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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심재선목사님의 `건강한교회 행복한가정`(2004)

맑은샘77 2008. 4. 2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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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회 첫번째시간     요2:1-11 “변화시켜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먹여주시는 분이시다’ 말씀을 사모하는 부흥회 되자. 시81:10 네 입을 넓게 열라 그리하면 채우리라.



가나 혼인 집


① 교회는 가나 혼인집 같은 교회가 되어야된다.

가나 혼인잔치 집에는 예수님을 모셨다. 화평교회도 예수님을 모셨다. ‘내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내가 함께 하겠다’ 예수님 이 자리에 함께 계신다.


② 가나 혼인잔치 집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번 기회에 육체적, 영적, 경제적, 가족간의 갈등등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③ 가나 혼인잔치 집에는 처음보다 나중이 좋아졌다.

갈수록 더 좋은 은혜가 있기를 기대하라.


④ 가나 혼인잔치 집에는 원래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왔다.

포도주가 모자란 것을 보면 안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이 모이기를 바란다.


⑤그런데 예수님이 계셔야 된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와도 예수님이 계셔야된다. 우리 인간사에 문제없는 사람은 없다. 무슨 문제든지 문제가 있다. 이 문제가 있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포도주가 모자랐기 때문에 예수님께 온 것이다.


⑥이 집은 포도주가 모자랐는데 내게는 모자라는 것이 없는가? 자신의 문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병들었을 때도 그 병을 알아야 치료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모자라는 것을 찾아내고 이것을 가지고 예수님의 어머니처럼 예수님에게 찾아가자. 사람에게는 해결하지 못하는 일 있지만 ‘하나님께 능치 못함이 있겠는가’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시느니라’



예수님의 어머니에게서 배우자



1. 시험에 들지 않았다.

예수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 모자랍니다’ 하니까 예수님이 ‘여자여 그게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했습니다’라고 했다. 기분 좋은 소리인가? 분명 아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시험 들었느냐? 시험 들지 않았다.


2. 다른 사람의 문제를 위해 간구했다.

예수님 어머니는 훌륭한 점이 많은 분이다. 그 집에 포도주 떨어졌는데 예수님께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 어머니가 찾아갔다. 그 집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였는가? 아니다. 다른 집의 문제였다. 다른 집의 문제를 마치 내 집의 문제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 아니지만 이 집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인 것처럼 예수님께 찾아가서 간구했다.

우리도 기도의 범위를 넓히자. 남을 위해서 중보 기도 할 때 주님이 기뻐하신다.


3. 그대로 하라

예수님의 어머니 시험에 들지 않고 하인들에게 달려가서 말한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십시오’ (따라서 해보자) ‘그대로 하라’

‘아니 꼭 그렇게 해야됩니까?’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 있다.

하나님의 생각보다 내 생각을 앞설때 문제가 생긴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종이듣겠나이다’

말씀은 3가지로 듣는다. 귀로듣고, 마음으로듣고, 행동으로 듣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시원케 해드리자.


‘아멘’이 무엇이냐?

그렇습니다. 그렇게되기를 원합니다. 옳습니다. 얼마나 긍정적이냐.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아멘하면 유익이 많다.

<아멘이 주는 유익4가지>

1)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되고

2)설교하는 목사님에게 힘을 볻돋아드리고

3)내 자신에게는 은혜가 되고

4)옆 사람을 잠에서 깨우고 담력을 세우게 되느니라.


4. 예수님의 어머니 분명히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기대가 어떻게 되었는가? 그대로 되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틀림없이 예수님이 해주실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믿음대로 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종들이 행동한다.

여섯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떠다가 연회장에게 주어라.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겠는가?

이것을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 어머니의 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그래서 교회에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5. 채울때 어디까지 채웠느냐?

아구까지 채웠다. 나아만 장군 요단강에서 일곱 번째 씻을때 기적이 일어났다.

여리고 성의 무너짐도 마지막까지 했을 때 역사가 일어났다.

‘오늘 무슨 말씀하시든지 내 생각과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만 들어도 순종한다. 미련한자는 죽어야 깨닫는다.

모든 것에는 타이밍이 있다. 지난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된다.


6. 순종했더니 포도주가 나왔다.

언제 포도주가 되었을까요? 잔에 담을 때, 가져갈 때, 잔에 따를 때 되었을까? 우리는 모른다. 변했다는 것이 중요한다.

구원파 ‘구원받았습니까’ ‘언제 받았습니까’ ‘어디서, 어떻게 받았느냐’ 이러면 대답할 사람 누구냐? 육신의 생일은 알면서, 왜 영혼의 생일은 모르느냐? 그들이 말한다.

그러나 기억하자. ‘태어난 날 모르면 안태어난 것인가? 태어났으니까 여기 있는 것 아닌가?

태어난것 나는 모른다. 부모만 안다. 성경에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른다고 했다. 내가 믿고 있는 것 자체가 구원받은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7. 맹물에서 포도주로 변했는데 몇 가지가 변했느냐?

첫째. 색깔이 변했다.

잠15:13“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둘째. 맛이 바뀐다.

예수 믿으면 순해진다. 남을 배려하고 봉사할 줄 알게된다.

셋째. 냄새도 달라지고, 용도가 달라졌다.

은혜 받으면 의의 병기가 된다. 복음의 일꾼이 된다. 옛날에는 죄의 병기였지만.

넷째. 가치가 달라진다.

물을 비싸지 않다. 포도주는 오래되면 비싸다. 쓸모 없는 자가 쓸모 있는 자가 된다. 가치있는 자가 된다.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꼭 있어야 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언제 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맹물을 변해서 맛좋은 포도주가 되게 하셨다.

안 될것 같지만 되게 하셨다.

기적을 체험하기 원하면 ‘그대로 순종하라’ 하나님께서 그대로 책임져주신다.















부흥회 두번째시간    시1:1-6 복 있는 사람


시115:13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①예수 믿는 것 복이다.

예수 믿어서 잘못되는 경우있는가? 예수 믿으면 금생과 내세가 잘된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된 것은 복중에 복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내 팔자야 하는 것은 뭘 모르는 것이다.


②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도 보통 복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나를 어떻게 부를 수 있겠는가? 목사님, 강사님, 아저씨, 사장님...아버지 그렇게 부를 수 없다. 관계에 따라서 호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나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이다. 내 아들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으니 얼마나 큰 복인가?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 믿는 사람만이 부를 수 있다.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불러라. 자녀에게는 무엇이든지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이다.

의무와 특권을 다른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의무가 있다. 교육, 납세, 근로, 병역의 의무있다. 군입영 영장 받았을 때 좋아하는 사람 있는가?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한다. 세금고지서 나왔을 때 세금 인상되었구나 감사하구나 그러면서 내는 사람 있는가? 어떻게 하든지 줄이려고 한다. 의무는 하기 싫지만 특권은 다르다. 기도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자.


