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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고 잠자리 피하고…" 황혼이혼 당한다

맑은샘77 2016. 2. 29. 23:33

"때리고 잠자리 피하고…" 황혼이혼 당한다

[법과시장] 황혼이혼의 3대 공통점

머니투데이 조혜정 조혜정 법률사무소 변호사 |입력 : 2016.02.29 05:30|:
     
조혜정 변호사
조혜정 변호사
올해 53세인 여성공무원 A씨. 몇 달 전부터 밤에 잠을 못 자고 갑자기 눈물이 흐르며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얼마 전 정신과에서 우울증으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우울증의 원인은 불행한 30년 결혼생활이었다.

남편은 교수, 아내는 공무원, 아들 둘은 모두 서울대를 졸업하는 등 겉보기에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가정이지만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며칠 만에 "말대답한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맞은 후 10여년간 남편의 폭언, 폭행이 이어졌다. 결혼 초부터 이혼하고 싶었지만 친정이 가난해 돌아갈 곳이 없었고 아이들을 낳은 다음에는 혼자 양육할 자신이 없었다.

대학교수인 남편은 자기 일 외에는 일절 무관심해 A씨가 직장을 다니면서 육아와 가사를 전담해야만 했다. 남편과 잘 지내기를 포기한 A씨는 자식교육에만 매진해 아들 둘을 모두 서울대에 보냈다. 그 때 잠시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수고했다"는 치하를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부부사이가 나아지진 않았다. 둘째 아들을 낳은 후부터는 부부관계를 하지 않았고, 대화하기 시작하면 싸우기 때문에 직접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몇 년 전부터 꼭 필요한 얘기는 문자나 메신저로 했다.

올해 51세인 가정주부 B씨는 지난해 초 둘째 딸이 대학을 졸업하자 살림을 정리하기 시작해 그해 10월 말에 집을 나왔다. 아이들이 대학교를 졸업하면 이혼한다는 오랜 결심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였다.

결혼 초기 새벽에 들어온 남편에게 "왜 늦게 왔냐"고 말했다가 기절할 만큼 맞은 것을 시작으로 3~4년 전까지 남편에게 맞고 살았다. 남편이 주로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 때렸기 때문에 B씨는 저녁이 되면 불안에 떨어야 했다. 집안의 중요한 일은 모두 남편과 시부모가 결정했고 B씨에게는 얘기조차 해주지 않았다.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 같았지만 물으면 맞을까봐 감히 묻지 못했다.

계속 맞으면서도 B씨가 이혼을 못한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돈 잘 버는 사업가인 남편 덕에 B씨는 생활비를 풍족하게 썼고 두 아이들에게 미국유학을 시켜줄 수 있었다. 남보기에는 부족한 것 없는 사모님이었지만 B씨에게 결혼생활은 지옥 같았다. 둘째 딸이 대학을 졸업한 다음날 B씨가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하자 남편은 "배가 불러서 그런다"며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A씨와 B씨의 경우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황혼이혼의 전형적인 사례들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황혼이혼에는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과도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리해봤다.)

첫 번째는 폭언·폭행이다. 대체로 결혼 초기에 시작돼 상당한 기간 반복된다. 아이들이 중고생 정도의 나이가 되면 아이들의 제지로 좀 누그러지고 이혼실행 몇 년 전부터 폭행은 중단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몇 년간 폭행이 없었다고 과거의 폭행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인 아내들은 오랜 시간이 가도 폭행당한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과거의 폭행도 아내들에게는 현재적인 이혼 원인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부부간 관계의 단절이다. 대화하면 싸우게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부부 상호 혹은 아내 쪽에서 대화를 피해서 상당히 오래 전부터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얘기하는 적이 거의 없고, 막내 출산 후부터 장기간 부부관계를 갖지 않는 이들이 흔하다. 그러다보니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른다.

세 번째는 경제적 자립이다. 아내에게 직업이나 재산이 있으면 이혼결심이 쉬워진다. 남편에게 기대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이혼 전보다 가난해지는 것쯤은 감수한다. A씨는 공무원이고, B씨는 남편에게 받은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가 있었다. 최근 남편의 퇴직금과 연금이 재산분할대상이라는 판례들이 나온 것도 중요한 고려요인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모두 갖추어질 경우 그 부부는 황혼이혼을 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 크고 난 다음에도 부부가 여전히 같이 살 것인지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된 것 같다. 황혼이혼이 좋은지, 나쁜지는 판단하기 어렵고 경우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한 번 결혼하면 평생 같이 살던 시대는 확실히 지나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