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25일 (목) 10:08 경향신문
[커버스토리]‘마흔이후 30년’을 준비하는 사람들
슈바이처는 촉망받던 신학자이자 오르간 연주에 뛰어난 음악가이기도 했다. 그는 37살의 늦은 나이에 의사가 돼 아프리카로 떠났다. 이제 사람들은 ‘신학자’ 혹은 ‘음악가’보다는 ‘의사 슈바이처’의 삶을 더 많이 기억한다.
한국의 오지여행가 한비야는 43살에 국제구호단체 긴급구호팀장이 됐다. 여전히 전세계를 떠돌아다니지만, 이제 그가 가는 곳은 전쟁과 재난의 현장이다.
의류업체 최고경영자였던 김종헌씨는 57살에 북카페를 차렸다. 그는 사직서에 “북카페를 열기 위해 그만둔다”고 썼다. 전남 나주의 박태후씨는 42살에 화가가 됐다. 자신이 직접 지은 그림 같은 집 ‘죽설헌’에서 진짜 그림을 그리며 산다. 지난 20년 동안 그는 매일 집과 군청을 왕복하는 공무원이었다.
그렇다. 그들 모두는 두번째 인생을 산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
◇평균 수명 78세, 체감 정년 45세
이제 ‘마흔 이후 30년’은 남의 일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78.63세. 1965년의 52.4세에 비하면 40년 만에 무려 25년 이상 늘어났다. 한편 퇴직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2001년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의 정년퇴직 평균 연령은 56.7세로 조사됐다. 2년 뒤 한국노동패널의 조사에서는 주된 일자리 퇴직연령이 평균 54.1세로 나타났다. 지난해 승진한 임원들의 평균 연령은 삼성 46.9세, LG 46.4세였다. 기업의 승진 피라미드 구조에서 직장인이 느끼는 체감 정년은 ‘사오정’이란 말처럼 ‘45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수명 78세, 체감 정년 45세의 대한민국. 이제 40세 이후의 30년을 위해 두번째 직업을 갖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미국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소 윌리엄 새들러 교수는 ‘마흔 이후 30년’을 ‘제3의 연령기(the third age)’라고 표현했다. 그는 학습을 통해 1차 성장이 이뤄지는 제1연령기(10~20대), 생산과 출산을 통해 가정·직장·지역사회에 정착하는 제2연령기(30~40대)에 이어 제3연령기(40~70대), 제4연령기(70대 이후)로 인생의 시기를 나눴다.
제3연령기는 최근의 장수혁명으로 생겨난 것으로 이전 세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다. 새들러 교수는 저서 ‘서드 에이지’에서 제3연령기를 “2차 배움과 성장을 통해 자기 실현을 추구해 갈 수 있는 30년의 보너스”라고 지적했다. 첫 직업에서 퇴직하고 두번째 직업을 갖게 되는 제3연령기를 자아 실현의 기간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한 아웃플레이스먼트(퇴직자 전직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평범한 재취업이나 창업 대신 숲해설가, 목공예, 집짓기 과정 등에 대한 문의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며 “아직 소수이긴 하지만 퇴직 후 평소에 꿈꿔왔던 일을 해보려는 고객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즉, ‘인생 2막’에서는 물질적 성공보다는 인간다운 행복, 일 대신 여가, 자신과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이 보다 소중한 가치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두번째 직업, ‘내 꿈을 펼쳐라’
전문가들은 “인생의 커리어맵을 설계하고 두번째 직업을 위해 10년 이상 준비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두번째 직업을 준비할 경제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갑작스럽게 구조조정이 일상화됐고, 우리 사회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미처 준비하거나 예상하기도 전에 ‘퇴직’이라는 현실이 성큼 닥쳐오는 것이다.
아웃플레이스먼트 업체 DBM코리아가 지난해 퇴직자 54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57.9%가 ‘갑작스럽게 퇴직이 결정됐다’고 응답했다. 한국노동패널의 2003년 조사에서는 50세 이상 은퇴자 가운데 55%가 비자발적 이유로, 28.5%가 건강 때문에 은퇴했다고 응답했다. 자발적 은퇴자는 고작 16.5%에 그쳤다.
DBM코리아 김용진 이사는 “두번째 인생만큼은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10년 전부터 미리 퇴직을 준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경력관리업체들도 “생계에 문제가 없는 대기업 임원급 정도는 되어야 퇴직 후 전원카페 등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생의 두번째 직업으로 꿈을 이룬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미리 준비하면 꿈이 현실이 된다고. 박태후씨는 ‘꿈의 집’을 위해 고등학교 때부터 나무를 심고 가꿨다. 그는 20년을 기다려 연금 자격을 갖게 된 바로 다음날, 공무원직을 미련없이 그만뒀다.
