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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생에 넌 엄마의 연인이었나 봐

맑은샘77 2006. 7. 3. 18:39

장마 비가 오락가락 하는 7월 첫 휴일 어떻게 보내셨어요?

내일부터 기말고사를 치는 예슬이를 두고 남편과 저, 정빈이, 이렇게 셋이서 갓바위에 불공을 드리러 갔었습니다. 다행히 오고가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지만 습도가 높아 고생을 좀 했습니다. 갓바위는 소원 한 가지는 들어 준다는 기도 도량답게 오늘도 삼배를 드릴 공간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보니 참으로 기분이 묘하더군요. 이렇듯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이곳까지 올라와야 할 절박한 소원들이 저렇게 많구나 싶으니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하게 아프기도 하고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으니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저와 남편은 7월을 조금 힘들게 맞았습니다. 저는 며칠동안 퇴근을 한 뒤 곧장 집으로 오지 못하고 다리가 퉁퉁 붓도록 <빨간 원피스>를 찾아 돌아 다녔답니다. 대신동 시장에서부터 백화점, 상설 할인매장까지. 심지어는 구제 옷을 파는 가게까지. 생각보다 빨간색 원피스를 구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어요.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시장에서 빨간색 원피스를 하나 사기는 했는데... 빨간색 원피스라는 것에 너무 반가운 마음에 얼른 사왔는데.... 정빈이에게 입혀 보는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무너져 내림과 동시에 그 다음 날 바꾸러 가야하는 일도 있었지요.

왜 그렇게 빨간색 원피스를 찾아 다녔는지 궁금하시죠? 먼저 사진 한 장 보여드릴게요.

 

 

 

이 사진은 1996년 가을, 정빈이가 첫 수술에서 돌아와 첫 외출을 한 날 찍은 사진입니다. 3월에 태어나 8월에 수술을 하고 가을이 되어 돌아 온 정빈이. 통통해 보이지만 아직 부기가 덜 빠져 그런 거랍니다. 빨간색 티셔츠에 빨간색 바지, 양말까지 빨간색인 거 보이시죠? 그리고 그 후 정빈이는 몇 번 더 빨간색 옷을 입고 퇴원을 했답니다.

과학 선생이 뭐 그런 거 믿느냐고 하시겠지만 심장 수술을 한 아이에게는 퇴원할 때 빨간색 옷을 입히면 좋다는 말에 정빈이는 늘 퇴원할 때 빨간색 옷을 입었고 그 날부터 한 동안 사진 속에서처럼 빨간색 옷만 입으며 살았었답니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 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빨간색 옷.

제가 며칠동안 그렇게 빨간색 원피스를 찾아다닌 이유도 바로 이번 수술 후 퇴원하는 날 정빈이가 입을 옷을 준비해 두고 7월을 맞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바지보다는 허리가 조이지 않는 원피스가 편할 것 같아서요. 덜컥 샀다가 환불하러 갔던 원피스는 가슴 부분에 꽤 무게가 나가는 쇠로 된 단추가 달려 있는 것이 정빈에게 입히는 순간, 그 때서야 눈에 들어 왔고 안 그래도 가슴 가득 수술로 인한 상처일 텐데.... 싶은 마음에 가슴이 쿵하고 떨어지더군요. 남편도 오늘은 구했느냐는 말로 퇴근 인사를 대신하는 며칠을 보내야 했답니다. 결국 어제 장마 비 속을 많이도 돌아다닌 끝에 면으로 된 아주 편해 보이는 빨간색 원피스를 발견했고 정빈이에게 맞는 크기로 주문을 해 놓고 돌아오는데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답니다. 이렇게 정빈이의 수술을 위한 준비는 퇴원 때 입힐 빨간색 원피스를 사는 것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저보다 마음이 조금 더 여린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은 혼자 부산을 떨더니 결국 저와 정빈이를 데리고 갓바위를 향하더군요. 아마도 마음을 담아 간절하게 기원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산을 오르는 일은 정빈이에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빈이가 이번에 받아야 할 수술은 이제까지 없이 살았던 심장에 인공 판막 하나를 심는 것과 기형인 폐동맥을 교정하는 것입니다. 참 많은 것을 하면서 지금까지 왔는데 아직 이렇게 넘어야 할 산이 많네요. 폐동맥이 기형이다 보니 폐로 가는 피의 양이 적어 한쪽 폐가 기능이 많이 떨어 진 상태입니다. 그러니 산에 오르는 일이 많이 힘들 수밖에요. 그런 정빈이를 남편은 업고 산을 올랐습니다.

