 신앙심을 찾기 위해서 무엇인가 보이는 것들을 세우는 습성이 있다.

이것은 단순하게 말한다면 보이는 태양신과 보이는 나무와 바위들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성경은 명백하게 이러한 인간의 숭배사상에 대해서 원천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성경은 보이는 것으로 형상을 만들어서 숭배하지 말라고 구약성경에 가르쳤다.

 

고대부터 인간들은 신의 형상을 나름대로 만들었다. 그 형상들도 매우 다양하게 존재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태양, 바다, 산, 바위, 사람과 동물의 모습 등등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런 숭배사상의 끝은 이 땅이 존재하는 이상 계속 존재할 것은 매우 자명한 사실이다.

마리아가 죽었는가? 부활했는가? 성경은 그 어디에도 마리아가 승천했다는 말이 없다.

 

이런 주장을 했던 천주교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지금이라고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숭배사상으로 빠지게 되면 하나님께 향하는 신성을 도적질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안티에 대한 반론댓글ㅡ

 

초대교회가 초대교황인 베드로를 세웠다니요? 신약시대 성경에서 초대 교회의 교황이라는 말은 있지도 않았다. 위 구절이 교황을 정당화 한다는 것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스스로 자신을 사도 중에 사도이거나 혹은 교회의 전체 대표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바울도 다른 사도들과 같이 같은 사도라고 말하였다. 요한 사도도 마찬가지로 나와 같은 사도 혹은 같은 장로된 자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위 구절은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의미이지 베드로 자체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베드로 위에 세운다는 말이 되는 해괴한 해석이 되는 것이다. 그럼 정말로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배드로라는 사람 위에 교회를 세웠는가? 배드로라는 사람은 이미 육체가 없지 않는가?

 

또한 초대교회 직분을 다루는 곳에서도 사도, 장로, 집사, 교사 등등은 존재하지만 교황이라는 직위는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교회의 전체를 대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와 같고 심지어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와 동격의 위치인 또 다른 교황을 주장할 수 있는가? 이것은 말도 안 된다. 교황의 탄생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서 당시 국가의 왕정정치를 답습한 것이다. 즉 교회를 왕정정치의 모습으로 만들어낸 전형적인 모습이다. 당시 국가는 왕이 존재했었다. 그래서 교회도 국가와 비슷한 왕적인 위치를 만들어낸 것이 교황이라는 것이다. 또한 교회의 황제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의 교회라는 소유격을 거부할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 교회의 주인은 성경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다. 그리고 성도는 교회의 몸이다. 이런 성경적인 것보다 더 정확한 다른 논리가 있는가?

 

이단보다 더 심각한 카톨릭은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ㅡ전격공개~

 

카톨릭은 성경적인 정치와 신학에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과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흔히 정치라고 하면 단순하게 교황정치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수와 사도들은 전체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의 교황과 같은 존재를 세우지 않았다.

왜냐하면 교회 전체를 대표한다면 사도들이 서로 각각 차별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사도들은 같은 사도들이었다. 그들은 지역교회를 대표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지역의 대표성을 가진 자들이 후일에 감독으로 등장을 하게 된다.

감독이라는 위치는 사실상 도시나 지역을 목회하는 위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사도보다 더 높고 전체 감독과 같은 막강한 교회의 교황이 존재한다면 말이 될까?

 

사도들이 떠난 이후 사도들보다 더 높은 교회의 직분은 성경에 없었다.

그런데 사도들을 다 합친 막강한 교회의 감독이 교회를 대표해서 존재한다면 누굴까?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그 위치만이 홀로 대표성을 가진다.

 

즉 초대교회 직분은 사도, 장로(감독), 집사와 교사 등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위치보다 더 높은 교회의 직분을 만들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기독교 국교가 된다고 해도 전체 감독을 직분으로 만들 수 없다.

 

물론 오늘날 각 교파들의 총회장과 같은 직위도 사실상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개신교 대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만약에 전체 연합회를 만들어서 대표를 세운다고 해도 그것은 임시직일 뿐이다.

 

신학에 있어서 카톨릭의 문제는 더욱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카톨릭의 문제는 이단들과 같은 구약사상에 기초해서 정치와 신학에 영향을 주었다.

신약시대의 특징은 육적인 질서와 영적인 질서의 세계관이 분명히 구분이 된다.

 

앞서 말한 이단들은 구약사상이나 혹은 옛 언약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오류가 되었다.

카톨릭은 구약사상과 함께 세계관의 결여에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 하나는 연옥교리이며, 다음은 천상교회 개념이고, 그리고 대리 속죄의 문제다.

 

그 외에 마리아 문제나 성상 숭배사상과 성인 숭배사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었다.

