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쿠샤다스에서 배를 타고 다섯 시간....
에게해의 작은 섬 밧모(파트모스, Patmos)로 들어서면 항구가 채 보이기도 전에
섬의 정상 부분에 성채와 같이 우뚝 서서 밧모에 오는 사람들을 반겨주는 건물이 있으니
바로 '성 요한 수도원'이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된 이 아름다운 수도원은 수도사 크리스토둘로스가
동로마 황제로부터 섬 전체를 성지로 하사받아 사도 요한을 기념하여 지은 건물인데
해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높은 곳에 요새처럼 건축하였다.
하얀 페인트로 칠한 그리스의 집들 가운데 유일하게 화산암으로 건축된 성 요한 수도원은
바다에서 바라보면 약간 검붉은 색으로 두드러져 보이며 마치 거대한 요새같이도 보인다.
밧모섬의 정상 아크로폴리스에 위치한 '성요한 수도원'을 가기 위해선
차에서 내려서 하얀 집들이 늘어선 호라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한참이나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호라 마을의 골목길에서 세밀화를 그리고 있는 화가를 만났다.
연필로 아주 꼼꼼하게 성요한 수도원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림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림 하나 사 올걸.....^^
한참이나 걸어 올라가다 숨이 차서 멈추어 뒤로 돌아서 본 풍경은 그야말로 '감탄'이었다.
깨끗한 하늘과 눈이 부시게 푸른 바다...거기에 장난감 같은 하얀 집들...
높은 곳에 올라보니 왜 오랜 시간을 소모해 가며 사람들이 밧모에 오는 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 순간이었다.
수도원 앞 골목길에서 이쁜 고양이를 만났다.
어디서 왔어요..라고 묻고 싶은걸까.....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 보고 있었다.
(펌사진)
하얀 집들 사이에 검붉은 요새같이 우뚝 선 수도원의 웅장한 자태.
가까이 가서 보면 그다지 검붉지는 않은데 주변의 하얀 집과 대비되어 색이 훨씬 더 진하게 보인다.
(펌사진)
종루와 함께 보이는 수도원 전경은 한폭의 그림이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 '성 요한 수도원'의 문 앞에 당도하였다.
수도사 크리스토둘로스가 옛 아데미 신전 터에 성 요한 수도원을 세우면서부터 이 섬에 수도원과 교회의 수가 급증하게 되었다는데....
수도원 입구 문 위에는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들고 있는 모습이 모자이크화로 새겨져 있었다.
출입구의 작은 문에는 동방 정교회(그리스 정교회)의 사제가 서 있었는데
민소매의 옷을 입은 나를 보더니 어깨를 가리라고 태양의 문양이 그려진 커다란 검정색 숄을 한 장 주었다.
숄을 받아 어깨에 두른 후 당신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았더니 흔쾌히 허락하고 앉아서 멋진 포즈를 취해 주었다.
검은 수도복과 검은 모자....그리고 길고 하얀 수염이 정말 멋진 사제.
카리스마 정말 짱이다...!
정교회 사제의 사진을 찍은 후에 욕심이 생긴 나...
나와 같이 사진을 찍어줄 수 있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으니 그것도 웃으며 허락하는 것이 아닌가....
난 너무나 기쁜 마음에 카메라를 일행에게 맡기고는 사제의 옆에 바짝 붙어 서서 어깨를 살짝 감싸 안았더니
깜짝 놀란 이 사제..... 손사래를 거듭 치며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다.
덩달아 깜짝 놀란 나......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한 후 그냥 옆에 얌전하게 서서 포즈를 취했더니
그 할아버지 사제 .....내 얼굴은 보지도 않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외면한 채 촬영에 임하였다.
나이가 많은데도 여자랑 신체 접촉을 하거나 쳐다 보면 안 된다는 계율이 있어서 그 것을 지켜야 했었나 보다.