③교회 나오는 것은 복중의 복이다.

교회를 통해서 양육을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짝에 쓸데없는 이들도 교회에 나오면 그의 삶이 가치 있는 인생으로 바뀐다. 인류역사에 높이 들림을 받고 공헌하는 자들이 지금까지도 많이 있었고 앞으로도 많이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교회 다니게 된 것 보니 우리는 큰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니 우리는 ‘나 같은 게’ ‘아니고 내 팔자야’ 하면 안 된다.

옆 사람에게 말해보자. ‘복중에 복을 받은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렇다면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님을 섬기고, 교회에서 믿음 생활하는 자이다. 그 믿음의 사람들이 가는 곳에는 사막에 오아시스 흐르게 하시고 사막에 장미꽃 피게 하신다. 예수 믿는 자들이 가는 곳에는 새로운 역사가 일어난다.


1. 누가 복있는 사람인가? 1절을 보자.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라가지 않는다. 마음으로 좇지 않는 것을 말한다.

가룟 유다에게 악한 생각이 들어가게 되니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생각으로 악한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과 행동을 같이 하지 않는 자가 복있는 사람이다.


2. 누가 복있는 사람인가? 2절을 보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이다.

하나님을 좋아하고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즐거워진다. 부부가 사랑하면 아내의 말이 즐겁고 남편의 말이 즐겁다. 그러나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면 그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말씀이 즐겁게 들려진다.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 반복해서 보게된다. 그 편지의 문장 때문이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성경은 사랑의 편지이다. 사랑의 러브레터이다. 이 말씀이 느껴지고 받아질 때 영적으로 하나님과 건강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3. 누가 복있는 사람인가? 3절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①여기에서 ‘저는’은 복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된다는 것이다.

보통 때는 아무데나 있어도 살 수 있다. 그러나 가뭄 때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살아난다. 우리 인생에도 시냇가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시냇가다. 말씀이 우리의 시냇가다. 교회가 시냇가다.

②‘심은 나무가’ 심어야 된다.  아무리 시냇가여도 심어야 된다.

교회 나오는 것 씨앗을 심는 것이다. 심어야 살아난다. 심지 않고는 될 수 없다.

③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

‘시절’이 무엇이냐? ‘때’가 되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심었다고 바로 맺는 것 아니다. 때가 되어야 열매되는 것이다. 참고 기다리면 된다. 가장 적합한 때 가장 귀한 복으로 내 삶에 복을 허락해주신다.

그리고 그 행사가 다 형통한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복있는 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란다. 복된 자의 길을 걸어가게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살아가는 것이 복인 줄 알고 하루하루 감격스럽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부흥회 세번째시간     창세기2:1-3 “범사가 잘 되는 길(1)”


신10:13“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주신 이유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시려고 주셨다.

계명을 둘로 요약하면 하라는 계명과 하지 말라는 계명이다. 말씀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나를 위하여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말씀을 주셨음을 알고 그러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자.


신앙생활의 척도 ‘주일성수’와 ‘십일조’라고 생각한다.

최근 주5일 근무제 어떻게 생각하는가? 솔직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5일 근무하든 6일근무하든 자기 믿음이 문제지 그게 무슨 일이 되느냐? 주일을 성수하는데 있어서 자기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만큼은 절대 양보하거나 물러설 수 없다는 마음의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성공과 실패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모든 주권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께 항상 우선권을 두어야 된다. 나는 절대로 하나님께 우선 순위를 둔다. 그렇게 믿음생활 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 위해 최고의 사랑을 쏟아 부어 주셨기에 우리에게도 최고의 사랑을 원하시는 것이다. 몇 번째 사랑이 아니다.


주일성수의 이유와 주일성수를 했을 때 주어지는 복을 우리가 알아야된다.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이 밥이다. 설교는 밥 먹는 시간이다. 밥 먹는데 신경질 나는 자 있느냐? 신경질 나는 자는 병든 사람이다.


3절“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주일은 복 주시는 날로 따로 정해놓으신 날이다.

주일날 사람들이 어디가세요 그러면 ‘복 받으러 가요’라고 말하자.

‘어디로요’ 그러면 ‘복 집으로요’

‘복 집도 여러개가 있는데 어느 집이요’ ‘화평교회요’ 이렇게 하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복을 받아야 사는 사람들이다.

샤마지즘은 비 양심적으로 살면서 복받기 원하는 것이지, 하나님은 이렇게 살면 이렇게 주겠다고 하신 말씀을 믿고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은 잘못된것 아니다. 바른것이다. 희망과 기대감이 있어야 참고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천국갈 기대감이 없다고 생각해보라. 신앙생활 어려우면 포기하지. 그러나 그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참으며 이겨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라


그러면 주일날 교회가면 돈 다발을 주느냐?

오히려 우리가 헌금을 드린다. 하나님께서 복의 씨앗을 주시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복의 씨앗을 주시는데 그것을 받는 자 있고 받지 못하는 자 있다.

심는 자는 열매를 따는 자들이다. 더 큰 것을 하는 것도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기게 된다.

찬송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고 했는데 아무 체험이 없으면 안되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이것은 눈을 빼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내 눈 하나 뺐다 그러면 나는 하나 빼겠느냐 두게 빼겠느냐? 더 한다.

너가 하려면은 하나만 해야지 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주5일 근무제. 6일 일하는 것도 더 하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다.

안식일 날을 온전히 지키라고 만나를 주지 않으셨는데 나온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도 나온다. 그래서 주일날 일하는 것은 헛수고다.


주일 왜 지키기 어려운가?

우리가 기독교 국가도 아니고, 내 주변 사람들이 다 교회 다니는 것도 아니니 어렵다. 주일날 행사를 하는 것은 사람보다도 ‘돈-부조’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돈 보내는 일이 많으니까 부조만 보내라. 믿음만 있으면 주5일 근무제가 더 주일 지키기에 좋다.

우리 사람들은 ‘대화’한다고 하면 ‘대놓고 화내는게 대화 줄 안다.’ 시간이 많으면 자꾸 다른 말을 한다. 어디를 가거들랑 빨리 오고 주일을 구별하여 지키자.



<주일을 지키면 어떤 복을 주시는가?>


이사야 58:13-14“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첫째. 마음이 즐겁게 사는 복을 주신다.

즐거움의 복이 적은 복이냐 큰복이냐? 초막이나 궁궐이나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주일을 지키면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만 들어도 깨닫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어디가 다쳐야 지킨다.


둘째. 땅에서 높여주시는 복을 받는다.

이 땅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주요직원 뽑을 때 주일성수와 십일조 드리는 자들이다. 교회에서 장로되면 사람들이 존경한다.


셋째. 야곱에게 주셨던 복을 주일 지키는 너에게 주겠다.