그럼 왜 이런 문제가 나타났을까? 결정적인 것은 신약시대의 두 세계관의 결여이다.

세계관의 결여는 먼저 구약과 신약의 구분실패와 신약 안에서 구분실패로 나타난다.

 

1, 지상에서 수평적 교체인 영적 이스라엘과 육적인 이스라엘의 질서를 혼동하고 있다.

 

신약시대는 예수의 죽음으로 육적 이스라엘이 사라지고 영적이 이스라엘이 등장한다.

지상세계에서 교회의 질서가 전자가 아닌 후자에 해당되는 영적 지상질서가 나타난다.

그것은 구약 이스라엘 직분과 절기와 율법이 아닌 영적 직분과 예배와 은혜의 입장이다.

 

영적인 이스라엘은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상에서 구약과 다른 질서가 나온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질서와는 무관하게 교회의 직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카톨릭은 구약시대와 같은 성직의 모습을 따라간 것이 나타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대제사장은 교황이 되고, 제사장은 사제가 되는 논리로 나온다.

사실상 신약시대에서 구약교회를 만든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정치논리다.

이런 논리라면 예수는 대제사장 그리고 사도는 제사장? 장로와 집사는 그 아래인가?

 

그렇다고 해도 구약 이스라엘이든 신약 교회든 모두 단일성은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구약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은 그리스도이며 신약에서는 영적 대제사장이다.

이렇게 단일성을 가진 영적인 위치는 그리스도가 구약이든 신약이든 확고한 것이다.

 

그런데 교황이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어디에 끼어 들 수 있다는 말인가?

교회를 한 사람의 영향력으로 지배하는 감독은 오직 유일하신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

이것을 버리지 않는다면 카톨릭은 이단이라는 심각한 정치적 비판을 피할수 없다.

 

2. 지상과 천상의 구분을 못하고 연결시킨 결과 교회와 천상이 만나게 된 것이다.

 

신약시대에는 교회가 존재하는 지상세계와 천국이라는 내세가 엄격히 구분이 된다.

그런데 죽은 자까지 구원에 포함시키려는 의도로 나타난 것이 결국 교회와 내세까지 연결시킨 것이다. 이 연결로 말미암아 수직적인 지상교회와 천상교회가 통하게 된 것이다.

 

그 연결 고리가 지상과 천상의 중간에 위치한 연옥설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살아 있는 세상의 질서와 죽은 다음의 질서는 전혀 다르고 또한 만날 수도 없다.

그런데 그들은 땅과 하늘이 평화를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배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었다는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이런 오판으로 카톨릭은 심각한 수직적 질서가 파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하늘과 땅에서 죄에 대한 대제사장은 오직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중간에 어떤 사람의 연결고리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오직 성령이 그 중간 역할을 감당하면서 사람의 죄가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게 된다.

그런데 카톨릭은 하늘과 땅을 사람들의 직분으로 연결시키고 만 것이나 마찬가지다.

 

죄 사함에 대한 중간적인 역할은 사제가 고해를 통해서 맡게 된 것이다.

또한 대제사장의 역할은 교황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중간 장소인 연옥을 만들어 놓아야 자신들의 이런 역할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신약성경을 뒤집어 놓아도 이렇게 뒤집어 놓은 이단이 또 있을까?

수평적인 질서와 수직적인 질서를 모두 파괴한 카톨릭이 전형적인 이단이 아니면 누가?

이렇게 카톨릭은 약 2천년 동안 심각한 정치, 신학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그 중간에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교회가 백보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그런데 구원의 역할인 속죄의 역할까지 인간이 대신한다는 것은 사탄의 속임수다.

아무리 양보하라고 해도 이런 교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카톨릭은 명백한 이단이다.

 

3. 카톨릭은 구약사상과 의식으로 신약의 교회와 의식들을 대체한 것이다.

 

초대교회는 주의 만찬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만찬 자체를 신성화시키고 말았다.

구약시대 제사와 카톨릭의 성만찬은 내용물만 다를 뿐이지 같은 성향을 보인다.

 

*구약의 제사=카톨릭의 미사(성만찬)

*구약의 대제사장의 위치=카톨릭의 교황 위치

*구약의 제사장 역할=카톨릭 신부(사제)의 고해수행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카톨릭 신도들로 나타난다.

 

위와 같은 모습은 그들의 의식에서 매우 잘 드러나고 있다.

정상적인 이해는 개혁교회에서 주장하는 내용으로 아래와 같다.

 

*구약의 제사=신약의 예배(산제사)

*구약의 대제사장의 위치=신약교회의 예수그리스도의 위치

*구약의 제사장 위치=신약교회 성도들의 위치

*구약의 사람의 역할=신약시대 성령의 교통으로 이해한다.

