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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이만신 목사 배출한 문준경 기념관 건립-임자도

맑은샘77 2010. 6. 25. 20:53

김준곤, 이만신 목사 배출한 문준경 기념관 건립

기성, 기념관 건립 대지 비용 지불... 건립비 8억원 예상 [2007.11.06 07:27]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

김준곤, 이만신, 정태기, 이만성, 이봉성 목사 등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들을 배출한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기념관이 전라북도 증도에 500평 규모로 신축된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최근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 건립을 위한 대지 구입비를 지불하고, 약 8억원을 들여 기념관을 신축하기로 결정했다.

문준경기념사업회장 지영태 목사(대초리교회)는 “30평 규모로 지어져 있던 기존의 기념관은 지난해 폭설로 담벼락이 무너지면서 기념관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지만 일단 구입한 상태라서 건물을 짓기 위한 비용이 추가로 드는데, 한국교회의 어머니인 문 전도사님의 기념관 건립을 위해 전국의 교회들이 힘껏 도와달라”고 전하기도 했다.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가 개척한 증도는 2200여 명의 주민 가운데 90% 이상이 기독교인이다. 증도에는 불교 사찰이나 성당을 볼 수 없고, 교회는 11개나 된다.

문준경 전도사는?

1891년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 문진사댁 셋째 손녀로 태어나 17세의 나이로 지도면 대초리 등선부락 정운기 씨의 삼남 근택 씨와 혼인한 문 전도사는 20년 가까이 모진 시집살이를 했다.

그러다가 목포 북교동으로 이사를 간 그녀는 1927년 3월 5일 북교동교회의 한 전도대원의 심방으로 예수를 믿게 됐다. 당시 북교동교회는 성결교회의 유명한 부흥사 출신인 이성봉 목사가 시무하고 있었다.

이 후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그녀는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했다. 신학교 시절 그녀는 방학만 되면 고향에 내려와 신안 일대 섬들을 돌며 전도를 했다.

48명의 순교자가 나온 임자도 진리교회는 그녀가 개척한 첫번째 교회다. 증도의 증동리교회와 대초리교회도 문 전도사가 세웠다.

그녀는 평소에 사랑의 사도로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했다.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헐벗은 자에게는 입을 것을, 병든 자에게는 사랑의 의사로, 해산하는 집에는 산파로, 분주한 생활 속에서도 연로하신 어른들께는 부모님과 같은 공경을 아끼지 않았다. 문 전도사가 가는 곳마다 별다른 박해없이 순조롭게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6·25 전쟁과 함게 신안 섬마을에도 공산군이 들이닥쳤고, 끝까지 교회와 교인들을 지키려다 증동리 백사장에서 공산군에 의해 순교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