①야곱은 믿음의 복을 받았다.

이것은 큰복이다. 천국 무엇으로 가는가? 믿음으로 간다. 그러니 얼마나 귀한 복인가? 하늘나라 돈 가지고 가면 땅 투기해서 부자가 다 사겠지요.

병은 무엇으로 고치는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믿음으로 고친다.

컵의 물 무엇으로 먹는가? 입으로 먹지만 믿음으로 먹는 것이다. 여기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좋은 물 갔다 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먹는 것이다.

우체국에서 편지 붙이는 것도, 은행에 돈을 맞기는 것도 믿음이다. 믿음의 차이는 다르지만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주일 지키는 자에게 그런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믿음은 말씀을 들을 때에 생긴다. 말씀을 들을 때에 점점 더 큰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②야곱은 무슨복을 받았을까? 건강의 복을 받았다.

돈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은 것은 많이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은 것은 아주 많이 잃은 것이다.

믿음을 잃은 것은 다 잃은 것이다.(성도는 믿음을 잃으면 안된다)


③야곱은 부자의 복을 받았다.


④야곱은 자녀의 복을 받았다. 요셉과 같은 훌륭한 아이를 낳았다. 부모는 자녀가 잘되면 행복하다. 되는 집안은 내려갈 수록 잘된다.


⑤야곱은 장수의 복을 받았다. 야곱이 몇 살 살았을까?

(옆 사람 손잡고 말하자) 구구팔팔 ‘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 살자’

장수가 무조건 복이냐? 가난하게 오래 살면 복되냐? 장수가 복이 되려면 두 가지가 있어야 된다. 건강과 경제력이다. 늙을 수록 돈이 있어야 된다. 젊어서는 젊음이 재산이다.

주일은 복 받는 날이다. 이렇게 큰복을 주신다.

이렇게 좋은 것 주시는 데 주일날 어디로 가느냐?



<십일조>


1. 말3:8절“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2. 9절“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3. 10절“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①‘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라’ 십일조는 하나님의 교회(나의 집)에 드리는 것이다. 십일조는 내가 섬기는 교회에 드려야 되는 것이다.

②‘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 그러면 교회가 훨씬 더 풍성해진다. 그러면 교회가 주님의 이름으로 귀한 일에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교회가 양식있게 하라는 것은 교회 재정이 풍성해지도록 하라는 것이다. 교회가 가난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믿음으로 감당해야 된다. 드리지 않으면 계속 악순환이다.


4. 11절“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①‘황충’은 곡식을 해치는 벌레다. 그 벌레를 하나님께서 막아주신다. 우리는 농사를 하지 않는데요? 사기꾼도 황충이다. 재산을 갈아먹는 벌레, 명예를 갈아먹는 벌레. 이것 다 황충이다. 하나님이 막아주셔야지 사람이 할 수 없다.

②‘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신다’ 농사를 열심히 했어도 자연적인 재앙때문에 얼마나 많은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는가? 우리가 하루하루를 바르게 살면 내일 지구에 종말이 와도 걱정 없다. ‘주안에만 있으면 살아도 좋고, 죽어도 더 좋다’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주님 안에 있으면 좋은 것밖에 없다.

③‘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된다’ 온전히 열매를 맺게 하신다.


5. 12절“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①십일조 드리지 않으면 내 재산인 듯 하지만 결국에는 잃게된다. 내 몸에 있는 때가 살이 아니듯 십일조는 재산이 안 된다.

②논에 모 하나를 심었는데 100개 이상의 벼를 열매 맺게 된다.

*고후9:6“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심은대로 거두게 되는 것이다.

*고후9:10“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도 주신다. 주시는 이가 “풍성하게 하신다” 즉 심으면 그것만 받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심을 씨도 주시고, 먹을 양식도 주시고, 남을 도울 수 있는 것도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손해보는 일을 시키지 않으신다.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약속하신 것은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다.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에덴동산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한계를 주신 것이다. 이것을 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 ‘먹으면 죽으리라’, 사단은 ‘죽지 않는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먹은 후 하나님의 말씀이 맞았는가? 사단의 말이 맞았는가? 먹고 난 후 어떻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포장하지 않는다.

에덴은 기쁨의 동산이고, 사랑의 동산이고, 행복의 동산인데 이곳에서 쫓겨나고 결국에는 죽음이 오게된 것이다.

한 주간 중 어느 날이 보암직도 한가? 주일날이다.

100만원 받아서 10만원 십일조 준비했는데 100만원보다 십일조10만원이 훨씬 더 커보인다.

지킬 때 하나님께서 보장해주시고 지켜주신다.


신앙생활의 원리 +방법과 ×방법이 있다.

1+1=2, 1×1=1  (1년)개떡같이 믿는 사람이 앞서가는 것 같다.

2+2=4  2×2=4  (2년)잘 믿어도 차이도 안 나는 것 같다.

3+3=6 3×3=9   (3년)부터는 앞서나가기 시작한다.

4+4=8 4×4=16  (4년)부터는 갈수록 차이가 많이 난다.

어떻게 믿어야 될 것인가?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 말씀대로 살아가자.

부흥회 네번째시간      빌립보서4:4-7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4-7)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성경곳곳에 계시해주고 계신다. 그런데 왜 우리는 행복하게 살지 못할까?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여 불순종하기 때문에 불행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깨닫고 행복하게 되는 사람되기를 바란다.


한 갤럽 조사. 방글라데시 국민이 행복지수가 제일 높게 나왔다. 우리 나라 22위다. 행복지수는 선진국과는 상관이 없다. 잠4:23“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네 마음이 문제다. 사람이 행복하고 불행하고는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마음에 달려있다.

인생을 살 때 긍정적으로 사느냐, 부정적으로 사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진다.


‘젊음 안에서 기뻐하라’ 그러면 기뻐할 사람 몇 명이나 있겠는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젊음은 일순간에 지나간다. 젊음은 지날 수록 속도감이 느껴진다. 10-20대는 천천히 흘러간다. 30대가 지나면 화살처럼 지나간다. 40대는 총알처럼 지나간다. 50대는 이슬처럼 지나간다.  60대는 모르겠다.


성경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 말씀하신다.

주 안에서의 기쁨은 잠깐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이다. 항상 함께 해주시는 기쁨이다.

돈은 떠나고, 권력도 떠나고, 젊음은 떠나도 주님은 떠나지 않는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사나? 우리 주님 안에서 재미가 없는가? 재미가 있다.

행복한 월요일,

복된 화요일,

즐거운 수요일,

유쾌한 목요일,

좋은 금요일,

영광스러운 토요일,

하늘의 기쁨이 가득한 일요일.

아멘. 어느 날 하루 지루한 날이 어디 있는가?