 

 

보통 등산 때의 모습입니다. 늘 이렇다 보니 남편과 정빈이를 보는 사람들은 한 마디씩 합니다.

“다 큰 애가 아빠 힘들게 업히다니....”

“걸어가도 될 나이구만.”

“요즘은 참... 다 큰 애를 업고... 저렇게 키워 뭣에 쓸려고..쯧쯧쯧”

사정을 모르니 쉽게들 한 마디씩 하지만 그런 말이 듣기 싫은 정빈이는 힘이 들어도 아빠에게 업히지 않으려 고집을 피우곤 한답니다. 그래도 힘이 들어 할 수 없이 업히고는 고개를 푸욱 숙인 채 오기 싫다는 산에 데려 온 아빠를 많이도 원망을 하더군요. 그 뒤를 따라가며 한 마디씩 하는 사람들에게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저희 애가 몸이 좀 좋지 않아서요....” 라는 말을 하는데 차라리 억수 같은 장마 비가 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게 제 눈에서는 줄줄줄 눈물이 흐르고.... 영화 ‘말아톤’의 한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라는 말을 외치던 지하철에서의 장면이....


“산에 오니까 왜 이렇게 머리가 아파요. 뒷골이 땡겨요. 어머니도 그래요? 아니면 저만 그런 거예요?”

“산에 오르면 누구나 다 머리가 조금씩은 아파. 높이 올라갈수록 산소의 양이 줄어드니 한 번 호흡하는 것으로 우리 몸에 들어오는 산소의 양이 줄어들고 당연히 산소 부족으로 인해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나지. 그리고 그런 상태는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많으니 머리가 많이 아픈 사람도 있고 조금 아픈 사람도 있고. 넌 다른 사람보다 그걸 많이 느끼기 때문이야. 너만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하지 마. 어머니도 머리가 아주 많이 아프고 힘들어. 그렇지만 아버지에게 업어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사정이 여의치 않아 업히고 싶어도 못 업히는 것뿐이야. 어머니가 업어달라고 하면 아버지 아마도 기절하실걸.”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에 저는 자꾸만 말이 많아지지요. 

25㎏의 정빈이를 업고 산을 오르는 남편은 힘들어하기보다 지난 번 보다 별로 늘지 않은 정빈이의 몸무게에 더 마음 아파하고..... 그래도 25㎏이라니.... 10㎏을 넘기지 못해 애를 태우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그 무게가 안타까우면서도 감사한 남편일 겁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 두 손 모아 기도를 했습니다.

“부처님, 저희 정빈이 이 번 수술로 모두 다”

그러다가 입을 다물었습니다. 욕심이다 싶었습니다. 이 번 수술로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지게 해달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생각에 ... 너무 욕심 부리면 안 된다 싶은 마음에 저 혼자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긴 호흡을 한 뒤 다시 기도를 했습니다.

“부처님, 저희 정빈이 이 번 수술 잘 하고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고.

퇴원할 때 입힐 마음에 쏙 드는 빨간색 원피스도 준비를 했고 다리에 쥐가 나도록 산에 올라 기도도 하며 맞이한 7월에 아마도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습니다.

정빈이는 참 어렵게, 예슬이 후로 7년을 기다려 저희에게로 온 아이입니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것을 주고 있는 고마운 희망의 아이이고요. 정빈이와 같이 조금이라도 있어 본 사람들은 모두 다 정빈이의 밝고 쾌활함에, 엄청난 에너지에, 기지 넘치는 유머에 놀라고 감탄하고 그리고 전염이 되어 같이 웃고 행복해 한답니다. 정빈이는 정말 세상에 빛이 되기 위해 온 아이에요. 저는 그렇게 믿고 지금까지 왔고 그 믿음은 늘 현실이 되어 주었고 앞으로도 그럴거라 믿는답니다.


‘생존율은.... 제로....입니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제 머릿속에는 ‘제로’라는 말이 너무 낯설다는, 마치 생전 처음 들어 본 단어처럼.... 제로라는 말이 무슨 뜻이지.... 한참을 생각해야 할 만큼,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한동안은 그 단어의 뜻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복이 많게도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확률은 16%라고 했습니다. 그 때 제 머릿속에서 이 세상 제일 큰 수는 16이었습니다. 그래, 이것보다 더 큰 수는 이 세상에 없어. 그러니 된 거야. 세상 제일 큰 수인 16%라잖아....