 

신부라는 말은 교회의 아버지라는 말로 풀이 된다.

그러나 교회의 아버지는 오직 유일하신 성부 하나님이시다.

 

카톨릭은 성부의 위치와 성자의 위치와 성령의 위치와 역할을 도용한 것이다.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엄격히 구분된다. 그런데 카톨릭은 사람으로 대체한다.

 

*성부는 하나님의 교회를 소유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로 부른다.

*성자는 하나님의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그래서 교회의 대제사장 역할을 하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교회를 돕는 보혜사이시다. 그래서 교회의 영적인 교통을 감당한다.

 

이렇게 교회는 카톨릭처럼 스스로 성직을 통해서 지배하고 통치되는 원리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지배와 통치가 나타나는 것이며 교회는 통치을 받고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하는 자들이 스스로 지배하는 성직을 만들어 놓았다면 문제가 아닌가?

 

카톨릭이 이단이 되었던 것은 결국 숭배사상으로 결정이 되었다.

 

흔히 기독교라고 하면 개신교와 천주교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카톨릭은 상상을 초월하는 이방종교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글은 왜 카톨릭이 왜 이단인지 그것을 명확히 밝혀줄 것이다.

카톨릭이 이단이 된 것은 한 순간에 된 것이 아닌 천년 이상을 통해서 고착된 것이다.

 

초대교회 기독교는 다양한 신학과 학파와 정통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먼저 성경의 기초가 되고 기본이 되는 것은 세상과 구별된 영적인 공동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 공동체를 세상의 국가 공동체로 유착시킨 것이 바로 카톨릭이라는 사실이다.

 

카톨릭이 이단이 된 첫번째 이유는 이방종교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먼저 카톨릭은 우상숭배를 하는 종교와 같다.

 

예수 동상과 그림을 통해서 가짜 신상을 만드는 것들을 행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일부 개신교도 개혁해야 하는 문제다. 예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카톨릭 신앙은 영적인 신앙에서 육적인 신앙으로 대폭 바뀌었다는 것이다.

예수에 대한 형상숭배는 기본이었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숭배까지 나타났다.

 

카톨릭은 마리아를 존경하기 때문에 동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기도한다고 말한다.

그런 논점으로 말한다면 죽은 우리의 선조들의 중보가 정당화 된다는 주장과 같다.

 

구원은 살아 있을 때 모두 결정된다. 그 이후은 육체의 질서와 무관하며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은 영혼만 남고 그 영혼은 심판 날에 그대로 부활한다는 것이다.

 

죽은 영혼에 다시 기회가 있다는 것은 현재 육체로 사는 기간 외에 구원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예수가 구원을 위해서 육체 가운데 오셔서 죽은 것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구원의 기회는 육체로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죄의 오염은 육체로 있을 때에만 해당된다.

예수께서도 죽은 영혼들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는 말씀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약시대 죽은 성도들도 그들의 영혼들이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낙원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죽은 영혼에 다시 기회가 있다면 구약시대 영혼들에게도 다시 기회가 되는가?

 

이것은 신약시대에 죽은 영혼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던지는 것이다.

이 세상은 인종과 차별이 있는 육체적 질서지만 영혼은 동일한 것으로 여기와 무관하다.

 

예수를 통한 구원은 죽은 영혼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왜냐하면 부활한 예수는 영혼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홀로 완전한 부활체로 부활했다.

 

이 말은 현재 예수 외에 어느 누구도 육체로 부활한 자가 하늘과 땅에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어느 누가 지금 예수와 같이 부활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자가 있는가? 아무도 없다.

 

즉 산자나 죽은 자나 영원한 육체를 보유한 자가 지금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이 육체 가운데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말하는 것이다.

 

죽은 영혼들에게 다시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육체만 죽은 것이 아닌 영혼까지 죽었다는 주장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영혼은 분명히 썩어져가는 몸을 버리시고 영원한 몸을 가지고 부활을 하였던 것이다.

 

즉 예수는 그의 영혼까지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닌 바로 육체만 죽었던 것이다. 이것은 성경대로 예수의 영혼자체는 죽는 것이 아닌 아버지께로 올라간 것으로 확인되며 몸이라는 육체만 죽었던 증거와 일치한다. 예수의 부활은 바로 영혼의 부활이 아닌 몸의 부활이다.

 

이렇게 예수도 육체만 죽었으며 그의 영혼은 그대로 아버지의 낙원에 올르셨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죽어서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만으로 있을때에 다시 구원의 기회가 가능할까? 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어느 누구도 육체의 구원을 받은 자가 없다. 즉 영혼의 구원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죽은 자들은 모두 영혼이 낙원과 음부로 갈라진다.