행복한 월요일은 원래 웃고

복된 화요일은 화사하게 웃고

즐거운 수요일은 수수하게 웃고

유쾌한 목요일은 목청 높여 웃고

좋은 금요일은 금방 웃고 또 웃고

영광스러운 토요일은 토실토실 웃고

하늘의 기쁨이 가득한 일요일은 일제히 웃자.

안 웃을 날 있는가?



주 안에서 기쁨이 있는가?


첫째. 구원받은 것을 깨달을 때 기쁨 있다.

구원의 소중함을 알아야 된다. 아무리 귀해도 내가 알지 못하면 하나도 안 기쁘다.

어느 경찰관 450억 로또 당첨되었다. 기쁜가? 안 기쁘다. 안 기쁘다. 왜그럴까요? 나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족들은 기쁠 것이다. 우리가 깨닫는 것은 아무리 귀한 것이어도 나와 상관 있을 때 기쁜 것이다.

내게 있는 것 모르면 기쁘지 않다. 구원은 엄청 소중한 것이다. 그 소중함을 깨달을 때 기쁨이 솟아나는 것이다. 가난하고 부자고 상관없다.


둘째. 말씀을 통한 기쁨 이다.

읽을 때, 들을 때, 묵상할 때 기쁨이 있다. 말씀의 진리가 깨달아질 때 얼마나 기쁜가?


셋째. 기도할 때 기쁨 있다.

기도 응답을 받아본 사람은 안다. 응답 받으면 마음이 기쁘다.

뮬러는 5만 번 응답 받았다. 우리는 적어도 50번 이상은 받아야 되지 않겠는가?


넷째. 찬양을 통한 기쁨 있다.

찬양하면 즐거워진다. 찬양하다 기뻐서 즐겁고, 감격해 슬퍼도 즐겁다.


다섯째. 전도할 때 기쁨 있다.

주님의 명령을 행할 때 기쁘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리하면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라” 전도해서 한 영혼이 구원받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예수님과 수가성 여인의 대화. 예수님을 발견한 후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갔다. ‘와보라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 많은 전도가 있었다. 그때 제자들 음식을 준비해 왔지만 예수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난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영혼 구하는 기쁨이 있는 것이다.


여섯째. 선한 일을 하는 기쁨 있다.

엡2:10“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일곱째. 관용하는 기쁨 있다.

사랑, 이해, 양보, 용서의 뜻이 들어있는 것이 관용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라는 것이다. 그럴 때 행복하다는 것이다.


5-3=2 어떤 오해라도, 세 번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2+2=4 이해하고 또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


오늘부터 그렇게 살아가게 되기를 바란다.

내가 운전자냐, 보행자냐에 따라서 상황이 달라진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자.

그러면 이해가 된다. 평안해진다.


‘문제없다’ 그러면 문제가 없다. 문제야 문제...는 그 입이 문제다.

문제없는데 문제 삼으면 문제가 된다.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살아가자.

(옆 사람에게) ‘아니 그럴수가 있냐?’ 그러면 싸운다.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러면 안 싸운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했다. 그런데 양파껍질처럼 계속 벗기기만 하면 남는 게 없다. 작은 허물 덮어주질 못한다. 들쳐 내는데 선수다. 허물이 조금 있어도 그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고 일어나면 되는 것이다.


가룟 유다의 발 예수님이 씻어주셨다. 예수님이 그의 속마음을 모르셨겠는가?

베드로의 고백 ‘다른 사람들은 다 버려도’...그 후에 예수님 그에게 찾아오셔서 과거를 묻지 않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과거는 과거고 현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믿어주는 사랑이시다.

우리는 감싸주고 일으켜 세워주는 데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언제 우리를 재판장으로 임명했는가? 무엇 때문에 나서서 판단하느냐?

우리는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 그를 이해해주고, 변호해 주어야 한다.


과일 파는 아저씨에게서 과일을 사는 한 성도. 그는 매일 상하고 작은 것만 사가지고 간다. 과일 파는 분이 이상하게 여겨서 물어본다. ‘다른 사람들은 다 좋은 것 큰 것 사가지고 가려고 과일을 아래서부터 들춰내어 상하지 않은 과일도 상하게 만드는데 아주머니는 꼭 상한 것, 벌레 먹은 것, 작은 것만 사시니 왜 그러십니까?’ ‘이런 것은 팔기가 어려우시니까 제가 사려구요’ -한번 생각해보자.(조금 손해보며 살자^^*)


밥이 되면 되게 좋고

밥이 질면 지루하이 좋고

국이 짜면 짭짜름 하니 좋고

국이 싱거우면 싱그러워 좋고

이래 좋고, 저래 좋고, 좋고 좋고 그렇게 살자.

문제야 문제 하지 말고, 문제 없다 문제 없어. 괜찮아 괜찮아 하자.


여덟째. 감사하는 기쁨 있다.

빌4: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감사하는 만큼 기쁨이 찾아온다.

감사하면 좋아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사용하라.

감사의 조건을 찾아서 감사하자.


플라톤의 감사

①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다.

②여자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남자로 태어난것 감사

③미개한 나라에서 태어나지 아니하고 문화의 나라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것 감사

④소크라테스의 훌륭한 제자 된 것 감사


하물며…우리들은 무엇을 감사해야 되겠는가?

구원받은 것 감사해야된다.

사나죽으나 주의 것이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하늘나라다.

건강한 삶을 주신 것 감사하자. 최근 장애인들이 너무 많다(예비 장애인이다). 우리들은 약한 자를 돌아볼 줄 알아야 된다. 

하나님께서 왜 내게 건강 주셨는가?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것 채워주라고 주신 것이다. 왜 공부하게 하셨는가?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라고 주신 것이다.


우리들의 염려는 무엇인가?

먹지 못하는 염려가 아니다. 이것 먹을까 저것 먹을까 염려한다.

이 옷 입을까, 저 옷 입을까 고민한다. 너무 많은 것 갖지 말고 단순하게 살아가라.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

어차피 나그네 인생이다. 여기서 영원히 살 것처럼 너무 요란스럽게 살지 말자. 너무 까다롭게 살지 말자. 단순하게 살아가도록 나를 길들이자.

절제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진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자. 그러기 위해서는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서 근검 절약해야 된다. 신용불량자 무절제한 삶에서 나온 것이다.

헌금은 그렇게 인색하면서 쓸데없는데는 아까운지 모르고 쓴다. 의미 있는 곳에 쓰자.

우리의 삶 감사한 일 얼마나 많은가?

눈떠지니 얼마나 감사한가? 밥 먹게 되니 감사하고, 소화되니 감사하고, 배설되니 감사하고(삼일만 안나와 봐라) 앉으면 감사, 일어서면 감사.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평생 소원이 보는 것이다.

앉은뱅이 평생 소원 무엇인가? 걷는 것이다.

