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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과학자'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

맑은샘77 2018. 3. 16. 19:25

'천재 과학자'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

배정원 기자

 입력 2018.03.16. 16:18 수정 2018.03.16. 17:56

“화학이 실행된다. 그 결과로 화학 반응이 생기고, 화학적 상호반응과 샘플에서 신호가 발생된다. 그렇게 관찰된 신호는 결과로 이어진다.”

‘여성 스티브 잡스’로 불리던 스타트업 테라노스(Theranos)의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34)는 이 한마디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2014년 홈스의 성공신화를 취재하러 온 뉴요커 기자가 ‘혈액 몇 방울로 어떻게 수백가지 질병 진단하냐’는 질문에 홈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 인터뷰를 읽은 존 캐리루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는 의심하기 시작했고, 탐사 끝에 홈스가 존재하지 않는 기술로 거대한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밝혀냈다. 그 결과 홈스는 한순간 ‘최연소 억만장자’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테라노스는 2013년 9월 미국 전역에 약 7000개의 매장을 보유한 미국 최대의 약국 체인점 월그린과 계약을 맺었다. 월그린 상점 내에 40여 개의 진단센터를 설립하고 ‘에디슨’을 활용한 질병 검사를 실시했다./블룸버그

홈스는 지난 14일(현지 시각) 미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사기 혐의로 기소됐고, 재판 대신 벌금 50만달러(5억3300만원)을 내기로 합의했다. 테라노스의 의결권은 박탈당했으며, 앞으로 10년간 어떤 회사의 임원이나 대표도 되지 못한다는 조건도 수용했다.

◇ 자수성가 ‘천재 女과학자’ 등장에 언론 환호

홈스의 세계적인 사기 행각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그는 손가락 끝에서 채취한 피 몇 방울만 있으면 260여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메디컬 키트 ‘에디슨’을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정맥혈관에 주사바늘을 찔러넣어 대량의 피를 채취해야 몇 가지 질병 유무만 확인할 수 있었던 기존의 의학 상식을 뒤집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이는 언론의 입맛에 딱맞는 소재였다. 보기 드문 여성 사업가가 고통받는 아이들을 구하고, 불합리한 의료체계를 혁신하기 위해 스탠퍼드라는 명문대를 박차고 나와 창업에 나섰다. 심지어 그는 젊고 미인인데다 고(故) 스티브 잡스를 연상케하는 검은 터틀넥을 입고 나타났다. 완벽한 성공신화 앞에 많은 언론과 사람들은 열광했다.

홈스는 간단한 질병 검사에도 수백 달러, 종합 검진의 경우 수천달러가 들어가는 반면 에디슨은 50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200여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블룸버그

처음에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테크 매거진이 홈스를 띄우기 시작했고, 이에 주요 경제 매체들이 호응했다. 이들이 테라노스의 거짓을 알고도 비호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정말 무지했을 뿐이다. 이들 매체는 정보기술(IT)과 금융의 전문가일뿐, 의료와 생명과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제대로된 지식없이 홈스와 테라노스에 대한 무분별한 찬양만 늘어놓은 셈이다.

미국 경제지 포천(Fortune)은 홈스 신화를 가장 앞장서서 포장해 이후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포천은 2014년 6월 홈스를 잡지의 커버스토리로 내세웠고,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를 90억달러(약 10조원)으로 평가했다. 그를 ‘올해 기업인’이자,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라고 했다. 결국 포천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 기사를 내고, 테라노스의 가치를 ‘0달러’로 변경했다.

◇ 기술에 무지한 사모펀드 자금과 유명 정치인 영입

홈스의 사기극을 두고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홈스를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한껏 추켜세우면서, 동시에 홈스의 사기극을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별 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테라노스는 개인 투자자의 투자금을 모은 사모펀드로부터 약 7억달러(7461억원) 이상을 투자받았다. 정작 기술 전문가인 벤처캐피탈은 테라노스에 투자하지 않았다.

이후 많은 유명인이 이사진으로 합류하며 테라노스의 기업 가치는 더 높이 올랐다. 홈스의 은사였던 채닝 로버트슨 스탠퍼드대 교수, 조지 슐츠 전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샘 넌 전 미 상원의원 등이 앞다퉈 홈스의 ‘후견인’을 자처했다.

홈스는 2015년 4월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공식 만찬에 초대됐다./블룸버그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은 ‘건강관리 예방의 새로운 시대'라는 보건예방회담에 참석하기 앞서 테라노스 연구실을 방문해 “연구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혁신을 놀랍게 생각한다. 홈스와 테라노스는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그녀가 이룬 업적은 정말 놀랍다”고 극찬했다.

이렇게 얻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홈스는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테드(TED) 등 주요 스타트업 컨퍼런스에 연사로 다니며 자신의 유명세를 더했다. 당시만 해도 바락 오마바 전 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만찬에 초대되는 거물로 성장한 홈스에 위험을 감수하고 의혹을 제기할 사람은 없어 보였다.

◇ 80여개 국내외 특허 보유하는 등 이력에 집착보여

스탠포드대에서 화학 공학을 전공한 홈스의 이력 때문에 대중은 그의 능력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더욱이 그는 18개의 미국 특허와 66개의 해외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에디슨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홈스는 공무원인 부모 덕분에 어린 시절 중국에서 살았고, 덕분에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했다. 이 때문에 대학을 다니던 도중 그는 싱가포르에 위치한 게놈 연구소에서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의 원인이 되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연구에 참여했다.

이때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2003년 약물 전달 패치에 관한 특허를 신청했다. 그녀가 출원한 첫 번째 특허였다. 이때부터 특허에 관한 홈스의 묘한 집착이 시작됐고, 매년 수십건의 연구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등록했다.

화학공학 전공이었던 홈스는 만 19세 나이에 스탠퍼드대학교를 중퇴했다. 그리고 그 이후 바늘로 찔러 나올 정도의 혈액으로 환자의 건강상태를 진단하는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블룸버그

싱가포르에서 돌아온 홈스는 곧바로 학교를 그만두고 바이오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회사의 목표는 ‘건강관리의 민주화’였다. 누구나 저렴한 가격으로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회사가 위치한 장소는 스탠퍼드대 근처에 위치한 쇼핑몰의 지하 창고였다. 여느 창업가,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홈스 역시 처음에는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꿈을 갖고 창업에 나선 것이다.

테라노스 사태를 집중 취재했던 베니티페어의 닉 빌튼 기자는 “홈스는 대학을 중퇴하고 10년을 연구에만 매달릴 정도로 혈액 분석 분야를 혁신하겠다는 강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며 “그녀는 완성되지 않은 ‘에디슨’ 기술의 환상에 빠져있었던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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