억대 연봉 CEO에서 북카페 주인으로 변신한 김종헌씨는 15년을 준비한 뒤 사표를 던졌다. 그는 ‘남자 나이 마흔에는 결심을 해야 한다’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내 살아온 날들에 의하면 마흔은 방황할 나이가 아니라 꿈을 꿀 나이라고. 단, 마흔의 꿈은 치기 어렸던 청년시절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아 스스로의 삶을 다시 연출해야 한다. ”
〈글 최명애기자 glaukus@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jcphotos@kyunghyang.com〉
한국의 오지여행가 한비야는 43살에 국제구호단체 긴급구호팀장이 됐다. 여전히 전세계를 떠돌아다니지만, 이제 그가 가는 곳은 전쟁과 재난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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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들 모두는 두번째 인생을 산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
◇평균 수명 78세, 체감 정년 45세
이제 ‘마흔 이후 30년’은 남의 일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78.63세. 1965년의 52.4세에 비하면 40년 만에 무려 25년 이상 늘어났다. 한편 퇴직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2001년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의 정년퇴직 평균 연령은 56.7세로 조사됐다. 2년 뒤 한국노동패널의 조사에서는 주된 일자리 퇴직연령이 평균 54.1세로 나타났다. 지난해 승진한 임원들의 평균 연령은 삼성 46.9세, LG 46.4세였다. 기업의 승진 피라미드 구조에서 직장인이 느끼는 체감 정년은 ‘사오정’이란 말처럼 ‘45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수명 78세, 체감 정년 45세의 대한민국. 이제 40세 이후의 30년을 위해 두번째 직업을 갖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미국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소 윌리엄 새들러 교수는 ‘마흔 이후 30년’을 ‘제3의 연령기(the third age)’라고 표현했다. 그는 학습을 통해 1차 성장이 이뤄지는 제1연령기(10~20대), 생산과 출산을 통해 가정·직장·지역사회에 정착하는 제2연령기(30~40대)에 이어 제3연령기(40~70대), 제4연령기(70대 이후)로 인생의 시기를 나눴다.
제3연령기는 최근의 장수혁명으로 생겨난 것으로 이전 세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다. 새들러 교수는 저서 ‘서드 에이지’에서 제3연령기를 “2차 배움과 성장을 통해 자기 실현을 추구해 갈 수 있는 30년의 보너스”라고 지적했다. 첫 직업에서 퇴직하고 두번째 직업을 갖게 되는 제3연령기를 자아 실현의 기간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한 아웃플레이스먼트(퇴직자 전직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평범한 재취업이나 창업 대신 숲해설가, 목공예, 집짓기 과정 등에 대한 문의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며 “아직 소수이긴 하지만 퇴직 후 평소에 꿈꿔왔던 일을 해보려는 고객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즉, ‘인생 2막’에서는 물질적 성공보다는 인간다운 행복, 일 대신 여가, 자신과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이 보다 소중한 가치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두번째 직업, ‘내 꿈을 펼쳐라’
전문가들은 “인생의 커리어맵을 설계하고 두번째 직업을 위해 10년 이상 준비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두번째 직업을 준비할 경제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갑작스럽게 구조조정이 일상화됐고, 우리 사회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미처 준비하거나 예상하기도 전에 ‘퇴직’이라는 현실이 성큼 닥쳐오는 것이다.
아웃플레이스먼트 업체 DBM코리아가 지난해 퇴직자 54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57.9%가 ‘갑작스럽게 퇴직이 결정됐다’고 응답했다. 한국노동패널의 2003년 조사에서는 50세 이상 은퇴자 가운데 55%가 비자발적 이유로, 28.5%가 건강 때문에 은퇴했다고 응답했다. 자발적 은퇴자는 고작 16.5%에 그쳤다.
DBM코리아 김용진 이사는 “두번째 인생만큼은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10년 전부터 미리 퇴직을 준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경력관리업체들도 “생계에 문제가 없는 대기업 임원급 정도는 되어야 퇴직 후 전원카페 등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생의 두번째 직업으로 꿈을 이룬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미리 준비하면 꿈이 현실이 된다고. 박태후씨는 ‘꿈의 집’을 위해 고등학교 때부터 나무를 심고 가꿨다. 그는 20년을 기다려 연금 자격을 갖게 된 바로 다음날, 공무원직을 미련없이 그만뒀다.
억대 연봉 CEO에서 북카페 주인으로 변신한 김종헌씨는 15년을 준비한 뒤 사표를 던졌다. 그는 ‘남자 나이 마흔에는 결심을 해야 한다’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내 살아온 날들에 의하면 마흔은 방황할 나이가 아니라 꿈을 꿀 나이라고. 단, 마흔의 꿈은 치기 어렸던 청년시절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아 스스로의 삶을 다시 연출해야 한다. ”
〈글 최명애기자 glaukus@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jcphoto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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