말 못하는 사람 말하는 것이 소원이다. 듣지 못하는 사람 듣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 하고 있지 않은가? 얼마나 감사한가?


불평 제조업자 있는가? 이제 폐업하라. 그리고 감사 제조업자 되자.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다. 전도가 된다. 우리가 불행하게 살면 회개해야 된다.

우리 다짐하자.

‘주 안에서 기뻐하는 생활’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는 생활’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부흥회 다섯번째시간     이사야40:1-2 “위로의 사람”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여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좌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사40:1-2)


요즘 시대에 위로가 필요한가? 하나님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정다이 말하라’고 하신다. ‘정다이 말하라’는 무슨 뜻인가? 정이 있고 다정하게 말하라. 우리들의 표현 중 ‘너 죽여’ ‘죽여주게 맛있네’, ‘죽여’ 하지 말고 ‘주여’하라. 대화를 잘하면 어떤 요리보다도 재미있다. 밤을 새워도 모른다. 대화하는 법을 배우자.



하나님은 교회에서 위로하신다.


이사야66:13“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 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위로하시는가? 어미가 자식을 위로하듯 하신다. 어디에서 하시나? 예루살렘에서 위로하신다. 그러면 우리들은 예루살렘으로 가야되는가? 오늘날 영적인 예루살렘이 어디인가? 교회가 예루살렘이다. 그러니 이 장소 우리교회에서 위로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교회에 나와야 되나 나오지 말아야 되나? 부부싸움 하면 할 수록 교회와야 된다. 상처받은 치유 이곳에서 받는 것이다. 사업이 부도나도 나와야 된다. 직장에서 명퇴, 동퇴, 황퇴(황당하게 나가는것) 되어도 나와야 된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다), 사오정, 오륙도, 삼팔선(삼십팔세가 퇴직)되어도, 그래도 교회에 나와야 된다. 교회에 와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어서 다시 살아나가는 것이다.

(따라하자) ‘사는 길은 많다’ ‘길은 많다’ ‘살 길은 있다’

하나님이 다 길을 예비하고 계신다. (찬)‘주님 내길 예비하시니 나 기뻐합니다’


이사야66:14“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 원수에게 더하리라”

‘너희가 이를 보고’는 너희가 위로를 받으면 ‘연한 풀 같이 무성해진다’는 것이다. 연한 풀처럼 싱싱해 진다는 것이다.


시107:18“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셔서 고치셨다는 것이다. ‘위경’ 위태로운 경지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다. 즉 교회에서 말씀으로 위로해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응답해주신다. 설교 듣는 시간을 기도 응답 받는 시간으로 믿으라.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를 때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갈 길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기도는 많이 하는데 말씀을 잘 듣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기도만 하면 안된다.


고전2:9“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영적, 육적 문제들을 해결해주신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우선 순위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만 확실하다면 나의 살아가는 모든 것을 염려할 것 없다.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하나님께서 언제 어떤 위로의 말씀을 주시는가?


①요즘 만나기만 하면 피곤해한다. 이들을 위해서 위로의 말씀을 주신다.

이사야40:29“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피곤한가? 능력 받을 준비가 된 사람이다. 무능한가? 그러면 힘을 얻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그렇게 주는가?

31절 말씀 “오직 여호와을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힘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대감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 사람에게 새힘도 주시고 능력도 주신다는 것이다. 피곤하고 힘들 때마다 주신 말씀 붙들고 일어서자.


②인생은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있다. 자식도 필요 없고, 남편도 필요 없고,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헤치고 살아나가야 될지 모를때 정말 혼자인가?

아사야41:10“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래도 혼자인가?


이사야49:15“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시121:8“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주시리로다” 집에 있다고 살고, 밖에 있다고 위험한 것 아니다. 하나님이 보호의 울타리를 치우시면 어디에 있든지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아무리 위험한 곳에 있어도 걱정할 것 없다.


막16:17-18“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르므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 시대 우리가 아무리 독을 안 마시려 해도 안 된다. 좋은 공기만 골라 마실 수 있는가? 물 속에 있는 것 오염된 것 많다. 우리가 먹는 과일들 농약뿌렸지만 먹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시대에 믿는 자들을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왜 걱정하지 않느냐? 하나님의 초점이 우리에게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모래 위의 발자국 이야기 - 그렇기 때문에 감당치 못할 시험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고후1:3-4“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내게 위로하셨다. 그 위로 받는 나는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위로하는 자가 되어야 된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를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위로할 수 있는가? 말씀으로 위로해 주어야 된다. 기도로 위로해 주어야 한다.


엘리야를 위로해주셔서 달려갈 길을 달려가게 하신 하나님!

오늘 여기 모인 성도들에게 힘을 공급해 주시옵소서.




























부흥회 여섯번째시간    사도행전10:1-8  “범사가 잘 되는 길(2)”


고넬료의 신앙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범사가 잘 되는 시간을 살 것인가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원한다.

천국을 죽어서만 가는 것 아니다. 은행도 본점이 있고 지점이 있는 것처럼 천국도 그렇다. 이곳은 화평지점이다. 천국에는 기쁘다. 웃으며 살아가길 바란다.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고넬료의 직업은 군인이다. 그는 장교다. 우리로 하면 중대장쯤 되는 장교다. 로마군인의 백부장이니까 큰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건했다.

그의 경건을 풀어보니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다.”이것이 경건의 능력이다. 경건의 내용이다. 우리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잃어서는 안된다.



1. 고넬료는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 혼자가 아니라 온 집으로 더불어 경외했다. 혼자 다니는 사람들을 ‘신앙과부’라고 말할 수 있다. 부흥회를 통해서 신앙과부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어느 집은 부모는 잘 믿는데 자녀들 세대에서는 잘못된 경우가 있다. 신앙의 대를 잇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부모에게 책임이 많다. 자녀는 믿는데 부모가 안 믿는 가정, 아내만 믿고 남편은 안 믿는 가정…온 집이 더불어 나온다는 것은 큰 은혜이다.

가정 구원을 위해서 강권적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 기도하면 끊어질 것은 끊어지게 되고 바뀔 것은 바꿔주신다.(*성탄절 온 가정이 찬양하는 가정)

고넬료의 가정처럼 온 가정이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되기 위해서 기도하자. 그냥 적당히 기도하지 말고 강력하게 하나님께 매달려서 기도하자. 금년 가기 전에 복음화 되기를 바란다.


*어느 집사님 새벽기도 ‘하나님 남편 구두가 왔습니다. 구두만 오지 않고 남편이 나오게 해주세요’ 그 여집사님의 발 ‘한짝은 내것, 한짝은 남편구두’ 신고 와서 기도했다. ‘남편 구두만 왔습니다’ 결국 응답받았다.