이 에피소드는 여행 중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중에서도 오래 기억에 남는 일이 되었고
이 사진은 많은 나의 여행 사진 중 몇몇 베스트에 들어갈 수 있는 멋진 사진이 되었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이해해주시길 바래요~ 제가 보기보다 낯가림이 심하거든요....^^)
입구에서 수도원으로 가는 통로에 있던 모자이크 이콘(icon,성화상).
가운데는 예수님,왼쪽은 사도 요한,오른쪽은 수도원을 지어 헌납하는 크리스토둘로스인 듯 하다.
수도원 예배당의 둥근 지붕이다.
화산암의 군데군데가 붉은색이라서 이 수도원이 먼데서 보면 붉게도 보이나보다.
종이 다섯개나 달린 수도원의 제일 큰 종루.
이 앞에 서서 태양의 문양이 그려진 검은 숄을 두르고
마치 노틀담 사원 앞에 선 에스메랄다처럼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어 보았다.
주 예배당 바로 옆 부속 건물들의 모습이다.
나무 판에 도서관으로 가는 방향이 표시되어 있고 종루에 연결된 줄이 마당에까지 내려와 있다.
(펌 사진)
이 수도원에는 장서 3000여권이 소장된 도서관이 있는데 장서 중에는 7~8 세기의 성경 희귀 사본들도 있다.
이 도서관은 아토스 수도원 도서관 다음으로 귀중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는 도서관이라고 한다.
(펌 사진)
대리석에 쓰여진 요한계시록 사본이다.
수도원 내 성요한 교회의 모습이다.
이 건물 내에는 8개의 크고 작은 기념 예배당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 이 곳이 제일 중심이 되는 예배당인 듯 했고
벽과 천정에는 오래 되어 칠들이 벗겨져 가는 성화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산뜻하게 새로 칠해 복원하지 않고 오래 되어 아랫 부분이 다 희미해져 없어져가는 성화들은 더욱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8세기에 비잔티움 제국의 레오 3세는 성상의 숭배를 금하는 '성상 금지령'을 반포하게 된다.
이에 반발한 서로마 교회는 콘스탄티노플에 보내던 세금 납부를 중지하고
비잔티움 제국의 지배하에서 벗어나기 위해 레오 3세와 대립하게 되었는데
이 사건이 교회가 동방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으로 분열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동방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이 분열된 원인이 되었던 성상 금지령으로 인해
이 후 비잔티움 내의 많은 성당의 이콘(icon,성화상)이 무너뜨려지고 지워졌는데
이 곳은 그리스 본토에서 워낙 멀리 떨어진 외딴 섬이라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해
이콘이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었다고 한다.
1,2차 성상 금지령 이 후 성상 금지령은 점점 시들막해져서
동방 정교회에서도 이콘을 앞에 두고 기도하는 예배 형식은 계속 전해 내려 오고 있다.
동방 정교회의 특징은 성상(聖像)은 거의 없으나 이콘(icon,聖畵)이 주종을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최후의 심판의 내용인 듯 하다.
오랜 세월이 스쳐 간 흔적이 남아 있어 더 아름다운 성요한 수도원의 이콘들을 감상하시길......
세례식 때 쓰는 물두멍으로 추정된다.
모자이크로 된 이콘도 많은데 왼쪽은 사도 요한, 오른쪽은 수도원을 건립한 크리스토둘로스이다.
사도 요한의 이마를 보면 혹처럼 불룩 튀어나온 곳이 있는데
그 흔적은 사도 요한이 이마를 동굴 암벽에다 대고 하도 오랫동안 기도를 해서 생긴 굳은 살이라고 한다.
야고보서를 기록한 사도 요한의 형 야고보도 기도를 얼마나 오랫동안 하였는지 그의 무릎은 마치 낙타 무릎 같았다고 전해진다.
수도원을 지어 헌납하는 크리스토둘로스의 모습이다.
예배당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입구까지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예배당 안에 들어섰을 때
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경험하였다.
원래 개신교인은 성상이나 성화에 대해서 그다지 탐탁치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십계명의 제 2계명인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에 의하면
그것이 비록 예수님의 그림이나 형상이라도 만들거나 그려서 형상을 보고 경배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 같은 곳에서도 거기에 그려지거나 세워진 수많은 성경상의 형상들이
비록 미적으로는 아름다웠으나 신앙적으로는 그다지 탐탁지 않게 생각되곤 했다.