 

이것이 성경적 내세론이다.

만약에 죽은 자들의 영혼에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예수의 영혼도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이며 예수의 부활은 육체의 부활이 아닌 영혼과 육체의 부활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성경 그 어디에도 예수는 영혼이 죽은 것이 아닌 육체가 죽은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육체로 살아 있을 때에 구원을 얻어야 하는 문제이며 육체 가운데 있을 때에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럼 왜 죽은 자들이 다시 구원의 기회가 있다고 카톨릭은 크게 착각을 했을까? 그것은 구약과 신약의 구분을 못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구약시대 죽은 영혼들은 예수가 오기 전까지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낙원에 오르는 것은 죄가 없는 자가 하나님께 올라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다린 시대였던 것이다.

 

예수는 이 땅에서 육체로 죽으시고 육체로 부활하기 전에 먼저 구약시대 죽은 영혼들을 살리셨던 것이다. 그것은 성경 곳곳에 증거하고 있다. 잠자던 자들의 무덤이 터졌다는 것과 사로잡힌 자들을 다시 사로잡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에서 증명된다. 즉 오른편 강도만이 낙원에 예수와 함께 오른 것이 아니다.

 

예수는 구약시대 죽은 자들까지도 모두 데리고 하늘 낙원에 올랐던 것이다. 그래서 구약시대 죽은 자들은 모두 심판을 확정받게 된 것이다. 구약시대 죽은 자들은 예수의 죽음으로 음부와 낙원으로 모두 갈라졌던 것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음부와 낙원이 지금 죽은 순서대로 계속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확하다.

 

그런데 카톨릭은 구약과 신약을 구분하지 못하고 구약중심으로 내세론을 접근하고 있다. 그 결과 구약시대 죽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듯이 신약시대 죽은 영혼들도 다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전형적인 이단사상이라는 것이다. 여호와 증인, 안식교, 몰몬교, 안증회 등등 대부분의 이댠들이 바로 구약과 신약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의 역할과 성경에서 신약과 구약이 왜 구분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오늘날 마리아 동상 세워서 그 앞에 기도하는 자체가 얼마나 저급한 신앙인가? 구약시대 금 송아지를 만들어서 우상숭배하는 것들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카톨릭이 이단이 아니라면 대한민국 이단들은 모두 이단이 아니라는 주장과 같다.

 

다름은 카톨릭이 왜 이단이 되었는가? 그 두번째는 교황과 연관이 있다. 성경에 교회의 유일성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즉 복수적인 교회의 대표는 하나님과 예수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신약성경 그 어디에 인간이 교회를 대표하는 단수적인 통치적 위치가 존재하였는가? 사도들도 한 명이 아닌 12사도였고, 감독도 장로도 마찬가지 였다.

 

사실 하나님의 교회를 인간의 제도로 장악한 것이 카톨릭의 계급정치라는 것이다. 어떻게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의 위치를 인간 한 사람이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성경 그 어디에도 사도들의 대표는 없었다. 이방인을 위한 바울이라고 말하는 내용도 있지만 결국 단수적인 교회의 대표는 성경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카톨릭은 이것 외에도 성인 숭배사상, 제사문제 등등을 본다면 이방종교와 다름이 없이 변질이 되었다. 성경을 조금만 연구한다면 카톨릭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개신교는 비록 신학의 자유를 부여해서 자유를 찾았지만 카톨릭은 아직도 심각한 사상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신학을 전면 개방하고 교육신킨다면 카톨릭은 다 무너진다.

 

다음은 카톨릭의 치명적인 문제는 과거 정교유착과 같이 하늘과 땅의 세계를 유착시킨 사상이었다. 그래서 세상나라와 교회를 구분하지 않고 나라의 왕과 교회의 교황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정교분리로 말미암아 이것을 구분하고 있다. 이런 구분의 시초는 종교개혁으로 시작이 된 것이다. 그래서 개신교는 정교분리를 만들었다.

 

정교분리 정신은 성경적인 세계관이다. 즉 영적인 질서와 육적인 질서로 구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영적인 질서는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에 해당되는 영혼의 문제라면 육적인 질서는 국가와 국가의 질서와 법에 해당되는 육적인 질서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의 법은 양심을 심판하는 것이 아닌 보이는 현상에 대해서만 처벌을 하고 있다.

