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상담/자살 - 살자

[사회]급증하는 ‘엘리트 자살’ 왜?

맑은샘77 2010. 3. 18. 16:05

[사회]급증하는 ‘엘리트 자살’ 왜?

위클리경향 | 입력 2010.03.18 11:08 | 수정 2010.03.18 11:19 | 누가 봤을까? 50대 여성, 서울

 


ㆍ사회적 성공 이룬 중년남성 엄청난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려

'엘리트 중년남성'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최근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유형은 사회적·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선택으로 여져져 왔지만 최근 명문 사립대 교수와 의사·대기업 임원 등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직업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무엇이 이들을 더 이상 생을 견딜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몰아간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던 인물이기에 '저런 사람마저 자살하면 우리 같은 소시민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단 날인가'하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했다.

지난 2월 24일 초전도 연구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서울의 유명 사립대 물리학과 교수 A씨(58)가 "좋은 논문을 내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채 유명을 달리했다. 그보다 앞선 20일에는 모 대학의료원 교수 B씨(39)가 자신이 일하던 병원 6층 옥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B씨의 연구실에서 평소 복용하던 우울증 치료약이 발견된 점을 미뤄 B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발표했다. 또 1월 26일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D램 분야의 핵심 기술 인력이던 부사장급 임원 이 모씨(51)가 과중한 업무 부담감을 호소하며 주상복합 자택의 옥상에서 건물 아래로 투신했다.




자신의 분야서 인정받은 생애 마감

전문가들은 이런 엘리트들의 자살 원인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과학자·의사·최고경영자(CEO) 등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고 크게 성공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실패에 대한 공포를 더 심하게 느끼고 우울증에 빠져 든다는 것. 한창우 신경정신과 원장은 "이른바 엘리트들은 작은 실패에도 자신을 쉽게 '패배자'로 낙인찍고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엘리트 중년 남성'에게서 이런 증상이 많이 나타난다. 이는 중년 여성에 비해 남성은 자신의 우울증상을 인지하지 못하고 치료를 꺼리기 때문이다. 유명인일수록 우울증 치료에 적극적이지 못한 것도 자살률이 높은 원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엘리트들의 자살 원인에 대해 한국 사회가 가지는 '일'에 대한 강박증도 한 몫을 한다는 견해도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강수돌 교수가 세계 각국 사람들의 '일에 대한 태도'를 조사하면서 '당신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국인은 '만족스러운 일자리', 나머지 모두는 '가족과의 시간'을 꼽았다. '일중독에 빠지고 싶다'는 한국인이 23%, 독일인은 6%였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우리는 어른부터 아이까지 개인에서 국가까지 '일중독 집단불감증'에 걸려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결국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시대 엘리트 중년들의 '성공지상주의'에 대한 귀결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엘리트자살'의 또 다른 유형으로 이른바 '명예자살'을 예로 들기도 한다. 각 분야에서 최고위층에까지 성공의 가도를 달리던 사람들이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쌓아 온 명성과 자존심에 돌이킬 수 없는 '흠'을 가져왔을 때 느끼는 수치심은 일반인은 모르는 그들만의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살을 통한 '명예회복'뿐"이라고 지적한다.

불과 1년 전에 세상을 놀라게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 한 사례다. 최근에는 두산그룹 전 박용오 회장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져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시기에 오근섭 양산시장도 자택에서 목을 매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밖에 대북 비밀송금 의혹을 받은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2003년에 55세 나이로 투신 자살했고, 노 전 대통령의 형에게 청탁한 혐의를 받은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도 59세에 투신 자살했다. 이 무렵에 박태영 전 전남지사(63)와 이준원 파주시장(51)도 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자살했다.

이들 모두 자신의 명예를 '죽음'으로써 보상받고자 한 경우다. 엘리트 중년 남성의 자살은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금융 위기의 파고 속에 세계 94위 대기업 총수도 자살을 택했다. 독일의 억만장자 사업가 아돌프 메르클레(74)가 지난해 1월 5일 남부의 소도시 블라우보이렌에서 열차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유서를 통해 "미안하다"는 말만 가족에게 남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메르클레는 독일 최대 시멘트 회사인 하이델베르크시멘트와 제약회사 라티오팜 등 120개 자회사와 직원 10만명을 거느린 대기업의 총수로, 세계의 부자 94위(독일 5위)에 오를 정도로 큰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었다.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오진탁 소장은 "사회 저명인사들의 경우 인생의 목표를 오직 부와 명예에 두고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한순간 이러한 인생목표가 무너지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어려움이 사라질 것이라는 자살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현재 자기 자신 앞에 놓여 있는 환경에서 오는 고통이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자살을 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엘리트자살'에 대해 "사회에서 성공한 계층일수록 인정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극단적 선택을 강요하게 하는 경쟁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엘리트 계층의 자살은 질병과 사회적 환경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면서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엘리트 계층은 좌절과 스트레스에 더 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엘리트 계층이 더 행복할 거라는 기대가 있지만 실제 스트레스는 2~3배 또는 그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자살 1위 국가'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인 '자살 1위 국가'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10만명당 자살 사망자 수는 26명으로, 2004년 이후 5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가운데 '자살 사망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수치는 2000년 14.6명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한국인의 사망 원인 순위에 있어서도 자살은 2008년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1위인 암(139.5명), 뇌혈관질환(56.5명), 심장질환(43.4명)에 이어 26명으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우리나라에서 '40~60대 장년층'의 자살이 다른 연령층보다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2008년을 기준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 40~60대 중년 남성의 비율은 전체 자살자의 35%에 해당한다. 이러한 비율은 30대 이하 남성(17.4%), 40~60대 여성(13.3%), 70대 이상 남성(11.4%) 등 어느 연령대와 비교해도 높은 수치다.

하규섭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자살예방협회 회장)는 "가정의 해체가 급속화되고 사회적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외롭고 소외받고 고립되는' 중년 남성의 수는 더욱 많아질 것"이라면서 "이 경우 중년 남성의 자살률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자살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급속하게 증가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우리 사회가 경쟁을 통한 효율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은 경쟁의 승자마저 자살로 내몰 정도로 가혹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감은 치열한 경쟁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는 방증인 것이다.

<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 >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