그리고 참으로 길고 힘든 시간이 지나갔고 정빈이가 1학년 때 들었던 숫자는 3. 목숨을 걸고 수술을 했는데 폐로 가는 피의 양이 3% 증가했다는 소리였습니다. 그 때의 3이라는 수는 8년 전에 들었던 제로라는 말보다 저를 더 분노하게 했었습니다.

“3%요? 겨우 3이요?”

그 말에 의사 선생님 그러시더군요. 저보다 더 화를 내면서요.

“살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뭐가 문제죠? 살아 있는데?”

맞습니다. 정빈이는 10번째 생일을 맞이했고 너무도 씩씩하게 제 곁에 살아 있습니다. 저를 얼마나 웃게 하는지 모른답니다. 제가 올 들어 체중을 10㎏정도 줄였더니 많은 분들이 곧 S자 라인인 될 거라는 말을 가끔 해주십니다.(푸하하하) 얼마 전에도 오랜만에 본 친구가 S자 라인 운운하자 정빈이 한 마디 하더군요.

“저희 어머니는 S자가 아니라 8자 라인이에요. 8자. 얼굴 크고 허리 가늘고 엉덩이 크고. S자가 아니고 8자, 아시죠? 숫자 8자요? 저희 어머니는 8자 라인이에요.”

손으로 동그라미 두 개를 그려가면서 8자 라인임을 설명하는데 모두들 뒤집어 졌다니까요. 그러더니 저를 보며 한 마디 더.

“이래가지고 언제 미스코리아 대회 나가겠어요? 운동 계획표를 다시 짜야겠어요, 정말. 아휴~~ 저 엉덩이의 살 좀 봐요.”

정빈이의 소원 중 하나가 엄마가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서 진이 되는 것 인거 아시죠?

행진 때 들 봉까지 만들어 ‘아름다운 밤이에요’라는 멘트까지 만들어서 연습시키고 있다는 거.

 

 

2005년 1월의 운동 계획표

    

 

새로 만든 운동 계획표랍니다.

 

 

빨간 펜으로 쓴 것은 계획표를 어겼을 경우 가산되는 운동이고요.

이 계획표의 압권은  'Pm 6시 20분 정빈이 밥'과 'Pm 8시 자3'이랍니다.

정빈이도 체력이 약해 일찍 자지만 제가 8시가 고비랍니다. 정빈이를 키우면서 얻은 것이 많은데 그중 잠자는 습관이요. 아픈 아이를 키우다 보니 늘 선잠을 자지요. 오래도록 그렇게 살아왔더니 이제는 그렇게 잘 필요가 없는데도 여전하답니다. 자다가 깜짝 놀라 아이의 코에 귀를 갖다대며 아이가 숨을 쉬나 확인을 하며 자던 버릇이 남아 요즘도 하루 밤에 몇 번씩 일어나요. 아이는 잘 자고 있으니 괜히 할 일 없이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다 다시 잠들곤 한답니다. 그리고 초저녁 잠이 많아요. 남편이나 아이를 돌봐줄 누군가가 있는 초저녁에 조금이라도 자둬야 했었기에....

 

큰 수술을 앞두고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니 저절로 코끝이 찡해 옵니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오간 것만 해도..... 아마 KTX 생긴 걸 대구에서 저만큼 기뻐한 사람은 몇 안 되지 않을까 합니다. 새벽 기차타고 한 번 앉아보지도 못하고 칭얼대는 아이 업고 연결 칸에 서서 오갔던 그 시절을 되돌아  보니 어떻게 해왔을까 싶기도 합니다. 병실을 지키는 것도 병원을 오가는 것도 오로지 엄마인 제 몫이었거든요. 그래서 가끔 남편에게 그럽니다.