 

그러나 카톨릭은 아직도 정교분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렵에서는 아직도 동양배척과 개신교 배척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카톨릭은 한국에서도 정치와 종교를 구분하지 못하고 종교가 정치에 간섭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과거부터 정치적으로 직접 개입하는 것을 선호한 종교는 종교적으로 카톨릭이 가장 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의 장로교와 보수주의라는 주류세력(70%)은 종교의 정치개입을 매우 꺼려했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 정치와 정교분리법을 고수한 종교가 유일하게 기독교라는 것을 누가 알고 있을까? 대부분 과거부터 한국교회들은 정교분리를 주장하면서 정치나 혹은 시위에 종교의 이름으로 참여하지 말라고 가르쳤다.(정교분리)

 

이런 가르침은 시민의 권한이 아닌 종교적 참여가 되기 때문에 거부한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민주주의 정치와 정교분리의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대부분 과거 시위나 정치에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외에 기독교 진보진영은 정교유착으로 접근한 해방신학이라는 민중운동이 앞장을 섰다. 그러나 성경은 보수주의가 맞는 것이다.

 

지금도 기독교는 여전히 정치참여를 반 성경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물론 당연한 것이다. 교회는 교회의 일이 있으며 정치는 종교와 무관한 것으로 국가적이고 시민의 역할이 따로 있는 것이다. 카톨릭이 왜 반미와 시위에 단골로 나왔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천주교 자체가 정교분리가 아닌 계급정치와 정치신학이라는 것이다.

 

해방신학은 민족주의 정치해방 운동을 만들었고 천주교의 정의구현 사제단은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 평등을 추구한 것이다. 천주교 성직자체가 계급주의이면서 평등주의라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아무튼 이런 배경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상은 결과를 낳는다. 과거 많은 천주교 신부가 미국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는가?

 

카톨릭의 교리, 정치는 이렇게 세속화 되었고 유착화 된 것이다. 그런 결과 유렵에서는 천년 이상 국가와 유착을 하였고 불리할 때에는 평등주의를 주장하면서 반정부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주교라는 카톨릭은 성경적인 정치가 아닌 중세시대 정교유착의 정치가 강했다는 것이다. 또한 신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인간과 신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인간숭배 사상이 나타났다.

 

이런 것들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카톨릭은 이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카톨릭 신부들은 지금이라도 모두 뛰쳐나와서 참 교회를 세우는 일에 앞장을 서야 한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교황정치가 말이 된다는 말인가? 중세시대도 아닌데 어떻게 아직도 계급정치를 고수하는지 의문이다.

 

아주 신기하고 공교롭게도 카톨릭의 정치와 신학은 모두 유착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신학적으로 천주교는 하늘과 땅을 유착시켜서 땅의 인간들을 하늘과 연결시켜서 무리하게 숭배하게 된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세상의 질서와 하늘의 질서를 혼합시켜 성도들이 교회를 통치받는 곳에서 통치하는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하늘과 땅을 유착시키는 이유는 땅에 있는 인간과 교회들이 숭배와 정치적 장악을 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마리아 동상 앞에서 기도하는 추악한 짓들은 계속 될 것이다.

 

황당한 카톨릭의 마리아 숭배사상!ㅡ마리아 숭배사상은 이방종교의 풍습이다.

 

카톨릭은 하늘의 질서와 땅의 질서를 일치시켜 땅의 사람들을 숭배하고 있다.

땅의 질서는 세상의 육체적인 질서라는 가정과 사회와 국가들과 세상의 법들이 존재한다.

 

하늘의 질서는 육체적인 질서가 아닌 삼위와 천사와 영혼들로 하늘의 세계로 구분된다.

이 두 질서는 서로 혼합되는 것이 각각 다른 법칙이 처음부터 적용이 되었다.

 

그 가운데 예수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교회라는 새로운 영적인 공동체가 형성이 된 것이다.

그 관계는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가 되며,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가 된다는 영적원리다.

 

이 원리는 육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관계이며 상징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과 같다.

교회가 몸이란 것은 육체의 법칙과 같이 실제로 우리 몸이 예수의 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영적인 질서는 육체적으로 관계된 것이 아닌 하늘의 질서인 영적인 원리다.

마리아는 예수와 육적인 부모의 관계였다면 영적인 관계는 하나님과 관계된 아들이었다.

 

즉 예수는 육체적으로 마리아의 아들이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또한 예수는 육체적으로 마리아의 아들이지만 마리아보다 먼저 있었던 존재였다.

 

즉 예수는 죽기 전까지 임시로 마리아의 아들로써 육체적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는 더 이상 마리아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만 해당된 것이다.

 

부활한 예수의 몸은 마리아에서 받은 몸과 전혀 다른 완전한 육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처음 예수의 몸은 마리아와 관계된 아들로써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몸이 죽은 이후에는 마리아와의 육체적인 인간관계는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새로 부활한 몸은 마리아의 몸과 전혀 다른 의인의 몸으로 부활했던 것이다.

 

부활한 예수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으뜸이며, 장자이며, 왕적인 위치라는 사실이다.

