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한국당의 문국현 대표가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총재와 연대하여 국회 교섭단체를 꾸리기로 한 것은 최근 들어서 '쇠고기 협상'에 버금가는 정치적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이같은 두 사람의 연대 결정으로 인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이 두 인물이 앞으로 얼마간 같이 묶여서 소개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연대를 통해 교섭단체를 구상하겠다고 밝힌 문국현 대표와 이회창 총재>
문국현 대표는 지난 대선부터 '진보의 대안' 중 하나로 자리잡았고, 또 그러한 이미지가 이번 총선에서 그의 원내 진출은 물론이고 창조한국당의 정당지지에 큰 보탬이 되었기에 '원조 보수'를 자처하는 이회창 총재와의 이번 연대는 막강한 충격파를 발산하고 있다. 문국현은 왜 과연 이러한 선택을 했을까?
지금까지 문국현의 정치적 위치는?
문국현은 2007년 초부터 당시 범여권에 대선주자 인물난에 잠재적인 대권주자로 물망에 오르다가 8월 23일 독자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창조한국당을 만들고, 지금까지 대표 자리에 있다. 이러한 문국현은 최근 이회창 총재와의 연대 전까지만 해도 '진보'의 대표적 '대안' 중 하나였다.
유한킴벌리 시절 IMF위기에도 사원을 한 명도 해고하지 않은 일화로 유명한 문국현은 '사람중심 진짜경제'라는 모토와 '클린 정치' 그리고 그동안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경력 등으로 기성 정치와의 차별화를 선언하였고, 온라인에서는 기성 정치인에게 염증을 느낀 네티즌들의 적극적이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2007년,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슬로건을 펼쳐든 문국현 대표>
그러나 그런 온라인에서의 전폭적 지지는 오프라인에서의 지지도 대폭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10%를 자신하던 문국현의 대선 득표율은 5.8%에 그쳤고, 4.9총선 당시 창조한국당의 정당지지율은 3.8%였다. 물론 문국현은 총선에서 '친이 좌장' 이재오를 제치고 은평에서 당당히 당선되어 노회찬과 심상정을 제치고 최근까지 많은 이들에게 '진보'의 최고의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었다.(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에서 강세였지만)
'바보'를 바란 지지층의 기대와 달리 행동한 문국현
바로 얼마전까지 많은 이들에게 '진보'의 대표 주자였던 문국현이었지만 5월 23일 이회창 총재와 연대를 선언함으로써 지지층의 심각한 이탈이 예상되는 국면을 맞이하였다. 실제로 온라인 상에서 많은 네티즌과 블로거들이 문국현에 대한 '지지 철회'와 '반성'을 연이어 선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 도대체 문국현을 지지하던 이들은 문국현이 어떤 정치인이길 바랬을까?
아마 문국현을 지지하던 많은 이들은 문국현에게서 2002년 당시의 노무현의 모습을 바란 것으로 보인다. 2002년의 노무현 모습은 노무현이 대통령에 재직하면서 받았던 평가와는 사뭇 다르다. '수구'와 '기성'의 한계를 보여주던 다른 대선 후보들과는 달리 2002년 당시 노무현은 그 한계를 뛰어넘을 유일한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민주화 운동 경력은 물론 민주당 당적이었지만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당선이 보장된 지역구를 버리고 연이은 낙선에도 꾸준히 부산 지역에 출마함으로써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은 정치 역정은 유권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문성근의 개혁국민정당의 연설을 듣고 눈물을 흘리던 2002년의 노무현>
아마도 문국현의 지지층은 문국현에게 그러한 '바보'의 모습을 바란 것이 아닌가 싶다. 상식적이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한 정치를 바꾸기 위해 어떤 비바람에도 타협을 뿌리치고 묵묵히 투쟁하는 그러한 바보 정치인 말이다. 그러한 기대가 문국현의 정치적 캐치프라이즈와 만나 문국현을 '진보의 대안'이 되게 하였다. 그러나 문국현은 이회창 총재와의 연대라는 '타협'을 통해 지지층의 기대를 철저히 벗어났고 또한 조각냈다. 문국현은 무엇 때문에 이같은 선택을 한 것인가?
문국현, 돌아가기엔 시간이 없는 정치인의 비애悲哀
문국현은 지지층이 기대하는 것처럼 '바보'의 길을 걸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우선 노무현은 인권변호사로 30대를 보내고 40대 초반에 정치에 입문했다. 그 이후, 정치생활을 20년 가까이 하는 동안 충분히 돌아갈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문국현은 58세에 정치에 입문했다. 내년이면 환갑이고, 다음 대선에서는 63세가 된다. 차차기엔 68세가 될 것이다. 문국현은 다음 대선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면 나이 자체가 큰 부담이 되는 상황에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문국현은 이번 18대 국회의 의정활동에서 확실히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 입장에 있다. 18대 국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성공적인 의정활동과 정치 활동을 해야만 다음 대선에서의 승산이 생기고 또한 기회를 잡을 수가 있다. '바보'의 길을 걸을 시간적 여유 따윈 없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빨리' 보여줘야만 하기 때문이다.
