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교육

작전명 : 화려한 휴가-펌

맑은샘77 2009. 11. 13. 15:13

작전명 : 화려한 휴가 ㅎ

  • 나야나biss****나야나님프로필이미지 
  •  
  • 6학년 아들 녀석이 감기에 걸렸습니다. 겨울만 되면 감기를 달고 사는
    녀석이지만 때가 때인 만큼 걱정이 돼서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1차 검진에서 음성반응이 나왔지만, 학교에 전화를 해보니 감기가
    다 나을 동안은 집에서 쉬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왕 쉬는 거 6학년 아들 녀석에게 1주일간 휴가를 주기로 했습니다.
    아내와 상의 끝에 정말 아무 조건 없는 말 그대로 '화려한 휴가' 를 주기로

    했습니다.

     

    "형우야, 학교에서도 허락하고 엄마하고도 상의 했는데 이번 주는 집에서
    푹 쉬고 다음 주 월요일에 학교 가는 걸로 결정했다"
    아들 녀석 좋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더군요
    "물론 학원도 일주일 쉰다"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 녀석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그리고 아무 조건 없다. 너 그렇게 좋아하는(?) 공부도 하지 말고 눈높이도
    하지마...그리고 뭐 책 같은 거 읽으라는 소리도 안 할 테니까 무조건 쉬어"
    아들 녀석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듣고 있더니 넌지시 컴퓨터를 쳐다봅니다.
    "무제한....컴퓨터도 일주일간 무제한이다...이왕 쉬는 거 확실하게 쉬어라
    그리고 맘껏 놀아라..그리고 엄마 아빠 입에서 뭐해라~ 뭐하지 마라~ 이런
    소리 안 나올 테니까 스트레스 제로인 일주일을 보내거라"
    아들 녀석 제 손을 꼭 잡더군요. 13년 동안 이 녀석을 키우면서 이렇게 촉촉한
    눈동자와 이렇게 따스한 손길은 처음인 거 같습니다.
    .
    .
    .
    .
    24시간 후
    "형우야 오늘 뭐하고 지냈냐?"
    퇴근하고 들어와서 방안에서 컴퓨터를 하며 우렁차게 인사를 건네는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어..오늘 10시에 일어나서 밥 먹고 컴퓨터 좀 하다가....낮잠 한 3시간 자고
    그리고....컴퓨터 좀 하고.....지금 아빠 들어온 거야"
    실로 오랜만에 들어 보는 아들 녀석의 활기찬 모습입니다.

     

    식탁에서 아내가 맥주한잔을 먹고 있습니다.
    "초저녁부터 무슨 맥주냐?"
    아내는 맥주 한 컵을 쭉 들이키며
    "어 그냥...뭐 속에서 조금 불덩이가 올라와서...."
    전 아내의 등을 토닥이며
    "조금 참아주기로 했잖냐..형우 다 컸어. 울컥 올라와도 기다려 주자... 알아서 하겠지!"

     

    어머니가 지나가다 저에게 말을 건넵니다.
    "형우 학교 언제 가노?"
    "이번 주 까지 쉰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어머니의 짧은 한숨이 이어집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딸아이가 말합니다.
    "나 컴퓨터 숙제해야 되는데...."
    "응..송이야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오빠한테 말해 볼게"
    .
    .
    .
    .
    48시간 후
    "형우야 오늘 뭐하고 지냈냐?"
    책상 위에 다리까지 올리고 게임 채팅에 빠져 있습니다.
    "오늘..12시쯤에 일어나서...컴하고...뭐...아빠 들어왔네"
    "오늘은 낮잠도 안잤냐?"
    대답이 없습니다.

     

    식탁에서 아내가 소주한잔을 먹고 있습니다. 하루 사이에 도수가 올랐습니다.
    말을 건넬 분위기가 아닙니다.
    소파에 앉아 계신 어머니가 약간 초췌해 보입니다.
    딸아이는 퇴근한 후로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습니다.
    .
    .
    .
    .
    72시간 후
    "형우야 오늘 뭐......."
    8시도 안됐는데 자빠져 자고 있습니다.
    아내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부릅니다.
    "형우 엄마 아까 나하고 막걸리 한잔하고 잔다. 그리고....니 자식도 소중하지만...
    에미 생각도 해라. 저러다 화병 나서 죽것다. 그리고 너그 엄마 내일 동네
    아줌마들이랑 야쿠르트 공장 견학 간단다. 저번 주까지는 귀찮다고 안 간다고
    하더니......"

     

    거실 탁자에 앉아서 아까부터 문제집을 풀던 딸아이가 저를 한번 흘깃 쳐다봅니다.
    "우리 딸 오늘 뭐했어?"
    4학년 딸아이 어깨에 손을 살포시 얹었습니다.
    딸아이가 저를 올려다보며
    "아빠.......나 좀만 있으면.......삐뚤어질지도 몰라!"
    .
    .
    .
    .
    72시간 5분 후
    전 5분 동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불 속에서 분에 못 이겨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는 아내를 보며
    불편한 몸을 이끄시고 집을 탈출하시려는 어머니를 보며
    4년 내내 모범 어린이상을 받아 온 딸아이가 삐뚤어질 거라는 울분을 들으며
    그리고.........컴퓨터 본체 열기로 후끈한 방에서 자빠져 자는
    6학년 아들 녀석을 보며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가 잠깐 미쳤었지........내가 미친놈이지...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