즉 모든 인류는 다 죽었고, 부활하지 못했지만 그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처음 출발했다.

 

카톨릭은 예수가 죽기 전 육체적 관계를 강조하면서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지금도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가 죽은 이후는 현재의 육체적인 세상의 질서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 증거는 예수 외에 세상에서는 어떤 사람도 부활한 자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장차 부활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현재의 육적 질서로 나타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즉 현재의 부모와 아들과 자매라는 관계는 부활한 이후의 관계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몸은 죽어가는 육체를 얻었던 사망의 관계이며 사망의 법에 종속된다.

 

그러나 부활한 이후에는 장가도 없고 천사들과 같다는 성경의 증언이 정확한 것이다.

카톨릭은 현재의 질서와 부활 이후의 질서가 모두 같은 것으로 혼동한 사두개인과 같다.

 

부활 이후의 몸은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재창조 된 몸이며 현재의 부모와 관련이 없다.

만약에 현재의 몸과 부활한 이후의 몸이 현재의 가족관계와 관련이 있다면 심각해진다.

 

몸의 부활을 받은 우리는 영원히 구원의 부활을 얻는데 믿지 않는 가족은 과연 어떨까?

만약 믿지 못해서 몸의 부활을 못했던 부모의 관계가 부활 이후에도 지속된다면 심각!

 

성경은 현재의 육체적 관계와 질서는 몸의 부활 이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도 천사들은 현재의 육체적인 가족관계가 아닌 하늘의 질서만 적용된다.

 

현재의 질서는 출생하면서 가족들이 만들어지는 육적인 질서라는 것이다. 그 끝은 재림!

미래 재림으로 오는 새로운 세계는 육적인 질서가 아닌 영원한 질서가 적용이 된다.

 

그것은 현재의 가족 구성원의 질서가 아닌 하나님의 새로운 영원한 질서다.

하나님이 구원받은 자들의 모든 아버지가 되시며 우리는 그의 아들과 같은 존재가 된다.

 

예수는 여전히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양자로써 하나님과 관계된다.

왜 성경은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딸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특별히 표현했을까?

 

하나님의 딸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아들로 표현한 이유는 예수로 말미암는다.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관계가 되기 때문에 성도가 하나님의 양자된 아들이 된다.

 

현재의 육적인 딸이라는 자들도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세상의 질서로 교회라는 공동체가 세상의 질서가 아닌 하나님의 질서로 새워진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즉 교회는 세상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하는 것이다.

 

만약에 예수가 딸로써 세상에 왔었다면 구원받은 교회는 하나님의 딸이 되었을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딸들이 되었을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로 우리를 특별히 부르는 이유는 단순한 육체적 관계가 아닌 영적인 의미를 적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안티에 대한 반론 댓글 모음~

 

2천년 전 마리아 얼굴 본 사람도 없고, 또한 정확한 그림도 없고, 부처의 얼굴도 정확히 모르고 여기 저기 난무한 것이 사실입니다. 자기 풍습과 고향과 지역과 나라에 따라서 각기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짜가 아닌 가짜라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가짜를 두고서 절을 하고 복을 그 앞에서 빌며 소원성취를 말해야 하고, 그 앞에 음식까지 갇다 바쳐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그런 돈 있으면 당장 굶어서 죽은 나라들에게 보내세요. 불교국가도 굶어서 죽은 나라 많습니다.

 

안티님~우리 다 떠나서 솔직해 집시다. 마리아가 살아생전 그 당시에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복을 빌도록 하는 것을 과연 원했을까요? 미천한 개집종이라고 말했던 마리아가 말입니다. 마리아도 아마 지금 하는 행위들을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또 부처도 당시에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비는 것을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부처가 당시에 자신의 형상들을 만들어 놓고 입시, 고시, 복을 빌라고 가르쳤습니까? 아마 부처도 상상도 못했던 일을 후세의 사람들이 돌상을 만들어 놓고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이고 이성이 있는 종교의 지도자였다면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놓고 행하라고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교과서에서는 위인들에게 절하라고 절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적인 것과 일반 역사적인 것은 정교분리로 구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종교와 국사 교과서의 역사적 입장은 이렇게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국사 교육은 전 국민에게 종교를 떠나서 가르치는 역사적 입장이라면 단군이라는 위인에게 절을 하거나 혹은 종교적인 신앙을 부여하는 것은 종교적인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분하지 않는다면 위험합니다. 정교분리의 정신으로 보아도 마땅히 구분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순신은 불자도, 기독교도, 천주교의 입장도 아닌 종교와 무관한 대한민국의 역사적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아래의 내용은 마리아의 교리를 비판하는 글입니다.

