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료/이단-안티기독교

사도신경

맑은샘77 2019. 10. 23. 17:25

사 도 신 경

 

 

 

 전부터 사도신경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몇몇 독립적 침례교회들,

그리고 여러 이단들이 사도신경을 거부한다.

거부하는 가장 첫 번째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사도신경과 다른 교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사도신경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재확인시켜주는 것이며, 그 내용상에 아무 문제가 없다.

물론 사도신경 자체가 이단을 분별하는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원래 이단을 분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자.

우리가 암송하는 한글 사도신경은 매우 훌륭하게 번역된 것이다. 당연히 우리의 신앙고백으로서 손색이 없다.

사도신경에 대한 비난과 그 문제점을 살펴 보자.

사도신경은 현재 주기도문과 더불어 공식예배의 암송과 회중기도로 사용되고 있다.

 

1) 초대교회 때에는 없었다는 견해에 대하여


물론 지금과 똑같은 사도신경은 없었다.

그러나 초대교회 때는 "사도신조"라고 하여 세례시 문답을 주고 받던 것이 있었으며,

많은 이단들이 성행하게 되자 이단들을 경계하고 확립하기 위하여,

이 사도신조는 후에 "내가 믿사오며···"라고 하는 사도신경으로 바뀌어 발전되어진 것이다.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이라는 단어에서

원래 ‘신경’(Creed)라는 단어는 CREDO(내가 믿는다)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것이 니케야공의회에서 소위 니케야신조로서 확증된 것이며,

이것을 부정하면 이단으로 분류하는 공식입장을 재확인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대부분 사도신경을 거부하는 교단들은, 그러한 용어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사상과 교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거부를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아마 여호와의 증인같은 단일신론을 주장하는 이단들과 양태론을 주장하는 이단들은

삼위일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사도신경을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공개적으로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다른 핑계를 굳이 돌리면서 사도신경을 거부하는 것이다.

 

아래 신조들은 분명 삼위일체를 언급하고 있으며,

모든 기독교는 삼위일체와 기독론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으로서 받아 들이고 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믿는다. 그는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며,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시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시다.

그리고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모든 시대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낳으신 자이시고, 빛으로부터 나온 빛이시며,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피조되지 않았고, 낳으셨고, 아버지와 한 본질이시며 그분을 통하여 만물은 존재하게 되었음을 믿는다.

그는 우리 인류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셨고,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육신하시어 인간이 되셨고, 본디오 빌라도 밑에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고난받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대로 제3일만에 일어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셨고,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며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성령을 믿는다. 그는 주이시며, 생명의 수여자이시며, 아버지로부터 발출된 자이시고,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예배받으시고 영광받으실 분이시며,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분이다.

우리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 우리는 죄를 사면하는 하나의 세례를 고백한다.

우리는 장차 올 세계에서 죽은 자가 생명으로 부활할 것을 기대한다. 아멘”

 

(니케야콘스탄티노플신조, 주후 381년).

 

“거룩한 교부를 따라, 우리는 일치하여 모든 사람이 하나의 동일한 아들이며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도록 가르친다. 그는 신성과 인성이 완전하여 참 신이며,

이성적 영혼과 육체를 가진 참 인간이다. 신성으로는 성부와 본질이 동일하고, 인성으로는 우리와 본질이 동일하다: '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으시되, 죄는 없으시다'. 신성으로는 창세 전에 성부로부터 출생하였고,

인성으로는 이 마지막 때에 우리와 우리 구원을 위하여 신의 수태자인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셨다.

우리는 또한 하나의 동일한 그리스도, 성자, 주님, 독생자의 양성이 혼합, 변질, 구분,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양성의 구별이 연합으로 제거되지 않고, 각 성의 속성들이 한 인격과 한 실재 안에서 보존되고 협력한다.

두 인격으로 분리되거나 구분되지 않고, 하나의 동일한 성자, 독생자, 참 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일찍이 선지자들이 이와 같이 증거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쳤고,

우리에게 전수된 교부들의 신앙고백도 그러하다”(칼케톤신조).

 

게다가 신체적인 부활을 부정하며 영생을 부정하는 이단들도,

몸이 다시 산다(resurrection)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지 못하므로, 사도신경을 거부할 것이다.

 

2)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에 대하여


이 영어문장은 ‘under Pontius Pilate’ 이다.

다시 말해서 정확한 번역은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고난을 받으사···”가 맞다.

