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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남편' 불심검문?···위기의 주말부부들-자녀교육문제

맑은샘77 2009. 7. 28. 09:44

'바람난 남편' 불심검문?···위기의 주말부부

노컷뉴스 | 입력 2009.07.28 06:03 |

[CBS산업부 권민철 기자/ 노컷뉴스 변선영·백주영 대학생 인턴기자]

한국 경제의 심장인 지방의 산업단지에 갈수록 '홀아비'들이 늘고 있다. 자녀교육 때문에 홀로 지방에 머무는 이른바 '갈매기 아빠'의 증가는 가정 해체와 기업 생산성 저하의 원인이 되는 동시에 사회 기반의 붕괴라는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는 시한폭탄이라는 지적이 많다. CBS노컷뉴스는 갈매기 아빠를 양산중인 지방 산업단지의 실상을 점검하고 그 해법을 고민해 보는 연속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전남 여수 산업단지의 석유화학 회사 직원을 남편으로 둔 서울의 A(48)씨는 요새 가끔씩 5시간씩 새벽길을 내달려 남편이 홀로 머무는 여수의 사택에 간다.

14년간 갈매기 생활을 해온 남편이 최근 바람을 피운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뒤 가끔씩 이런 불심검문을 한다고 한다.

"애들 학원 데려다주고 나면 그 길로 경부고속도로를 타곤 했죠. 술집 마담과 썸씽이 있는 것을 우연히 알아채고 난 다음부터 불시에 검문을 하는 거죠. 남편 옆에서 두 세 시간 누워 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오더라도 그렇게 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어서……."

A씨는 어떤 면에서는 섬뜩해 보이는 이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정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한다.

갈매기 가정이 위태롭다. 오랫동안 주말부부 생활을 하다보면 가족의 존재감이 때론 무뎌진다는 갈매기 아빠들의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부산에 가족을 두고 9년째 경남 지역에서 갈매기 생활을 하고 있는 최 모 씨도 비슷한 경험을 한 케이스다.

"어떤 경우는 몇 달에 한 번 씩 집에 들어가게 돼요. 그러면 남편의 존재가 일상 속에서 잊혀지는 거죠. 그러다보면 남편이 채워 줘야할 시간을 채울 뭔가를 찾게 되고...친구 만나러 간다거나 취미 생활을 한다거나, 그렇게 되면 더욱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는 거죠."

얼마나 많은 주말가정이 가족해체의 쓴 맛을 봤는지에 대한 보고서는 아직 없다. 그러나 길게는 30년 넘게 지속되는 주말가정에 별다른 진통이 없을 거라고 치부하기엔 기나긴 세월 속에는 너무 많은 지뢰가 묻혀 있다.

자녀교육 때문에 시작한 갈매기 생활이 오히려 자녀 교육을 망쳐놓은 경우도 있다. 자녀의 사춘기 때 아버지의 오랜 부재는 망아지의 고삐를 풀어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은 평택시 포승공단서 30년째 갈매기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정 모 씨는 남모를 과거사를 이제야 꺼냈다.

"딸이 중학교 다닐 때 나쁜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고 해서 너무 많은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그 길로 달려갈 수도 없고, 불면의 밤을 보낸 뒤 주말에 간다 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도 없고...서울에서 경기도 광주로 이사한 것도 딸 아이를 나쁜 아이들에게서 떨어뜨려 놓으려고 한 결정이었죠."

아이 교육 때문에 생긴 아버지의 빈자리를 복수라도 하겠다는 양 자녀 교육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어머니도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내 등하굣길을 함께하거나, 아버지 몰래 학원을 전전하거나, 아니면 집밖으로 아이들을 쉽게 내돌리지 못하는 어머니들이 바로 그들이다.

아내와 자녀들 곁을 떠나 홀로 숙식을 해결하는 갈매기 아빠들의 건강 또한 적신호라는 것 역시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은 삶을 살다 보니 몸이 망가지기 일쑤다.

실제로 전남 여수 산업단지의 대기업에서 수년째 갈매기 생활을 해 오던 윤 모(46)씨의 경우 이달에 쓰러져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굴규칙적인 식사와 잦은 외식으로 위장 등 소화기에 문제가 생긴 것.

몸만 망가진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외로움에 지치고 공허함과 싸우다보면 마음도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갈매기 아빠들도 많다고 한다.

한 갈매기 아빠는 "오랜 기간 이 생활을 하다보면 적응이 되고 그러다 보면 집에 가는 횟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은 가족들에게 잊혀 지게 되고 결국 돈만 벌어다주는 기계로 전락하게 된다. 자학이나 자포자기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면 다시 술로 하루를 달래고 이러다 보면 심신이 피폐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외로움을 달래려 도박에 빠졌다가 빚을 갚기 위해 범행에 나선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모든 갈매기 가정이 이렇게 풍비박산 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꿋꿋이 가정을 지키는 주말부부들도 많다.

그러나 지금은 정상이더라도 이런 비정상적인 가정을 이어가다보면 비정상적인 삶이 정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이미 가족과 가정을 잃은 갈매기들의 경고의 울음소리다.
twinpine@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