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사교육 줄이는 방법에 대해 서술하시오.-
(답) 특목고 입시 때 선행학습 평가 못하게 하고 혁신학교를 도입
연봉 18억원 스타강사 출신의 메가스터디 창립 멤버. 2003년 10월 학원가를 떠난 뒤 인터넷 무료 강의 시작. ‘학원 발가벗기기’ ‘이범의 교육특강’ 등의 책으로 사교육과 싸워온 인물. 이범(41)씨. 그가 서울시교육청에 16일부터 출근하고 있다. 이번엔 곽노현 교육감 비서실 별정직 공무원이 된 그를 19일 만났다.
나는 안다, 사교육의 시작을
“그 사람 잘 알죠. 교육청에 갔다고요? 이쪽을 잘 아는 사람인데… 음… 우리에게 좋지는 않겠네요.” 이씨가 교육청에 자리 잡았다는 소식에 학원가는 술렁이고 있다. “그 사람 하나 갔다고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란 목소리도 있지만 신경은 쓰인다는 눈치다.
1997년부터 서울 강남 일대 학원가에서 대한민국 최고 인기 강사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다 매출에 연연하는 학원가 생리에 실망해 6년 만에 은퇴를 선언한 직후부터 일관되게 공교육 부실과 사교육 팽창을 비판해 왔다. 그의 주장은 현실에 밀착해 있다. 우리나라 공교육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피부로 느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서울시 사교육 정책을 주무르게 됐다.
교육감 비서실에서 그가 맡은 일은 ‘사교육과 직·간접 연관된 일’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묻자 “고교 입시안”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교육은 고교 입시가 많이 좌우해요. 특수목적고 입시 때문에 중학교 3학년생이 학원에 몰리고, 뒤따라 2학년, 1학년생도 몰리는 구조죠. 대입 사교육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 고입 시장이 사교육에서 가장 성장세죠.”
2011학년도 시험부터 과학고, 외국어고 등 특목고는 자체 필기시험을 볼 수 없다. 학교생활기록부와 학교장 추천서, 면접 등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는 교육과학기술부의 특목고 입시 개혁안에 대해 “사교육 수요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나름대로 잘 잡아놓긴 했다”고 평가했다. “지인이 운영하는 과학고 대비 학원이 있는데 한 달 매출이 1억원 줄었답니다. 400명이 그만뒀다는 의미죠.”
이씨의 전언과 학원가 증언은 거의 일치한다. 서울 대치동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김모(38)씨는 “특목고 영어학원으로 유명한 ○○○학원은 수강생 절반이 줄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영어학원들이 특목고 입시 대비 비중을 줄이고 원어민 교사 데려다 영어회화 가르치는 어학원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회화 시장은 입시 시장보다는 작다”고 했다.
사교육 시장은 위축됐다. 이는 정책이 의도한 대로 시장에 먹히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뭘 더 하겠다는 걸까. 게다가 특목고 입시안은 교육부가 만든다. 교육청 소관이 아니다.
“교과부가 큰 틀은 만들지만 세부 운영은 교육청이 해요.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거시적인 것만 보고 디테일한 부분을 관리해주질 않았어요. 그러니까 뭔가 거창하게 바뀐다고 하는데 막상 현장에서 학부모들이 느낄 때는 달라진 게 없어요. 아무리 좋은 의도로 큰 제도를 바꿔도 미시적인 부분을 세심히 관리하지 않으면 사교육을 막을 수 없어요.”
그는 우려 대상으로 외고보다 과학고를 지목했다.
“외고는 교육청에서 파견한 입학사정관이 학교 측과 한 팀으로 움직이면서 일종의 감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어떻게 해볼 여지가 적습니다. 하지만 과학고는 외고에 비해 선발과정이 유연해요. 그만큼 사교육을 유발할 우려도 크죠.”
과학고 정원의 70%를 뽑는 과학창의성 전형의 경우 서류평가와 내신으로 2배수를 뽑은 뒤 과학캠프를 거쳐 선발한다. 캠프에서 창의성과 문제해결력, 과제수행능력 등을 따지게 된다.