그러나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문장이 틀림을 말하지는 않다.

본디오 빌라도는 그 당시 실질적인 책임자였으며, 모든 것이 그의 통치하(下)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 빌라도는 실제적으로 예수께서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예수에게 채찍질을 하고 고난을 주었으며,

군중들의 압력에 못이겨 바라바를 놓아주는 비열한 인간이었다. 과연 빌라도가 무죄한가? 빌라도가 누구였는가?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눅 13:1).저희의 우상의 제물을 위하여 갈릴리 사람들을 죽여 그 피를 제물로 바친 자가 바로 빌라도이다.

즉 빌라도가 무죄하다는 사람들은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더욱이 예수님이 본디오빌라도에게 고난을 직접 받은 적이 없으므로,

사도신경을 거부한다는 것은 더욱 이상한 궤변이 된다.

 

3) ‘거룩한 공회가 가톨릭교회’라는 견해에 대하여···


사도신경의 가톨릭은 현재의 가톨릭교회를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은 교회사를 전혀 모르는

무지한 주장이 된다. 그 당시 초대교회는 이단들에 대하여 구별된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Catholic Church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그 의미는 ‘보편적인 교회’

혹은 ‘일반적인 교회’ 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다.그 당시 이단들이 너무나 성행하였고,

그 이단들의 교회와 구별하기 위하여 ‘보편적인 교회’ 혹은 ‘일반적인 교회’라고 명칭을 붙였던 것이다.

그 당시 초대교회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구별이 없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것을 거룩한 공회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곳에서 ‘공회’라고 번역된 단어는

지금의 가톨릭교회나 교황권의 공의회를 말하지 않다는 것은 당연하다.

교회란 헬라어 ‘에클레시아’로서 부르심을 받은 회중을 말하며,

히브리어 ‘카알’로서 ‘하나님의 회’, ‘여호와의 회’라고 이미 성경에 번역되어 있다(렘 23:18, 22).

또한 헬라어로 교회란 ‘에클레시아’로서 에크(···로부터)와 클레시아(불러내다)라는 말의 합성어이며,

즉 하나님이 부르시고 선택한 ‘성도들의 모임이나 회중’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의미로써 The Holy Catholic Church는 지금의 가톨릭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한글로 ‘거룩한 공회’라고 번역한 것은 매우 훌륭한 번역이다.

즉 사도신경의 ‘공회’란 회중적 모임, 예배 등을 의미하는 교회의 원래적인 개념이며,

초대교회부터 이단교회와 구별하기 위한 명칭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 공회가 유대인의 공회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만일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도신경을 거부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초대교회도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는 이유로 모든 초대교회들을 거부하여야만 할 것이다.

즉 사도신경의 공회(Catholic Church)는 지금의 가톨릭교회를 가리키지 않으며,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큰 착각 내지는 무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영어성경은 The Holy Christian Church 라고 번역한 경우도 있다.

 

4)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에 대하여


가톨릭에서는 죽은 사람들에게 성인(Saint)이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그러나 The Communion of Saint 의 Saint는 ‘죽은 성인’과의 교통을 의미하지 않으며,

성도들의 교제(코이오니아)를 의미한다. 죽은 성인과의 교통이라는 교리를 지지하는 개신교회는 없다.

Saint 라는 단어는 원래 기독교인, 즉 성도를 의미한다. Sunday Saint는 죽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요일만 기독교인인척 하는 사람이며 The Blessed Saint는 기독교 신자를 말한다.

Saint go march는 죽은 자들의 행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행진을 말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는 번역은 매우 훌륭한 번역이 된다.

가톨릭에서 죽은 사람들에게 ‘성인’(Saint)이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제도는

사도신조(니케야신조) 훨씬 이후에 만들어진 제도이므로, 사도신경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죽은 성인들에게 기도가 행하여지는 일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787년 제2차 니케야회의부터였으며,

죽은 사람들을 성인으로 선언한 것은 A.D. 995년 요한15세 교황 때부터였다.

오늘날의 성경에서도 ‘성도’는 영어로 Saint라고 번역되어있다.

 

5) 원어와 영어성경에 기록된 "He descended into hell".


이 문장이 가장 논란이 된다. 직역하면 예수님이 지옥으로 하강하셨다는 것인데,

한글 사도신경에서는 문제의 여지를 없애기 위하여 생략되어 있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대표적인 해석이 있다.