“딱 한 번만 대구에서 출발해서 입원 수속 밟고 그 많은 검사실로 데리고 다니고, 검사 안하려고 울며 발버둥치는 아이 안고 씨름해보고 병실 지키고....  길게도 말고 일주일만. 더 하면 당신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퇴원해서 기차타고 대구 오는 것 까지 당신 혼자 한 번만 해봐요. 그래야 내가 얼마나 힘든 지 당신 조금이라도 알거 아니에요. 내가 병원에 있으면서 부러운 게 뭔지 알아요? 서울 사는 거. 그 때만큼은 정말 부러워. 퇴근해서 남편이 병실로 하루에 한 번이라도 와주는 거.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하지 않느냐고, 그래서 가고 싶어도 못가는 거 아니냐고 미안해하는 남편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정말 가끔은 나 아닌 누군가가 이 일을 좀 해줬으면, 많이도 말고 단 한 번이라도 나대신 해준다면.... 그럴 때도 적지 않았었답니다.


불교에서는 자식을 전생에 빚쟁이라고 한다지요? 전생에 갚지 못한 것을 다 갚느라 한없이 주어야만 한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정빈아, 전생에 너는 엄마의 연인이었나 봐. 아마도 이루지 못한 사랑의 연인. 그러니까 이렇게 끊임없이 엄마의 손길 눈길을 필요로 하지. 다른 누구보다 많이 널 보게 만들고 있잖니? 엄마가 그렇게 좋아? 그래서 늘 네 곁에 두고 싶은 거야? 이렇게 안 아파도 엄마는 너를 정말 많이 사랑하는데.... 이렇게 안 아파도 엄마는 늘 네 곁에 있을 텐데.... 엄마가 전생에 너를 많이 속상하게 하고 많이 애태우고 그랬나 보다, 그지? 너 마음 조금 덜 아프게 할 걸 엄마가 왜 그렇게 뻗댔을까나?”

정빈이가 첫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월요일에 수술한 아이가 금요일이 되어도 깨어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생에 연인이었나 보다, 하는 생각.

갚아야 할 것이 남아 있는 빚쟁이는 물질만의 관계일지 모르지만 연인은 아니잖아요. 엄마가 자식에게 주는 것은 물질보다는 수십, 수백 배 더 큰 마음이니.... 그리고 더 로맨틱하고요. 호호호

그래서 지금까지 저는 정빈이를 보며 그런 생각합니다.

저희 모녀는 전생에 연인이었다고, 너무 사랑한 아름다운 연인이었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연인. 마음 아프게 했던 거,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거, 그런 거 지금 해주고 있는 중이라고.... 그래서 누가 대신 해줄 수도 없는 거라고. 조금이라도 몸이 좋지 않으면 오로지 엄마만을, 그 누구도 자기 얼굴 쳐다보는 것조차 안 된다고 성질을 부리며 오로지 엄마만 찾는 것은 다 그래서라고....


정빈이는 너무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답니다.

신학기가 되어 새로 만나는 친구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수술로 인해 생긴 가슴의 흉터를 보이면서 이런 일을 겪고 이겨 낸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이야기 하는 아이랍니다. 삼각관계 러브스토리를 쓰고 있는 중인데 어쩌다 보니 자꾸만 스릴러로 장르가 변하고 있다면서 곧 가족들을 첫 독자로 자신의 장편 소설을 발표하겠다고 합니다.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 좋아해 자신의 손등, 허벅지에도 어느새 그림을 잔뜩 그려 놓았다며 문신 한 것 같지 않느냐며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랍니다. 효도해야 한다며 시장바구니는 꼭 자기가 들겠다며 그 가는 팔에 힘줄이 다 드러나도록 낑낑거리며 집까지 오는 아이랍니다.

며칠 전에는 샤워를 하다가 고함을 질러대더군요.

“어머니, 어떡하면 좋아요. 어떡하면....”

무슨 일인가 뛰어 갔더니 가슴을 두 손으로 가리면서

“가슴이 너무 볼록해졌어요. 어쩌면 좋아요.”

하는데 정말 뒤로 넘어지는 줄 알았답니다. 아마도 곧 이쁜 속옷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입으려면 한 참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덩치가 큰 친구들이 입고 있는 속옷이 부러운 눈치거든요. 수술 후 가슴에 관을 꽂아두었던 흉터 때문에 자신은 가슴이 두 개가 아니라 여러 개인 줄 알았다고 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정빈이가 요즘 가장 몰두하고 있는 일은 학교 특기적성으로 배우고 있는 로봇 만들기와 저의 옷 코디 해주는 것입니다.