그러나 작은...너무도 작은...조그마한 방 두개 정도를 합친 듯한
성 요한 수도원의 아주 아주 작은 예배당에 들어섰을 때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조그마한 방의 천정에는 예수님의 모습과 성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는데
소박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천정화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신비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사면 벽에도 역시 성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일반적인 성당이나 교회처럼 설교를 듣기 위해 성도들이 앉는 의자가 없었고
대신 성화가 그려진 벽 삼면에 앉는 부분이 없는 등이 높은 의자가 대여섯개 붙어 있었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성화 앞에서 기도하는 독특한 습관이 있는데
수도사들이 이 예배당에서 기도할 때에는 앉지 않고 서서 기도하며
서서 기도하던 중에 졸다가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앉는 부분 대신 팔걸이만 있는 의자였다.
너무나 소박하고 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예배당...
난 할 말을 잃고 그대로 얼어 붙어서 천정만 쳐다 보고 있었다.
그 때 옆에 있던 일행 S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우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왜 우냐고 물어보았더니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던 S는 더듬거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너무 아름다와요...너무 아름다와요....
언제 다시 이 곳에 와 보겠어요.....
너무 아름다와요....
이 모든 것을 내 눈 속에....마음 속에..... 담아갈 거에요..."
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계속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 작고 소박한 예배당..... 너무나 경건한 아름다움.....
나도 벅차 오르는 감격에 가만히 서서 그 고요한 아름다움을 피부 깊이 느끼고 있었다.
(펌사진)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 온 성 요한교회의 천정화인데 아마 누가 몰래 찍은 듯 하다.
그 예배당의 경건함과 아름다움을 필설로나 사진으로써 여러분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고
지금 글을 쓰며 그 곳을 기억해 보아도 동일한 감동이 밀려온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성지 순례를 계획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밧모섬에 가서 성 요한 수도원의 예배당을 꼬옥 가보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다.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보니 예배당 바닥에는 넓적한 나뭇잎이 많이 흐트러져 있었다.
웬 나뭇잎일까...궁금하게 여기며 오른쪽 문으로 나가려던 중
아주 젊고 잘 생긴 수도사 한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다.
난 이 나뭇잎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더니
내일이 성모승천일인데 이 수도원을 순례하러 온 사람들이
경배의 뜻으로 나뭇잎(나뭇잎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적어둘걸...ㅠㅠ)을
제단 앞에 뿌려서 봉헌한 것이란다.
제물이 나뭇잎이라니...참으로 소박하기도 하다..
열심히 설명해 주던 수도사는 내가 작별 인사를 하니
기념으로 나뭇잎을 주겠다며 내 손에 나뭇잎을 꼬옥 쥐어 주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예배당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배당....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같은 화려한 성당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었던
온 몸을 휘감는 전율을 그 곳에서는 경험할 수가 있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자그마한 예배당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청아한 노래 소리도 함께 들려 온다.
Nulla in mundo pax sincera
Sine felle; pura et vera
Dulcis Jesu est in te
Inter poenas et tormenta,
vivit anima contenta,
Casti amoris, sola spe
이 세상에 고통없는 참 평화는 없어라...
자비로운 예수여, 당신 안에 있는 참되고 순수한 평화
형벌과 고문 속에서도 순수한 사랑의 빛이 비칠 때
내 영혼은 비로소 위안을 얻게 된다네.
"Nulla in Mundo Pax Sincera (세상에 평화 없어라)..."
천국에 BGM이 흐른다면 아마 이 노래가 아닐까....
Antonio Vivaldi
"Nulla in Mundo Pax Sincera" RV.630
Emma Kirkby, Sop
미쳐 사진을 남기지 못했던 아쉬운 부분은
http://cafe.daum.net/yejimoim 에서 이미지를 퍼 와서 중간에 삽입하였습니다...
귀한 사진 올려 주신 분께 감사를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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