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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봉천동 슈바이처 "나의 신조는 8할의 미학"

맑은샘77 2009. 3. 13. 21:47
봉천동 슈바이처 "나의 신조는 8할의 미학"


MBC <칭찬합시다>의 51회 주인공.

72년부터 섬마을을 돌아다니며 무료 의료 봉사를 하는 '봉천동 슈바이처'.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축하 행사 중 마지막에 열린 어가행렬에서 임금의 역할을 맡았던 노신사.

서울 봉천동에서 개인의원을 개업하고 있는 윤주홍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윤 원장은 지난 72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20여 년 동안 1년에 2번씩 낙도를 돌며 무료진료를 했다. 지금의 봉천동에 병원을 연 뒤에는 ‘봉천동 슈바이처’로 통한다.

지금은 교통 수단도 좋아지고 보건소에서 1주일 마다 배를 타고 섬에 들러서 치료를 해주기 때문에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다른 봉사를 하고 있다.

차 펑크 나 우연히 들렀던 곳, 달동네 봉천동에서 개업

차에 펑크가 나서 우연히 멈춰 섰던 곳이 봉천동이라고 했다. 그가 차에서 나와 주위를 둘러 보았을 때 종이조각 아래로 사람의 발이 보였다. 그는 시체인 줄 알고 놀라서 가까이 다가갔다. 알고 보았더니 그것은 시체가 아니고 자고 있는 사람이었다. 온 식구가 길가에서 종이를 덮고 자고 있었는데, 큰 아들이 키가 제일 크다 보니 그의 발만이 나와있던 것이었다.

그 사건이 이후 봉천동에서 한평생 의사로 살리라 하고 마음 먹었다. 그는 당시 가난한 마을이던 봉천동에서 병원을 차리게 된 것을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한다.

병원을 차리고 난 후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번은 폐렴이 심한 환자를 치료하러 판자촌으로 왕진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2인조 강도를 만났다. 강도는 칼을 들이대고 윤 원장을 위협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 다른 한 강도가 어둠 속에서 윤 원장을 알아보고 폐렴에 걸린 노인을 무료로 치료해 준 고마운 의사라며 그를 놓아주었다. 무보수 치료의 대가로 가장 소중한 생명을 지켰다며 윤 원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껄껄 웃었다.

8할의 미학은 나의 신조

윤 원장은 어렸을 적 할머니와 어머니의 가르침을 실천할 뿐이라고 했다. 그의 할머니는 어린 그에게 까치밥이라며 감을 따지 않고 항상 남겨 놓았고, 떨어진 이삭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줍지 말라고 말했다. 일흔을 넘긴 지금도 그는 그저 할머니와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 뿐이라고 겸손히 말한다.

“카뮈와 슈바이처는 둘 다 노벨 수상자였어. 카뮈는 평생 자신만을 위해 돈을 쓰다 차 사고로 죽고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하다 죽었지. 어떤 인생이 더 값진 것일까?”

‘봉사란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대답 대신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답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렇게 비교해 보니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의사로 태어나고 싶다는 윤주홍 박사. 그는 부유한 의사는 아니지만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한 의사라 말한다.

“ 봉사는 자신을 소멸시키는 거라네. 소멸시키지만 더 큰 빛으로 거듭나는 것이지.”

지난 94년부터는 관악 장학회를 설립해 지금까지 2,000여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지금도 그는 자신이 가진 시간과 몸, 경제력의 3분의 1 이상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관악 문학인 협회 회장이기도 한 그가 그의 책에 손수 사인해 건네 주며 환하게 웃는다.웃음이 그렇게 해맑을 수가 없었다.

노컷뉴스 박지현/박혜상 인턴기자
출처 : 러~브 러~브
글쓴이 : 우~야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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