*어느 분은 남편 교회 나오지 않는데 남편의 이름으로 헌금한다. (헌금봉투에 ‘ㅇㅇ장로 미래에’) 지금은 교회 나오지 않지만 미래에 교회 나와서 장로될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헌금했다고 한다. 좋은 꿈을 꾸자. 무조건 부자되는 꿈만 꾸지말고 온 가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경건한 가정 이루기를 위해서 기도하자.



2.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


기독교는 십자가 사랑이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다. 성도가 하나님은 사랑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생각해보자. 직장에서 적응 못하는 것 본인의 책임이 많다. 왕따 되는 것 본인의 책임이 많다. 사람과의 관계 원만하게 하면 따돌림당하지 않고, 오히려 존경하는 인물이 된다. 신앙생활 하면서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 많이 있다. 어려운 일 있을 때 손선수범하지 않는다. 바르게 살면 그들이 존경하는 눈으로 본다. 예수 믿는 우리들이 똑바로 살면, 하나님 사랑이 사람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된다. 가정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될 때 하나님 섬기는 사람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기도는 많이 하면서, 철야하지만, 성질 많이 내고, 남 흉보고, 내 이익생기는 부분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면 존경은커녕 그 사람 때문에 예수 믿는 곳에서 떨어지게 하는 자들이다. 나 외에는 모두가 이웃이다. 남편도 이웃, 아내도 이웃, 내 주변 모두는 이웃이다. 하나님 섬기는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라. 이웃을 이용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아라.


하나님은 경외하고, 사람은 사랑하고, 물질은 선용(이용)하자.

하나님은 섬김의 대상이고,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고, 물질은 이용의 대상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 사랑하는데 이용하라고 물질을 주시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무시하고, 사람은 이용하고, 돈을 사랑한다.

그러니 관계가 깨지고 세상이 뒤죽박죽 되었다. 순서가 바꿨다.

그래야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이 되고, 신나는 세상, 행복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 이혼율이 많은 이유

사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기적 사랑’과‘ 이타적인 사랑’이다.

이기적인 사랑은 하면 할 수록 상대방을 피곤하게 하고 못살게 군다. 그러나 이타적인 사랑은 하면 할수록 받는 사람이 편안하고, 행복하다. 결국 자신도 행복하게 된다.

이기적인 사랑 ‘나만 나만’한다. 한국교회 성장은 했는데 성숙하지 못했다.


성숙이란 중심이동이다.

중심이동이란?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은 미숙아다. 어릴 때는 전부 자기 중심이다. 나만 나만이다. 부모님이 아프든지 병들든지 상관없다. 그러나 철이 들면 상대방을 늘 베려한다. 중심이 나에서 너로 중심이 이동한 것이다.

나 중심적 신앙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중심이 바뀌는 것이다. 부부간에 나만 나만이 아니라 남편을 먼저 배려하고, 아내를 먼저 배려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야 된다.


출애굽당시 광야에서 쓴 물이 변해 단물이 되었다. 어떻게 단물이 되었는가?  여기에 길이 있다.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나무를 꺾어서 넣었을 때’ 쓴 물이 변해서 단물이 되는 것이다. 그 나뭇가지는 예수님의 십자가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가? 우리를 살리시려고 죽으신 것이다. 그래서 사는 길이 열렸다.

이기적인 사랑은 ‘내가 살아야겠으니 너가 죽어야 되겠다’는 것이다.

이타적인 사랑은 ‘내가 너 위해 죽을테니 너 살아나라’

그런데 예수님이 3일만에 부활하셨다. 그리고 세세무궁토록 영광을 받으셨다. 죽고자하면 사는 길이 열린다. 예수님이 우리 위해 죽으셨는데 우리도 살고 주님도 살아나셨다.

이 사랑을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적용하면 우리 모두 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나 살겠다고 남을 죽이고, 남을 당하게 한다면 우리 모두 죽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의 대상이요 섬김의 대상으로 살아가자. 그러면 멋진 가정이 되는 것이다.



3. 고넬료는 늘 기도에 힘썼다.


사람은 한 두번은 잘할 수 있다. 자기 의지로 하는 것은 오래못간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할때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기도했다. 자기 힘으로 하는 사람은 자기가 영광을 받는다.

고넬료는 늘 기도했다. ‘제가 한 게 있나요? 하나님이 해주셨죠’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입혀주신다.

우리 칭찬받을 일 했을 때 위험하다. 그때 넘어지기 쉽다. ‘다 하나님의 은혜로 했죠’ 그런 마음을 갖자. 교회가 부흥된 이유도 ‘저는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하나님이 해주셔서 그렇지요’


①고넬료의 기도와 구제, 헌금, 봉사한 것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

4절“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인공위성은 올라가다가도 떨어질 수 있지만, 기도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하나님 보좌에까지 올라간다. 기도와 구제와 봉사가 올라간다. 어제 눈이 많이 왔다. 먼저 올라갔기 때문에 내려오는 것이다.


②천사를 통해서 고넬료에게 말씀하신다. 베드로 사도를 초청해서 말씀을 들어라.

돈을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 별것 아니네’라고 생각한다. 고넬료에게 주신 복은 ‘주의 종을 초대해서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다’ 가정에서 주의 종 초청해서 예배드리는 것 복이다. 그런 마음으로 심방 받으라. 무엇이든지 내가 귀하게 여기면 귀하게 되고,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면 가치 있게 된다. ‘뭐 그까짓 것’ 하면 ‘그까짓 것’ 되는 것이다.


③베드로를 초대하는 일에 경건한 하인들을 보낸다.

7절“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줄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심부름 보내는 일에 군대부하 한 명, 종은 두 명, 경건한 사람을 뽑아서 보냈다. 이들은 지금 베드로를 모시려고 하는데 사람을 보내는데 아무나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격이 구비된 사람을 선정해서 보냈다는 것이다. 주의 종은 나이로 따지는 게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우리 나라에서 나이가 제일 많아서 어른 대접을 받는 것인가? 왜 귀하게 대하는가? 하나님의 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4. 우리는 고넬료의 하인들에게서 배워야 될 것이 있다.


22절“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종들이 자기 상관을 소개할 때 ‘의인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이고, 유다 온 족속에게 칭찬을 받는 분입니다’ 자기 주인에 대해서 호평을 했다.

요즘 사람들이 자기 윗사람들에게 호평하느냐? 앞에서는 칭찬해도 돌아서면 욕한다. 뒤에서는 비난한다. 내가 존경하지 않는 분들에게 어떻게 은혜 받을 수 있겠는가? 부흥되기를 원하면 목사님 자랑하고 다녀라. 그러면 부흥된다. ‘부흥하는 교회는 목사님을 자랑한다. 교회를 자랑한다’

좋은 말을 하고 다니자. 남편에 대해서, 아내에 대해서, 자녀에 대해서 좋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말하자. 말할 때 ‘소금으로 맛을 내듯 조심스럽게 하자’



5. 베드로를 초청한 후 고넬료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24절“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①가족과 친구들을 불러모았다.

