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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것을 줄 수 있을 까요?

맑은샘77 2010. 2. 1. 22:56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것을 줄 수 있을 까요?

아래 글은 칠레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계시는 선배신부님(최 용훈 요셉)이 보내온 글입니다.

평화와 선!                                              

언제든지 배가 고프면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밤에 상관없이 사제관 현관문을 두드리고 빵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빵을 당연히 주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빵이 없는 날에는 기분이 나쁘다듯이 돌아섭니다. 때로는 욕설도 서슴치 않습니다. 그리고는 다음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빵을 청하러 옵니다. 그럴때면 제 자신도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행복하게 살아야할 터인데 무엇이 그와 나를 기쁘지 않게 만드는 것일까요? 이건 단순히 빵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빵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때는 사람들은 나를 성인이라고 불렀고, 내가 그들에게 왜 빵이 없냐고 묻었을 때는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다’ 는 까마라 추기경님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매일 같이 빵을 얻어먹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고작 줄 수 있는 것이라야 빵 속에 치즈 한 조각과 마가린을 발라서 주는 것뿐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맛이 있다든지 없다든지 불평을 하지 않고 받아서 먹습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가난은 선택의 폭과 기회가 적다는 것입니다. 까마라 추기경님의 어머니께서도 ’선택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가’를 가르쳐 주셨다고 합니다. ’선택’이란 가난한 이들의 언어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언어라 ’만족’입니다. 다른 것을 선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어느 집엘 가든지 초라한 밥상임에도 불구하고 음식이 맛이 있다 없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싱거우니 소금을 좀 더 주세요.""짜니 물을 좀 마셔야겠어요"라는 대화가 일상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한국에 있었을 때를 기억합니다. ’밥맛이 있다 없다, 음식이 맛이 있다 없다’하면서 투정을 부리고,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먹을까를 고민했던 시절! 그건 제게 있어서 내 자신이 얼마나 부유한 사람이었으며 행복한 사람이었나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고작 빵을 나누어 주는 일인데, 끼니를 때울 수 있도록 부식들을 나눠주는 것뿐인데, 저는 조건을 참 많이도 붙였습니다.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고 온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다. 밤늦게 온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다. 돈은 절대로 주지 않는다. 젊은이에게는 그냥 주지 않는다. 하물며 골목에 있는 쓰레기라도 줍게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저는 사람들의 거짓말에 속임을 당하고 약값을 주고, 차비를 주고, 밤늦게 문을 두드리는 사람 앞에서 ’안돼!’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자신의 컵을 가지고 와서 홍차도 달라고 하는 사람한테는 할말이 없습니다. 그냥 웃을 수 밖에요. 근데 요사이 몇 일 동안은 마음이 그리 편치가 않습니다. 아마도 제게 사랑이 아직 부족하고 겸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십자가의 희생을 따라서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겝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오렌지 꽃향이 가득한 밤하늘을 거닐며 저의 부족함을 다스려 봅니다...      
                                                                                                  9월 30일

어디선가 ’평화(平和)란 禾(쌀)이 공(平)평하게 입(口)으로 들어간다’ 라는 뜻이라고 해석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그럴 수만 있다면 그것이 하느님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요사이 묵상하는 글귀 가운데 몇 구절입니다.

"너의 소원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삶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여라 그러면 넌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되어가기를 기대하지 말라.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이라.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오게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가게 하라. 그때 그대의 삶은 순조롭고 마음은 평화로울 것이다. - 에픽테투스 -

그리고 이번 주 연중 제 27 주일 미사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제게 와 닿았던 구절입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필립비서 4, 6-7)

이미 우리와 함께 하는 하느님의 사랑이 온 세상에 전해지길 기도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10월 3일                                                  

항해사  최 요셉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