“문제해결력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죠. 나머지 30%인 자기주도학습 전형도 면접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필고사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어떤 범위에 어떤 내용의 질문이 나올지는 과학고 하기 나름이거든요. 학생부 비교과영역 반영도 주의해야 합니다.”
이씨는 “선행학습이 필요한 지식을 물어서는 안 된다. 교육청이 의지를 가진다면 충분히 지도할 수 있다. 더군다나 외고와 달리 과학고는 다 공립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영재교육 관련 기관이 사각지대라는 말도 덧붙였다. 현재 서울에만 영재학교, 영재교육원, 영재학급 등이 261개나 된다. 1만3565명이 공부하고 있다.
“이쪽은 중앙정부도 완전히 손을 놨어요. 틈새시장이죠. 한국과학영재학교 입시를 보면 4단계 중 이미 2단계에서 올림피아드 수준의 문제를 물어요. 이건 영재 뽑는 게 아니죠. 학원 다니는 애들 뽑는 거죠.”
하지만 과학고, 영재학교 등은 이런 식의 선발방식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교선 영재사관원 입시총괄원장은 “국가에서 특수한 그룹의 학생들을 뽑는 건데 정규 교과과정을 벗어나는 수준의 문제를 물어보는 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임성호 하늘학원 기획이사도 “입학하면 대학에서나 다루는 고급수학, 고급물리를 배우는데 선행학습을 통해 올림피아드, 경시대회에 입상할 정도의 능력을 닦아두지 않으면 입학 후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런 지적을 인정했다. 그리고 헌법 제31조 1항,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를 언급했다.
“선행학습이 필요한 내용을 꼭 평가해야 되겠다면 모두가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교육청이 나서서 무료 인터넷 강의라도 제공해야죠.”
혁신학교를 늘려라
두 번째로 살필 정책은 “혁신학교”라고 했다. 혁신학교와 사교육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씨는 “혁신학교로 사교육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입시안 관리가 직접적인 사교육 관리책이라면 혁신학교는 간접적인 관리책인 셈이다.
사실 혁신학교는 아직 개념조차 불명확하다. 교육청 관계자도 “아직 개념이 명확지 않다”며 설명을 회피할 정도다. 서울에는 혁신학교가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혁신학교는 경기도에서만 운영 중이다. 그래서 곽노현 교육감 취임준비위원회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학급당 학생 수 25명 내외인 학교다. 서울에선 학생이 많지 않은 도심 지역에서 먼저 시도될 수 있다. 혁신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토론식 수업과 평가를 수행하는 학교, 학생·학부모가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적인 학교 등이 혁신학교가 될 것이다.”
이씨는 “토론하면서 가르치고 서술형으로 평가하면 학원에서 내신 대비를 할 수 없다. 미국에 가면 SAT(대학수학능력시험) 학원은 있어도 내신 학원은 없다. 선생님마다 시험 출제 방식과 범위가 다른데 어떻게 대비하나. 적어도 내신 사교육 시장은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 이상적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대입을 목전에 둔 고등학교에 이런 식의 교육이 가능한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곽 교육감은 특히 중학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고교 교육은 국가적으로 대입제도가 바뀌어야 변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중학교까지만 혁신학교를 도입해도 효과가 있을 겁니다.”
이씨는 혁신학교식 수업을 받은 아이들이 현행 대입제도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지금 입시제도에 문제가 많다지만 예전 학력고사와 비교하면 꽤 진보했거든요. 논술도 있고 수능도 학력고사와는 다르죠. 주입식 교육이 아닌 토론형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경쟁력 있어요. 중학교까지 혁신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현행 입시에도 불리하지 않다는 게 드러나면 학부모들의 지지가 많아질 거고 그러면 교육이 바뀌어 나갈 겁니다.”
인터뷰 내내 이씨는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알고 (교육청에) 들어왔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학원 강사에서 학원 비판자로, 다시 교육 공무원으로 변신한 그는 조용한 실천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