첫째 견해로는, 다음에 언급되는 ‘He ascended into heaven’(하늘에 오르사)과

대조를 이루는 구절로서 문학적인 표현방식을 갖고 있다.

‘하늘에 오르사’라는 승천은 영광과 존귀의 의미가 된다.

즉 십자가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실감적인 의미로 표현하기 위해

 ‘descended into hell’(지옥에 내려가다)라고 하였다는 견해이다.

즉 descended 와 ascended라는 두 단어와 into hell과 into heaven,

즉 영광과 고통이라는 두 단어를 비교하며 대조시켰다는 견해이다.

또 둘째 견해로는, 예수님이 죽어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구절은 벧전·4:18~19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벧전 4:18~19).가톨릭은 이 구절로 연옥에 있는 자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두 번째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주장하며 후에 면죄부의 동기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전파하다"는 단어는 "유리겔라조"(복음을 전하다)가 아니고, "케루소"(선포하다)이다.

즉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승리를 널리 선포하신 것이며 그것을 강조한 것이다.

어쨌거나 한글 사도신경은 이 문제를 생략하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라고

번역함으로써 혹 있을지도 모르는 문제의 소지를 없애 버렸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한글 사도신경을 암송하며,

한글 사도신경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글 사도신경은 교리적이나 성경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번역을 한 것이다.

 

6) ‘고어적인 용어’에 대하여


또 한가지 "저리로서"라는 의미로는 From thence 이며 현재용어로는 from there

즉 “저곳으로부터” 라는 의미로 전혀 이상이 없는 고어체이다. 현대적인 어문으로 이것은 수정됐다.

 

7) 몸이 다시 사는 것(resurrection of the body)에 대하여


기독교의 부활은 신체적인 부활이다. 성경은 신령한 몸의 신체적인 부활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생전의 육체 그대로 다시 영생한다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늙고 병이 들거나 장애를 가진 육체 그대로 영생한다는 것은 고통이 될 것이다.
즉 우리의 부활은 신령한 몸의 부활이며, 영만의 부활이 아닌 전인적인 부활이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15:42~44).

또한 빌립보서 3:21에서는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부활체는 제자들과 음식을 나누기도 하셨던 신체적이시며 가시적인 부활이었다.

더욱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9)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체가 영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알려준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신령한 몸이셨으며, 문이 잠겨진 공간에 나타나시기도 하셨으며

하늘로 승천하시기도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의 첫열매이시며,

죽은 자 가운데 먼저 나신 자이신 예수님의 부활체가 살과 뼈가 있는 신체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부활체도 신체적이 될 것이다.

 

사도신경을 부정하는 교회들은 일반 기독교의 논리와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도신경 (使 , Symbolum Apostolicum)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교도가 믿어야 할 기본적인 교의()를 간결하게 요약한 성도들의 표준 신앙고백입니다. 사도신조(使徒信條)라고도 하는데, 이 명칭은 예수의 12제자(사도)가 각기 1구절씩 만들었다는 전승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AD 4세기의 루피너스(Rufinus)가 "사도신조 주석"을 쓰면서 사도신조를 열 두 사도가 한 줄씩 썼다고 주장한데서 기인한 것으로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신앙고백(마16:16; 28:19)을 기초로 한 단편적인 신조가 2세기 부터 존재한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의 사도 신경의 모체가 된 것은 서기400년경의 라틴어로된 [로마 교회 구 신조](the Old Roman Creed)이고, 그 이후 300여년 동안 서방의 여러 교회들이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신조에 맞게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현재의 사도신경과 유사한 후기 사도신경은 AD 6세기나 7세기에 가서야 나타나는데, 초기의 사도신경에서는 발견할 수없는 몇 구절이 추가되었습니다.


즉, "지옥에 내려가셨다가"(He descended into hades)라는 구절이 추가되었고, 교회라는 단어 앞에 "우주적 혹은 카톨릭"(catholic)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었으며, "성도들의 교통(the communion of saints)을 믿사오며"라는 구절, 그리고 "영원한 생명(the life everlasting)을 믿사옵나이다."라는 구절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러한 추가 구절들은 프랑스 지방이나 북아프리카 지방의 역본들로부터 수집되어 추가된 것들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도신경은 8세기에 현재와 같은 언어로 확정되었고, 12세기에 카톨릭 교회에 의해서 공적으로 인준되었습니다.