합주단 단복을 입고 연주할 때 무지무지 행복하다던, 바이올린 연주가를 꿈꾸던 정빈이는 꿈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 아는 로봇을 만들어서 제가 디자인 한 옷을 입혀 무대에 서게 하는 것”으로. 그렇게 하면 바이올린 연주, 로봇 만들기, 옷 디자인과 코디,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룰 수 있다네요. 너무 멋지죠? 


“정빈아, 일어나. 우리 천재 박사 세계적인 연주가 세상의 아침, 얼른 일어나줘. 네가 일어나야 세상의 아침이 시작되는 거 알지? 얼른 일어나서 모든 사람들에게 아침을 열어 줘.”

제가 아침에 정빈이를 깨울 때 하는 말입니다.

“너의 음악을 듣고 세상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거야. 너는 세상에 빛이 되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왔거든. 그 증거도 있어. 어머니를 봐. 너 때문에 늘 이렇게 행복하잖아. 그리고 너의 연주를 들을 때 어머니 얼굴이 어떤 지는 보는 네가 더 잘 알지?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만큼 세상 모든 사람들도 너와 너의 음악이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야.” 

그리고 이건 정빈이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을 때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정빈이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아이랍니다.


그런 정빈이는 심장과 혈관 기형뿐만 아니라 지난주에는 눈에도 이상이 생겨 눈 수술까지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답니다. 1년 전부터 눈 때문에 정기 검진을 받고 있는 중이었는데....참 많이 속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답니다. 늘 더 힘든 사람들로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나 봐요.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하면서요.

여전히 정빈이는 저에게 희망이고 감사의 아이랍니다. 

정빈이로 인해 저는 <감사>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거든요. 제가 저의 작은 힘이라도 세상을 향해 되돌려 주고 싶은 것은 바로 정빈이를 통해 감사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정빈이는 참 많은 분들의 고마움으로 여기까지 왔답니다.

정빈이를 키워주셨던 친정어머니와 이모님, 내 동생들, 그리고 수술해주셨던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들과 그외 병원 관계자들, 정빈이가 먹었던 그 많은 약들과 관계 된 분들, 대구에서 서울까지 오갈 수 있었던 기차에 관계되는 모든 분들, 정빈이가 이제까지 만났던 선생님들과 친구들, 저의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 지금 정빈이를 돌봐주고 계시는 아주머니, 정빈이가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많은 분들, 바이올린과 로봇에 관계된 분들..... 도대체 다 챙길수도 없네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감사한 게 많겠어요?

 

사는 게 시시하다고, 재미없다 말하시는 분,

사는 게 힘들다 고달프다 지친다 생각하시는 분들

병원에 누워 있는 모습 상상 한 번이라도 해보셨나요? 

죽음의 목전까지 자식을 단 한 번이라도 보내보신 적이 있다면 그 말 절대 못할 겁니다.

삶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살아 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자식이 속상하게 한다며 마음 상할 때 있으시죠?

그래서 너무 힘들다 싶으실 때도.

그럴 때 이렇게 생각해보시는 건 어때요?

‘나 이러면 정빈이 엄마에게 미안한 거 아닐까?’ 하고.

정빈이와 함께 너무 행복하고 즐겁게,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 미안한 일 하지 마세요.^^ 

아이, 어때요? 건강하죠?

자다가 일어나 숨 쉬는 지 살펴봐야 하는 일은 없으시죠?

마취에서 깨지 않는 아이 때문에 지옥같은 몇 날 며칠 보낸 적이 몇 번이나 되시나요? 

저는 이렇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는 것 조차 감사하는 걸 아시는지요? 

 

정빈이에게 제가 어떤 엄마인 지 아시죠?

모나리자 엄마라는 거.

늘 웃어주고 쾌활해서 정빈이가 제게 붙여 준 별명 '모나리자 엄마'

행복은 만들어 가는 거라는 거, 잊지마세요.

 

* 저희 보다 더 힘든 분들도 많다는 걸 압니다. 혹여 제 글이 그 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상하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많답니다. 예전에 제가 쓴 글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저를 보고 '너는 좋겠다. 수술이라도 해보고'라며 저와 정빈이를 부러워 하는 분들이 병원에는 참으로 많다는. 그리고 자식을 가슴에 묻으신 분들도 계시다는 것을. 저도 우리 탁이를 가슴에 묻고 지금도 많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지금이 소중하다는 것을, 그래서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출처 : 취미/생활
글쓴이 : 이영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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