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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일 교수의 '사람이 경영이다'] 부하를 죽이는 말, 살리는 말

맑은샘77 2015. 10. 21. 15:29

[Weekly BIZ][정동일 교수의 '사람이 경영이다'] 부하를 죽이는 말, 살리는 말

조선일보 | 정동일 연세대 경영대 교수 | 입력 2014.12.08. 14:01 | 수정 2014.12.08. 14:33

강의 중 만난 한 신임 과장이 고백했다. "교수님, 이번에 과장으로 승진해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자신감을 가지고 회의에 참석해서 의견을 내고 싶은데 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니, 이렇게 훌륭한 분이 왜 자신감이 없다고 하십니까? 뭐 불편한 점이라도 있으신가요?" 물었더니 대답이 이랬다.

"제가 대리 때 일입니다. 저희 팀에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마침 제가 평소 관심이 있어 자료 조사도 좀 했던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팀장님이 회의하자고 해서 팀원이 모두 모였고, 중간마다 제가 아이디어와 의견을 자주 내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팀장님이 저한테 조그만 목소리로 회의 끝나면 잠깐 보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속으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냈더니 이 일을 내게 맡기시려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회의가 끝나 다른 팀원들이 다 나가니까 팀장님이 갑자기 '박 대리, 오늘 아침에 뭐 잘못 먹었나? 왜 자꾸 내 의견이랑 다른 말을 해?'라고 이야기하시는 게 아닙니까? 급히 사과하고 회의실을 나왔지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다음부터 회의할 때마다 좋은 생각이 떠올라도 괜히 이야기 꺼냈다가 또 나댄다는 이야기 들을까 봐 잠자코 듣기나 하자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승진한 다음에도 제 의견을 말하는 게 불안합니다."

 

상사에게 받은 모욕이 조직을 병들게 한다

상사가 기억해야 할 것 하나가 있다. 상사가 되면 자신의 존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부하들에게 훨씬 더 두렵고 중요해진다는 사실이다. 무심코 내뱉은 말 하나와 무심코 한 행동에 부하는 정신적 트라우마에 빠져 무기력하게 변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 부여된 힘과 권한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상사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무면허 운전자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를 모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연구에 의하면 직장인의 75%가 스트레스의 원천 1위로 직속 상사를 꼽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상사를 주저 없이 해고하겠다고 답한 사람이 24%나 됐다. 필자가 조사한 '부하를 죽이는 상사의 말' 중엔 "넌 그것밖에 못 하느냐, 내 그럴 줄 알았다" "너는 시키는 대로 하기나 해"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부터 "부모님이 어떻게 너 같은 애를 키우셨는지 모르겠다. 쯧쯧"까지 인격을 무시하는 발언이 많았다.

부하를 살리는 말

어느 그룹의 신임 상무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한 분이 대뜸 "제가 상무가 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입사 초기에 모시고 일했던 부장님 덕분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아니 그 부장님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이셨길래요?"라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참 의외였다.

"입사 초기에 업무도 서투르고 스스로 역량에도 좀 실망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부장님이 부르시더니 '어이 이○○씨, 거래처 가는데 같이 갑시다' 하시는 거예요. 근데 거래처에 도착해서 사람들한테 날 소개해 주시는데, '이번에 우리 회사에 입사한 이○○ 사원입니다. 이 친구가 다른 건 몰라도 공대를 나와 이 분야에서는 우리 회사 최고 전문가입니다.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해 궁금하신 게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주저하지 마시고 이 친구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이러는 겁니다. 그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데 이러시니 그날 밤 집에 가서 잠도 안 오고 창피한 겁니다. 그리고 혹시 거래처에서 진짜 전화라도 올까 봐 속으로 전전긍긍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요. 그래서 '진짜 회사 내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 봐야겠다'라는 오기로 한 3년을 지독하게 노력했더니 어느덧 회사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전문가가 되어 있더라고요."

누군가 자신의 역량을 인정해줄 때 우리는 가진 모든 것을 걸게 된다

어떤가? 부하를 핵심 인재로 탈바꿈시키고 임원 승진까지 하게 만든 리더십이 생각보다 훨씬 쉽지 않은가? 아마 그 부장님은 자신이 신입 사원을 거래처에 데리고 가서 그렇게 소개해 주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역량을 인정해주는 상사에게 모든 것을 바치게 된다는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원리를 그 부장님은 자연스럽게 실천했던 것이다.

리더는 부하들에게서 최고의 잠재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러려면 그들이 가진 능력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리더가 부하의 역량에 대한 높은 기대치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부하는 열정과 희생으로 리더의 신뢰에 보답한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는 사람이 가진 가장 강한 욕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조사한 '부하를 살리는 상사의 말' 중엔 "자네는 잠재력이 크니 꿈을 크게 가지게" "자넨 누구보다 이 일을 잘해낼 수 있을 거야" "당신 때문에 가능했어" "자네는 어렵고 힘든 일도 참 잘해"와 같이 부하의 역량을 믿어주고 인정해주는 것들이 많이 들어 있다. 오늘 상사로서 여러분의 '한마디'는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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