<문국현 대표의 가치 실현은 빠른 속도를 요구한다>
그러나 창조한국당 전체 2석과 그 2석의 대표로서의 문국현은 18대 국회가 들어선 이후의 정국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록 그에게 지지층의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이 있었고 진보에서 대표적 '대안'으로 손꼽혔었지만, 그는 '대안'은 '주류'가 되지 못하고 그저 '대안'으로서 남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계속 '대안'으로 남아있던 5월, 창조한국당의 정당지지도는 3.8%로 아직도 제자리걸음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국현은 자신의 지지층 태반을 잃을 수도 있는(문국현은 이를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번 선택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문국현, '대안'을 벗어던지고 더 많은 지지를 얻을 가능성은?
문국현은 이회창과의 연대를 결정함으로써 얼마있지 않아 그 득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교섭단체를 구성함으로써 얻는 국고보조는 물론 원내 3개 교섭단체 중 하나로써 국회 내에서 확실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언론에도 보다 더 많이 등장하게 될 것이고, 입법 활동 또한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문국현을 정치인으로써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능성 있는 이득도 있다. '원조 보수', 그리고 보수의 '대안'을 표명한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총재는 현재 73세이다. 다음 대선에는 77세이다. 이회창이 대선에 처음 나왔을 때 그에게 낡은 정치라고 비난당하던 김대중이 당시에 72세로써 당선되었는데,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이회창은 그보다 많은 나이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회창의 지지층과 또 유권자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 정책연대의 수혜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실제 이회창의 2007 대선 득표율은 15.1%였는데 반해 충청 맹주를 표방한 4.9총선에서 자유선진당의 정당지지도는 6.85%에 그쳤고, 현재 자유선진당의 정당지지도는 7% 밑을 맴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국현은 이회창과의 정책연대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진보의 '대안'에서 벗어나 그가 오히려 보수층을 공략할 길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보다는 문국현이 사원 복지와 이익 창출에 있어 더 바람직한 CEO의 모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살리기'를 염원하는 많은 보수층 유권자들이 선뜻 문국현을 대통령으로 꼽지 못한 것은 첫번째는 그가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는 사실 때문이고, 두번째는 환경운동가였던 그를 진보 정치인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정책연대는 문국현을 진보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다. 비록 보수층 내에서 이회창의 입지는 타격을 받을지 몰라도, 문국현은 오히려 보수층에 어필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또한 문국현은 이번 정책연대가 이념적 전향이 아닌 '대운하 반대', '중소기업 살리기' 등을 위한 더욱 적극적 행동임을 천명하였기에, 그가 보수로써의 특정한 움직임을 하지 않는 이상 진보층에서의 지분 또한 유지하고 나아가 더 많은 지지를 받을 가능성 또한 열려있다.
'원칙'과 '소신'의 위기가 기회가 될 지는 미지수, 그리고 아쉬움
문국현의 이러한 선택은 '고행'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러한 조짐이 보인다. 보-혁의 성격을 막론하고 언론사들은 문국현의 이번 선택을 비난했다. 그의 지지층 또한 이번 선택으로 이반되고 있고, 상황에 따라서 상당수가 이탈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의 행동이 중요하다. 자칫하면 문국현은 진보와 보수의 사이에서 어느 한쪽도 잡지 못한 채, 기댈 공간을 잃을 지도 모른다. 또한 그의 선택은 그의 의도와는 달리 자유선진당의 원내교섭단체 구성에만 이용되고 그에게는 돌아올 것이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현재 그가 가진 2석이 선진당의 18석에게 이용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대표와 총재 간의 연대가 아닌 2석과 18석의 만남으로 2석이 18석에게 당연히 종속되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다.
문국현은 경영자로써는 노련할지 모르지만, 정치는 경영과 사뭇 다르다. 정치인 문국현은 경력 1년도 채 안된 새내기다. 어떻게 보면 그는 직접적인 정치적 시련에 당면한 적이 없다. 그는 제련되지 않은 철과 같다. 철이 어떻게 가공되느냐에 따라 크게 쓰일 수도 있고 용도폐기될 수도 있다. 대선 이후 '대선 회계'와 '당 지도부 와해' 그리고 '이한정 공천' 등의 일련의 사태에 있어 문국현의 대처는 미숙했다. 아직 정치인으로써의 역량 부족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앞으로의 길 또한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니 위험천만할 지도 모른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원칙'과 '소신'을 저버린 것으로 마땅히 지탄받아야할 성격의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써 정치의 '희망'과 '대안'으로 꼽히는 여러 정치인 중 한 명을 이대로 잃고 싶지 않다. 현재와 같은 정치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대안 정치인'이란 패를 하나라도 더 쥐고 싶고 한 사람이 아쉬운 현재와 같은 정치 상황에서 문국현의 이러한 선택은 개인적으론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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