 

*마리아에 대하여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잘못된 교리 40~49(펌)

 

40. 성모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할 때 원죄로부터 물들지 않도록 보전하셨다(490-492).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도 아담의 후손이며, 죄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다(시 51:5, 롬 5:12).

 

41. 마리아는 온전히 거룩하며, 죄 없이 일생을 살았다(411,493).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도 죄인이었으며, 하나님만이 거룩하시다(눅 18:19, 롬 3:23, 계 15:4).

 

42.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과 또 그 후 평생을 처녀로 살았다(496-511).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탄생 시까지 처녀이었다(마 1:25). 그 후 마리아는 여러 아이들을 낳았다(마 13:55-56, 시 69:8).


43.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다(963, 971, 2677).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세상에 오셨을 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였다(요 2:1).

 

44.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이다(963, 975).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는 교회의 한 회원이었다(행 1:14, 고전 12:13, 27).

 

45.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쓰라린 인간 속죄의 사역을 같이했기 때문에, 그녀는 인간 속죄의 동역자이다(618, 964, 968, 970).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지시고 홀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음으로, 그리스도만이 홀로 우리의 대속자 이시다(벧전 1:18-19).

 

46. 마리아가 이 세상에서 일생을 마쳤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육신과 영혼을 천국에 가도록 했다(The doctrine of the Assumption)(966. 974).

성경의 가르침: 마리아도 죽음으로써 그 육체가 땅의 흙으로 돌아갔다(창 3:19).

 

47. 마리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신자들의 중보자이며, 신자들이 염려와 탄원을 마리아에게 호소할 수 있다(968-970, 2677).

성경의 가르침: 그리스도는 우리의 염려와 근심 걱정을 고할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이시다(딤전2:5, 요14:13-14, 벧전5:7).

 

48. 카톨릭 신자는 자신을 마리아에게 의탁하며, 그들의 죽는 순간 모든 것을 마리아에게 맡긴다(2677).

성경의 가르침: 믿는 자들은 우리 주 예수님만을 의지해야하며, 죽는 날 우리는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긴다(롬 10:13, 행 4:12).

 

49.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이 세상과 천국의 여왕으로 높이 찬양하셨다(966). 신자들은 특별한 기도로써 그를 찬양해야한다(971, 2675).

성경의 가르침: 주님만을 찬양해야한다. 주님만이 하늘과 땅에서 높임을 받으실 뿐이기 때문이다(시 148:13). 하나님께서 "내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셨다(출 20:3).

 

초대교회 이후 인류의 만행은 카톨릭으로 시작되었다.(전격공개)

 

인류 역사에서 하나님의 관심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인류의 역사를 두고 크게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율법 이전 시대다.

 

하나님은 율법이 없이도 인간들이 나름대로 기준으로 의를 이루길 바라셨다.

그러나 노아홍수로 모든 인류가 망하면서 구원이 불가능한 것을 입증하였다.

 

둘째 율법시대다.

 

하나님은 선택과 율법을 통해서 인간들이 하나님의 의에 도달하길 바라셨다.

그러나 인간은 이스라엘이라는 선민들이 망하면서 불가능한 것이 입증되었다.

 

셋째 신약시대다.

 

하나님은 결국 마지막 아들을 통해서 인간들이 하나님의 의를 얻도록 허락하셨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노력에 의해서 결국 구원이 성취된다.

 

물론 신약시대에서도 인간은 스스로 의에 이르지 못하는 것들이 입증 되었다.

또한 교회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데 세상에 속하려고 노력했던 것도 나타난다.

 

1. 왕정국가와 카톨릭의 연합은 실패하였다.

 

결국 카톨릭에 의해서 실패가 되었다. 정교유착이라는 반성경적인 음행이었던 것이다.

성경에서 교회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세상 안에 있지만 특별히 구별된 공동체다.

 

2. 제국주의와 카톨릭의 음행은 결국 참극으로 이어졌다.

 

세상 어떤 제국주의 국가들도 교회와 연합해서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독일의 히틀러는 종교를 복종시키는 제국주의였지만 유대인의 학살로 이어졌다.

 

3. 공산국가와 교회는 서로 함께할 수 없는 극과 극을 보여주었다.

 

공산주의 사상은 종교자체를 말살하려는 유물론적 인간중심의 사상이다.

결국 공산주의 국가들에 있는 교회들은 과거 심각한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4. 민주국가와 교회는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를 선택한 바람직한 관계다.

 

민주주의는 대부분 국가와 종교의 관계에서 그 선을 분명히 구분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국가와 종교를 분리시키는 것으로 가장 이상적인 이분법적 관계가 나타난 것이다.

 

결국 약 2000년 동안 수많은 전쟁과 학살과 갈등 속에서 겨우 얻어낸 것이 민주주의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서 민주주의의 정교분리와 종교자유는 성경이 처음부터 주장하였다.

