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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의 똑똑똑](12)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맑은샘77 2010. 7. 21. 23:01

[김제동의 똑똑똑](12)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민주주의 파괴된 국회 보며 결심했죠, 다시는 지지 말자고”

경향신문 | 정리 | 박경은 기자 | 입력 2010.07.21 17:48

 

여의도에 웅장하고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는 돔형의 국회의사당을 볼 때마다 난 엉뚱하게도 '돔구장'이 떠오른다. 몇 년 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우리나라가 준우승을 했을 때 국내에도 돔구장을 건설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나는 국회의원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을 주는 야구선수들에게 돔구장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돔형의 의사당에선 매일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싸움질이 난무하지만 돔구장이 들어서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즐거운 야구가 펼쳐질 것이다.제2 야당인 민주노동당 당대표로 선출된 이정희 의원을 만나기 위해 국회를 찾았다. TV나 온라인을 통해 봤던 이 의원은 늘 단호한 표정으로 차분하면서도 매서운 질책을 하는 '철의 여인'이다. 네티즌들의 표현을 빌리면 고위 관료들을 '떡실신'시키는…. 오프라인에서 만난 그에게선 웃음, 눈물, 따뜻한 인간미가 넘쳐났다.

김제동

"혹시 20대로 돌아가신다면 좀 더 나이 차이가 적은 분과 연애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해보셨어요?" 이정희 "후후. 설마 제가 연애를 한 번밖에 안해봤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의사당이라는 장소가 국민의 종이 되겠다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초심을 유지하기가 참 어려운 장소 같아요. 뭐랄까, 저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분위기랄까요?

"처음에 놀란 건 총선 후 국회에 왔는데 직원들이 다 알아보시는 거예요. 당선자 얼굴을 익히려고 직원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겠어요. 그게 당선자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전 오히려 불편하더라고요. 국회에서의 의사결정이 국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국회의원들은 글자 하나 바꾸는 것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요. 1000억원, 2000억원이라는 돈은 의미나 양이 엄청난데도 그저 주고받고, 협상하고, 조정하는 숫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많이 당황스럽고 서글펐지요. 그래도 권위는 한편으로 잘 유지하고 활용해야 할 측면도 분명히 있어요. 의석이 갖고 있는 힘과 영향력은 매우 중요한 문제죠."

-그러니까 위임받은 권력, 즉 뽑아주신 분들을 대변해야 하는 권력은 잘 활용해야 하고 개인에게 따르는 부수적인 권력은 지양하고…. 이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죠?

"정리를 굉장히 잘하시네요. 명사회자다우세요."
-과찬이십니다. 어쨌든 최연소 당대표신데 어떠세요. 부담스러우신가요? 왜 의원님에게 대표직을 맡겼을까요?

"많은 노동자와 농민, 지역주민들. 이분들이 저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주신 거고 그런 분들이 자신이 해 왔던 일과 해야 할 일들을 제가 책임감 있고 안정감 있게 해주리라는 기대감을 담아주신 것 같아요. 국민에게 부드러우면서도 명쾌하게, 또 민주노동당의 원칙을 지키면서 좀 더 다가서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아프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민노당을 두고선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친북이니 빨갱이니 국가혼란세력이니 이런 막연한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이런 오해를 어떻게 불식시켜야 할까요? 진보 전체를 대변할 정당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고요.

"우리 국민들의 집단적 지혜가 이제는 굉장히 성장했다고 봐요. 치우치지 않고 열려 있고, 언론이 전해주는 것을 뛰어넘어 스스로의 인지 능력과 학습에 대한 열정도 생긴 것 같아요. 우리가 말하는 근거와 상황과 논리를 차분히 이야기하면 충분히 이해해 주세요. 제가 변호사 생활 10년을 했어요. 그러면서 누구도 경험하지 않았던 새로운 인권의 영역을 이야기했죠. 양심적 병역거부, 동성애, 성전환…. 이런 부분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인 법관을 설득했어요. 불가능할 것 같던 일들이 되더라고요. 진보의 능력도 그렇게 성장했어요. 이번에 울산·목포에서 기초의원 포함해 출마한 우리당 후보들이 다 당선됐어요. 대구에선 우리 기초의원이 1등까지 했다니까요."

시종 비장하던 이 의원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돈다. 마치 논 팔아 공부시킨 우리 아들이 이번에 서울대에 수석합격을 했다고 자랑하는 시골 어머니의 얼굴 같다. 이 의원은 지난 10여년간 지역에서, 현장에서 사람들과 거리를 좁히고 신뢰를 쌓은 결과라고 했다.

-진보의 분열을 보면서 사람들이 실망감을 느낄 때도 있지요. 저들도 별 수 없구나, 똑같구나 하고요.

"얼마전 천안함 특위가 열렸잖아요. 그때 북이 검열단을 보내겠다고 했어요. 전 그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데, 어쨌든 북한이 이렇게 나오는데 어떻게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볼까 고민했어요. 우리 국방부는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정전협정을 뒤져봤어요. 협정 서명자가 중국·북한·유엔사, 이렇게 세 주체로 돼 있어요. 분쟁이 생기면 합의해 군사정전위원회에서 공동조사를 하도록 돼 있고, 합의가 안될 경우 한쪽 수석대표가 와서 조사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북한의 검열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지만 한쪽 대표인 북한 입장에서 조사하는 차원의 해결책은 논의해 볼 수 있지 않느냐 했더니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한다는 표정들이더라고요."

솔직히 좌니 뭐니 하는데 내 생각에 난 극우민족주의자인 것 같다. 애국가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우리나라만 생각하면 괜히 가슴이 뜨거워진다. 건강하게 열심히 군복무도 잘 마친 나는 대한민국의 아들로서 참 기특하다는 생각도 든단 말이다.