베드로를 초청해 놓고 고넬료는 낮잠 잤는가? 일가와 친척들을 불러모았다. 그냥 모았겠느냐? 무언가 준비하지 않았겠느냐? 그냥 돌려보냈겠느냐? 어려움을 감수했다. 심방과 구역예배 드릴 때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초청해서 함께 예배드리자. 이렇게 좋은 기회에 초청하자.


②그리고 ‘기다리더니’ 기다렸다.

말씀 듣는 이들이 기다림과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미리와서 기도하며 기다려보라. 그러면 은혜 받는다. 하나님은혜 사모하면 받는다.


③25절“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들어올 때 고넬료가 어떻게 맞이했는가? 베드로 발 앞에 엎드려 절했다. 그러면 모두가 보지 않겠는가? 부하, 친척, 친구…아무도 없는 자리에서는 쉽다. 그러나 다 보는 앞에서 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고넬료는 장교 있지만 베드로는 무슨 권세가 있는 자인가? 그것을 우리가 배워야 된다. 교만해서는 은혜를 받을 수 없다. 고넬료 같은 자세를 갖는다면 은혜 못 받을 자가 어디 있느냐?

교회에서 목회자는 베드로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성도는 고넬료 같은 자세로 대해야 된다.


④그때 베드로는 어떻게 했는가?

26절“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이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는가? 흉해 보이는가? 고넬료는 큰절을 하고, 베드로는 일으켜 세우면서 함께 들어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서로 높아지려고 한다면 얼마나 보기 흉하냐? 서로가 낮아지려고 하고, 서로가 귀히 여길 때 건강한 교회, 은혜 있는 교회가 된다. 그런 아름다운 풍습을 지켜가자.


⑤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임했다.

44절“베드로가 이 말 할때에 성령이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이런 자세로 사모하자. 이들은 설교를 듣는 중에 ‘성령이 임했다’ 바른 자세로 예배드리면 말씀 듣는 중에 성령이 임하신다. 주의 종을 존경하지 않고는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없다. ‘너희 중에 수고하는 분들에 대해서 알아주고, 인정해 주어야 된다’

부흥회 마지막시간   사도행전3:1-10  “기적주시는 하나님”


나이가 40된 사람이 태어나서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 한순간에 일어나서 걸었다면 보통기적이냐 놀라운 기적이냐? 놀라운 기적이다. 이러한 기적들이 가정마다 일어나기를 바란다. (옆 사람에게)‘모두다 축복의 주인공이 되어봅시다’ 성경인물이 기적을 체험한 것도 좋지만 내 자신이 기적의 주인공이 되면 더 좋다.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이 이미 기적이다. 이 기적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1. 기적은 성전에서 일어났다.


가까이 할 수록 손해 되는 게 있고, 가까이 할 수록 유익한 것이 있다. 노름꾼 가까이 해서 가까우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싸움 잘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무엇을 가까이 하면 복을 받을까? 성전을 가까이 하면 복을 받는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복을 받는다. 하나님의 종과 믿음생활 잘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면 복을 받는다.


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얼마 만에 걷는가? 나도 모른다. 다만 얼마 안걸린다.

강아지는 어떤가? 강아지도 얼마 안걸려서 걸어다닌다. 송아지는 낳자마자 금방 걷는다.

그러면 사람이 낳는 아기들은 언제 걷는가? 1년 되야 걸음마 겨우 한다. 그러면 육신적인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려면 적어도 20-30년은 부모가 돌봐주어야 한다. 그것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어야 사람구실을 한다.

그렇다면 영적으로는 이제 겨우 교회 나온지 3개월 되었다면, 태어난지 3개월 된 것이다. 태어난지 3개월 된 아이가 학교 가는가? 회사 가는가? 왜 그렇게 조급한가? 인내하면서 돌봐주어야 한다.

천주교에서는 한 사람이 등록하면 잘 믿는 사람을 붙어주어서 그 사람이 신앙을 자립할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 한번 대려오면 알아서 성장하는 것처럼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진득하게 한 사람을 인도했으면 돌보는 역할을 하자. 그런 공을 드려야 된다.


담배, 술 마시는 사람, 깡패, 사기꾼 교회 나와야 되는가? 나와야 된다. 다 나와야 된다. 쓸모 없는 것도 쓸모 있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예수 안에서는 어떤 사람도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렇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잘못해도 ‘교회 나오지 말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어느 날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과 골수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는 생명이 있다. 어느 한순간에 이 말씀이 그 심령가운데 부딪치면 변화된다. 사울이 그렇게 되지 않았느냐?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그 한마디에 그가 깨어지게 되었다. 한 순간에 새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한 교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은혜다. 부부도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하나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정상이냐? 기적이다. 하나님의 은혜다. 한 목사님에게서 평생을 거하는 것 은혜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보면 하루라도 살아가는 것이 기적이다.


감사가 없는 것은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밥해주는 것 당연하지’ 그러면 고마운 마음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남편이 직장 다니면서 월급 받아오면 ‘당연하지’ 그러면 고마운 마음이 없는 것이다.

고전15:10“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주님을 위해서 더 많이 헌신한 것도 내 능력으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라고 고백한다.


왜 감사가 없는가? 비교하니까 감사가 없는 것이다.

나는 나고 그는 그다. 하나님이 다 다르게 만드셨고, 다양하게 살아가도록 하셨다. 비교하면 늘 불행하다. 자기보다 잘 나가는 사람, 자기보다 잘 생긴 사람. 그러면 만족이 없다. 그래서 바울은 자족하는 비결을 배우라고 말한다.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그렇게 살면 다 감사하는 사람이다.


기적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성전에서 일어났다.

성전을 가까이, 말씀을 가까이, 주의 종과 가까이 하라. 가까이 한다는 것은 마음에 가로막힌 것이 없어야 된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화목하되 특별히 주의 종들과 화목하라. 그리고 기억하자. 아무리 강퍅한 심령이라 할지라도 은혜의 이슬비가 쏟아지는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말씀을 읽고 듣다보면



2. 기적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일어났다.


기적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어났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신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유능해도 그 사람들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다 자기가 영광을 받기 때문이다. 부족해도 기도하는 사람은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하는 종을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그를 높여주신다. 교회가 이렇게 성장한 것은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기도하되 끊임없이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기를 바란다.


*기도사 이야기(기도하는 사람)

기도 잘하고 싶은가? 그러면 성경을 크게 읽어라. 기도할 때는 통성으로 기도해라. 묵상기도는 기도의 깊은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초보자가 하는 것은 잠자는 것이다. 자신의 기도 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하라. 성경을 많이 읽으면 기도의 문이 열린다.