 

초대교회는 근본 구약시대라는 이스라엘의 왕정정치를 포기하였다.(독자적 공동체 형성)

그리고 세상의 어떤 정치와 질서와 전혀 무관한 독립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주장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영적인 나라이며 그의 백성이 교회라는 공동체다.

이렇게 예수 이후로는 육적인 질서와 또 다른 영적인 질서가 각각 나타나게 된 것이다.

 

초대교회부터 이 세상은 근본 영적인 것이 아닌 모두 세상에 속한 육적인 질서였다.

이런 구분은 결국 교회와 세상(국가)은 근본 서로 다른 영역임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교회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백성들이 된 것이다.

초대교회부터 세상에는 육적인 질서와 영적인 질서가 각각 공존하게 된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는 약 2000년 전 교회가 출발할 때에부터 주장하였던 두 질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나름대로 하나님의 교회를 두고서 정치적으로 온갖 실험을 다했던 것이다.

 

이러한 인간들의 이념과 정치적인 실험의 결과는 불 속에 뛰어들었던 불나방과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교회는 심각한 위기로 인류 최대의 거대한 이단이 나왔다.

 

그곳이 바로 카톨릭이라는 이단으로 성경을 심각하게 뒤집어 놓았던 것이다.

세상과 약 2000년 가까이 영적음행을 했던 결과 지금까지 깊은 수렁에 빠져버린 것이다.

 

카톨릭은 성경의 기본조차도 무너뜨린 것을 약 2000년 동안 지금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카톨릭은 정치적으로 독재적이며 계급주의이며 지상과 하늘을 유착시킨 신학이다.

 

초대교회 이후 이런 신학에 의해서 인류의 비극이 대부분 만들어졌던 것이다.(마녀사냥)

카톨릭과 로마왕국의 연합은 종교 중에서 가장 암흑시대라는 비극의 시대를 선물하였다.

 

카톨릭의 수직적인 성직제도라는 독재적인 모형은 과거 제국주의를 강력하게 지원하였다.

동시에 카톨릭의 영향은 종교의 자유를 파괴한 공산주의라는 계급주의 국가를 만들었다.

 

또한 세상과 교회를 일치시켰던 카톨릭 신학들은 유물론이라는 평등주의를 제공하였다.

세상에서 정교유착 카톨릭의 평등주의를 적용시키려는 결과 공산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카톨릭에 의해서 인류의 비극적인 사건들이 깊숙히 천년 이상 나타난 것이다.

한국의 카톨릭은 과거부터 국가 보안법 철폐와 민족끼리 연합과 미군철수를 주장하였다.

 

이는 현재의 민주주의라는 가장 이상적인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포기하자는 주장이다.

이렇게 카톨릭이 세상의 일에 너무 깊숙히 관여한 것은 자신들의 신학에 기초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탄생에 가장 비협조적이었던 카톨릭이 민주주의를 논한다는 것이 우습다.

최소한 자신들의 강력한 독재정치의 모습과 신도들의 평등사상이 무엇을 만들었는가?

 

인류 역사에 그토록 비극적인 것들을 줄줄이 양산했던 카톨릭의 양심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라도 카톨릭은 비성경적인 이단의 길에서 벗어나는 성경운동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

 

최소한 개신교처럼 성경만 연구했어도 그들의 허구는 대부분 1년도 안 되어서 드러난다.

카톨릭이 거짓으로 포장하고 감추려고 하지만 결국 성경의 진리는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불신앙으로 만들어진 카톨릭 신학의 결과는 인류에 수많은 참극을 만들었다.

제국주의 학살인 히틀러의 만행은 독일의 구교와 깊숙이 관련이 깊다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카톨릭과 유착한 왕정정치의 학살과 만행은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 되었다.(중세시대)

북한 공산주의 학살에서 저항하는 종교가 현재까지 개신교가 절대 다수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카톨릭은 자신들의 이단 신학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반성해야 한다.

성경을 뒤집고 인간의 사상과 결탁한 결과는 결국 참극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마지막으로 카톨릭은 철저히 이기적이다. 왜 카톨릭이 유난히 반미성향이 높은가?(신부)

공교롭게도 미국은 개신교가 가장 강한 나라다. 종교는 특정 국가를 차별하면 안 된다.

 

한국 천주교는 카톨릭이 가장 많은 유렵에 대해서는 반유렵 감정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민족주의자들과 가장 가깝고 특정 종교적 국가에 대한 반미감정이 복음인가?

 

신앙은 모든 나라를 사랑하고 모든 나라에 대해서 우호적이며 복음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

성직자들은 세상의 국가에 대해서 정치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닌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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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호산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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