-당리당론도 좋고, 토론도 좋은데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싸우는 데 넌덜머리를 내요. 제발 좀 싸우지 말라고. 의원님도 은근히 '전투경험'이 많으시지 않나요. 하하.

"전 평화주의자예요(웃음). 평화주의자가 왜 싸우게 됐는지 절박한 설명들은 잘 전달되지 않죠. 미디어에서 형성하는 이미지도 그렇고. 그런데 2008년 12월 정기국회부터 올해 지방선거 전까지 국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2009년 용산참사 직후인 2월 국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직권상정이 없던 적이 없어요. 민주주의의 파괴도 일어났고. 도저히 통과되어선 안될 일이 통과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상황이 죄스러웠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다시는 지지 말아야겠다고."

이 의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강인하고 냉철한 여전사 같던 이 의원이지만, 그는 쌍용차 파업 현장과 용산참사 현장에서 많은 눈물을 쏟아냈고, 그런 그의 모습은 보도를 통해 많은 이들의 가슴에 잔상으로 맺혀 있다. 눈물 많은 정치인 이정희, 냉철한 당대표 이정희. 그렇지만 집에서는 어떤 엄마일지 궁금했다.

-억척스러운 엄마는 아닐 것 같은데요.
"제가 스물아홉에 열한살 차이 나는 남편과 결혼했어요. 이제 애가 둘이죠. 6학년, 4학년인데 아이랑 있을 땐 일상적인 엄마예요. 그렇다고 사교육을 많이 시키거나 볶거나 하지는 않아요. 영어숙제나 수학이 힘들다고 울면 '천천히 해봐. 넌 엄마 닮아서 잘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죠."

-드라마나 TV 프로그램은 좀 보시나요?
"시간이 없어서 잘 못보는데 < 개그콘서트 > 는 종종 봐요."
-거기 강기갑 의원님 나오시죠, 하하. 제가 예전에 < 느낌표 > 라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강 의원님을 뵈었어요. 국회의원이란 분을 처음 뵙는 자리라 누가 누군지도 몰랐어요. 그때 강 의원님 보면서 '이 아저씨는 뭐지?'라고 생각했죠. 나중에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국회의원 되게 만만하네'라는 생각을 했더랬죠.

하긴 방송 초기에 나는 여러번 방송국 문앞에서 출입을 저지당했다. 매니저가 나보다 훨씬 잘생겼기 때문에 매니저는 잘 통과하는데 나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빈번했다. 정말 외모가 뭐기에 사람을 이렇게 주눅들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사법연수원에 특강을 간 적이 있는데 점점 진입장벽이 높아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밀어붙이고 장벽이 없다고 하면서도 뒤처지면 너희 책임이라고 하는 현실이 무서워요. 출발선이 동일하지 않으니 결코 공정경쟁도 아닌데 말이죠.

"제가 연수원 들어갔을 때가 97년이었는데, 당시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친구가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아주 드문 경우였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부의 세습이 교육, 직업, 수명의 세습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선별적 복지가 보편적 복지로 바뀌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무상급식은 그런 면에서 보편적 복지를 향한 최초의 시도인 셈이죠."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뒤 인권변호사로만 살아온 이 의원은 어찌보면 법조계의 '아이돌' 생활을 보내온 것 같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거쳐 인권변호사로, 다시 진보정당의 대표로. 그 연령대의 평범한 변호사들이 하는 일들, 일상을 즐기는 대신 무대 위에 올려진 삶, 남다른 변호사의 생활을 해왔다. 적당히 자신의 삶도 즐기고 누리면서 일상을 즐기라는 유혹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 유혹에선 벗어났어요. 한때 정치입문을 앞두고 아이들과 운동도 하고 과자도 구우면서 소소한 행복을 만끽해 본 적이 있죠. 베토벤 교향곡 5번을 편곡한 피아노곡을 마스터하려고 악보까지 구해놨는데 국회에 들어오면서 다 물건너갔죠. 막상 국회의원이 되고 나니 저 혼자의 삶과 결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더 큰 책임을 느껴요. 정말 잘 살아야겠구나 하고 생각하죠."

사람의 본성은 타고난다지만 그래도 20대의 여성이 친구들과의 수다나 패션, 맛집, 스타일리시한 여행에 대한 관심 대신 내 이웃이나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의원은 다시 사법연수원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인권변호사를 선택할 생각이란다.

"제가 찢어지게 가난했다고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많이 유복한 가정도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지하방을 벗어났죠. 그전엔 여름에 비가 오면 늘 집안으로 물이 들어와서 요가 흥건히 젖었던 기억이 나요. 2층으로 셋집을 옮겼는데 집안에 화장실도 있고 너무 행복하더군요. 연탄가스를 맡은 적도 여러번이고. 다행히 이후엔 부모님의 일이 안정되면서 생활도 좀 나아졌어요. 어쨌든 저랑 같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의 삶이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이건 무슨 우연이고, 왜 그런지 계속 생각하게 됐어요. 평탄함보다는 환경의 굴곡에서 오는 경험이 남달랐는데, 주변을 돌아보고 남을 생각해보는 성향이 자연히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어릴 때 이순신 장군 놀이를 하면 왜놈 역할을 할 아이가 없었다. 홍길동을 해도 다 활빈당원만 하려 하고. '나쁜 놈'을 하지 않으려던 유년시절의 추억을 비단 나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닐 게다. 아마 이 의원도 어린 시절 잔다르크 놀이를 하고 놀지 않았을까 싶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시절의 이순신, 홍길동은 자꾸 안타깝게 변해간다. 그렇지만 이 의원은 그 시절의 잔다르크로 계속 남아주길 기대해본다.

< 정리 | 박경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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