루터와 칼뱅은 사도신경을 미사 전례에서 떼어내어 《교리문답서》에 넣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이것을 존중하게 되었는데, 현재 사용되고 있는 내용은 2세기 후반 성립된 '로마신조'를 바탕으로 하여, 5~6세기경에 갈리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무렵, 이단적(異端的)인 주장들이 많이 대두하여, 이 신조를 기준으로 이단·정통 여부를 가렸으므로 상징(symbolum)이라는 호칭이 붙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삼위(三位) 즉 하나님·그리스도·성령에 대한 구체적 신앙고백으로 되어 있는데,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수난·부활·심판 등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사도신경은 제자들이 고백한 신앙을 기초로하여 초대 교회에서 신앙의 기본적 내용을 정한 고백문으로서, 민족이나교파나 교단의 구별 없이 모든 기독교인들이 공통으로 고백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표준적인 신앙고백문입니다.


* 목차

1. 사도신경의 의의

2. 사도신경의 역사

3. 사도신경의 내용

4. 사도신경의 원문

5. 결론

 

1. 사도신경의 의의

사도신경을 다함께 암송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1. 기독교의 복음의 본질적인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성경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6000년 역사를 모두 합쳐서 가장 중요한 진리를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도신경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간단하고도 명확하게 나타낸 신앙의 요약문입니다.


2. 교회는 사도신경의 신앙 고백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신앙 고백이 없다면 그 교회도 올바른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지상의 모든 교회는 이 사도신경의 신앙 고백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교회를 교묘하게 파괴시키려는 이단의 침투에도 성도들을 지켜줍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표준적인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3. 사도신경은 공적인 신앙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어떤 사람의 개인적인 신앙 고백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나 자기 중심적 신앙 표현이나 주장이 아닙니다.
사도신경은 신앙 공동체인 교회의 공식적이고 성경적인 신앙 고백입니다.

 

 

2. 사도신경의 역사

사도신경은 언제부터 암송하게 되었나요?

최초의 신앙 고백은 마태복음 제16장 16절에 나오는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그 제자들은 교회를 세우고 전도를 하며 신앙 생활의 본을 보이면서 복음을 전파해 갔습니다.
그러다가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 교회가 세계를 향하여 흩어져 나가기 시작할 때, 신앙으로 하나가 되고 신앙적 전통을 지켜 나가기 위해 조항을 만든 것이 그 시작입니다.
신앙 고백을 위해 만든 조항들은 이단들로부터 순수한 신앙을 방어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내용이 첨가되기도 하면서 그 모양을 다듬어 나가다가, 서기 404년에 루피누스가 주석을 펴내면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신앙 고백문이 채택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무려 400여년이라는 세월 동안의 기독교의 역사가 압축된 신앙 고백의 결정판입니다.

 

 

3. 사도신경의 내용

사도신경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이 말은 사람과는 다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며, 그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고백하는 것이며,온 천지와 모든 생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주로서 하나님을 시인하는 것으로서, 이 모든 내용을 그대로 믿는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2.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구세주요 메시야임을 굳게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또한 하나님으로서 사람인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신 것을 믿으며, 본디오 빌라도라는 총독에의해 가장 극악한 죄수들을 사형시킬 때만 쓰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을 믿는 신앙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3.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자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으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이는 예수님의 죽으신 후에 일어난 일들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셔서 무덤속에 계시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음과, 하늘나라로 승천하셔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때가 되면 이 땅에 다시 오시는데, 그 때는 육신으로 초라하게 오실 때와 달리 온 인류를 심판하는 심판주로 오신다는 사실을 믿는 고백입니다.


4. 성령을 믿사오며

 

이는 성령님을 성부 하나님이나 성자 예수님과 동일한 존재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과 감동하심으로 우리가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러 은혜와 영적인 은사를 받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5.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거룩한 공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를 믿는다는 뜻이며, 성도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모이기를 힘쓰고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힘이 성도의 교통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는 내용입니다.
또한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죄를 사면해 주심을 믿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피흘리시고 죽으신 것을 믿을 때 우리의 죄는 흔적조차도 남지 않고 사라지게 된다는 고백입니다.


6.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아멘.

 

이는 우리의 죽음 이후의 영혼의 영원함을 믿는 것으로서, 우리들도 언제가는 죽게 될 것이고, 또 예수님이 신령체로 부활하신 것처럼 언젠가는 우리도 그렇게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한 나라에서 왕이나 제사장처럼 영원토록 살아간다는 사실을 믿는 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