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반/이미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맑은샘77 2018. 5. 12. 07:47

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렘브란트가 말년에 그린 "돌아온 탕자"라는 그림입니다. 신약 누가복음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미리 땡겨서 받은 막내 아들은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가 향락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 머슴살이라도 할 각오로 다시 돌아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전통에서 아버지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산을 미리 받는 것의 의미는 매우 심각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냥 유산을 미리 받는다는 것 정도의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아버지가 죽어야만 받을 수 있는 유산을 아버지 생존시 미리 받는다는 것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어 버리겠다는, 나아가 오래돤 관습과 전통을 끊어 버리겠다는 매우 도발적인 행위라고 합니다. 속된말로 하면 집안을 말아먹는 '호로자식' 정도의 의미가 되겠지요.

아늑한 고향의 품을 떠나 외지에서 멋모르고 나대다가 탈탈 털리고 나서야 제정신을 차리고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고자 하지만, 이게 가지는 현실적인 의미는 매우 복잡합니다. 속된 말로 계산이 복잡해 지는 것이지요. 하고 싶은 것 참으면서 아버지 봉양하며 고향을 지킨 형제들의 입장에서 선금땡겨 가지고 말아먹고 다시 돌아와 다시 재산 나눠먹자고 달려드는 '호로자식' 인 것이지요.

이해관계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한 용서와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늙은 아버지의 모습(이게 신약에서 예수님이 진정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용서와 사랑의 의미이겠지요. 나아가 신의 사랑과 용서를 말하겠지요.)과 기존의 죄와 단절한 새로운 변신을 보여주는 탕자의 모습(삭발과 신발이 벗겨진 맨발)과 대비되어 칼을 움켜쥐거나 품속의 칼을 빼낼 것 같은 주변의 인물들(아마도 장자와 차남 정도 되겠지요)이 신의 한없는 사랑과 지상의 어쩔 수 없는 욕심과의 긴장을 보여 줍니다.

파산과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등 비참한 말년을 보내고 있었던 렘브란트는 최후의 작품으로 성경에서 영감을 받은 돌아온 탕자 그림을 그립니다.

 '20세기 마지막 영성가'라는 평가를 받았던 헨리 나우엔 하버드대 교수는 1983년 우연히 이 그림의 포스터를 접하고, 3년 후 직접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찾아가 이 그림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묵상한 후  위대한 삶의 전환을 하게 됩니다. 1986년 하버드대 교수를 사임하고 정신지체장애인 공동체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 1996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을 합니다.

젊은 시절 렘브란트는 그림으로 큰 성공을 거둡니다. 세속의 영광을 크게 누리게 된 거죠. 돈과 명예, 인기 모든 것을 가지고, 당시 네덜란드 명문가의 여식인 사스키아와 결혼해 신분의 상승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사스키아와 사이에서 태어난 네 명의 자녀 중 세명의 아이를 잇달아 잃는 불행을 겪게 됩니다. 또한 성공한 남자의 뻔한 스토리인 여자 문제도 발생합니다. 그의 바람상대인 번째 여인 헤르트헤는 사스키아의 보석을 훔쳐 판 것이 발각되어 12년 동안 고다라는 도시에 있는 정신병원에 감금됩니다. 1640년대 후반에는 집안일을 도와주던 하녀 헨드리키에가 렘브란트의 정부가 되고 둘 사이에 코르넬리아라는 딸까지 낳지만 헨드리키에는 끝까지 정실부인이 되지 못합니다. 사스키아가 죽으면서 유언을 남겨 자신의 아들 타투스에게 렘브란트의 모든 유산이 상속되게끔 남편의 재혼은 막는 유언장을 작성했기 때문이라네요.


이런저런 사생활 문제로 그림에 전념하지 못하고, 또한 당대 수요자의 요구를 넘어서 너무 나간 그림철학(물주들의 천박한 인식을 넘어서 너무 나간 예술혼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때문에 렘브란트의 인기도 시들해지고 그로인해서 경제상황도 악화됩니다. 현재 렘브란트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야경(혹은 야간 순찰대)'의 경우 암스테르담 자경협회의 의뢰를 받은 것인데, 같은 돈을 부담했는데, 누구는 크게 나오고, 누구는 구석에 작게 나오고 등 불만이 많아서 당시에는 찬밥신세였다고 합니다.

1656년 개인파산을 신청하고, 그가 가진 보석이나 그림들은 모두 경매처분됩니다. 1660년 암스테름담의 볼품없는 집으로 이사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뒤이어 1663년 그를 헌신적으로 돌보던 헨드리키에가 죽고, 1668년에는 티투스가 죽게됩니다. 이런 연속적인 충격 속에 렘브란트도 1669년 마침내 눈을 감게 됩니다. 

1667년 그린 '돌아온 탕자'는 렘브란트가 유럽 최고의 화가에서 볼품없는 가난한 늙은이로 전락하는 끝판에 그린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가졌다가 모든 것을 잃은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죠.

돌아온 아들을 한 편으로는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이 한 손으로 꽉 누르고, 또 한손으로는 자애롭게 지긋이 쓰다듬는 눈 먼 노인은 렘브란트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일겁니다.  그렇지만 늙은 아버지에 품에 싸인 돌아온 탕자 또한 이제서야 신 앞에서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인생에서 뭔가를 느낀 렘브란트 그 자신일 것입니다.

다시 성경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돌아온 아들을 기뻐하면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를 보고, 들에서 일을 하다 돌아온 큰 아들은 화를 내며 아버지 말 잘 듣고 이때까지 산 나에게는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지도 않으면서 계집질 하느라 가산을 탕진한 아들을 위해서는 뭐하러 살진 송아지를 잡느냐고 항의를 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나와 늘 함께 했고 내가 가진 것은 모두 네가 가질 것이고, 죽었던 네 아우가 살아났고, 잃어버린 내 아들을 다시 되찾았으니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손익을 따지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고 손익을 떠나 용서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감싸안는 것은 인간을 벗어난 신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찾는 제대로 된 여행을 안내해 줄 때 우리의 종교는 비로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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