*특별한 문제 있을 때 기도하라. ‘아시지요~아시지요~아시지요 주님~’



3. 기적은 기대감을 가지고 나올 때 기적이 일어난다.


4절“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기대감을 가지고 바라봤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감을 갖는 사람은 교회에 와서 앞에 앉는다. 찬송 중에 ‘앞으로 앞으로 천성을 향해 나가세’로 되어있지 ‘뒤로 뒤로 향해 나가세’ 있는가? 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했지 ‘내려가 내려가’ 했는가? 믿음도 계속 올리기를 바란다.

믿음만이 아니다. 모든 것이 점점 올라가야 된다. 점점 내려와서는 안된다. 헌금도 올라가지 않고 계속 그대로다. 월급 올랐는데도 헌금은 그대로다. 스스로 올려라. 조금 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작년보다 성경도 더 읽고, 기도를 더 하고, 무언가 더 하고, 더 발전시키고 그런 사람이 되자.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들 앞에 나타내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발전된 모습 드러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자.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된 병자가 누워있다. 왜 누워 있느냐? 기대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38년 되었다면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오늘도 기대감을 가지고 나왔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예수님이 직접 찾아오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그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일어났다. (찬송)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낙심하지 마세요. 내일도 기대감을 가지고 바라보세요. 금년에 안되었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내년이 또 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불 내려달라고 몇 번 기도했는가? 한번에 왔다. 그러나 비 내려 달라고 몇 번이나 기도했는가? 일곱 번 기도했을 때 내려주셨다. 기도의 숫자가 문제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이루어주신다. 포기하지 말기를 바란다. 가장 적합할 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지금이 적합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니야~일년 후에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국에서 이 땅으로 돌아온 소포(기도응답)가 너무 많다고 한다.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온 소포다. 보냈는데(기도응답) 이사가고 없다. 기대감이 없기 때문이다. 기대감을 가져라. 무엇을 얻을까 하고 바라보았을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4. 내게 있는 것을 활용할 때 기적이 일어났다.


돈 달라고 했는데 ‘돈 없다’하니까 얼마나 실망했겠냐?

우리도 종종 그런 표현한다. 쥐뿔도 없는 것이, 개뿔도 없는 것이...말하지 말아라(^^) ‘돈도 없는 게 쳐다보기는’(속으로) 우리가 아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지금이 아니라 내년일 수 있다. 그 길을 바꾸어 주신다. 좋으신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자.

“은과 금 나 없어도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우리 나라 고등실업자가 너무 많다. 할 줄 아는 것도 있는데 안한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왜 못하냐? 하면 돼지. 그것이 앉은뱅이다. 믿음의 앉은뱅이도 있지만 경제적인 앉은뱅이도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 의지하는 앉은뱅이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일어나야 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일어날 수 있다.


예수님 빈들에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 어떻게 먹입니까? 그러나 안드레 ‘여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 리가 있습니다. 이것으로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먹고 남음이 있었다.

예수님이 없는 것으로 했느냐 있는 것으로 했느냐? 있는 것으로 기적을 베풀어주셨다.

아이 손에 있는 것이 큰 것이었나 작은 것이었나. 지극히 작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 가지고 크게 하셨다. 우리도 한 단계씩 한 단계씩 올라가야 된다. 비록 지금은 작지게 크게 될 수 있다.


엘리사 그는 오늘날로 하면 신학교 학장이다. 학생 중에 빚 남기고 죽은 사람 있었다. 남편은 죽었다. 생계가 어려워 두 아들을 종으로 빼앗기게 되었다. 그러면 무슨 재미로 그 여인이 살겠는가? 그 이야기를 엘리사에게 찾아가서 상의한다. ‘너희 집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기름 한 병 있습니다’ ‘그러면 두 아들과 함께 동네에 다니면서 그릇을 많이 빌려라’ 그대로 순종해서 기름을 따르는데 마지막 그릇까지 따르니까 멈추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릇대로 주셨다. 째째하게 준비하지 말아라. 큰 그릇을 준비해라.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에는 창대 하게 되는 것이다.’ 꿈은 크되 출발은 작게 하는 것이다.


이제 그 여인이 또 엘리사를 찾아간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지도를 받는다.

교만한 사람은 지도를 받지 않는다. 겸손하게 지도 받으라. ‘그 기름을 팔아서 빚 갚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사용하라’ 하나님은 빚만 갚아주시는 분 아니시다. 생활 할 수 있는 일들도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다. 하나님이 일주일에 6일 동안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이다. 육의 양식을 위해서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영의 양식만 채워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육의 양식도 주신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라. 그러면 기적을 베풀어주신다.


*(예화)한 사람 소개.

‘예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가 있음으로 점점 유익되게 해라’-할아버지 이야기를 마음에 새겼다. 그는 신문을 팔면서 상냥하고 친절하게 하면서, 그 길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그가 오기 전에는 그 동네가 지저분했는데 그 아이로 인해서 거리가 깨끗해졌다. 그를 귀하게 본 한 사람이 그를 회사의 직원으로 삼았다. 그는 그 회사에서 들어가서도 ‘내가 있음으로 무엇을 유익하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의 삶이 어떠했겠는가?


성도여러분.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나로 인해서 그곳이 점점 나아지게 하길 바란다. 화평교회에 내가 있음으로 점점 나아지기를 바란다. 없는 것 한탄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찾아서 최선을 다하자. 그러면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있는 것을 믿음으로 활용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없는 것 생각하면서 한탄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한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상담했다.

‘목사님, 저 다 잃어버렸습니다. 저에게 남은 것은 없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없습니다’

종이를 준비해 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질문했다.

‘아내는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좋은 아내 있음’ 이렇게 쓰세요.

‘자녀는 있습니까?’ ‘예 아들 하나, 딸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아들하나 딸 하나 있음’이라고 쓰세요. 이렇게 쓰다보니 있는게 너무 많았다.


우리에게 건강 있다. 믿음 있다. 풍부한 경험 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 없는 것 보지 말아라. 내게 있는 것 있다.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에게 있는 것이 이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만 생각했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교회에 유익 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자.

또 하나님께서 주신 것 내게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활용하게 하옵소서 이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자.




^^*

부흥성회를 은혜 중 마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늘 이렇게 살면 좋지만 이런 찬양이 생각납니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동산에서 말씀과 함께 살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이 세상에 우리가 해야 될 일 많이 있기 때문에 교회 밖으로 나갑니다. 받은 은혜가 큰 만큼 그 은혜 나누기 위해서 나갑니다. 말씀을 깨닫고 느낀 것으로 멈추지 않고 말씀과 함께 풍성한 열매가 삶에 가득 맺히기를 기대합니다.

사랑합니다. 


*^.~*

출처 : 화평교회교사대학
글쓴이 : 천준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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