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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맺힌 변사자들 '마지막 가는 길' 이렇다

맑은샘77 2011. 7. 10. 09:22

한 맺힌 변사자들 '마지막 가는 길' 이렇다

뉴시스 | 박대로 | 입력 2011.07.10 06:02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가족들과 떨어져 쓸쓸히 살아가는 노숙인들이나 독거노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소리 소문 없이 세상을 등지고 있다.

서울 양천경찰서 관내 변사사건은 1년 평균 230건 수준이고, 강서경찰서 관내에서도 하루에 적어도 3건 이상 변사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변사자의 성별은 대개 남성이다.

노숙인구가 많은 영등포구 역시 변사체가 자주 발견되는 곳이다. 노숙인들 중 상당수가 술 때문에 삶을 마감한다. 노숙인 사망을 자주 접한 일선 공무원은 "술로 인한 간경화와 장파열이 주요 사망원인"이라며 "(노숙인들은)밥 대신 술만 마시니 오장육부가 녹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변사사건 현장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들은 경찰관들이다.

사람이 죽어있다는 신고가 접수되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지구대 대원들이 출동해 폴리스라인을 설치하는 등 현장보존 조치를 취한다. 이어 도착한 해당 경찰서 형사당직팀과 과학수사팀은 현장을 촬영하고 증거물을 수집한다.

사체의 위치를 알려주는 신호는 냄새가 아니라 문을 열자마자 달려드는 파리떼들이다. 특히 여름날 변사사건 현장 부근에서는 파리가 사람들의 얼굴을 연신 때리며 날아다니기 일쑤다.

파리는 사체에 알을 낳아 구더기가 끓게 만든다. 특히 구더기는 사체 부위 가운데 수분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눈, 코, 입 주변에 주로 생긴다. 13년 경력의 김모 경위는 "처음에는 구더기를 볼 때마다 구역질이 나지만 계속 하다보면 익숙해진다"고 설명했다.

물론 날아드는 파리떼를 쫓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작업은 사체를 검시하고 현장을 살피는 일이다.

검시관들이 육안으로 사망여부를 확인하는 동안 경찰은 사체 주변에 유언장이나 유서가 있는지 확인한다. 경찰은 또 살해 용의자의 것일지도 모를 혈흔, 지문, 휴지, 담배 등 사소한 것들까지 모두 수집한다.

변사체를 늘상 접하는 검시관들에게는 자살과 타살을 구별하는 노하우가 따로 있다.

목을 맨 채 숨졌을 경우 상처가 1자형이면 타살, V자형이면 자살로 볼 수 있다. 추락사의 경우 몸의 모세혈관이 터져있으면 타살일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에 의해 떠밀려 추락했을 경우 발버둥을 치는 과정에서 모세혈관이 터지게 된다. 눈을 까뒤집었을 때 울혈이 확인돼도 타살이 유력하다.

검시를 마치면 사체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다. 의사가 이송된 사체를 검안한다. 사망원인이 확인됐을 때는 사망진단서를, 사망원인이 명확치 않을 때는 사체검안서를 작성한다.

검안 결과 사망원인이 파악되지 않으면 부검단계로 넘어간다. 사체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돼 부검이 허락되면 이후부터 사체는 더 이상 유족의 것이 아니다.

정형곤 양천경찰서 과학수사대팀장은 "(영장이 발부되면)유족이 부검을 하지 말라며 만류하든 해달라고 조르든 부검 여부는 국가에 달려있다"며 "특히 타살일 경우에는 거의 무조건 부검을 실시하고 사고사일 경우에도 재판에 대비해 부검을 실시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사체 부검을 놓고 수사기관과 유족이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관은 "타살 혐의점을 쉽게 찾을 수 없고 사인이 불분명할 때는 필히 부검을 실시해야 하지만 '죽은 자를 한 번 더 죽이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유족이 부검을 원치 않는 경우가 있다"며 "이럴 때가 바로 부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골치가 아픈 경우"라고 말했다.

그래도 부검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할 유족이라도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변사자 신원이 끝내 확인되지 않을 경우나 유족을 찾지 못할 경우에는 사체 관리주체가 수사기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바뀐다.

경찰이 변사체 처리 관련 공문을 지자체로 보내면 해당 지자체는 가족관계등록부 등을 통해 가족관계를 재차 확인한다. 이 과정을 거쳤음에도 유족을 찾지 못하면 전국 시·군·구에 통보해 변사자 공고를 낸다. 공고는 최장 30일 동안 계속된다.

공고를 거쳐 운 좋게 연락이 닿더라도 모든 사체가 유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변사자가 집을 떠나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다는 이유로 사체 포기서를 작성하는 유족들이 절대 다수다.

권오숙 강서구청 주민생활지원과 주무관은 "공고를 거쳐 친인척을 찾아내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거의 예외 없이 사체인계를 거부한다"며 "생전에 관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고 고인을 위해 장례비용을 들이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권 주무관은 "이 일을 맡은 지 1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사체를 인계해 가겠다는 유족은 단 1명도 없었다"며 "마지막 가는 길을 그렇게 떠나보낼 때 담당자로서 마음이 편치 않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변사자는 유족뿐만 아니라 구청과 병원 측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한다. 사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구청과 병원이 시체 안치 비용을 놓고 티격태격하는 일이 다반사다.

병원은 수사가 진행되는 기간이나 유족을 찾기 위한 공고기간 동안 사체를 보관하는 일을 맡는다. 문제는 사체 안치 비용을 구청이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손해를 감수하며 사체를 보관하는 셈이다.

특히 수사가 지연되거나 가족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경우 그만큼 병원의 사체 안치 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안치 비용은 하루 1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한 달 동안 안치한다면 병원 측이 지불해야할 비용은 수백만원까지 치솟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체를 인도받지 않으려는 병원까지 나타나고 있지만 병원 측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사체를 보관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영등포구청 사회복지과 노숙지원팀 소속 박철호씨는 "병원 쪽에는 사체 안치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대신 병원은 서둘러서 처리를 해달라며 구청으로 독촉전화를 걸곤 한다"고 귀띔했다.

이같은 과정을 겪으며 공고기간마저 종료되면 지자체가 유족 대신 장례절차를 밟는다.

서울시내 각 구청은 서울시가 계약한 장례업체 측에 신상정보, 검사지휘서, 검시필증, 사망진단서 등 공문을 보내고, 공문을 수령한 업체는 병원으로부터 사체를 인도받아 장례를 치른다. 비용은 사체 1구당 약 50만원 수준이다.

인도된 사체는 대부분 화장된다. 장례업체는 향후 식별하기 쉽도록 얼굴, 전신, 신체특징 부분 등을 촬영한다. 사진 1부는 관할구청에, 나머지 1부는 납골함에 보관된다.

화장은 여느 장례와 마찬가지로 엄숙히 진행된다. 사체를 소독하고 창호지로 감싸 개량수의나 면 거즈붕대로 염습한 다음 목관에 넣고 초석으로 고정시킨다. 단 손상된 시신을 화장할 때는 비닐로 2번 싸매 외관상 보기 좋게 만든다.

유골함은 10년간 무연고 납골묘에 안치된다. 이 기간 동안 유족이 찾아와 인수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유골함은 자동 폐기된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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