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느낌은 '뜬금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가 지수를 내놨습니다. '빈곤감소적 성장지수'라는 것입니다. 분배상태에 변함이 없을 때 성장이 빈곤비율을 감소시키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지수가 1을 넘으면 빈곤인구가 그렇지 않은 인구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얻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2.13으로, 아시아·태평양 주요국가 가운데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아시아·태평양 주요국가 가운데 빈곤비율을 가장 많이 줄이는 성장을 한 국가라는 뜻입니다.
전혀 와 닿지가 않았습니다. 보고 듣고 겪은 우리네 현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지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꼼꼼히 읽어보니 조사기간이 눈에 띄더군요. 1990년부터 2003년까지였습니다. IMF 전과 후를 한 묶음으로 엮은 것이었습니다.
IMF를 기점으로 분배상태에 엄청난 변화가 왔고, IMF를 시발로 고용없는 성장이 본격화됐다는 걸 모두가 다 아는데 이런 지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2.
가슴 아리게 와 닿는 게 있었습니다.
IMF를 계기로 중산층이 몰락하고 상대적 빈곤층이 늘어났다는 소식이 아닙니다. 배가 '아픈' 사람보다 배가 '고픈' 사람 소식입니다. 절대적 빈곤층에 관한 얘기죠.
아기엄마가 불구속 입건됐습니다. 병마에 시달리는 남편을 대신해 식당에서 일하다가 자신마저 무릎을 다쳐 일을 못하게 된 고모 씨가 세 살배기 아기에게 주려고 우유와 기저귀를 훔치다가 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이 엄마만이 아닙니다. 고등학생 아들에게 생일상을 차려주려고 미역을 훔친 엄마도 있었고, 몸져누운 장애인 남편을 먹이기 위해 쌀을 훔친 아내도 있었습니다. 네 살배기 아들에게 먹이려고 마트에서 딸기와 아이스크림을 훔친 엄마도 있었고, 지하 단칸방에서 이혼한 딸과 살던 70대 할머니가 15살 된 손녀에게 주려고 책과 옷을 훔친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난다고 합니다. 소득분배 격차가 갈수록 심화되면서 2004년 3.60%였던 절대빈곤율(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의 비율)이 2010년에 6.11%, 2030년에 17.32%로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국책연구기관인 조세연구원이 보수적으로 잡은 통계가 이렇습니다.
3.
살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패턴이 유사합니다. 절대빈곤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엇비슷합니다. 가장이 실직을 하거나 병을 얻습니다.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나갈 돈은 많아지고 그에 비례해서 빚이 늘어나다가 어느 순간 빚을 당겨 쓸 곳조차 없어집니다. 단 한 번의 실직이, 불가항력적인 병마가 한 가족을 일순간에 절대빈곤으로 밀어넣는 겁니다.
그래서 살벌합니다. 여지가 없습니다. 패자부활전 같은 재생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가족 생계를 걱정하는 마음의 병이 오히려 육체의 병을 키웁니다. 부실한 사회보장정책 때문입니다.
4.
두 가지 모습이 나타납니다.
온정의 손길이 이어집니다. 아이 우유와 기저귀를 훔친 고모 씨의 사연을 들은 이웃들이 돈을 입금하고 아기용 칼슘을 보내줍니다.
야만적 폭력이 행사됩니다. 강릉의 한 오피스텔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일용직 노동자가 밀린 임금 넉 달치를 받으러 갔다가 현장소장이 휘두른 쇠 스탠드 옷걸이에 맞아 죽었습니다.
두 가지 모습 모두 비정상적입니다. 가장 기초적이고 정작 중요한 정부의 사회보장·공적부조는 중간지대에서 제자리 돌기를 하고 있습니다. 당장의 끼니를 때우지 못해 동사무소를 찾아간 독거노인을 내칩니다. 연락이 끊어진 지 수십 년이 됐건만 단지 자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을 할 수 없다고 돌려보냅니다.
이게 우리네 실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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